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열린 신박한 실험판 '자급자족 도시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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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열린 신박한 실험판 '자급자족 도시 만들기'
라이프인의 '팹랩 아시아 네트워크 콘퍼런스5' 참관기
  • 2019.05.09 15:12
  • by 김지현 기자

인구의 도시 집중은 전세계적인 문제다. 한국만 해도 5,170만명에 달하는 인구 가운데 900만명 이상이 서울에 거주한다. 2050년에는 세계 인구 75%가 도시에 살 것이라고 유엔은 전망한다.

좁은 면적에 많은 인구가 거주하게 되니 주택, 환경, 교통, 실업 등 각종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전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이러한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재건축, 신도시 개발 등 여러 가지 정책을 마련해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이 근본적으로 도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강연하고 있는 토마스 디에즈(Tomas Diez) 팹시티 대표

새로운 관점에서 도시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도시 문제의 출발을 도시로 자원이 집중되고 쓰레기가 배출되는 과정으로 보고, 외부에서 생산된 제품을 소비하고 쓰레기를 다른 도시로 배출하는 대신 식량, 에너지 등 도시에서 필요한 자원을 도시 내에서 자체 생산하자는 것이다.

거주하기에도 좁은 도시에서 이런 생산 활동이 가능한지 갸웃하겠지만 '팹시티(Fab City)'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팹시티란 프로젝트 이름으로 2054년까지 도시의 자급자족률을 50% 이상 끌어올리겠다는 글로벌 프로젝트다. 팹시티 프로젝트는 2011년 페루 리마에서 열린 Fab7 회의에서 스페인 카탈루냐 고등건축연구소(IAAC),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 CBA 연구소, 팹랩 재단(Fab Foundation) 등의 협의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팹시티의 기본 구상은 자급자족의 기술 개발을 위한 아이디어와 개발 과정 및 결과를 오픈소스로 공유하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도시 네트워크와 기술을 바탕으로 도시에서 필요한 것들을 자체생산하여 도시와 국가간 물류 운송에 따른 에너지 사용과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보스턴(미국), 서머빌(미국), 케임브리지(미국), 심천(중국), 암스테르담(네덜란드), 툴루즈(프랑스), 파리(프랑스), 산티아고(칠레), 디트로이트(미국), 쿠리치바(브라질) 등 세계 대도시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지난해 서울시도 동참을 선언했다.

다소 추상적이어 보이는 이 아이디어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흥미롭게 진행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일명 메이커(제작자)들의 국제적인 축제라는 '팹랩 아시아 네트워크 콘퍼런스5(Fab Lab Asia Network 5th)'가 지금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난 6일부터 오는 11일까지 은평구 불광동 서울혁신파크에서 '팹랩 아시아 네트워크 콘퍼런스5'(Fab Lab Asia Network 5th·FAN5)가 진행된다. 콘퍼런스의 주제는 '우리는 변화를 만든다'(We Make Change)이다.

'팹랩(Fablab)'은 누구나 원하는 제품을 만들고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게 공개된 차세대 실험 공방을 뜻하고, '메이커'는 발명가, 공예가, 기술자, 디자이너 등의 모든 활동을 융합한 개념으로 3D 프린팅 레이저 커터 등 첨단기술을 활용해 필요한 제품은 무엇이든 만들어 내는 사람을 뜻한다.

아시아 네트워크 콘퍼런스지만 전세계 팹랩 관계자들이 두루 찾았다. 서울시에 따르면 인도·중국·일본·필리핀 등 아시아 지역 뿐만 아니라 전세계 유명 메이커들을 비롯해 호주·뉴질랜드·프랑스·스페인·영국·캐나다·미국·터키 등에서 참가를 신청한 수가 150여 명을 넘었다.

한국에서는 처음 열리는 콘퍼런스다. 27개국 60여 도시의 제작자 400여 명이 이곳에 모여 식량, 에너지, 나무, 흙, 재생, 섬유, 비전(전기·화학제품을 쓰지 않는 삶)화 등 7개 주제로 팹시티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일반 시민이나 학생도 현장에서 등록하고 직접 참여할 수 있다. 11일까지 계속되며 일반인 체험은 10일까지 가능하다.

팹시티 캠퍼스에서는 지속가능한 미래 도시를 체험해 볼 수 있고, 전 세계에서 대표적인 제작자들이 운영하는 26개 제작 워크숍을 참관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메이커들이 매일 강연에 나서고, 메이커들간 시제품 경진대회(해커톤)도 진행되고 있다. 또한 각국의 팹랩 운영 사례를 발표도 들을 수 있고 재난 구호활동이나 드론으로 숲 조성하기, 미생물로 그림 그리기 등 다양한 제작 기술 체험 워크숖을 경험할 수 있다.

이번 행사에서는 강연 및 50개 가량의 워크숖 및 체험 프로그램이 매일 다르게 진행된다.

행사 이틀째인 7일에는 오전 9시 오프닝 행사에 이어 10:30까지 아시아 각국의 랩 관계자들이 자국의 랩 상황 및 활동에 관해 간단한 리뷰가 있은 뒤 다과회가 열렸다.

다과는 비건푸드로 넌-지엠오(Non-GMO) 혹은 유기농 제품으로 마련되었으며 11일까지 행사장 곳곳에서 무료로 제공된다.

곧이어 토마스 디에즈(Tomas Diez) 바로셀로나 팹시티 대표의 '지역의 제작 생산 생태계'(Local Production Ecosystem), 팹시티 파리 도시 대표 민 만 응우엔(Minh Man Nguyen)의 '지역의 공유 자원으로서의 공개 자료(오픈 소스, Open-source)와 공개 자원(오픈 리소스, Open- resource)강연이 펼쳐졌다. 10일까지 매일 오전 해외 유명 인사와 국내 관계자의 강연 및 워크숍은 계속된다.

오후부터는 각 워크숍 별로 제작 참관회가 펼쳐지는 가운데 해커톤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주제 설명이 열렸다. 이번 주제는 '길거리'로 해커톤 참가자들은 이날부터 3일에 걸쳐 도시의 길거리 문제 해결을 위한 제품 제작에 돌입한다. 기존에는 이틀간 24시간 내내 제작에 매달리는 방식이었지만, 이번에는 3일간 오후에만 진행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들이 무엇을 제작해 낼지는 마지막 날이 되어야 확인이 가능하다.

야외에서는 식량, 나무, 재생, 에너지, 비전화, 흙, 섬유 등 7개 주제별로 '팹시티 캠퍼스' 전시 및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는데, 체험 프로그램은 매일 조금씩 다르다.

▲ 식량 도시
식량도시에는 수경재배용 식물 농장과 개인용 식물 재배 컴퓨터(Personal Food Computer. PFC)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PFC란 퍼스털 푸드 컴퓨터는 작물을 생장시키면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실험하는 소형 컴퓨터이다.

MIT 대학의 미디어 랩에서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시작한 프로그램으로 어떤 식물이 어떤 환경, 온도, 습도, 시간에 잘 자라고 풍미가 강해지는 등을 컴퓨터가 실시간으로 식물의 생장 전 과정을 조사하고 기록하고 분석한다.

현장에는 전시용이라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지 않지만, 실제에서는 카메라가 성장 과정을 모두 찍고 잎의 연면적, 크기. 성장의 차이도 모두 프로그램에 실시간으로 올라간다고 한다.

습도 조도 등 모든 것을 시간별로 제어 할 수 있다. 뒤편의 4개의 실험관에는 각기 물, 양액 두 종류, PH를 맞춰주는 용액이 들어있다. 작물이 가장 잘 자라는 PH 5~5.5에 맞춰지게 자동으로 조절된다. 전구도 식물의 광합성에 이용되는 파란색과 빨간색 파장만(합해서 보라빛으로 보인다) 비춰지는 등 개별 식물에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왼쪽사진은 PFC, PFC에서 기록된 모든 데이터는 공개된다. 모바일로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하다(가운데 사진). 팹랩의 모든 데이터는 오픈소스로 이용된다. 오른쪽 사진은 수경재배 키트로 하단에 물펌프가 있다.

농부들은 각자의 노하우가 담긴 경험치 공유를 꺼리기 때문에 오픈소스로 최적의 농업 소스를 공개해 처음 농사를 짓는 사람도 성공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현재 MIT는 3년에 걸친 실험을 마치고 컨테이터 팜에서 테스트를 하고 있다고 한다. 수집한 식물별 레시피는 오픈 소스로 공개되어 있다.

한정된 면적에 여러 단을 올려 토경재배에 비해 좁은 면적에 훨씬 많은 작물을 수확할 수 있게 고안된 수경재배 시설도 보였다. 도시 옥상이나 베란다에서도 이용이 가능하다.

물과 양액이 하단의 펌프로 계속 공급되기 때문에 수경재배의 경우 토경재배보다 훨씬 자라며 미세먼지나 해충 피해로부터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푸드 마일리지'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다. 푸드 마일리지란 수송량과 수송거리를 곱한 수치로 식재료가 생산, 운송, 소비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부담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다. 푸드 마일리지가 클수록 살충제나 방부제가 많이 사용되고, 장거리 운송을 위해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 나무도시
가장 적은 부재와 최소한의 연결로 최대한의 공간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나무 파빌리온이 선보였다. 상호지지구조를 이용 서로 의존하면서 얹혀 있는 나무로 공간을 만들었다. 케이블로만 연결되어 있지만 나사만큼 강력한 구조라고 한다.

나무사이가 떠 있지만 완전히 지지되는 구조다. 정중앙에서부터 만들어 내려오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왼쪽 사진이 상호지지구조로 만들어진 목재 파빌리온이다. 오른쪽은 제작 과정에서 사용되는 모든 나무를 사용할 뿐 아니라 재활용까지 염두에 두고 만든 조립식 가구.

또한 제작단계부터 가구에 쓰일 부분을 제외한 자투리 나무까지 사용하겠다고 구상하고 제작한 가구도 선보됐다. 처음 프로토타입으로 고안한 미니어처 제품부터 자투리 부분을 활용한 파티션까지 자원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한 메이커의 노력이 돋보였다.

조립식 가구를 실제로 제작하기 전에 레이저 커터를 활용해 만든 모형. 왼쪽 사진은 파티션이 가구를 잘라내고 만든 나무를 재활용한 작품이다.

▲ 재생도시
버려진 장난감과 책, 천막을 이용해 만든 업싸이클 상품들이 눈에 뜨였다.

각종 나사와 전선 플라스틱이 조립되어 있는 복합 플라스틱 제품인 장난감은 종류별로 분해되지 않는 한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장난감 분해하고 분해된 장난감 조각을 이용해 새로운 작품을 체험이 제공됐다. 알록달록한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흔히 재활용이 된다고 알고 있는 그림책도 비닐로 코팅된 표지 때문에 재활용이 불가능했다. 그림책 표지를 재활용해 팝업북을 만들고 이를 활용해 스토리를 만들고 책을 가지고 노는 체험을 제공하는 프로그램과 버려진 현수막을 이용해 여러 가지 제품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의 제품도 높은 완성도로 호기심을 자극했다.

왼쪽이 팝업북, 오른쪽이 버려진 천막으로 재생된 제품들.

▲ 섬유 도시
섬유도시에서는 폐섬유에 아교를 부어 굳혀 만든 인테리어 타일로 만든 작품이 전시됐다. 타일 제작하는 현장을 보고 체험도 할 수 있었다.

섬유산업은 탄소배출이 많아 환경오염의 주원인으로 꼽히지만, 섬유산업의 발달로 하루에 생산되는 섬유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폐섬유로 재생한 타일로 만든 작품(왼쪽). 오른쪽은 타일 한조각을 확대한 모습.

이외 워크숖에서 바느질이 필요없는 맞춤형 의류를 디자인하고 레이저로 자르는 방법 및 모듈형 재구축 가능 의류를 제작하는 방법이 시연될 예정이다.

▲ 흙의 도시
가장 자연을 덜 파괴시키는 건축이라는 과제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흙건축과 흙을 이용한 제품들이 전시됐다. 흙으로 벽돌을 빚어 구우면 세라믹으로 변하지만, 굽지 않고 흙의 장점을 그대로 유지한 흙벽돌을 이용해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색깔도 다양했다. 돌 안에 여러 가지 색이 있듯이 흙에도 여러 가지 색이 있는데, 그 색을 이용해서 색깔을 낸 흙벽돌과 흙으로 만든 친환경 흙페인트가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오른쪽은 흙으로 만든 친환경 페인트. 왼쪽은 파스텔 색상의 흙벽돌.

과거 알함브라 궁전 등도 흙을 이용해 높고 크게 지었고, 현대에도 흙 사이의 공기층을 최소화해서 단단하게 하면 흙으로 얼마든지 튼튼하게 건물 지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특히 석회를 흙과 섞으면 엄청나게 단단해지기 때문에 흙으로도 얼마든지 현대적인 건축이 가능했다.

▲ 에너지 도시
에너지 도시를 형상화한 구조물에서는 태양광 페널이 모은 에너지를 이용해 불도 키고, 핸드폰도 충전해 주고 있었다.

또한 시민들은 구조물 벽면에 새겨진 큐알코드를 카메라로 스캔하면 에너지 도시 가상공간으로 자동으로 연결되어 다양한 에너지 정보를 얻고 네트워킹을 할 수 있었다.

▲ 비전화 도시
비전화 도시는 8일부터 전시된다. 도정기 생태변기처럼 전기를 쓰지 않고 손수 만들 수 있는 비전화 제품들을 직접 살펴보고 써보는 기회들이 제공된다고 한다.

이 외 행사장 곳곳에서 워크숍이 진행됐는데 기발한 상상력이 동원된 각국의 랩 담당자들이 직접 실험을 시연해 이번 축제 참가자들도 곳곳에 보여 참관하는 모습을 보였다.

위사진은 workshop 6에서 베트남 참가자가 친화경 플라스틱을 제조하는 과정을 시연하는 모습. 각국의 참가자들이 모여 관람하고 질문을 주고 받았다. 아래사진은 미생물로 그림 그리기, 바이오 가죽 만들기 등 다양한 바이오 체험을 제공하는 바이오랩.

행사 참가 문의는 서울이노베이션팹랩팀(02-6365-6835)으로 하면 된다. 사전 신청은 행사 공식 누리집(www.fan5.kr) 또는 페이스북(www.facebook.com/makerpark19)으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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