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상을 바꾸는 것은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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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상을 바꾸는 것은 실력이다
[인터뷰] 크레비스파트너스 김재현 대표
  • 2018.11.30 13:06
  • by 공정경 기자

가톨릭 신부를 꿈꾸던 아이가 있었다. 성당에 가면 반갑게 맞이해주는 따뜻한 사람들이 있었고 즐겁고 좋았다. 어머니에게 신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어머니도 좋다고 말씀하시며 신부랑 비슷한 사람이 또 있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사람들에게 따뜻한 가정을 꾸릴 수 있게 해주고 집도 살 수 있게 해주고 좋은 직업도 가질 수 있게 한다고. 아이가 물었다. 그런 사람이 누구냐고. 어머니는 '경영자'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아이는 신부와 경영자는 그런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아이는 경영학을 공부했다. 대학에서 배우는 경영은 그동안 생각했던 이상과 많이 달랐다. 방황의 시간이 있었다. 사업을 하고 싶었지만 멋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뭐라도 해야지 싶어 웹사이트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창업 준비를 위해 처음 모인 중국집에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음식점 지배인에게 홈페이지가 필요하지 않냐고 물었다. 마침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연히 들린 중국집에서 첫 고객을 만났다. 가슴이 들떴다.

제안서를 만들었다. 서너 페이지짜리 웹사이트지만 처음 맡은 프로젝트니 멋지게 보이고 싶었다. 제안서에는 각종 멋진 단어와 화려한 그래픽이 담겨있었다. 서너 차례 미팅을 진행했다. 그런데 지배인은 매번 정성 들인 제안서는 보지 않고 얼굴만 쳐다봤다. '내가 너무 잘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마지막 미팅에서 지배인이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해서 글자를 모른다"고 말했다. 문맹자를 처음 만났다. 평소 '세상의 절반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깨달았다. 세상의 절반이 아니라 '세상을 모르는구나!'

크레비스파트너스 김재현 대표

크레비스파트너스 김재현 대표는 2002년 중국집 웹사이트 구축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AI, 블록체인을 이야기하는 사람보다 중국집 웹사이트 만들겠다는 사람을 만나는 게 더 무섭다. 이런 친구들을 만나면 갑자기 진지해진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앞으로 이 친구들이 어떻게 발전할까?"

크레비스는 소셜벤처로 시작해 임팩트투자사로 발전한 임팩트 벤처 그룹이다. 금융과 기술중심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이다. 소셜벤처가 임팩트투자사로 발전한 경우는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권에서도 처음이다. 크레비스가 임팩트투자를 시작한 건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자기주도학습 '에듀플러스에듀케이션'에 초기투자자로 참여했다. 투자 2호는 '트리플래닛'(2010)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나무를 심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개발하는 사회적기업이다. 트리플래닛은 2010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12개 국가 190개 숲에 77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스마트폰 게임으로 나무를 키우고 싶은 김형수, 정민철씨를 우연히 만났다. 우리 사업보다 더 가치 있는 사업을 구상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꼭 함께하고 싶었다. 2013년쯤 태국에서 트리플래닛을 소개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현재 영국 임팩트 투자 도매기금 '빅소사이어티캐피털(Big Society Capital·BSC)'의 최고경영자(CEO)로 있는 클리프 프라이어도 있었는데, 트리플래닛을 보고 놀라워했다. 한국 친구들은 굉장히 신기하고 유쾌한 방식으로 사업을 한다고.(웃음) 전통적 방식은 보통 진지하고 무거운데, 기술을 활용하고 재미있게 풀어가는 모습을 높이 평가했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게 하려면 즐거워야 한다."

BSC 클리프 프라이어 CEO는 지난 7월 라이프인과의 인터뷰에서도 한국의 소셜벤처를 높이 평가했다. "성수동에서 소셜벤처기업가들을 만났다. 그분들은 열정도 대단하고 사업모델도 굉장히 훌륭했다. 이런 기업은 지원형 금융이 전혀 필요 없는 사람들이다. 규모를 키울 수 있게 직접 투자해야 한다."

현재 크레비스는 자기자본으로 16개 기업과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있고, 4개는 펀드로 운용하고 있다. 주요 투자 분야는 금융 문제, 부동산 문제, 취약계층 문제, 농림업·식품문제다. 핀테크(Fin-Tech), 프롭테크(Prop-Tech), 케어테크(Care-Tech), 아그로테크(Agro-Tech)라 부르는데, 'Tech'를 붙인 이유는 전문성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미다.

"실행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지, 주장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장하는 사람들은 착하지만 일을 못 할 수도 있다. 일은 잘 못 하면서 주장만 끝까지 하면 왜곡이 일어난다. 말만 한다고 바뀌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해결방법을 제시해줘야 한다. 문제를 정의하는 사람과 해결하는 사람이 있는데 저희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이다. 실행을 하려면 전문가가 필요하다. 전문가를 포괄하는 용어가 테크다. 굉장히 수준화된 지식을 뜻한다."

김 대표에게 투자할 때 어떤 점을 보는지 물었다.

"각 투자사의 영업기밀일 텐데...(웃음) 기본적으로 평가하는 기준은 시장, 회사, 팀을 본다. 해결방법을 만들어내는 건 사람, 즉 조직이고 회사다. 그리고 대중과 시장을 관통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은 그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만 세상 사람들은 심각하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년 전에 미세먼지를 해결하려는 회사들은 아마 여럿 망했을 거다. 사람들이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이밍이 맞지 않은 경우다.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 마스크나 공기청정기를 만들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가능하면 큰 임팩트가 만들어지도록 자원을 유도하자는 게 소셜벤처이고 임팩트 투자다."


"임팩트 투자는 자본주의자들의 전향 선언이고 소셜엔터프라이즈는 민주주의자들의 전향적 단어라고 생각한다. 그 경계에서 만나는 게 소셜벤처다. 예를 들어 사회적기업은 취약계층 고용같이 섬세하게 문제에 접근한다면 소셜벤처는 미세먼지, 주택, 금융, 에너지 같은 모든 사람이 겪는 보편적 사회문제에 접근한다. 규모가 다르다고 생각하면 된다. 임팩트는 기본적으로 규모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문제 해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한 명의 취약계층을 돕는 것도 중요하고 일반적인 사람들이 겪는 사회문제를 푸는 것도 중요하다."

부동산 문제에 접근할 때도 공급 쪽이 변해야 임팩트가 크다. 김 대표가 기대하고 있는 기업이있다. 한정된 자원인 토지를 더 효과적으로 쓰는 방법을 찾는 기업, 스페이스워크다. 데이터 기반 자동화프로그램 '랜드북'에 주소를 입력하면 해당 필지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가 보이고, 건축법규 내에서 허용하는 면적과 높이의 건물 기본 설계가 입체적으로 구현된다. 임대수익률 등의 자료도 빅데이터를 활용해 제시한다.

랜드북 세이프티 버전도 있다. 지난 6월에 발생한 용산 상가건물 붕괴사고를 계기로 노후 건물의 붕괴 위험을 미리 파악하고 대비하기 위해 만들었다. 건물의 노후도와 건축구조, 주변의 신축 공사 현황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지난 9월에 발생한 상도동 어린이집 붕괴사고도 인근 다세대주택 공사장의 흙막이 벽체가 무너지면서 발생했다.

"택지개발방식이나 청약방식은 근본적 해결방법이 아니다. 소규모개발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들이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주택을 지을 때 토지를 탐색하고 어떻게 개발할지 구상하는데 수많은 비용이 든다. 아파트 분양가가 비싼 이유도 이 비용이 고스란히 분양가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스페이스워크는 합리적으로 토지를 찾는 방법, 어떠한 형태의 토지든 그에 맞는 자동 건축설계 기술을 구현했다. 안 좋은 땅이라고 하는데 계산해보면 좋은 땅도 있고 'ㄷ'자로 사면 안 좋고 'ㄴ'자로 사야 좋은 땅도 있다. 부동산의 공급자 측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기업이다. 공급자 측 기술이 없으면 공급이 안 바뀐다."

랜드북
랜드북 세이프티

"용산 상가 붕괴사고 직후 스페이스워크에 서울시 붕괴위험 지역을 추려달라고 요청했다. 두 시간 만에 데이터가 나왔다. 상도동 어린이집 붕괴사고 후 붕괴위험 지역 학교들의 데이터도 교육청에 전달했다. 단순히 집을 싸게 산다는 개념을 넘어 목숨과 관련된 문제를 제시하는 기술이고 금융이다. 이런 케이스가 우리가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케이스다. 기술이 완벽한 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바와 가장 가깝다. 작은 도전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문제에 충격을 주지 않으면 사회적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

크레비스는 의자 네 개에 에어컨도 안 나오는 사무실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어렵게 만든 돈을 축적해가며 투자하기에 여느 큰 투자사들과는 다르다. 김 대표는 투자에 있어 안목도 중요하지만 절박함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기업 계열은 1%를 투자하지만 우리는 99%를 쏟는다. 인생을 거는 일이고 여기서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하는 조직이다. 그 절박감을 회사 내부적으로나 파트너들이 공감해주기에 투자가 회수될 수 있도록 서로가 많은 노력을 한다."

김 대표와의 인터뷰는 기승전 '실력'이었다. 현재하는 고민도 실력이고, 투자사도 기업가도 모두 실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먼저 인정하고 이를 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수해 본 적 있냐? 라고 질문하면 아마 움츠러드는 분들이 많을 거다. 현재 투자 회수율이 20% 정도인데, 더 무섭게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사회적 가치에 대한 국제기준이 유엔 SDGs 17개 목표이듯, 임팩트 투자·금융의 가치측정 기준은 IRIS(Impact Reporting & Investment Standards)이다. 한국에서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지 아직 명확하지 않듯, 임팩트 투자에 대한 국제기준도 모르는 분들이 많이 있을 거다. 사회적가치평가는 투자사들이 한다. 이쪽 분야에 투자한 사람들도 많지 않고 투자를 회수해 본 사람들도 거의 없다. 회수해 본 적 없는 사람이 가치평가를 하기는 어렵다. 투자는 돈을 낼 때가 아니라 받을 때 가치가 생긴다. 회수해본 사람이 많지 않으니 사회적 가치가 무엇이고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쉽지 않은 것이다."

IRIS (Impact Reporting & Investment Standards. https://iris.thegiin.org/)

실력을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 대표는 실력이 좋은 사람을 품을 수 있어야 하고,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한다고 했다.

"좋은 의도와 좋은 실력이 있어야 한다. 삼성전자는 영원히 나쁠 것 같고 소셜벤처는 영원히 좋을 것 같지만 삼성전자도 좋은 거버너스가 들어가면 좋은 회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를 좋은 의도, 나쁜 의도로 너무 구분해 보지 말아야 한다. 이 사람은 반도체를 만들 수 있고, 나는 좋은 목적이 있는데 반도체를 못 만들어, 이게 끊임없는 대화다. 좋은 목적과 실력, 둘 다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때 아주 객관적인 것은 실력이다. 그러할 때 실력이 있는 사람을 품어야 한다."

"실력은 기준에서 나온다. 좋은 기준을 많이 보고 배워야 내가 지향하는 바가 높아진다. 결국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야 기준이 높아지고 바라보는 안목도 생긴다."

크레비스의 지향점은 명확하다. 한 명이 1조짜리 회사를 만드는 게 아니라 100명이 100억짜리 회사를 만들게 하는 것이다.

"한 명이 100억짜리 회사를 만들면 이 돈으로 내 회사를 1000억짜리로 키울까? 아니면 동료에게 100억을 만들어줄까? 고민하게 된다. 우리가 지향하는 바는 내 100억을 200억으로 만들기보다 누군가가 100억을 만들 수 있도록 분배하는 일이다. 남에게 100억을 만들어주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가끔 힘들면 "안 되나 보다. 그냥 한 명이 1조로 가자~"하지만, 내가 못하면 이 일을 해보겠다는 동료가 등장하면 된다. 요즘 직원들과 "성공이 뭘까?"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다른 사람이 우리 같은 일을 하도록 용기를 내고 실행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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