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을 묻다, 기록자의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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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을 묻다, 기록자의 책무
[안전사회시민네트워크(준)·라이프인 공동기획 안전칼럼]명 숙 (416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 2017.08.18 13:41
  • by 라이프인
명숙 (416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3년 4개월. 304명이 목숨을 잃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정부가 진심어린 사과를 하는데 걸린 시간이다. 아니 누군가는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4년 5월 9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사과하지 않았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사과가 형식적인 언사였음은 박근혜정부가 행한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에 대한 핍박과 모욕으로 알 수 있다.

2014년 발생한 장성 효사랑요양병원 화재참사 때도 비슷했다. 화재가 발생한 당일 아침에 요양병원의 이사장은 언론 카메라 앞에서 사죄를 했다. 무릎을 꿇고 땅에 머리를 대면서. 그러나 바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을 ‘부모 팔아 먹고사는 사람들’로 치부하며 모욕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없는 사과는 ‘정치적 처리과정’일 뿐이다. 참사의 발생 원인이나 참사 이후의 대처도 너무나 세월호참사와 비슷했다.


반복된 재난을 멈추기 위한 기록자의 책무

사실 세월호 참사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그저 재난을 ‘개인적 불운’으로 여겼을 것이다. 2014년까지도 우리는 참사를 만드는 구조적 문제에 대해 여전히 둔감했다. 기업의 이윤을 위해 안전 관리감독을 소홀히 하는 정부, 서둘러 사건을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면서도 참사를 부른 구조적 문제나 공무원이나 기업의 책임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과정은 계속 반복됐다. 1970년 과적과 과승으로 발생한 남영호 침몰사건이나 2003년 대구지하철참사나 씨랜드사건 모두 비슷했다. 희생자 유가족들이 싸워서 그나마 최소한의 진실을 드러낼 수 있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으로 세월호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기록했던 416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이 세월호 참사 이전에 발생했던 재난을 기록하려고 했던 이유도 더 이상 비슷한 슬픔을 반복하지 않고 ”반복되는 재난을 멈추기 위한 동시대인으로서의 책임감”에서 재난이 발생하는 구조에 대해 물었고, 그래서 재난이 저 세계에 묻어지기를 바랐다. “기억이 기록되지 않는 이상 진실에 닿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는 나에게 기록자의 책무를 안겨 줬다. 가족들이 보고 듣고 몸으로 통과해 마음에 상처로 꿈으로 남았던 그것들을 누군가 기록해야 한다. 그 기록이 세상에 전해져야 상처가 곪지 않고 참사가 개인적 문제가 아니고 사회적 문제로,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 지금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생존자들이 통과한 시간과 관계들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라는 고민을 들고 생활한다.


해결되지 않아 어려운 기록과정

재난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2014년 8월 씨랜드 참사,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 등 8개의 재난 가족모임이 모여 재난안전가족협의회를 출범했기 때문이었다. 재난을 예방하는 법·제도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으나 아직 공론화가 덜 된 상황에서 씨랜드화재참사, 대구지하철화재참사, 춘천봉사활동인하대희생자, 장성노인요양병원화재참사의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세상에 잘 들리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 재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조금 높아졌지만 여전히 재난참사 피해자들의 삶에 대해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추모와 의례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아 가족들을 외롭게 고군분투하는 경우가 많다.

작가기록단의 몇몇 작가들이 재난참사를 기록하기로 하고 취재를 하고 모임을 가졌다. 재난을 상품화하는 재난자본주의로 방향을 틀려는 박근혜 정부의 대책이 가져올 또 다른 재앙에 대해서도 공부하며, 재난을 막을 공동체의 힘을 보려 했다. 재난을 막을 공공성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안전이 국가의 통제로 변질되지 않고 권리로서 자리매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등을 공부하며 유가족들과 생존자들을 만났다.

작가 기록단은 <재난을 묻다>를 출간했다. 기록은 기억하는 또 다른 작업이다.

그러나 기록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기록한 장성요양병원 화재참사의 경우 참사가 발생한지 얼마 되지 않아 상처가 그대로 드러났다. 재판정에서 보인 이사장의 태도나 CCTV를 공개하지 않는 경찰이나 검찰들을 겪으면서 사회에 대한 유가족들의 불신을 커졌다. 태안해병대 사건을 정부가 외면하는 사이 가족들은 지쳐갔다. 이렇게 “오래돼서, 현재라서, 해결되지 않아서, 쉽게 지워져서 등등의 이유”로 취재에 응하던 가족들도 회의에 빠지기도 했다. 책으로 나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희생자와 피해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지만 늦게나마 기록으로 남길 수 있어 다행이다.


추모할 수 있는 사회가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

기록을 하며 다시 느꼈던 것은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지만 기록을 통해 이 시간이 우리 모두의 것으로 만들어야 진실에 가닿을 닻 하나 내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3년이 넘겨서야 제대로 된 사과를 받을 수 있었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잊힐 것이다’가 그들의 전략이라면, ‘기억과 기록’은 진실에 놓지 않으려는 우리의 안간힘이자 수단이다. 그들은 재난의 흔적을 지우려했고 추모와 기억을 막으려 했다. 여전히 승객들을 구조하지 않았던 해수부나 해경, 안행부의 고위공직자들은 책임이 없다고 강변하고 있지 않은가.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는 기억과 추모도 허락하지 않았다. 장성요양병원화재참사 유가족들은 장성군수가 약속한 위령비는 아직도 건립되지 않고 있다. 안산추모공원도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책에 실린 7개의 사건 모두 비슷했다. 대구지하철참사 이후 마련된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의 경우도 대구지하철참사와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을 시민들이 알 수 없게 지어졌다.

위령비나 추모공원은 희생자를 애도하고 희생의 의미, 재난의 사회를 성찰하고 기억하는 공간이다. 국가와 사회가 희생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위안이 될 뿐 아니라 우리도 사회에 대해 신뢰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할 때 재난을 만들어 낸 구조를 바꾸기 위해 함께 힘을 모으는 의미가 배가되지 않겠는가. 이것이 내가 기억하고 기록하는 이유다.


*필자 사진 출처 :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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