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뭐하는 데냐 ⑥] 이주여성 아이들의 꿈이 자라는 골목, 행복공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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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뭐하는 데냐 ⑥] 이주여성 아이들의 꿈이 자라는 골목, 행복공부방
상도동 매력탐구 시간 - 상도동 주민이 말하는 상도동
  • 2019.04.05 15:15
  • by 정설경(골목플랫폼을 구상하는 상도동 주민)

상도동 정착 7년 차. 청년들의 상도동살이를 담다가 만난 성대골 골목카페의 권오희대표, 이주여성들의 삶을 물심양면으로 돌보며 그들의 아이들까지 챙겨야 하는 건 거역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순탄하지만 않은 이주여성들의 삶과 그 아이들이 머물러 있는 특별한 상도동 이야기를 풀어본다. <글쓴이 주>           

 

 
이주여성 아이들에게 행복을 주고 싶은 공부방

권오희 대표는 2004년부터 다문화다민족어린이집을 운영하며 외국인 이주여성들을 자연스럽게 만났다. 당시만 해도 이주여성들이 우리말을 습득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탄탄하지 않았고, 배울만한 여건도 관대하지 않았다. 여파는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이어졌다.

엄마가 자신의 모국어를 맘껏 쓸 수도 없어 아이에게는 한국말을 해야 하는데 어려웠다. 엄마에게서 한국어를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은 또래에 비해 언어발달이 늦고, 공교육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상황에 부딪혔다. 주변인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니 아이의 지적성장에 영향을 미쳤다. 아이를 낳고서 더 난감해진 이주여성들, 생활도 어렵지만 양육은 더 어려웠다.

성대골 골목카페가 있는 골목은 이주여성들이 아이를 돌보며 어울려 지내는 터전이 되었다. 권 대표는 아이들의 방과 후 시간을 채우는 돌봄엄마를 자처하며 카페 지하에 '행복공부방'을 열었다. 다문화로 구분 지어지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이 아이들을 지역아동센터에 보내지 않았다. 가정을 원만히 꾸려갈 수 없었던 이주여성들은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이중고를 안고 있어 아이를 돌봐주는 게 절실했다. 지금은 유아부터 초등학교 5학년생까지 공부방에서 방과 후 시간을 보내지만, 이미 공부방을 졸업한 아이들도 권 대표가 진로를 살피며 여전히 '성장 관리'를 하고 있다.

아이들의 엄마가 취약한 것은 언어만이 아니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삶의 구조에서 진로지도는 그림의 떡이다. 그나마 이곳 공부방이 있어 아이들은 다방면의 정보 지원을 받고 있다. 찾아간 날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가 간호조무사 시험에 합격했다고, 넘나 기분이 좋다고 마음껏 자랑하셨다. 그 아이가 고3이던 작년에 현실가능한 진로를 권하며 꾸준히 상담하고 지도한 결과로 얻어낸 것이라 더 기쁘다.
 

 
엄마를 대신한 또 다른 엄마의 역할

행복공부방의 아이들은 언어발달이 늦은 데서 겪었던 학습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공부방 살림을 전담하는 선생님과 과목별로 지도하는 자원봉사 선생님들 덕으로 순조롭게 학습하고 있다. 이곳의 아이들은 12명가량이고 이 중 11명이 한부모 가정이다. 엄마들이 외국인이라는 공감대가 있어 공부방이 안식이 되지만, 결혼이주여성들의 가정사가 순탄치 않은 것도 보여준다.

언어 장벽으로 고통을 겪던 아이들에게 권 대표는 늘 당부했다. "너희 엄마는 외국인이니까 너희가 스스로 시간을 꾸려야 한다." 꾸준히 얘기하고 끊임없이 설득했더니 아이들이 학습을 따라간다. 여기까지 오기엔 정말 쉽지 않았다. "왜 엄마는 우리말을 모르냐"며 울분 섞인 원망을 토해내는 아이들을 받아주고 다독여주고 위로하며 함께 하지 않았다면 지금 공부방의 '행복한 웃음'은 없었을 것이다.

특별한 돌봄과 지원이 필요한 이주여성의 자녀들

이주여성 아이들이 한글을 떼려면 보통의 아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권 대표가 보아온 경험이다. 한글을 떼지 못하고 우리말이 서툴러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고통과 직면했다. 보통의 엄마들은 아이에게 책 읽어 주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데 이주여성들에게는 퍽 어려운 일이다. 한글을 깨우쳐서 책을 읽어준다고 해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지 못해서 아이들과 교감하는 것이 불완전하다.

더구나 많은 이주여성들은 한부모가 되어 생계를 꾸려야 하니 아이들의 마음 성장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안정되지 못한 생활 여건에서 아이를 양육하니 엄마의 정서적 불안정은 아이에게 전가된다. 이들을 위한 사회적 배려를 끌어내기 위해 권 대표는 아이들을 돌보고 언어능력을 끌어올려 자존감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말과 글을 터득하면서 책을 읽더니 대화를 하고 자신감을 얻으니 아이들은 밝아졌다. 자존감이 높아지니 말하는 자신감도 살아났다. 그래도 아쉬운 것이 있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나라'를 알려주고 싶어 관심을 끌어보는데 아직 외국어와 문화에 관심이 적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엄마의 나라를 알고 언어를 습득하면 더 큰 강점을 얻을 수 있다고 얘기한다.

아이들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대부분 대학을 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학습능력이 충분치 않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우선 취직을 안내하고 있다. 그 아이가 지닌 적성을 배려해서 정보를 찾아 권한다. 서비스업이 잘 맞을 것 같은 남자아이는 간호조무사학원을 열심히 다니고 있다. 엄마가 일하느라 어린아이를 혼자 둬서 심리치료를 받는 아이, 아픔이 많아 약물치료 중인 아이, 가슴 아픈 사연들을 지닌 이 아이들은 권 대표에게 남다른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엄마보다 아이들을 더 많이 알고 있다. 엄마들은 일을 해야 하니 아이들을 돌보고 엄마가 돼 주는 곳이 공부방이다. 이제는 엄마모임을 하며 아이들 상담도 하고 부모교육도 할 수 있을 만큼 공부방의 역량도 높아졌다.

우리 모두의 아이로 함께 키우는 동네를 꿈꾸며

이곳 공부방은 비좁은 지하 공간이다. 전담 선생님도 더 있으면 좋겠다. 방 한 칸으로 마련한 아이들의 심리치료실은 공부방과 분리된 공간이면 좋겠다. 이곳 아이들 모두는 상담 치료를 받고 있다. 재능 기부하는 선생님의 배려로 이것도 가능하다니 복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다. 이주여성 아이들이 충실한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세심하고 자상한 시스템이 갖춰지면 좋겠다.

아이들이 거쳐 온 환경이 다르니 몇 배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이 아이들은 누구의 아이들이 아닌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민간이 주도하는 특별한 돌봄을 기왕이면 동네에서 관심을 갖고, 제도가 보완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미래세대를 돌보고 키우는데 온 마을이 나서야 하고 제도가 지원하는 것은 마땅하다. 당장 급하고 중요한 것은 우리의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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