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하고 고단한 국제협력개발 활동가의 길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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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하고 고단한 국제협력개발 활동가의 길 ③
  • 2023.04.06 18:47
  • by 국제개발협력 NGO 캠프 이철용 대표

개발도상국, 거기에서도 빈민촌과 같이 어려운 환경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NPO, NGO 단체가 있다. 필리핀에서 활동하는 '캠프'도 그중 하나로,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생활을 개선하고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2006년 처음 필리핀으로 가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는 캠프 이철용 대표의 이야기를 통해 국제개발의 어려운 현실을 들여다보고, 묵묵히 활동을 수행하는 그의 사명감을 글로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③에서 이어집니다.)

여러 사람의 협업으로 시작된 국제개발협력

함께일하는재단(함재)의 이명희 팀장께서 연락을 주셔서 함재에서 해외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캠프가 함께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서를 제출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한국과 필리핀 양쪽 어디에도 법인 등록이 안 되어 있는데 가능한 것이냐고 물었을 때 함재도 처음 하는 것이라 아직 정해진 틀이 없어서 일단 가능할 것이라고 했고 신뢰할 수 있는 기관과 처음 하는 해외 사업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이 사업이 함재의 STP(Smile Together Partnership) 사업입니다.

함재의 지원으로 2011년 7월 15일 타워빌에서 사회적기업 봉제센터가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사업은 지역 이관과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었기에 한국의 자원봉사자 시스템이 아니라 필리핀 정부의 교육훈련 시스템을 도입해서 국가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취업 연계로 확장될 수 있는 방식으로 기술교육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자립과 지속가능성을 얘기할 때 상당수 사람은 경제적 자립에 중점을 두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국제개발현장은 다양한 변수가 있기 때문에 경제적 자립이 이루어진다고 지속가능한 것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소득 증가가 또 다른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제적 자립과 함께 사회적 자립에 대한 부분의 균형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것이 함께 진행되어야 하기에 캠프는 이 부분을 종합적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현지 전문가 그룹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필리핀국립대학 지역개발학과입니다. 당시 현지법인의 매니저가 필리핀국립대학 지역개발학과 출신이었기에 교수님을 소개해 달라고 해서 만났습니다. 그 교수님이 당시 학과장이셨던 모린 빠가두안 교수님이십니다. 교수님을 만나서 저와 캠프를 소개하고 저는 작은 기금을 만들어 올 수 있으니, 지역개발 전문가인 교수님이 도와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긴 대화를 한 후 교수님은 자신도 한국 사람들과 일을 많이 해봤는데 아무리 열심히 말을 해도 결국은 한국인들의 방식대로 일을 하더라. 나는 바쁘니 생각은 고맙지만 함께하기는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삼고초려를 해서 교수님이 시키는 대로 따르겠다는 약속을 하고 교수님과 학생들이 타워빌에서 함께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UP의 지역개발학과는 졸업반 2학기를 검증된 현장에서 생활하며 공동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현장실습 프로그램이 있는데 학생들이 5~8명 정도 한 조가 되어 타워빌로 들어와 봉제센터에서 먹고 자며 그곳에서 일하는 어머니들 역량 강화에 집중합니다. 어머님들 가정에 들어가 같이 먹고 자며 친구가 됩니다. 그들 중에 리더십이 있는 사람의 역량을 키우고, 약한 사람들의 취약한 부분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이런 긴 과정을 통해 어머니들이 자기를 발견하고 갇힌 틀을 깨며 리더로 성장하는 긴 시간을 진행합니다. 매주 한 차례 교수님이 현지를 방문해서 8시간 이상 집중적인 점검과 수업을 진행합니다. 학생들은 매 학기 학교에서 자신들의 과제를 발표하며 교수님들의 평가를 받고 졸업 여부가 결정됩니다. 제가 알기는 20% 정도는 졸업하지 못합니다. 

 

주민주도 모델로 진행된 타워빌을 주민들에게 온전하게 이양하는 과정 

이런 과정을 통해 캠프는 성장했습니다. 봉제센터를 세우고, 안정적 일자리를 위해 유치원과 도서관을 짓고 청소년 리더 양성까지... 10만여 명이 사는 타워빌에는 클리닉이 없었습니다. 이곳에 주 5일 의사가 상주하는 클리닉을 세우고 주민들이 스스로 운영하도록 했습니다. 3년 정도 외부의 지원 이후에는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해서 외부 지원 없이 클리닉이 운영되는 모델도 만들었습니다. 주민건강모니터링 팀을 만들어 24시간 응급환자를 시립병원으로 이송하는 자원봉사 응급구조단을 주민들이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이 많은 부분이 코로나로 인해 멈춰 섰습니다. 안타깝지만 주민들이 다시 일으키는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필리핀의 코로나는 정말 험난했습니다. 초기 근 1년은 사회가 멈췄습니다. 모든 시설이 강제로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대중교통도 중단되고 대형 몰도 문을 닫았습니다. 식료품을 파는 상점들만 제한적으로 문을 열고 가족 중 1명만 ID카드를 발급받아 식료품 구매를 위한 외출이 허용되고 동네 밖은 나갈 수 없었습니다. 군인 경찰이 곳곳에서 검문하는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봉제센터를 포함한 캠프의 대부분 사업도 문을 닫았습니다.

문제는 정규직은 일을 안 해도 해고를 못 하도록 했지만, 우리 동네는 대부분이 일용직 막노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정부가 지원한다고 하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정도의 지원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생존이 문제였습니다. 먹거리가 문제였습니다. 필리핀의 놀라운 힘은 가난한 이웃들을 위한 작은 실천이 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가 시작되자 한 여성이 자신의 잉여 먹거리를 집 앞 테이블에 내놓고 필요한 사람들은 가져가고 남는 사람들은 자신의 것들도 내어놓는 '커뮤니티 팬트리'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이 되었습니다. 3천 개 이상의 커뮤니티 팬트리가 전국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캠프의 건강한 먹거리도 타워빌에 매주 두 차례씩 공급이 됩니다.

먹거리가 없는 주민들이 길게 줄을 선 것을 보면 마음이 참 아픕니다. 그 가운데 우리에게 역할이 주어지는 걸 감사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한국 정부는 코이카를 중심으로 가난한 이웃 나라에 많은 방역물품을 공수해서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필리핀은 달랐습니다. 직접 봉제센터 익팅에서 수주받아 마스크와 방호복 등을 만들어 전국으로 배송하며 일자리를 만들고 방역도 하는 일석이조, 아니 탄소배출도 줄였으니 일석삼조의 역할을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 일자리를 넘어 봉제센터 어머니들이 방역에 동참하고 힘든 이웃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자긍심은 말할 수 없는 큰 소득이었습니다. 캠프는 타워빌 사업들을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함과 동시에 주민들에게 이관하고 시설들도 주민들이 운영하도록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며 시작한 농업 활동

2015년 말부터 캠프는 새로운 고민을 했습니다. 매번 한국의 프로젝트에 의존하는 사업들에 대한 위기감도 느끼고 정말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것이 농업입니다. 필리핀은 농업국가이고 주민 대부분 농업 활동을 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친환경 자연 양계를 공부하고 병아리 300마리를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적정기술을 이용한 계사를 만들고 천연미생물을 배양해서 자가사료를 만들고 병아리들과 계사에서 밤을 지새우며 지역의 청년들과 함께 양계를 시작했습니다. 6개월 만에 초란이 나왔습니다. 감격스러웠습니다. 하루하루 지나며 하루 200개의 알이 나옵니다.
 

ⓒ이철용 대표
ⓒ이철용 대표

문제는 우리는 판로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장사를 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하루 200개의 알이 쌓이는데 정말 난감했습니다. 한인교회를 방문하며 유정란을 홍보하는 것에서부터 정말 문을 두드려가며 유정란을 팔았습니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지금은 쌀, 두부, 콩물, 누룽지, 두부과자, 버섯크래커 등 다양한 제품을 가공 생산하고 마카티의 중심 상권에 매장을 내고 생산 가공 판매로 연계하는 농업 가치사슬 프로그램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딸락을 중심으로 농업 활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농민들과 함께 농사를 짓습니다. 닭을 키우고 벼농사와 콩농사를 합니다. 그런데 농촌은 더 힘든 일들이 많습니다. 농사를 짓는 데 필요한 비용이 없으니 중간상이나 사채업자에게 고리로 돈을 빌립니다. 제때 갚지 못하면 2배의 이율과 결국 땅문서를 넘기는 일이 벌어집니다. 올해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기름값이 3배가 올랐습니다. 농사는 물이 필요하기에 양수기를 돌려야 합니다. 비료는 석유화학제품이니 이것도 2배 이상입니다. 그렇다고 농작물 가격이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농업을 포기합니다. 그나마 지은 농산물도 최소한 도정도 할 수 없으니 헐값에 중간상에게 넘겨야 합니다.

이곳에서 캠프는 농민들의 아픔과 위험을 감소시키는 사업을 진행합니다. 볍씨와 비료를 선공급해 드리고 농민들은 노동력을 제공합니다. 추수 후 이자 없이 갚아가는 방식을 취합니다. 추수 전 태풍이 오면 다음 해에 갚으면 되는 방식입니다. 캠프의 도정센터에서 무료로 도정하고 직접 판매하게 합니다. 캠프는 부산물로 사료를 만들어 서로 윈윈합니다. 값싼 농작물인 벼나 옥수수 농사에 집중하는 지역에 3배 높은 가격의 두부콩을 심게 합니다. 이것으로 손두부와 콩물을 만듭니다. Non-GMO를 얘기합니다. 시장의 신뢰를 얻습니다. 소수민족 아이따교회와 농가들에 버섯농장을 작게 지원해 드리고 주민들이 버섯 농사를 하고 그것을 크래커로 가공합니다. 청년들과 지역민들의 일자리로 연계합니다. 물 문제 해결을 위해 작은 태양광 펌핑시설을 설치합니다. 패널 2장과 직결 펌프를 연결해서 콩 농사, 옥수수 농사, 버섯 농사에 필요한 물을 공급합니다. 작지만 정말 지역에 필요한 시스템들을 지역에서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농축산물을 공급하는 Orga nature link. ⓒ이철용 대표
▲지역에서 농축산물을 공급하는 Orga nature link. ⓒ이철용 대표

 

현장 활동가의 보람과 고통은 동전의 양면

국제개발현장의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된 일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우리 봉제센터의 리더중 한 분인 웽이라는 어머니는 초등학교를 마쳤지만, 열심히 일하셔서 자녀들을 공부시켰습니다. 아들은 공무원이 되어 지역에 대출은 있지만 2층짜리 내 집을 지었습니다. 봉제센터에서 받는 임금은 아주 작습니다. 그것이 자녀들을 키우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을 토대로 주민들에게 아시아의 가난한 이웃들에게 강연하는 운동가가 되었습니다.

몇 달 전 타워빌 식구들이 저의 60살 잔치를 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한결같이 어머니들이나 청년들이 자신들의 인생이 바뀌었다는 고백을 듣고 참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이런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분들 때문에 제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희망이지요. 
 

▲ 지역 주민들이 함께 준비한 생일파티 장면. ⓒ이철용 대표
▲ 지역 주민들이 함께 준비한 생일파티 장면. ⓒ이철용 대표

그런데 매번 이렇게 행복하지만은 않습니다. 지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고통이 있습니다. 그것 또한 안타깝게도 사람으로 인해서입니다. 코로나를 지나며 많은 사람이 생활이 힘들어지니 어떻게든 필요한 돈을 만들어야 한다는 그것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일하던 자원봉사자들이 노동부에 소송을 걸어왔습니다. 직원들이 아니라 자원봉사자들입니다. 필리핀의 노동법은 우리와 아주 다릅니다. 6개월 이상 관리와 지원이 있었으면 노동자로 판단합니다. 우리 클리닉을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하고 독립시키고 최소한의 비용을 받아 운영하며 부족한 부분은 캠프가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노동부에 부당해고로 제소를 했다고 해서 내용을 알아보니 클리닉 서비스 시간을 캠프와 같이 의논했고, 부족한 부분의 재정을 지원한 것이 고용행위라고 합니다. 이로 인해서 참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깨지는 아픔입니다. 우리 젊은 활동가들은 우리가 뭐 하러 이곳에서 이 고생을 하느냐고 눈물을 흘립니다. 이런 아픔들로 인해 예전과 같은 열정이 아니라 기관의 안전을 생각하다 보니 일에 있어서 위축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길은 명확하기에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캠프는 좀 다른 기관입니다. 우리는 현장 중심으로 기관을 운영합니다. 거의 90% 이상의 재정이 현지에 보내지고 사업비로 사용됩니다. 한국법인보다도 더 큰 조직이 현지 조직입니다. 현장이 중요하기에 저도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을 채용하는 방식도 외적으로 갖춰진 분들보다는 현지에서 성장할 수 있는 사람들을 키워서 현장 활동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좀 다른 기관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업의 진행방식도 'From the Community, With the Community, For the Community'라는 원칙을 가지고 지역에 기반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의 계획은 모든 사업을 한국의 젊은이들 그리고 현지의 젊은이들이 이끌어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현지에서 자체적인 수익구조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이것을 통해 주민의 자립뿐만 아니라 기관의 자립도 만들기 위한 미래 전략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현장을 잘 아는 활동가들 미래의 리더들을 양성하는 일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단순히 빈곤 현장뿐만 아니라 선진 국제개발의 이론과 정책을 아우르는 청년 리더를 세우는 일에 남을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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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협력 NGO 캠프 이철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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