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와 협동하자⑨] 북한경제의 자강력과 국제협력(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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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경제와 협동하자⑨] 북한경제의 자강력과 국제협력(공업)
  • 2018.11.06 20:35
  • by 일본 테이쿄대학 이찬우교수
18:07

2010년에 북한이 출판한 [광명백과사전5(경제)]에는 공업에 대해서 고 김일성주석이 교시한 “공업이란 사람들이 자연과 투쟁하는 전선을 말합니다”(김일성전집 32권, p136)를 인용하고 있다. 그러면서 공업이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투쟁을 가장 능동적으로 진행하여 자연물을 채취하고 가공하여 여러가지 생산수단과 소비재를 생산하는 물질적 생산부분이라고 설명한다.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투쟁”으로 부연설명한 것을 보면, 근대적 공업이 발생한 18-19세기 서양에서 '인간이 본위요 자연이 객체'라고 본 계몽주의와 맑시즘의 관점을 느낀다. 자연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기위해 정복당해도 좋은 대상이 아니라 공생의 관계이다. 생태와 환경을 외면한 공업이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는 것은 이제는 상식이다. 북한에도 국토환경보호가 중요한 과제로 산에 나무심기운동이 활발하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조금은 위안으로 삼는다.

공업은 북한이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취급하고 있는 부문이다. 북한이 공업을 분류하는 것을 보면, 중공업에 채취(석탄, 광업, 원유 및 가스채취업, 임업, 어업), 전력, 금속, 기계, 화학, 건재공업을 포함시키고, 경공업에 방직, 피복, 신발, 식료, 일용품, 종이 등 소비재공업을 포함시키고 있다. 농림수산업, 광업, 제조업 등으로 분류하는 남한과는 좀 다르다. 그리고 전기전자공업이 어디에 속하는지 애매하다. 이번호에서는 북한의 공업에 대해 자강력의 원천을 알아보고 국제협력의 가능성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식민지 공업의 유산
북한은 건국후부터 식민지적 편파성을 없애고 자립적이며 현대적인 사회주의공업을 건설하는 것을 핵심 과제로 삼아왔다고 주장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북한의 공업정책(자료 - 광명백과사전5(경제) pp.184-185)

북한은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공업을 식민지적 편파성으로 설명하면서 그 주요한 이유로, 일본이 조선의 지하자원을 약탈하고 대륙침탈을 위한 병참기지로서 군수물자 원료와 반제품을 생산하는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공업을 기형적으로 배치한 것을 든다. 중화학공업에서도 금속공업(16%)과 기계공업(4%)의 비율이 합해서 20%정도로 낮고 석탄화학공업이 34%(1939년)으로 높은 비율이었다는데, 석탄화학제품은 비료도 있지만 군수물자로서 화약, 폭발물, 연료를 생산하였다. 기계공업은 거의 일본에 의존하였고 제철공업생산도 선철 8할에 강철2할이었고 선철의 90%, 강철의 70%를 일본으로 보냈다(1944년). 전반적으로 공업제품의 조선내 수요를 보장하는 구조가 아니었는데 1940년에 채굴된 광물 96%를 일본으로 보냈다한다(조선경제연보 1948년). 이러한 상황을 뒤집어보면 해방후 북한에서는 광업과 중화학공업(제철, 화학)의 토대가 있었고 기계공업과 경공업이 미약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공업정책은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지하자원과 산업 지도(자료-각종자료에서 필자 작성)

그런데 사실 일제시대 공업정책은 계획경제(통제경제)적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공업개발을 위한 기초시설로서 전력개발과 철도 및 항만개발이 이루어졌는데, 산업정책측면에서 식민지공업정책의 특징은 [전력선행형]의 개발정책이었다. 함경남도에서 1929년에 준공된 부전강수력발전소와 1932년에 준공된 장진강수력발전소(6.25때 장진호전투로 유명)의 전력을 이용한 흥남지역의 석탄화학공업단지 조성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평안남도 신의주의 외항으로서 다사도항 개발(현재의 대계도간척지)도 압록강의 수풍수력 사용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만주와 조선 식민지의 경제적 통합을 「만선일여(滿鮮一如)」라는 이름하에 추진하였는데 남만주철도주식회사(만철)가 담당한 함경북도 나진항 개발과 도문-나진 철도 연결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지역적으로 보면 남포과 원산, 흥남, 청진의 항만지역을 중심으로한 공업지대, 만주와의 물류관문인 나진항, 신의주-안동(단동) 공업지대, 기타 탄광 및 광산지대로 분포되는데 현재 북한의 공업지대의 근간은 일제강점시기에 형성되었다.

그러나 북한은 공업화 추진 역사를 [주체공업의 역사]로 설명하고 있다. 노동신문 2009년 10월16일자는 당시 노동당 계획재정부장 박남기 필명 논설로 [주체공업이 걸어온 60여년 력사를 회고하여]를 실은 바 있다. 이 때만해도 박남기 부장이 잘나가던 시기인데, 북한이 공식보도하지는 않았지만 카더라통신에 따르면 그는 곧이어 11월 30일에 단행한 화폐개혁 조치가 실패한 책임을 지고 처형되었다고한다. 어쨌든 이 논설에서 그는 “일제가 남긴 공업은 자원략탈형의 식민지 공업”이며, “그 보잘 것 없는 밑천마저 전쟁기간에 8,700여개 공장·기업소가 파괴되어, 전쟁전의 10-20% 생산수준”으로 떨어졌으나, 50년대는 “재더미에서 떨쳐일어나 사회주의공업화의 기초를 닦은” 시기이며, 1957년-60년간 공업생산 년평균 증가속도가 36.6%에 이르렀다고 소개하였다. 재미있는 점은 이 논설에서 박남기 부장이 “일본의 어용사가들, 우익정객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난시기 조선에 마치 [공업의 기틀]을 선사해준것처럼 떠들고 있는데 그것은 황당하기 그지없는 력사외곡이다”라고 지적한 점이다. 그러면서 전쟁이후 세계사회가 조선의 파괴상을 두고 문자그대로 [영]이 된 나라라고 평한 것을 소개하며 “령은 말그대로 기초도 기둥도 없고 싹조차 없는 상태이다. 령에 아무리 큰 수자를 곱하여도 령밖에 다른것은 더 나올것이 없다. 바로 이런 속에서 제힘으로 기초를 닦고 기둥을 세우며 세계가 보란듯이 솟구쳐온 것”이 북한의 공업역사라고 자찬하였다. 정말 [제로]상태에서 제힘으로 성장하였다면 비판할 일이 없게된다. 그래도 그는 “우리의 공업건설력사를 돌이켜보면 결국 그 과정은 전후에 제시된 경제건설로선이 승리하여온 과정이었다”고 하면서 이 노선에 따라 “적들이 100년이 걸려도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던 이 땅우에 자립경제의 기둥을 튼튼히 세울수 있었다”고 정리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북한의 자립경제정책과 주체공업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본다하더라도 북한의 경제적 토대를 [제로]로 부정하는 입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흥남의 질소비료공장만해도 전쟁시기 흥남철수때 폭격을 받았어도 그후 비료공장의 재건이 재더미에서 제로 베이스에서 재출발한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전쟁후까지 귀국하지 않은 일본인 기술자들이 북한의 전후복구에 참여했던 것도 사실이고 비료공장 설비가 상당부분 그대로 남아있어 재건이 황무지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해방전 조선질소비료흥남공장(현 흥남비료연합기업소) 전경
조선질소비료 흥남지구 현황(1944년)(자료 - 츠지하라 마키히코(原万規彦) [조선질소비료 흥남지구 사택구 공간구성] 일본건축학회논문집 제77권 제671호 p137, 2012)
사진 구글어스로 본 흥남지구 (캡쳐 - 2018년 9월7일)

어쨌든 북한은 1950년대이후 사회주의공업화를 추진하면서 원료, 연료, 동력문제를 자체의 자원에 의거하여 해결하는 것을 가장 중시하였다. 그리고 전쟁시의 시설보호를 중시하여 자강도 등 내륙산간지역에 기계공업 등 중공업을, 남포 신의주 해주 등 연안도시지역에 경공업을 새로 건설하였다.

주요 공업부문 
북한의 공업에서 자강력의 중심이 되는 화학과 금속부문을 들여다보자.

[화학공업] : 주체비료, 주체섬유
일제강점시기부터 중시되어온 석탄화학공업을 북한은 지금까지 자력갱생을 위한 주체공업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 석탄화학에 대해서는 이전 호에서 다루었으므로 생략하고, 석유화학분야는 1970년대에 평안남도 청천강 기슭에 있는 안주시에 건설한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가 유일한 공장이다. 생산능력은 에틸린 6만톤, 프로필렌 1.4만톤인데 생산설비는 프랑스(나프타분해설비), 핀란드(제지설비), 서독과 루마니아(유도설비), 일본(에틸린공정) 등으로부터 도입하였다. 이 공장은 중국에서 단동을 거쳐 압록강 밑으로 이어진 송유관을 통해 들여오는 원유를 평안북도 피현군의 봉화화학공장에서 정유한 후 나온 나프타를 원료로 석유화학제품을 만든다. 현재에도 중국에서 연간 50만톤(325만배럴) 정도 원유가 북한에 공급된다고 보는데 민생용으로 쓰인다면 이 규모는 유엔의 제재의 허용범위(연간400만배럴) 이내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석유화학공장인 남흥청년화학공장에서도 2009년에 무연탄가스화를 통한 비료(주체비료) 생산시설을 만든 바 있고, 지금은 탄소하나공업으로서 석탄에서 메탄올을 만들어 에틸렌과 프로필렌, 폴리염화비닐 등 기초화학제품을 만들고 있다. 석유화학제품을 석탄에서 생산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이다. 석탄화학분야에서 [주체섬유]로 유명한 비날론은 단독 의류섬유로서는 각광을 받지 못하고 혼방섬유, 천막, 밧줄 등에 쓰이고 있고 수요가 많지 않다고한다. 어망 등 새로운 수요개발이 필요하다.

사진 1957년 해주시멘트공장 풍경

[철강금속공업] : 주체철
철강금속공업부문을 보면, 대부분 공장이 일제시대에 건설된 후 전쟁시기에 파괴되었다가 1950년대 후반부터 쏘련 등의 지원으로 복구되고 증설되었다. 

북한 철강공장(단위:만톤/년)(자료 - 한국산업은행『북한의 주요산업』2015년판p.206)

2000년대후반부터 무산철광산의 철광석이 중국으로 대량으로 수출(2016년에 164만톤, 74백만달러)되는 등 철광개발이 다시 본격화하면서 청진의 김책제철소 설비개선도 이루어졌다. 그 방향은 소위 [주체철]로 불리는 것으로 용광로에 철광석과 무연탄가스를 투입하고 산소열법(산소용융환원법)으로 선철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철생산에는 연료로 코크스를 투입하는것이 일반적인데 북한에는 코크스를 만드는 원료인 코크스탄(역청탄)이 없기에 무연탄으로 대신하는 생산방법이다. 이 방식의 원류는 일본의 만철(満鉄) 이 1938년부터 만주의 푸순(撫順)에 설립한 제철시험공장에서 코크스를 사용하지 않고 무연탄과 철광석을 로터리킬른식 회전로(回転炉)에 넣어 탄소함유량이 적은 선철과 강괴를 생산하는 [일본식] 제철법을 만든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시바시 탄잔石橋湛山, 『만선산업의 인상満鮮産業の印象』pp.145-146). 만철은 비코크스 제조법으로 만든 강철로 [만철도(満鉄刀)]로 불린 일본도(정식 명칭은 興亞一心刀)를 대량으로 생산하여 일본관동군과 만주국군(滿軍)에 제공하였다한다. 당시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관동군 지도하의 만군 중위였던 박정희 전대통령도 이 [흥아일심도]를 사용하였으리라 생각된다.

북한에서도 해방전부터 있던 청진제강소가 국내무연탄을 사용하는 입철(粒鉄;가루철) 생산을 해온바 있지만, 품질이 좋지않고 회전로 보수의 문제가 많아 1970년대부터 새로운 방식의 비코크스 제철법을 실험하였다. 당시엔 쏘련과 중국으로부터 코크스탄을 수입하는 것이 문제가 없었고 주요 제철소에서는 코크스를 연료로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연료로 철을 만들자]는 입장이었던 김일성주석이 1976년 8월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정치국) 회의에서 “우리가 주체공업을 하지않으면 후손들이 고생한다. 우리가 후손들에게 넘겨줄수 있는 가장 좋은 유산이 주체공업이다. 우리나라에는 코크스탄이 없고 다른나라에 있는 코크스탄을 탐내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좋든 나쁘든 자기손에 쥐고 있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라고 교시하였다한다. 

1978년 주체철을 보는 김일성 주석(자료 - 유튜브 [주체철의 역사] https://www.youtube.com/watch?v=AycwPkBapFs)

김일성 주석은 청진제강소를 합계 13번을 현지 지도 하는 정도로 정성을 쏟았다. 1978년 5월에 청진제강소가 새로운 방식으로 입철에 비해 생산성이 두배 높은 철 생산에 성공하여 이 철을 김일성 주석이 [주체철]로 명명하였다. 이때의 주체철은 야구공 같은 둥근 모양(산화배소구단광)이고 강철생산의 원료로 되기에 다시 제강과정에서 많은 기술적 어려움이 있었다. 코크스용광로와는 공정원리상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산소열법용광로를 주체철생산 방식으로 채택하였는데 기술적으로 첨단과학으로 해결해야하는 것이었다한다. 결국 2009년 성진제강에서 주체철 제강공법 개발에 성공하였고 2010년에 김책제철연합기업소(청진제강소를 포괄), 12년에 황해제철연합기업소와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에서 제조법에 성공하였다고 한다. 

김책제철에서는 2010년부터 제조공정에서 중유를 쓰지않는 고온공기연소식가열로의 자동운전시스템을 김책공업종합대학 자동화공학부 로보트조종공학강좌연구집단과 함께 개발하기 시작하여 2015년에 완료하였다. 이어 2017년부터 산소열법용광로와 산소분리계통으로 이루어지는 통합자동화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업을 시작하여 2018년 1월16일에 첫 주체철을 출선하였다(박지민, 김책공업종합대학 강좌장 [첨단돌파전과 인민경제의 주체화] 근로자 2018년 8호). 노동신문은 2018년 8월29일자에서 김책제철에서 “주체쇠물로 첫 강판생산, 석탄가스에 의한 압연강재생산체계확립”을 보도하였고, 9월 26일자에서는 “김책제철에서 100% 자체 기술과 연료, 원료로 운영되는 주체철 생산공정을 확립하고 25일 이에 대한 준공식을 진행했다”고 보도하였다. 김일성시대에 [주체철] 이름이 생긴지 30년지나 김정일시대에 주체철강 제조법이 나왔고 40년만에 김정은 시대에 와서 주체철 강판을 생산하게 되었다. [강철의 자강력]이 확보된 것이다.

김책제철 강판생산(자료 - 노동신문 2018년 8월 29일자 1면, 지면촬영)

[비철금속공업] : 외화획득의 원천
해방전인 1915년에 진남포에 건설되었던 남포제련소를 비롯해 6개 제련소가 전쟁기간중에 거의 파괴되어 전후 복구공사를 거쳐 1960년대에 들어 생산이 개시되었다한다. 그후 1980년대에 비철금속부문 추가 건설이 본격화되는데 중요한 외화수입원이 되어왔다. 아연을 주로 생산했던 남포제련소는 시설노후화와 아연제조 과정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이 암을 일으키는 등 환경문제로 2000년에 철거되었다. 

2000년대이후 구리, 납, 아연 등 비철금속 생산 정상화를 위해 중국 등으로부터 설비를 수입하여 문평제련소와 단천제련소 등 의 시설을 개조하고 있다. 

북한의 비철금속 공장(단위:천톤/년)(자료 - 한국산업은행,『북한의 주요산업』2015년판 p.268)

일반적으로 알려진 비철금속인 구리, 납, 아연, 알미늄이외에 주목받는 희귀금속으로서 인듐과 탄탈룸이 중요하다. 인듐은 전자 제품, 반도체 제조 공정, 액정 화면(LCD) 제조에 쓰이는 금속이다. 방사성 동위 원소인 인듐-111은 핵의학에서 특정한 단백질이나 백혈구의 이동을 파악하는데 쓰는 동위 원소 추적자로 많이 사용된다. 인듐은 섬아연광에 포함되어 나오는데 북한은 세계 최대수출국인 중국 다음으로 매장량이 많다고 한다. 현재 중국이 자원무기화로 가는 경우 북한은 주요한 대체수출국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탄탈룸은 주로 휴대전화, 컴퓨터, 전기부품, 고성능 저항기와 축전기의 전자 회로를 제조하는데 사용된다. 주로 탄탈석, 콜탄 등에 포함되어 있으며 콜탄은 중앙아프리카의 콩고민주공화국지역에서 주로 생산되는데 1993년에 가격이 앙등하여 이를 두고 내전이 벌어져 540만명 이상이 사망할 정도로 엄청난 희귀금속이다. 1992년에 일본의 상사가 북한과 접촉하여 탄탈룸의 개발수입을 협의했을 정도로 관심을 가진 희귀금속인데 북미간 핵위기 발생으로 중단된 바가 있다. 탄탈룸(HS8103)과 탄탈룸광(HS261590)은 유엔제재대상이 아니다.

북한공업의 발전과제
북한의 공업발전 전략은 일관되어 있다. 자강력을 가진 경제자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그리고 그 힘을 이제 회복하고 있는 것 같다. 전통적인 화학과 금속 부문에서 생산정상화와 함께 현대적 과학기술의 발전이 결합되어 나타나고 있다. 북한은 이를 지식경제시대에 [과학기술과 경제의 일체화]로 부르고 있다. 즉, 과학과 기술, 지식이 생산을 주도하면서 과학기술발전과 경제발전이 하나로 유착되는 것다. 새로 연구개발된 과학기술이 생산에 도입되는 시간이 대단히 짧고 생산활동 종사자중에 과학자, 기술자, 전문가들의 비중이 높아졌다고 한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경제 전반의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세부내용에서는 검토해야할 과제들이 있다고 본다.

먼저 자립경제의 4대 선행부문(先行部門)인 전력, 석탄, 금속, 철도운수의 문제인데, 이 4대 선행부문은 사실 일제강점기 조선경제정책의 기본전략이기도 했고 만주국에서도 적용된 [경사전략(傾斜戦略)]과 유사하다. 투입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특정 산업부문에 힘을 집중하면 다른 부문이 후차적으로 따라서 발전한다는 것이다. 식민지시대 집중 개발된 부문이 바로 이 4대 선행부문이다. 즉 북한이 식민지적 편파성이라고 지적했던 부분들이 식민지유산으로서 북한경제의 선도적 선행부문으로 규정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21세기엔 이 개념을 탈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앞으로 북한의 공업생산력을 높이고 [인민생활의 향상]에 기여하는 현대적 과학기술을 결합한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① 공업개발 우선순위 재편
• 석탄을 연료뿐 아니라 원료로 쓰는 탄소하나공업을 화학산업의 중심으로 두고 주체비료, 주체철 생산을 밀고 나가되, 주체섬유인 비날론은 의복섬유보다는 다른 산업용 원료로 개발활용한다. 석유화학산업에 대해서는 남한과 협력한다.
• 4대 선행부문 정책을 인프라, 에너지, 원료의 자강력 확보정책으로 바꾸고 [중공업 우선과 경공업 동시발전]을 [중공업-경공업 동시발전]으로 진전시켜 초기부터 민수확대와 수출확대에 연계되는 공업부문을 발전시킨다. 
• 현대적 과학기술과 공업의 연계로서 ICT와 전기전자공업 부문을 중시하고 있는데, 기계공업과 연계된 메카트로닉스 부문을 공업의 중심 부문으로 명시하고 육성한다.
• 공업개발지대를 수요지역과 연계하여 균형적으로 발전시킨다. 

② 기업경영 현대화
•  지배인이 명확한 권한을 가지고 경영전략을 짜고들도록 한다.
•  경영자율권의 위임범위를 확대한다 (인사권, 제품선택권, 가격결정권, 자재조달권 등)
•  국영 및 민간상업금융을 법제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하고 국내투자를 활성화한다.
•  국가전략적 경영을 추구하는 국영기업과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협동단체, 시장지향적인 민수기업을 차별화한다.

③ 기술 혁신과 국제협력
•  [과학기술과 경제의 일체화] 방침에 따라 첨단선진기술의 자립을 목표로 기술개발과 도입을 추진한다.
•  중간기술분야에서 기능인재 육성을 제도화한다. (공업고교, 상업고교, 고등전문학교 설치)
• 기술기능인력의 해외연수와 국내연수체계수립에서 국제협력을 강화한다.

북한의 공업발전을 위한 다섯가지 레벨의 상호관계(자료 - 각종 자료를 참조로 필자 작성)

*다음편 기획연재[북한경제와 협동하자]는 '경제시스템 개선 :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가 주제로 다뤄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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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테이쿄대학 이찬우교수
일본 테이쿄대학 이찬우교수
사회적경제 관점으로 바라보고, 사회적가치를 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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