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결한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퇴행의 시대를 넘는 거센 연대의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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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결한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퇴행의 시대를 넘는 거센 연대의 파도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8회 한국여성대회
성평등을 향한 서른 여덟 번의 전진
  • 2023.03.05 20:00
  • by 이진백 기자

 

4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8회 한국여성대회가 개최됐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관한 이날 행사의 슬로건은 '성평등을 향해 전진하라–퇴행의 시대를 넘는 거센 연대의 파도'다. 

3·8 세계여성의 날은 20세기 초반 미국 의류산업 여성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의 개선과 선거권을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건에 기원을 두고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여성들의 행동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 1920년대부터는 3월 8일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것이 국제적으로 정착됐다. 이후 UN은 1975년을 '세계여성의 해'로 선포했고, UN을 비롯한 국제기구들도 세계여성의 날을 공식적으로 기념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3·8 세계여성의 날 행사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시작됐지만 당시 대부분의 행사는 일본 경찰에 의해 무산됐으며 한국전쟁으로 여성의 날은 잠시 단절됐다. 이후 한국에서 3·8 세계여성의 날은 1985년 제1회 한국여성대회를 시작으로 다시 기념하기 시작했다. 올해로 38회째를 맞는한국여성대회는 여성들이 당면한 문제들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성평등 사회를 향한 여성들의 힘과 시민적 연대를 확인하는 축제의 장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2시 30분부터 시작된 기념식은 대구여성인권센터 춤신춤왕의 오프닝 공연으로 막을 열었다. 참가자들은 "윤석열 정부가 사회 구조적 성차별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다"라며 "윤 정부의 반여성 기조가 국가와 지자체의 성평등 정책을 후퇴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책무를 가진 국가가 헌법적 가치인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라며 "정책 기조에서 '여성'과 '성평등'을 삭제하지 말고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를 강화하라"고 촉구했다. 기념식에서는 여권 신장과 성평등 문화확산에 기여한 공로자들에 대한 시상도 이뤄졌다.

제38회 한국여성대회 '올해의 여성운동상'은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사회의 성평등과 여성운동 발전에 공헌한 개인 또는 단체에 주는 상으로 올해의 여성운동상에는 먹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파리바게뜨지회'가 받았다. '특별상'에는 무수한 타자들의 벗 되어, 모든 존재가 환대받는 사회를 일궈온 '섬돌향린교회 고(故) 임보라 목사(전도사 김하나 대리 수상)가 선정됐다. 생존을 바라는 존재들에 고(故) 임보라 목사의 돌봄 실천은 즉각적이고 정의로운 방식이었으며 평등을 갈망하는 이들의 연결망을 촘촘하게 엮어가는 과정이었다고 주최 측은 평가했다.

'성평등 디딤돌'은 지난 한 해 우리 사회의 성평등에 기여한 개인 또는 단체에 수여하는 상으로 미군 기지촌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가 책임 인정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낸 ▲미군 '위안부' 국가손해배상 청구소송 122인 원고와 대리인단, 단단한 연대로 캐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권 확장한 ▲전국여성노동조합 상록CC분회, 해군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사건 파기환송심을 이끌어내고 군대 내 여성과 소수자 인권의 향상을 만들어낸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변호인단, 지역, 여성, 청년 페미니스트 정치의 가능성을 열어낸 ▲청주페미니스트네트워크 '걔네' 등을 선정했다.

'성평등 걸림돌'은 우리 사회의 성평등 실현에 걸림돌 역할을 한 개인 또는 단체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처벌받았음에도 사과와 반성없이 여전히 괴롭힘을 지속하고 있는 △동남원새마을금고, '전화 안 받았다면 스토킹 행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인천지법 형사9 단독 재판부, 성차별적인 노동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의지가 없는 △서울교통공사,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은폐·축소하고 조직문화 개선 및 재발방지대책 마련에 미온적인 △포스코, 무책임과 혐오선동 정치의 △권성동 국회의원과 책임 방기, 자격 미달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2022 개정 교육 과정에 '성소수자', '성평등', '재생산' 표현 삭제한 △교육부,  유산유도제 도입 책무 방기하여 여성 건강권 외면한 △식약처 등이 명단에 올랐다.
 

▲ 권우현 기후위기비상행동 운영위원 / 성평등을 지지하는 외교관들
▲ 권우현 기후위기비상행동 운영위원 / 성평등을 지지하는 외교관들

이날 행사에서는 성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여러 단체의 활동이 소개됐으며 각계 시민사회단체에서 연대의 뜻을 표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연대발언을 위해 나선 권우현 기후위기비상행동 운영위원은 "기후위기가 여성 인권과도 무관하지 않다"라며 "식량과 식수를 구하는 노동에 종사하는 개발도상국의 여성들의 삶터와 일터가 잠기고 가물고 뜨거워지며 척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후정의가 곧 젠더정의고, 젠더정의가 곧 기후정의다. 최일선 당사자인 여성의 목소리가 빠진 기후위기 담론은 언제까지고 미완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성차별과 기후위기라는 중첩된 폭력의 시대, 꺾이지 말고 거기서 새뜻한 목소리를 함께 움틔워 나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성평등을 지지하는 외교관들'의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즈 주한 EU 대사는 "성평등은 유럽연합과 여기 참석한 국가들(12개국)의 핵심 가치이자 모든 정책에서의 우선순위이다"라며 "모든 여성과 소녀들은 자신이 선택한 삶의 길을 자유롭게 추구하고 동등한 기회를 가지며 동등하게 우리 사회에 참여하고 이끌 자유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힘을 실어주며, 더 풍요롭고 안전하게 만든다. 또한 지속가능한 내일을 포함하여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글로벌 과제에 대한 해결책이기도 하다"라며 "이것은 우리 모두의 도전과제이자,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오늘은 성평등한 세상을 향한 또 하나의 발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주한 캐나다 대사대리 티마라 모휘니는 "성평등은 옳은 일일 뿐만 아니라, 현명한 일이다. 여성과 소녀들이 정치, 비즈니스 및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평화롭고 번영하는 민주적인 사회를 위한 필수 토대이다"라며 "캐나다와 여기 와있는 우리 모두는 성평등을 달성하고 모두를 위해 보다 공정하고 공평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전 세계 여성의 노력을 지지한다. 여러분 모두에게 멋진 한국 여성의 날이 되기를 기원한다"라고 말했다.   
 

▲ 사진 왼쪽부터 맹영심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활동가, 최말자 씨, 최다미 대학청년YWCA전국협의회 회장, 이현주 충북여성장애인연대 대표, 서민영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활동가.
▲ 사진 왼쪽부터 맹영심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활동가, 최말자 씨, 최다미 대학청년YWCA전국협의회 회장, 이현주 충북여성장애인연대 대표, 서민영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활동가.

한국여성단체연합은 3·8 여성선언을 통해 성평등 퇴행의 시대를 이겨나갈 의지를 보였다. 3·8 여성선언 낭독은 맹영심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활동가, 최말자 씨, 최다미 대학청년YWCA전국협의회 회장, 이현주 충북여성장애인연대 대표, 서민영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활동가가 맡았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윤석열 정부는 사회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발생되는 성차별 존재 자체를 지속적으로 부인하고 있다"라며 "성차별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성평등 가치를 남성과 여성의 싸움을 부추기는 도구로 왜곡하고,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백래시를 자신의 정치적인 이해를 위해 끊임없이 활용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지금, 여성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2022년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한국의 젠더 격차 지수는 146개국 중 99위, 2021년 기준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31.1%로 27년 연속 OECD 국가 중 1위,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9%로, OECD 국가 38개국 중 34위, 최하위권"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정부에 ▲헌법적 가치인 성평등 실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 ▲여성, 성평등 삭제 말고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 강화할 것 ▲장시간 노동 근절, 성별임금격차 해소 및 안전한 일터 보장 ▲젠더 관점으로 구조적 여성폭력에 대응해 존엄한 일상과 권리 보장 ▲돌봄과 차별없는 복지 실현 ▲정치 대표성의 다양성과 성별균형 보장하는 정치개혁을 할 것 ▲한반도와 국제사회 여성주의 평화 안보 구축 ▲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요구했다.

아울러 이들은 "퇴행은 언제나 있어 왔다. 하지만 그 퇴행이 성평등 실현을 향한 우리의 열망과 전진을 막아낸 적은 결코 없다"라며 "우리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며 성차별·성폭력이 발생하는 구조에 끊임없이 저항하며 세상을 바꿔왔다. 다시 한번, 이 퇴행의 시대를 넘는 거센 연대의 파도가 되어 성평등 사회를 향해 힘차게 전진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행사에서는 성평등을 향해 전진하는 여성들의 '3.8 여성선언'과 소수자연대 풍물패 '장풍', 이소선 합창단의 공연, 참가자 전원이 함께하는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퍼포먼스 후에는 거리행진이 진행됐다. 전국에서 모인 여성·시민들은 서울광장 → 광화문 사거리 → 종각역 → 을지로입구 → 서울광장으로 행진을 이어갔다. 

다음은 이날 발표된 '3·8 여성선언' 전문이다. 

3·8 여성선언

퇴행의 시대를 넘는 거센 연대의 파도가 되어
성평등을 향해 전진합시다!

성평등에 대한 사회 전반의 백래시와 정부 주도로 '여성'과 '성평등'이 삭제되는 퇴행의 시대 한 가운데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페미니스트 시민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명백히 존재하는 성차별과 폭력의 경험과 현실을 드러내고, 함께하는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며, 더욱 거세게 성평등 사회로의 변화를 촉구하고자 오늘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사회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발생되는 성차별 존재 자체를 지속적으로 부인하고 있습니다. 성차별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성평등 가치를 남성과 여성의 싸움을 부추기는 도구로 왜곡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백래시를 자신의 정치적인 이해를 위해 끊임없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윤 정부의 반(反)여성 정책 기조는 페미니스트들의 오랜 투쟁으로 일궈온 국가 및 지자체 성평등 추진체계와 정책 전반의 후퇴와 함께,  '여성'과 '성평등'을 삭제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지금, 여성들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2022년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한국의 젠더 격차 지수는 146개국 중 99위입니다. 2021년 기준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31.1%로 27년 연속 OECD 국가 중 1위입니다.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9%로, OECD 국가 38개국 중 34위, 최하위권입니다. 채용에서부터 업무배치, 승진으로 이어지는 노동시장의 성차별은 여성을 더욱 불안정한 위치로 내몰고 있습니다. 사회변화에 따라 점점 더 교묘해지고 심화되는 젠더폭력은 누구에게나 당연히 주어져야 할 존엄한 일상의 권리를 빼앗고 있습니다. 코로나 감염병 시기를 거치며 더욱 무거워진 돌봄의 책임과 역할은 여성에게만 전가되고 있습니다. 여성이자 아동·청소년, 이주민, 장애인, 성소수자로서 겪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차별은 더욱 주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성애 ‘정상’가족 중심의 정책은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또 다른 차별을 낳습니다. 

이 모든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무를 가진 국가는 헌법적 가치인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정책 기조에서 '여성', '성평등'을 삭제하지 말고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를 강화해야 합니다! 장시간 노동 근절, 성별임금격차를 해소하고, 안전한 일터를 보장해야 합니다! 젠더 관점으로 구조적 여성폭력에 대응하여 존엄한 일상과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함께 나누는 돌봄과 차별 없는 복지를 실현해야 합니다! 정치대표성의 다양성과 성별균형을 보장하는 정치개혁을 실현해야 합니다! 한반도와 국제사회 여성주의 평화 안보를 구축해야 합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모든 여성과 소수자를 위한 성평등 사회를 실현해야 합니다!

퇴행은 언제나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그 퇴행이 성평등 실현을 향한 우리의 열망과 전진을 막아낸 적은 결코 없습니다. 3.8 세계여성의 날의 기원이 된 1908년 3월 8일, 러트거스 광장에서 생존권과 참정권을 외쳤던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호주제 폐지', #미투운동, '낙태죄 폐지'가 있기까지 매 순간 싸워온 수많은 시대의 페미니스트들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며 성차별·성폭력이 발생하는 구조에 끊임없이 저항하며 세상을 바꿔왔습니다. 다시 한 번, 이 퇴행의 시대를 넘는 거센 연대의 파도가 되어 성평등 사회를 향해 힘차게 전진합시다!

2023년 3월 4일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8회 한국여성대회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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