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긴급구호 NGO가 전문성을 갖추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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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긴급구호 NGO가 전문성을 갖추려면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1차 긴급구호를 마치며
  • 2023.03.10 18:21
  • by 고두환 (재)피스윈즈코리아 상임이사

"여러 현장을 다녀봤지만, 이곳처럼 비극적인 현장은 드뭅니다. 도시 전체가 사라지고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것이 현실입니다. 당장 안전하게 마실 물과 깨끗하게 씻을 물이 없고, 그로 인해 전염병이 우려됩니다. 한편으로 공공서비스가 다 멈춰서 아이들이 거리에 방치되고 있습니다."

2월 6일 튀르키예 남동부와 시리아 서북부 지역에서 규모 7.8의 지진이 발생했다. 튀르키예 재난관리국(AFAD)은 지난 1일(현지시각) 누적 사망자 수가 45,089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시리아 당국이 발표한 사망자 수 5,951명을 합하면 양국에서 지진으로 51,04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 지진으로 튀르키예에서 약 197만 명, 시리아에서 1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무너지거나 심각하게 손상된 건물은 63만채가 넘는다.

▲ 피스윈즈 긴급구호팀은 2월 6일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이 발생한 직후 재난 현장에 출동하여 긴급구호 활동을 시작했다. ⓒ피스윈즈코리아
▲ 피스윈즈 긴급구호팀은 2월 6일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이 발생한 직후 재난 현장에 출동하여 긴급구호 활동을 시작했다. ⓒ피스윈즈코리아

피스윈즈(PeaceWinds)는 지진이 발생하자마자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을 위해 몰도바에 상주하던 구호팀 중 구급대원 2명, 의사 1명, 간호사 2명, 지원 인력 1명으로 긴급구호 및 구조팀을 꾸려 튀르키예 지진 피해 현장으로 급파했다. 피해가 심한 가지안테프, 오스마니아, 이스켄데룬, 안타키아, 아르수즈 일대를 순회하며 ▲피해 현황 파악▲생존자 수색·구조 지원▲긴급물자 배포(텐트, 식량 패키지 등)▲의료 지원 등을 진행했다.

피스윈즈 외에도 많은 NGO(비정부기구)가 긴급구호 및 구조 인력을 파견했지만, 초기 현장에서 NGO들은 조사 활동밖에 할 수 없었다. 튀르키예 정부가 현장을 강력히 통제했고,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자격 문제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 '준비'와 '자격' 없이 할 수 없는 현장 활동

▲ 인사락(INSARAG)의 구조 활동 가이드라인. 인사락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인사락(INSARAG)의 구조 활동 가이드라인. 인사락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피스윈즈는 어떻게 바로 긴급구조 활동을 펼칠 수 있었을까?

일단 피스윈즈는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국제연합(유엔, UN)은 지진 등 대규모 재난 발생 시, 각 국가 구조대가 공동으로 대응하는 효율적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1991년 산하기구인 인사락(INSARAG)을 설립했다. 인사락은 구조 활동 가이드라인(Guideline)을 구축해야 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당연히 인사락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심사 과정을 거친다. 인사락에 가입되지 않은 구조대는 현장 활동을 할 수 없다.

피스윈즈 구조팀은 튀르키예 구조대 GEA와 함께 생존자 수색 및 구조 활동을 진행했다. GEA는 인사락 회원 조직이다. 튀르키예 전역에 9개 지부가 설치되어 있고, 6,580명의 자원봉사자가 활동 중이다. 인사락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면서 활동할 수 있는 구호 전문가는 458명이다. 구호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2년 간 정규 교육 과정 및 훈련을 이수해야 한다. 또한, 피스윈즈와 GEA를 비롯한 각 국가 구조대와 1년에 2차례 합동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언제 어디에서 재난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구조대와 네트워크를 맺고, 훈련을 통해 상시적인 준비 태세를 구축하는 것이다. GEA는 이번 재난 현장에서 40명의 생존자를 구조했다.

의료 활동도 마찬가지다. 세계보건기구(WHO) 응급의료팀(Emergency Medical Teams) 자격을 보유하지 않으면 긴급구호 현장에서 의료 활동을 할 수 없다. 변호사가 어느 나라에서나 변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의사 역시 어느 나라에서나 의료 활동을 할 수는 없다. 긴급구호 현장 역시 예외가 아니며, 단순히 국가 자격 문제를 떠나 다각도의 전문성 또한 요구된다.

WHO는 각 국가 정부 및 NGO 응급의료팀을 역량에 따라 5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평가·인증한다. 피스윈즈 의료팀은 진료가 가능한 'TYPE1(Fixed: 외래 응급환자 치료)' 자격을 획득했다.

재난이 발생한 뒤에 이런 자격들을 취득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활동을 하려면 당연히 평시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재난에 대비한 훈련을 꾸준히 해야 하며, 무엇보다 국제적인 표준에 입각한 자격들을 보유해야 한다. NGO가 이런 준비 태세를 갖출 수 있게끔 국가와 사회가 지원하거나 후원해야 하지만, 한국에서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피스윈즈에도 당장의 일이 아닌 미래의 재난에 대비할 후원에 공감하는 후원자를 발굴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 갈수록 커지는 고도화된 전문성에 대한 요구와 우리의 현실

▲ 피스윈즈 긴급구호팀이 현지 긴급구조단체 'GEA'와 함께 생존자 수색 및 구조 활동을 펼치고 있다. ⓒ피스윈즈코리아
▲ 피스윈즈 긴급구호팀이 현지 긴급구조단체 'GEA'와 함께 생존자 수색 및 구조 활동을 펼치고 있다. ⓒ피스윈즈코리아

의지를 갖고 현장에 급파된다고 하여 활동이 가능하진 않다. 모금에 성공했다고 해서 활동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준비와 자격은 차치하고, 최근 현장은 각국 정부가 강력한 통제를 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긴급한 상황에서 공조해야 하는 숙제 또한 있다. 평소에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지 않거나, 그 사회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없다면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많은 후원자들은 NGO 홈페이지에서 현장 소식을 기다리지만, 활동하며 소식을 전하기는 쉽지 않다. 일부 NGO는 지역조사 등 극히 제한된 활동만을 할 수밖에 없다. 준비와 자격, 해당 국가와 지역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통칭하면 '전문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전문성이 없는 사람 내지 단체가 현장에 간다는 것은 그런 면에서 극도로 위험하다.

피스윈즈는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 왔다. 신생 단체의 태생적 한계와 열악한 재정 상황이 발목을 잡을 때가 있지만, 전문성을 통해 기부자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런 활동들은 ▲(온라인) 현장 브리핑 ▲(기부자에게) 찾아가는 보고회 ▲현장 상황 주간보고 및 프로젝트 보고서 발행 등 기부자가 최대한 자주, 다양한 채널에서 현장 소식을 접할 수 있게끔 조치 중이다.

▲ 피스윈즈 의료팀은 세계보건기구 응급의료팀 인증을 보유하고 있다. ⓒ피스윈즈코리아
▲ 피스윈즈 의료팀은 세계보건기구 응급의료팀 인증을 보유하고 있다. ⓒ피스윈즈코리아

이번 현장에서 세태의 변화를 절감한다.

각 국가 전문가들은 한국의 안전불감증을 우려하며 지진 등 큰 재난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경고를 한다. GEA의 경우, 피스윈즈에 한국의 대형 재난을 가정해 주요 스팟에 구조 장비 컨테이너를 구축하자는 제안을 해 왔다. 평시에 훈련을 진행하고 시물레이션 등을 통해 준비 태세를 갖추는 동시에, 대형 재난이 발생했을 시 해외에서 급파되는 구조대에 장비와 정보의 초도 지급을 누구보다 신속하게 해내자는 제안이다. 필요한 일인데, 이런 준비를 하는 일에 지원과 후원을 모집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또한, 현장은 갈수록 전문성이 요구된다. 구조대는 인간의 경험 이 외에 각종 첨단 장비를 활용해야만 제멋대로 파괴된 건물 속에서 모두의 안전을 확보하고 보다 빠르게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이재민을 위한 임시 캠프의 운영 역시 계획과 설계가 필요하여 인공지능을 도입한 실험을 진행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신원과 요구를 신속하게 확인하는 것은 앱이나 온라인 플랫폼으로 손쉽게 아카이빙하고, 통계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세태의 변화에 따른 전문성을 확보한 단체가 아니라면 현장 활동이 점차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문성을 갖출 만한 투자와 인력 확보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은 이 영역의 일을 자원봉사의 성격으로 치환하는 경향성이 있기 때문이다.

조만간 피스윈즈는 2차 긴급구호를 실시한다. 모두의 이목이 현장에 집중되어 있는 만큼, 우리의 전문성으로 누구도 돌보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발굴해 지원하는 것이 목표다. 이만한 활동을 할 수 있음에 다시 한 번 후원자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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