정신질환자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돌봄체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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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자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돌봄체계 문제다
[라이프인·생명안전 시민넷 공동기획_안전칼럼]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생명안전 시민넷 집행위원)
  • 2019.05.16 14:50
  • by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국가가 무책임하면 국민이 죽는다 

국가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혹은 알지만 돈이 든다고 하지 않는다. 변화된 이 시대에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는 일에 대한 철학은 없고, 관료주의와 기업의 압력, 혹은 또  다른 권력의 압력 속에서 길을 잃을 때 결국 다치는 것은 힘없는 국민들이다. 포용국가라는 구호는 있지만 포용하려고 팔을 뻗지는 않고 팔짱을 끼고 있는 관료들이 즐비하다. 그러므로 이 상황에서 외면당하는 국민들에게 사건, 사고가 터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진주에서의 조현병 환자 방화 및 살인사건을 포함하여 최근 거듭되고 있는 정신장애인의 자타해 사건들은 그런 관점에서 예고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으며, 지금 곳곳에서 그런 일들이 화산처럼 터지고 있다. 즉 국가가 탈원화를 하기로 법을 정했으면 탈원화를 위한 정책적, 사회적 조건을 마련하고, 성공적으로 탈원해서 지역사회에 정착하도록 하는 정책을 동반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탈원화법 '법률 180‘은 새로운 입원을 금지할 정도의 강력한 법이었다. 그것이 사회적 동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입원 금지와 함께 입원하지 않아도 될 사회적 인프라를 제공하는 법이 동시에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공립병원 환자의 80%가 탈원을 해도 사회적 문제가 크게 대두되지 않았다. 탈원화에 관한 정신보건법의 개정은 막대한 예산을 요구하는 협동조합법과 주거관련법의 동반개정 속에서 탈원한 정신장애인에게 일과 주거를 함께 지원했기 때문이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주립병원 폐쇄를 선포하면서 탈원화를 추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탈원화만 한 것이 아니라 탈원화와 함께 막대한 예산이 제공되는 것뿐 아니라 정신의학 서비스의 전달체계를 뒤흔드는 '지역사회 정신보건센터' 라고 하는 새로운 지역사회의 기관을 만들었다. 우리와는 다르게 약물 처방도 가능하고,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낮병원의 기능을 하는 기관이 동시에 문을 열었다. 

그들은 탈원화만 시킨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포용과 함께 지역사회에 정신장애인의 자리를 마련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탈원화는 아주 큰 예산이 동반되었고, 사회적 준비가 필요했고, 국민적 동의가 필요했으며, 그런 점에서 이러한 과정은 탈원화에 대한 거국적인 아젠다였다.
 

 
지금 우리 실정은 어떠한가? 과거 박근혜 정부의 말기에 몇몇 공무원이 시일에 쫓기어 만들어낸 법안과 그 대책은 그저 ‘탈원’만 결정한 상태의 법률이었다. 탈원화와 함께 정부의 정신보건예산은 증액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 없다(자살예방관련 예산은 일부 증폭이 있었다.). 입원은 어려워졌고, 탈원한 환자들은 갈 곳이 없어졌다. 가족은 약화되었고, 지역사회라고 할 만한 사회자본은 없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공적 의료가 아니라 사적 의료가 주를 이루는 상태라 정보 파악도 어렵고, 개인정보보호법을 포함한 여러 법적 절차로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는 개입할 수가 없다. 정말 역설적인 것이 범죄를 저질러야 그 이후 개입을 할 수 있는 상태인 사례들이 수두룩하다.

다시 정신장애인, 정신과 환자를 강제로 입원시키는 반인권적 방향으로 복귀할 수는 없다.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입원 절차가 필요한 현재의 한국적 실정, 보호자가 없는 정신질환자가 늘어나는 무연고 사회,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는 현재의 사회적 현실에서 친인권적인 사법적 입원 절차와 함께 정신장애인을 위한 인프라를 빠른 시간 안에 확충하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다. 모든 탈원화는 사회적 부담의 이전이 필요하다.

예전에 감금 중심 시설에 들어가던 예산을 지금 지역사회 중심의 기관으로 이전하는 정치적 결정과 재정적 결정을 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예산 자체로도 이번 일들이 예견될 만 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다. 여러 토론회에서 거론되었지만, 정신장애인의 사건사고가 빈발한 최근의 지역은 모두 가장 낮은 정신보건예산을 책정한 도시나 지자체들이었다. 즉 우연이 아니었다는 소리다. 

최근 3년 의 예산 총액을 비교분석한 정신보건지원단의 동향 보고에서 경남은 1인당 정신보건 예산이 17개 지자체 중 17위이고, 부산은 13위이고, 경북은 15위이다(최근 조현병 환자들에 의한 사건이 기사회된 3개 지역). 그들의 시민을 돌보지 않으므로 그들의 이웃이 공격받고 있는 상태이다. 동시에 경남과 경북은 대형 정신병원도 많다. 정신장애인들의 인권도 가장 낙후되었고 동시에 그들을 돌보지도 않는 지자체라 아니할 수 없다. 

인구 35만 명의 유명 도시 진주에 정신보건센터 인력이 10명 이하라는 사실은 여러 가지를 말해준다. 국가와 경남도는 진주를 비롯한 도 전역에서 일단 정신보건은 포기한 채 오랜 세월을 지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경남은 도립의료원도 폐쇄한 지자체이긴 했다. 홍준표 지사 시절에).

지금의 상황은 시급하다. 퇴원은 했으나 가족과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왔던 한 사람 한 사람을 포용하는 사회가 기다리고 있고, 직업과 주거를 제공하면서 친구도 되어주고, 가족도 되어주는 새로운 국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법을 바꾸지 않는 한 말이다. 그렇지만 현실의, 현재의 한국 사회는 그것을 개인이, 가족이 해줄 수 없는 와해된 사회자본의 무연사회이다. 

국가가 탈원화에 따른 사회적 기반을 조성해주지 않을 것이었다면 탈원화는 병원에서 인권을 박탈하다가 다시 거리에서 인권을 박탈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다시 한 번 국가의 파격적인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치매 국가책임제보다 더 많은 예산과 인프라가 요구될 수도 있으나, 재입원화로 돌아갈 수 없는 지금 이 시점에서 국가는 적어도 정신질환에 대한 국가책임에 답을 하루빨리 해야 한다. 무고한 이웃이 더 고통을 겪기 전에.

지금 정신보건복지법은 한 사람의 정신질환자를 갈 곳 없게 만드는 법, 거리를 헤매게 만든 법으로 전락하고 있다. 과연 그런 악법을 만든 그 관료들은 지금 어떤 책임을 느끼고 있을까? 그에 방조한 일부 전문가들은 이 사태에 대해 무엇이라고 변명할 것인가?

케네디 대통령은 모든 정신보건의 역사에서 탈원화와 동시에 정신보건센터법을 만든 정치인으로 세계인의 가슴에 남았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과 아시아의 정신보건 역사에 기여하고 국민들의 가슴에 다음과 같이 남아있기를 바란다.

"탈원화에 걸맞는 지역사회 정신보건센터법을 만들어서, 즉 모든 지차체에 정신장애인의 긴급 단기입원, 사례관리, 주거, 취업관련 협동조합 지원을 할 수 있는, 1인당 20명 이상을 돌보지 않게 하는 사례관리 규모의 센터 및 지역사회 인프라를 만들어서 편견, 혐오, 배제를 정신건강 영역에서 종식시키는 역사적 전환을 만든 정부의 수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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