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권 보호 중심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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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권 보호 중심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 필요
'인수합병 과정에서 노동권 침해 문제 진단 및 기업의 사회적 책임 모색 토론회' 개최
  • 2019.01.29 18:21
  • by 이진백 기자

기업 구조조정은 사업의 변경 또는 축소를 예정하지만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변화를 담보로 한다. 그동안 기업의 파산·회생 또는 인수합병 과정에서 우리사회 노동자의 노동조건 등이 심각하게 침해되어온 바 있다. 기륭전자, 콜트콜텍, 홈플러스 그리고 굴뚝농성 426일만에 노사합의가 이뤄진 파인텍 사례 등이 이에 해당된다. 

기업 인수합병과 관련한 여러 이해 당사자들의 개입 양상 및 사회적 영향은 나라들마다 크게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EU의 경우 소속 국가 내 기업들의 인수합병 증가로 인해 심각한 노사관계 문제가 야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기업 구조조정 시 노동자에게 관련 정보 및 협의권을 제공하는 등 노동자 보호를 위한 입법적 노력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28일 국회의원회관 9간담회의실에서 '인수합병 과정에서 노동권 침해 문제 진단 및 기업의 사회적 책임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는 국내 산업 구조 변화와 글로벌 경제 위기 등에 따라 겪게 될 기업 M&A(인수·합병) 및 구조조정 과정에서 회계 문제, 노동권 침해 문제 등을 진단하고 인수합병 및 구조조정 과정, 나아가 산업구조조정의 쟁점과 노동자·협력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도산절차 개선 과제 등 노동권 보호를 중심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고자 마련됐다.

이날 토론회는 우원식·이학영·박주민·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회, 참여연대가 공동 주최했다.

■ 인수ㆍ합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노동조합 침해를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인 개선방안 모색돼야

발제를 맡은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국 기업들의 인수·합병이 2010년 이래로 꾸준히 증가하는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고용 승계 및 노사관계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부연구위원은 한국노동연구원 '사업체 패널'의 2005∼2015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인수·합병된 사업장이 그렇지 않은 사업장보다 정리해고를 할 가능성이 1.79배 높았다고 밝혔다. 또한 인수·합병 사업의 명예퇴직 인원은 인수·합병 대상이 아닌 사업장의 2.78배 많았으며, 인수·합병된 기업에서 하청이나 용역노동자의 비율은 인수·합병을 경험하지 않은 사업장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정 부연구위원은 2005년부터 2015년까지 인수·합병된 사업장들의 ▲정리해고 및 명예퇴직 등 고용불안 ▲하청 및 용역노동자 비율이 보여주는 외주화 가능성 ▲조정신청 및 파업 여부 등 노사갈등의 가능성이 인수·합병을 경험하지 않은 사업장에 비해 높았는데, 이는 인수·합병의 과정에서 고용보장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정 부연구위원은 그간 인수·합병 과정 과정에서 노동권을 침해당한 사례로 쌍용자동차(이하 '쌍용차'), 한국합섬(현 파인텍), 현대디스플레이(하이디스) 등을 사례로 들며 "인수·합병의 목적이 정상적 회사 경영이 아닌 단기 시세차익 취득일 때 정리해고가 발생하고, 노동자가 이를 거부할 시 장기투쟁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정리해고 시 자주 언급되는 '경영상 긴박한 위기'의 근거는 주관적이어서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악용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 부연구위원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인수·합병 등 기업 매각 시 물적 자산만이 아니라 고용·근로조건·단체협약의 승계를 가능케 하는 제도적 정비 ▲인수·합병 이후 즉각적인 재매각을 제한하는 최소 기간 설정 ▲기업 인수·합병 과정에서 산업은행의 기업 매각 시 그 정책적 판단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할 것 ▲구조조정 및 인수·합병, 그리고 이후 운영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통한 갈등 최소화 ▲인수·합병 이후 기존 약속이나 법을 위반한 기업들에 대한 과징금 부과·공공거래 제한 등의 재제 조치를 통해 기업의 무책임한 경영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비용에 대한 국가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인수ㆍ합병의 목적이 기업의 지속적인 운영이 아닌 기술탈취, 단기 시세차익 등 투기적 측면에 매몰될 경우 노동자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남긴다는 점에서 이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적 대안 마련 필요

토론의 좌장은 임상훈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위원장)가 맡았다. 패널로는 ▲김경율 회계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 ▲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법률원 ▲정병욱 변호사·민변 노동위원장 ▲하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조오현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과장 ▲박동일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반총괄과장 등이 참석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김경율 회계사는 회계를 통해 본 미소페(비경통상), 홈플러스 등의 사례를 통해 인수합병 및 구조조정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 회계사는 공시된 재무제표와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제화노동자에게 지급하는 금액을 추정한 결과, 미소페의 제조회사인 비경통상의 경우 2017년 연간 매출이 약 765억 원인데 제화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연간 금액(공임의 범위를 3%에서 10%로 추정)은 23억원에서 77억 원이고, 그 중간값은 약 50억원임을 지적했다. 따라서 애초 제품 매출액의 3%~10%에 불과한, 신발 제작에 필요한 공임 부담을 덜기 위해 중국시장으로 이전하겠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이다. 덧붙여 김 회계사는 "제화노동자들의 체화된 기술력의 차이 및 물류비 등을 추가한다면 결코 합리적인 의사결정으로 볼 수 없다"며 "이와 같은 의사결정의 배경에 '경영상의 위기'라고 할 만한 재무지표 상의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홈플러스의 경우, 최대주주 변경 이후 과거 2개년 공히 당기순이익을 시현했을 뿐 더러, 영업현금흐름도 플러스였지만 회사가 유형자산 매각 등의 형태로 회사의 투자규모를 줄여나가고 있다며, 이는 회사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매우 심각한 지표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밖에도 경쟁사들이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홈플러스의 새로운 대주주는 영업 밑천을 매각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특히 홈플러스 대주주가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배당의 형태로 회수해 간 약 1.2조원은 회사의 미래 투자를 희생한(유형자산을 매각한 가액으로 배당한) 큰 기회비용을 수반한 것임을 비판했다. 

김태욱 변호사는 '기업 인수합병 과정에서의 노사관계 문제 진단 및 정책과제'를 주제로 ▲인수 ▲합병 ▲분할 ▲워크아웃, 채권단 자율협약 ▲기업 회생 절차 등의 과정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과 노동조합의 대응방향을 소개하고 제도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김 변호사는 "워크아웃의 경우, 기촉법을 빌미로 노동조합에 백지위임에 가까운 사전 동의를 요구하고 있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노동조합의 동의서를 요구하는 근거 조항의 삭제 및 약정 내용에 대한 정보공개 조항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또한 "정리해고의 요건을 판례가 계속 완화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근로기준법 개정 등을 통해 정리해고 요건을 다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력구조조정을 수반하는 회생절차의 제도개선 방안으로 ▲조사위원 선정 및 조사보고서에 의견제시권 ▲관리인 선임 등에 대한 의견제시권 및 제3자 관리인 추천권 ▲회생계획안에 대한 의견제시권 강화 ▲수출입은행 등의 여신정리기준 개정 등을 제시했다. 

김 변호사는 내수기반 확충과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견인하여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할 핵심 산업 분야인 제조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고용안정을 통한 내수 진작, 그에 따른 기업의 투자와 고용의 확대를 촉진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함을 설명하며 "고용안정을 위한 구조조정 예방과 구조조정시 노동자와 지역사회가 참여하는 사회적협의기구의 구성을 의무화"하는 제조업발전특별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현재 한국 대법원은 폐업으로 인한 해고는 통상 해고로 분류하면서 위장폐업이 아닌한 부당해고로 판단하지 않아 폐업 과정에서 노동권 보호는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며 "해고는 근로자의 개인의 인생에 심각한 부담을 주는 것이기에 때문에 폐업 및 정리해고 전 단계서부터 기업이 근로자에 사회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제도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2014년 3월부터 프랑스에서 시행된 '플로랑주(La loi Florange)법'을 예로 들며 플로랑주 법의 취지와 내용이 우리나라에도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법률의 주된 내용은 근로자 1,000명 이상 사업장 폐쇄 시 사업주가 먼저 인수자를 찾아야 하는 의무를 부과한 것으로, 특히 사업주는 폐쇄 이유를 경영위원회 및 관계당국에 알리고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 사업장의 운명을 결정하는 과정에 반드시 회사의 일원인 근로자를 참여시킨다는 취지다. 

정병욱 변호사는 '인수합병 및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한 입법 과제'로 ▲헌법을 통해 노동권의 보호와 강화를 보장할 것과 ▲근로기준법에서 정리해고(구조조정) 조항을 폐지하거나 폐지 할 수 없다면, 정리해고 요건(실체적, 절차적)에 대한 강화된 입법(처벌 포함) 및 법원의 엄격 적용, 정부의 정리해고 허가 내지 승인, (사업)양도, 인수, 합병시 고용, 근로조건, 노동조합, 단체협약의 원칙적 승계 및 위반시 처벌 규정 그리고 양도 인수 합병 이후 교섭, 고용안정 의무 등을 제시했다. 또한 ▲상법을 통해 노동자들의 경영 참여(양도, 인수, 합병 과정에서의 노동자들에 대한 정보 공개, 공청회, 참여, 협의, 동의 등) 및 감시·감독을 강화하고, 고용 등과 관련한 문제 있는 경우(이른바 '먹튀' 등) 양도, 인수, 합병의 제한 내지 무효, 신규사업 개시, 신주발행, 주식시장 상장 제한,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 또는 처벌규정을 명시할 것을 제안했다. 또 ▲현행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서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의 채권자협의회 참여 및 의결권을 보장하고, 회생계획 인가 내지 불인가 결정시 필수적인 고용 승계 여부를 파악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구조조정의 쟁점과 노동자·협력업체 보호 위한 도산절차 개선 과제'로 토론을 진행한 하 준 연구위원은 "최근 2차례에 걸쳐 상법 개정을 통해 소수주주 축출 등을 통한 인수·합병의 대폭적인 원활화(합병대가의 유연화, 삼각합병, 간이·소규모합병 등)가 이루어졌고, 재계의 줄기찬 요구를 수용하여 통과된 기업활력제고특별법(‘기활법', 16년8월 시행)은 상법상 매수청구권과 소규모합병, 간이합병 요건들을 완화하고 공정법상 지주사 규제(부채비율 한도, 지주사의 손자회사 출자 등) 및 기업집단 규율(합병 등으로 인한 상호·순환 출자시 해소기간 연장 등)도 대폭 완화하여 기업조직 재편에 대한 무분별한 자유를 보장하고 있음"을 비판하며, "재계·자본의 요구대로 사업재편·구조조정을 위한 온갖 편의는 수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르는 노동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조차 구비되지 못하고 있어 기업은 살아도 노동자는 쫓겨나거나 극한 선택을 반복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하 연구위원은 구조조정·사업재편에 필요한 도산법, 자율협약, 워크아웃(기촉법), 기활법, 중견기업특별법 등의 법·제도가 마련되어 있고 자본시장을 통한 유연성은 극대화 되었지만, 고용보호·조정 역할은 방기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산업 자체가 장기간 불황 위기를 겪은 조선·해운 주요 기업들의 최근 구조조정 현황 사례를 소개하며 소규모·영세기업일수록 지원과 회생으로부터 소외되고 노동자들이 방치되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실질적인 새출발(fresh start)이 가능하도록 노동·소규모 협력업체 보호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해관계자들의 상반되는 이익 조정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회생계획안 작성에 노동자측 입장 반영 등 협상력 강화 ▲도산절차 등에서 대규모 해고 추진시 엄격한 심사 ▲조직재편·구조조정에 있어 노동자 보호 장치 마련 등을 제시했다. 

'인수합병 및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노사분규 현황 및 대책'이란 주제로 토론을 진행한 조오현 과장은 "지난해 전국의 노사분규 건수는 총 134건으로 2017년 101건과 비교해서는 32.7% 증가했다.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고 특히 고용에 관해서는 노사가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장기화 갈등으로 심화되는 것 같다"며 "인수합병과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경우 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나 노사가 충분히 협의와 논의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과장은 "오늘 이 자리에서 나온 제안들은 충분히 고민하겠다"며 "구조조정은 노동자의 고통을 수반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사가 충분히 협의하고 논의할 수 있도록 (정부도) 적극적으로 안내하고 지원하겠다. 구체적으로 실업과 같은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박동일 과장은 '산업구조조정의 현실과 대책'에 대해 발표했다. 박 과장은 "경기적, 경영적 요인으로 기업의 인수합병(M&A)이나 구조조정이 많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노동자들의 걱정이나 우려를 충분히 공감한다"며 "너무 금융적, 재무적 측면에서만 인수합병이 이뤄지는 경향이 있는데 재무뿐만 아니라 산업적인 측면을 고려를 해서 (구조조정의)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노동자의 노동력이 산업의 커다란 자산인데 자산을 구조조정 등을 통해 훼손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과장은 "(정부는)노동력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관리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일자리 제공, 재취업, 인력교육 등을 정책적으로 끌고가려고 한다"며 "정부의 노력뿐만 아니라 기업차원에서도 산업육성을 위해 사회적 책임있는 행동을 병행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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