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기업, 그 생생한 현장을 가다] 농촌에서 미래를 그리는 '고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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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기업, 그 생생한 현장을 가다] 농촌에서 미래를 그리는 '고래실'
  • 2023.02.23 12:00
  • by 정원각 객원기자

2023년은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11년을 맞는 해로 협동조합 법제화를 비롯하여 각 사회적경제 조직의 제도화를 점검할 시점이다. 지난해 정권이 바뀌면서 사회적경제에 대한 정책이 크게 축소되는 기조 속에 침체국면에 처할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구시 동구 안심마을 ▲전남 영광군 여민동락 ▲전남 목포 건맥1897협동조합 ▲경남 창원시 내서푸른주민회 ▲충북 옥천고래실 등 사회적경제 분야 조직들의 현장을 지속적으로 방문해 타 사회적경제기업이 참고할 수 있게 모범적인 현장 기업들을 어떻게 활동하고 운영하는지 생생한 현장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 소멸 위험 지역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 2022년 3월 기준 전국 지방소멸위험지수. 한국고용정보원 간행물 '지역산업과 고용' 봄호 관련 지방소멸위험지수 원시자료. ⓒ한국고용정보원
▲ 2022년 3월 기준 전국 지방소멸위험지수. 한국고용정보원 간행물 '지역산업과 고용' 봄호 관련 지방소멸위험지수 원시자료. ⓒ한국고용정보원

충청북도 옥천군 인구는 2023년 1월 기준으로 5만 명에서 조금 모자란 49,452명이다. 옥천군을 둘러싸고 있는 보은군, 영동군, 금산군 등이 모두 소멸 고위험 지역인데, 유일하게 소멸 위험 진입 단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을 선출하면서 본격적으로 지방자치를 시작할 때의 옥천군 인구(64,694명)에 비하면 약 15,000명이 줄어든 상황이다. 지방자치를 실시하면 지역이 더 살기 좋아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자꾸 사람이 떠나고 있다.

옥천의 고래실은 지역 주민, 특히 청년들이 옥천에 머물 수 있게 하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문화 사업 및 활동을 키워드로 대안을 찾았다. 30년 이상 지역 언론으로 탄탄하게 자리잡은 옥천신문 내부에서 2016년 11월 "지역 자원을 활용한 문화 콘텐츠 개발의 필요성과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 기획의 필요성" 등을 논의하여 문화 콘텐츠 사업단을 구성한 것이 시작이다. 대표로는 대전 지역에서 문화잡지사업 등을 해온 이범석 씨를 영입했다.

이후 이듬해인 2017년 2월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참여하고 3월에는 주식회사로 고래실을 창립했다. 고래실은 순우리말로서 '바닥이 깊고 물길이 좋아 기름진 논'을 의미한다. 고래실이 예비사회적기업을 거쳐 인증 사회적기업이 된 것은 2019년 7월. 2017년 독립적으로 법인을 설립하면서 옥천신문사에서 부국장으로 있던 장재원 기자가 합류했고, 2019년에는 편집부장으로 일하던 박누리 기자가 고래실로 자리를 옮겼다.

■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 월간 옥이네는 옥천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 ⓒ고래실
▲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 ⓒ고래실

고래실이 하는 사업은 크게 두 가지 분야다. 한 분야는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을 운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민의 이야기를 담은 '월간 옥이네'를 발행하는 것이다. 그 외에는 마을여행, 문화 기획, 디자인 사업 등을 영위하고 있다.

고래실이 문을 열면서 처음 시작한 사업이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의 운영이다. 지역의 문화 자원을 발굴하고 활용하겠다는 포부로 출발한 만큼, 지역 주민이 문화로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사업의 기본 방향이 됐다. 둠벙이 현재 장소(옥천읍 삼금로1길 10)에 문을 연 것은 이 장소가 무엇보다 '문화재생'이 필요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과거 곱창집이 운영되다가 문을 닫은 지 3년이 훌쩍 넘은 곳이었다. 또한 위치가 어둡고 불법주차한 차량으로 가득한 골목 안에 있어 유동 인구가 많지 않은 곳이었다. 주변에 있는 성인게임방을 드나드는 중년 남성들의 흡연과 노상 방뇨 등으로 골목 환경 역시 매우 나빴다. 마침 이곳의 2층 사무실을 얻은 고래실은 이 공간을 재구성해 골목 풍경을 바꿔 보기로 했다. 비어 있던 식당 공간을 리모델링하고 주변 골목에는 벽화를 그려 분위기를 쇄신했다. 둠벙과 둠벙이 있는 골목에서 다양한 문화 행사를 열며 사람들이 이 공간을 자주 드나들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 둠벙 내 만화카페. ⓒ고래실
▲ 둠벙 내 만화카페. ⓒ고래실

둠벙은 만화카페, 전시와 대관, 청소년 친화 공간 그리고 주민 문화 공간으로 사용된다. 평소에는 음료 값만 내면 음료수를 마시면서 만화, 동화책을 볼 수 있다. 책 대여료는 따로 없고 무제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둠벙 밖으로 빌려갈 수는 없다.

2017년 리모델링하고 문을 열면서 처음 진행한 전시는 세월호 추모 기획전(박누리 기획)이었다. 그리고 둠벙은 '동화 읽는 어른 모임', '세밀화 연구 모임', '청년 모임' 등 옥천 사람들의 공간으로 활용된다. 아울러 둠벙은 옥천 주민들의 문화 공간으로서 낭독회, 저자와의 대화, 북콘서트, 인문학 강좌,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생태공동체 활동으로 텃밭 워크숍도 하고 텃밭에서 생산한 재료로 채식 요리교실을 진행하기도 한다.

▲ 텃밭워크숍, 채식 요리 만들기 모습. ⓒ고래실
▲ 텃밭워크숍, 채식 요리 만들기 모습. ⓒ고래실

농촌 지역이 특성상 학교가 있는 옥천읍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가 도시처럼 자주 있지 않아서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다. 청소년들은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둠벙에 와서 쉬다 간다. 그리고 둠벙은 매주 토요일, 청소년들의 자립을 도와주는 카페가 된다. 토요일에 판매한 수익금 전액을 청소년들에게 지원하는 것이다. 공간 둠벙의 역할이 기반이 되어 청소년 활동을 지원하는 '사회적협동조합 꿈꾸는 배낭'과 청소년들이 직접 참여하는 '협동조합 함께살이'가 탄생했다.

▲ 월간 옥이네. ⓒ고래실
▲ 월간 옥이네. ⓒ고래실

옥천에서 사는 이웃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어떻게 살아갈까? 지역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알리는 '월간 옥이네'는 2017년 7월 창간하여 2022년 12월 통권 66호가 발간됐다. 수도권이나 대도시 중심으로 움직이는 출판 문화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소멸지역에서 살아가는 농민, 청년, 여성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월간 옥이네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문제, 이슈를 공동체적 관심에서 바라본다. 그리고 월간 옥이네에 게재된 글이 타 언론사를 통해 온라인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 고래실의 의미 있는 실험이 계속될 수 있을까?

▲ 둠벙에서 진행한 인문학 강좌 당시 모습. ⓒ고래실
▲ 둠벙에서 진행한 인문학 강좌 당시 모습. ⓒ고래실

고래실은 그동안 여러 성과를 이루었다. 이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주민들이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문화 공간을 제공했다. 둘째, 시민사회 개인과 단체들의 모임을 지속 가능하게 했다. 셋째, 둠벙에서의 활동을 기반으로 한 협동조합을 창립하고 성장하도록 지원했다. 넷째, 지역 청년들과 함께 옥천군에서 처음으로 청소년 기본소득을 제안했는데, 이는 현재 청소년 바우처 조례로 연결돼 현재 관련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다섯째, 월간 옥이네 보도 및 둠벙에서의 동물권 관련 캠페인 활동을 통해 길고양이 보호에 대한 지역사회 인식을 높이고 이를 기반으로 동물보호조례안을 제안했다. 제안한 내용이 모두 반영되지는 않았으나 이를 계기로 옥천군에 동물보호조례가 제정됐다.

이처럼 고래실은 인구 5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옥천 지역에서 여러 가지 중요한 사업을 해 왔다. 그런데 그 사업들이 아직 성공적인 자립 구조를 갖지는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2년, 고래실은 창립 6주년이자 사회적기업으로서 인건비 지원을 받는 마지막 해를 맞았다. 현재 고래실에 근무하는 직원은 13명으로 대부분 20·30대 청년들이다. 이 청년들이 계속 옥천에 남아서 지역 문화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 공간 둠벙이 유지되고 월간 옥이네가 계속 발행되기 위해서 직원, 지역민 그리고 옥천군 등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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