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제주 이야기] 왜 제주냐고 묻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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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제주 이야기] 왜 제주냐고 묻거든
  • 2019.02.26 15:04
  • by 최윤정

제주 이주를 전후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왜, 제주인가?”이다. 이주를 결심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만 일일이 설명할 일도 아니어서 “이효리도 살잖아”, “자주 비행기 타고 싶어서”, “퇴근하면 서핑 하려고” 등의 흰소리를 하곤 했다. 그러면 즉각 따라 오는 반응들이 있다. “이효리도 아닌데 어떻게 먹고 살려고”, “섬에 살면 자주 못 올 텐데”, “친구도 없이 외로우면 어쩌려고” 등등이다. 모두 일리가 있는 우려다.

 

제주 동쪽의 작은 섬, 우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주인장에게 나 역시 ‘섬에서 또 섬에 사는’ 고립감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다. 주인장은 “아침에 서울 홍대에서 만날 약속을 정하면 실제로 오후에 홍대에서 친구를 만날 수 있다. 우도에 살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당일 서울 나들이도 가능한데 굳이 섬의 제약이나 고립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도와 제주 성산항 사이 배 이동(약 15분), 제주공항까지 이동(약 1시간30분), 공항 대기(약 30분), 제주와 서울 사이 비행(약 55분), 김포공항과 홍대입구역 전철 이동(약 30분)으로 우도에서 4시간여 뒤에는 홍대 카페에 앉아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거리감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덧붙였다.

 

제주 동쪽의 우도. 마지막 배가 떠나고 나면 비로소 섬의 밤이 시작된다.

 

우도 주민이 이렇게 말할 정도인데, 제주시권에 살면서 서울이 멀다고만은 할 수 없다. 공항까지 이동시간, 탑승 전 대기시간을 감안해도 2시간 미만에 김포공항에 도착할 수 있다. 김포공항에서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에 따라 전체 여정시간이 결정되겠지만, 어쨌든 계산상으로 제주와 서울은 2시간 전후의 여정인 것이다. 이는 대화역 인근에 살면서 강남이 직장일 경우, 수원역 인근에 살면서 종로로 출퇴근을 할 경우, 전철 이동(1시간15분)을 포함한 출퇴근시간과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다. 즉, 제주와 서울 사이의 육로는 500km가 넘지만 여정시간은 다소 먼 경기권과 서울을 오가는 정도의 시간감각이다.

 

제주공항에서 이륙을 준비하는 비행기 안. 서울까지 한숨 자면 도착하는 적당한 여정이다.

 

1시간이 채 안 되는 비행으로 제주에 도착하면 자연이 특별하다. 사면이 바다이다 보니 종류와 특성이 다양한 바다를 만날 수 있다. 한라산과 더불어 낮음직한 산에 해당되는 오름도 많다. 한라산을 중심에 두고 바다가 빙 두른 형국이다 보니 해변에서 섬의 중심으로 갈수록 산간에 접어들게 된다. 제주 어디에 있든 3, 40분 정도의 운전이면 바다에 있다가도 산으로 들 수 있고, 산에 있다가도 바다로 갈 수 있다. 물론 도시도 있다. 북쪽의 제주시, 남쪽의 중문과 서귀포시. 영화나 콘서트, 전시를 즐길 수 있고, 원주민과 이주민의 가게들이 향토적인 것부터 힙하고 개성 있는 공간까지 다채롭다. 적당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고, 산과 바다를 길지 않은 이동으로 접할 수 있는 점은 많은 이주민들이 손에 꼽는 제주의 강력한 매력이다.

 

그리고, 제주는 다른 지역에 비해 출장이든 여행이든 지인들이 방문할 기회가 종종 생긴다. 서울에서 밥 한 번 먹자는 말은 헛말이 되기 쉽다. 그러나, 제주에 방문한 김에 틈을 내어 제주 사는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때론 방문기간의 주요한 일정이 되기도 하고 작은 낭만이 되기도 한다. 나는 퇴사 후 10년 동안 만난 적이 없던 첫 직장 동료들을 제주에서 여럿 만났다. 10년 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어도 여행지인 제주에서 만난 덕에 어색함 없이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밀도 있는 시간을 가졌다. 언제든 만날 수 있다고 여기면서 실제 만남을 미루는 서울보다 오히려 제주가 만날 확률이 더 높다.

 

물론, 제주여서 불편하고 어려운 점도 있다. 그러나 그런 점들이 아직까지 치명적이지는 않다. 불편하고 어려운 점들도 그럭저럭 보완이 되거나 적응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육지와의 거리감, 산 반 바다 반의 풍성한 자연, 제주에서는 한번쯤 만나지는 뜻밖의 관계들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그 매력들에 집중하고 만끽하는 것이 현명하다. 제주 입도를 불현듯 결정했던 것처럼 제주에서 떠날 날도 불시에 다가올 수 있으니까 말이다. 왜 제주냐고 묻거든 이제는 이효리 운운하지 말고 그냥 웃어야겠다. 웃음이 답이 되었음 좋겠다.

 

최윤정
제주에서 1년간 집중적으로 올레길과 오름으로 소일을 했다. 많이 걷고 많이 오르면 몸과 마음의 군살과 기름기가 쏙 빠져 가뿐하고 담백한 삶을 영위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다. 지금은 아예 제주로 입도하여 일하며 놀며 제멋대로 산지 3년 차에 접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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