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우리가 몰랐던 사회적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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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우리가 몰랐던 사회적 경제
  • 2019.02.20 19:27
  • by 김은영(세이프넷지원센터 국제팀)

7천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필리핀에는 약17만개의 사회적 기업이 있다. 필리핀에는 네 가지 형태(주식회사, 자영업, 협동조합, 일반단체)의 사회적기업이 있는데, 주요 미션은 고용창출과 빈곤감소다. 2016년 기준, 필리핀의 사회적기업은 1만7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2천1백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필리핀에 진출한 국제협력 NGO들은 자금지원사업 이후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면서 사회적기업에 관심을 가졌다. 필리핀 정부도 사회적기업이 농민운동이나 사회운동에서 시작했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국가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 오히려 독려하고 있다. 필리핀개발계획에는 사회적기업이 한 부문으로 포함되어 있다. 아이쿱생협 공정무역 연수단은 작년 12월4일부터 8일까지 공정무역을 확산하기 위해 노력하는 필리핀의 다양한 단체와 사회적 기업을 방문했다. 이들이 다녀온 ▲PFTC와 AFTC ▲HAMPCO ▲CCAP ▲휴먼하트네이처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마스코바도를 직접 만들며 느낀 공정무역 생산지의 변화
첫 번째 방문지는 파나이공정무역센터(Panay Fair Trade Center, 이하 PFTC)였다. 1991년에 설립되어 현재 파나이섬 내의 생산지 6곳을 관리하고 있다. 설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탈리아 공정무역단체인 CTM이 변함없는 주요 파트너이다. 취급 품목은 마스코바도, 바나나칩, 진저츄(=생강젤리)인데 모두 CTM을 통해 유럽 등지로 판매되고 있었다. 아쉽게도 바나나칩과 진저츄 생산과정을 볼 수 없었지만, 운 좋게 앙헬 대표와의 간담회 때 맛볼 수 있었다.

공정무역으로 수출되는 PFTC의 마스코바도, 바나나칩, 진저츄

파나이섬에서 생산된 마스코바도는 생산지별로 분류되어 보관되었다. 생산지별로 수출처가 다르기 때문이다. 생산된 마스코바도를 소분하는 작업은 모두 빈민 여성 조직에서 담당한다. 모두 수작업으로 분쇄 → 무게 측정 → 포장→ 금속탐지기 검사가 진행된다.

PFTC는 2017년 기준 이 지역(오톤군)에서 두 번째로 세금을 많이 냈고 있다. 이들은 지역 경제에 기여하면서 공정무역을 파나이섬 전역으로 확장해서 보다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일로일로 지역의 4곳의 생산지 이외도, 아이쿱생협이 지원해 안티케 지역에 안티케공정무역센터(Antique Fair Trade Center, 이하 AFTC)가 세워졌고, 독일의 지원으로 다른 지역에 생산지를 개척했다. 최근에는 CTM의 지원을 받아 7번째 지역을 물색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여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최근 두테르테 대통령에 의한 초법적 살해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고, PFTC의 전(前) 의장 로메오 씨 살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도 아직이다. 이러한 정치적 위협뿐 아니라 ISO9002, GMP, HACCP와 같은 국제 기준에 대한 요구를 맞춰가기 위한 재원 확보는 당면하고 있는 과제 중 하나였다.

PFTC가 있는 일로일로에서 약 3시간정도를 이동하다보면 초록색 들판 한가운데 빨간 지붕의 설탕공장을 만날 수 있다. 아이쿱생협은 2012년부터 필리핀 안티케 지역 벨리손 마을에서 생산되는 마스코바도를 공정무역으로 수입하고 있다. 단순히 거래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이 빨간 지붕의 설탕 공장은 ‘달콤한 공장 캠페인’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쿱의 조합원과 생산자, 직원들의 모금 활동을 통해 세워졌기 때문이다. 2010년 12월 한 달 동안 1억 8천이 넘는 벽돌 기금이 모였다.

안티케공정무역센터 마스코바도 공장 바로 뒤편에 ‘AFTC커뮤니티센터’가 세워져 있다. 손님들의 숙소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공장 노동자들이 일할 동안 그들의 아이들을 돌보는 탁아시설과 지역거점 역할이 더 크다. 1층에는 넓은 회의실 겸 식당이 있고, 2층에는 와이파이가 연결된 컴퓨터실과 도서실이 있는데 마을주민도 사용할 수 있다. 이 커뮤니티센터를 짓기 위해 (故)신복수 한국사회적경제씨앗재단 이사장의 기부금과 조합원들의 참여로 조성된 기금 총 2억 원이 사용되었다.

AFTC에서 마스코바도 생산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공장에서 조금 떨어진 사탕수수밭에서 수숫대를 베어보고 돌아와 착즙과 결정화 과정을 함께한다. 마스코바도는 착즙기에 서 짠 즙을 3~4시간 5개의 솥에서 단계적으로 끓인 후 걸쭉해진 농축액을 넓은 판에 담아 덩어리지지 않도록 뒤집고 섞어가며 결정으로 건조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당밀이 살아 있는 정제되지 않은 설탕은 오로지 인고의 시간과 사람의 일손을 필요로 한다.

2012년 26명이었던 조합원이 지금은 59명으로 늘었다. 직업이 없던 사람들이 조합에 가입하면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사탕수수 수확시기가 되면 5~6개월 동안은 꾸준히 소득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마스코바도 1kg당 20페소를 지급했던 것도 45페소로 인상되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사탕수수 생산자는 연 5만 페소, 공장 노동자는 일당 300페소를 받는다. 사탕수수를 운송할 수 있는 트럭도 얼마 전에 구입했다. 설탕 공장은 느리지만 착실히 안티케 지역민들의 삶에 도움이 되고 있다.

 

조합원과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수공예다목적협동조합 HAMPCO
보라카이섬으로 가는 관문인 칼리보시에 가면 30년의 역사를 가진 수공예다목적협동조합 HAMPCO를 만날 수 있다. HAMPCO는 파나이섬 북서쪽의 아클란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협동조합이다. 주로 바나나와 파인애플 섬유를 직조하고 필리핀의 전통의상과 가방 등을 직접 생산한다. 우리가 방문한 사무실 1층에서도 9명의 직조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다. 집에서 베를 짜서 오는 조합원들은 매달 15일과 30일에 완성된 물건을 가지고 온다.

처음에는 지역의 여성 25명이 모여 출자금 25페소씩을 모아 쌀을 파는 작은 가게, 소비자협동조합 형태로 시작했다. 쌀을 판돈을 가지고 규모를 키웠고, 파인애플 섬유 직조사업이 수익성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되어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사회의 결정 후 업종을 전환하였고 30년이 지난 지금 조합원은 387명에 이른다.

하지만, 2001년 쯤 위기가 찾아왔다. 파인애플 섬유 가격이 떨어졌고, 관리자들의 안일한 운영으로 재정이 바닥이 났다. HAMPCO는 먼저 운영진을 교체했다. 무역박람회를 통해 일본 고급호텔에 바나나 섬유로 만든 벽지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한 것이다.

다목적협동조합인 만큼 지금까지도 쌀을 파는 소비자 영역이 존재한다. 하지만 150명의 종합원이 직조영역에 종사하고 있고, 직조기술을 가진 사람만 신규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어 생산자협동조합의 성격이 강하다.

HAMPCO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열린 소통, 열린 운영이다. 매달 이사회에서는 운영보고를 하고, 조합원 총회는 3월에 열린다. 12월에는 크리스마스 파티도 진행되는데 조합원의 참여를 늘리기 위해 경품을 내걸거나 교통비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끊임없이 소통하려고 하는 자세와 위기를 기회로 전환한 저력이 HAMPCO를 성장시킨 원동력인 것 같다.

 

필리핀의 공정무역네트워크 CCAP
CCAP는 전국 11개 주에 흩어져 있는 수공예품 생산자 900여 명과 연대하고 있다. 판로로 많은 어려움을 겪는 영세한 수공예품 생산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1973년 12명의 창립자가 뜻을 모았다. 이곳은 일찍이 1980년대에 세계공정무역기구(WFTO)의 전신인 국제공정무역연합(IFAT)에 가입했고, 사업이 확장됨에 따라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1998년 CCAP를 설립했다.

CCAP는 CCAP, Inc.와 CCAP Fairtrade for Development, Inc.라는 두 개의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생산자에게 마케팅, 판매처 연결, 기술 향상 등을 지원하고, 직원들이 모니터링을 위해 생산지도 직접 방문 한다. 상품 가격은 보통 도매업자가 정하기 때문에 생산자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은데 CCAP는 단가 교육을 진행한다. 생산자가 직접 가격을 결정하게 하고 물품 가격의 30%를 선지급 받아 원재료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 디자인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는데 디자이너를 직원으로 따로 두고 있고, 외부컨설팅도 받는다.

수공예품은 미국, 유럽, 이탈리아, 호주, 일본과 거래 중인데 수출 중심이었던 사업을 2015년에는 국내로 확장했다. Likhang Atin이라는 브랜드를 런칭한 것이다. 가격면에서 수출품과 상당한 차별화를 꾀한 제품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Fair Trade’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아직 사업의 90% 이상을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필리핀이 공정무역 생산지이자 제품을 공정한 가격으로 거래하는 장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SNS로 공정무역을 알리는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또한, 청소년 교육, 청소년 공정무역 홍보단, 대학에서의 공정무역 과정, 공정무역의 날 행사, 공정무역 박람회 등을 통해 공정무역 인식 확산에도 노력하고 있다.

내수용으로 제작되는 Likhang Atin 제품들. 수입 제품은 CCAP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좋은 제품에 좋은 정책과 이념이 깃들다, 휴먼하트네이처
휴먼하트네이처는 필리핀의 천연재료를 이용한 케어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사회적기업이다. 마닐라는 물론 세부 등 필리핀의 주요 도시 곳곳에 매장을 두고 있었다. 95% 이상을 천연재료로 만든 200여 개의 제품과 감각적인 매장 인테리어는 외국인 관광객뿐만 아니라 필리핀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좋다고 한다.

하지만, 휴먼하트네이처의 저력은 외관보다 내면에 있었다. 필리핀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이 결국 지역과 필리핀을 발전시킨다고 생각하고, ▲Pro-Philippines(친필리핀), ▲Pro-Poor(저소득층 지원), ▲Pro-Environment(친환경)라는 세 가지 사명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다. 필리핀에서 생산되는 천연원료로 제품을 만들고, 공정한 가격으로 원자재를 구매하며 지속가능한 기술 훈련 및 투자를 통해 빈곤층을 지원한다. 직원 중 절반 이상을 저소득층으로 고용하고 있는데, 저소득층에게 일자리는 가족의 생계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2007년 설립 이래 단 한 명도 직원을 해고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직원들을 ‘믿어주고 배려해 주는 마음이 사람을 성장 시킨다’다는 철학으로 대한다.

좋은 제품에 좋은 취지를 지녔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자국민들도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은 창업자들이 수익을 가져가지 않는 구조에 있다. 휴먼하트네이처는 필리핀의 NGO단체인 가와드 칼링가(Gawad Kalinga)에서 빈민구제 활동을 하던 영국인 딜런과 필리핀인 안나, 카밀이 생산자들의 수익향상을 위해 2007년 설립했다. 생산품 중 어떤 상품은 이익의 100%를 생산자에게 돌려주기도 한다. 휴먼하트네이처의 기본 정책과 이념, 그리고 생산자들은 대부분 가와드 칼링가와 무관하지 않다.

또 한 가지 특징적인 정책은 일요일에는 무조건 매장 문을 닫고 직원들을 쉬게 하는 것이다. 일부 쇼핑몰의 경우 일요일에 매장이 쉬면 페널티를 적용하기도 하는데 이들은 이를 감수하고서라도 매장 문을 닫는다. 직원들의 좀 더 나은 삶을 위해서이다.

매장에서는 다른 사회적기업의 제품도 판매한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파트너 기업과도 관계를 맺고 있는데 자신들보다 더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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