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벡 사회적경제 이야기] 다큐멘터리 '울 엄마의 협동조합(La Coop de ma mè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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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 사회적경제 이야기] 다큐멘터리 '울 엄마의 협동조합(La Coop de ma mère)'
영화로 본 주택 협동조합의 일상
  • 2021.12.03 14:00
  • by 김진환 (퀘벡사회적경제 연구회, HEC 몬트리올 경영학과 박사과정)
09:15

지난 기사를 통해 캐나다와 퀘벡의 사회적주택 발전사에 대해 살펴보면서, 실제 사회적 주택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어떤지 늘 궁금했었는데, 마침 주택 협동조합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발표되었다.

영화를 만든 에브 라몽(Ève Lamont)은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로서 성매매산업에서의 여성에 대한 폭력, 주거권 투쟁, 노동자들이 사는 거주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농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권리 침해 문제 등 사회 문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이번에 에브 라몽 감독이 새로 내놓은 영화는 주거권 문제에 대한 고민의 연장 선상에서 만들어진 영화로, 주택 협동조합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묘사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를 찍는데 함께 한 협동조합은 퀘벡주의 작은 도시, 가티노 지역에 위치한 생-루이 협동조합(http://coopstlouis.org)이다. 영화는 감독의 어머니이며 조합에서 전에 이사장을 역임한 레이첼로부터 시작해서 협동조합의 식구들의 하루하루 일상을 따라가며 주택협동조합에서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보여준다. 이 영화는 봄에 조합원들이 모여 함께 음식을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2년 동안 두 번의 겨울을 나고 다시 봄을 맞기까지, 조합원들이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고 같이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며 다시 봄을 맞아 음식을 나누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여기선 아무도 더 이상 을이 아니다

▲ 퀘벡주의 작은 도시, 가티노 지역에 위치한 생-루이 협동조합에 살고 있는 감독의 어머니이기도 한 레이첼 ⓒRapideBlanc
▲ 퀘벡주의 작은 도시, 가티노 지역에 위치한 생-루이 협동조합에 살고 있는 감독의 어머니이기도 한 레이첼 ⓒRapideBlanc

첫 번째 소개할 조합원은 감독의 어머니이기도 한 레이첼이다. 레이첼은 젊은 시절 여성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활동가 출신이다. 여성운동에 참여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하면서 동시에 다른 여성들을 위해서도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활동가다. 그런 관점에서 건물주의 임대료 인상요구에 속수무책이면서도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수리하기 위해 건물주의 선의에 호소해야 하는 자신을 포함한 세입자들의 처지는 받아들일 수 없는 불의였다. 주택협동조합 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공정한 가격에 살 곳이 필요한 활동가 출신 여성으로서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이곳 협동조합에서는 모두가 공동으로 조합의 주인이며, 집이 고장 나면 조합에 수리를 요청하는데 을의 입장에서 누군가의 선의에 호소할 필요가 없다. 조합원의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생-루이 협동조합에 사는 레이첼은 집에 수리해야 하는 곳이 있으면 우선 만능 일꾼으로 통하는 조합원인 앙리-피에르 아저씨를 부른다. 보다 전문성을 요하는 일은 협동조합의 비용으로 외부 업체를 불러야 하겠지만, 간단한 일은 앙리-피에르 아저씨가 해결해 준다. 

앙리-피에르는 조합식구와 같이 일하는 것이 즐겁다

▲ 생-루이 협동조합의 만능 일꾼으로 통하는 조합원인 앙리-피에르 아저씨 ⓒRapideBlanc
▲ 생-루이 협동조합의 만능 일꾼으로 통하는 조합원인 앙리-피에르 아저씨 ⓒRapideBlanc

앙리-피에르 아저씨는 봄가을에 주택 주변 환경정비를 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기술을 가르쳐 주고 작업을 지도 감독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생-루이의 조합원들은 각자 능력에 따라 주택 관리에 필요한 책임을 나눠 맡는데, 앙리-피에르 아저씨가 맡은 역할이 간단한 수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누어 맡은 역할들은 조합원들이 서로 사람 대 사람의 관계를 맺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협동조합에서 리제트는 이방인이 아니다

▲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에서 온 난민 출신 리제트와 엄마 올가 ⓒRapideBlanc 
▲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에서 온 난민 출신 리제트와 엄마 올가 ⓒRapideBlanc 

리제트와 엄마 올가는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에서 온 난민 출신이다. 리제트의 아버지가 노동운동을 하다가 아들이 사병조직의 타깃이 되자 가족을 피신시켜야겠다고 결정했고, 이런 이유로 2010년에 캐나다로 이주하게 됐다. 리제트에게 있어 협동조합이 좋은 것은 콜롬비아의 마을살이처럼 협동조합 내의 모든 사람이 서로 돕고 지내서 처음 불어를 제대로 못 하던 때부터 가족 역할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어도 삶을 즐길 수 있도록 

▲ 멜리사를 도와주는 조합원 이웃인 다니엘 ⓒRapideBlanc 
▲ 멜리사를 도와주는 조합원 이웃인 다니엘 ⓒRapideBlanc 

멜리사는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싶었던 여성인데, 협동조합에 들어와 살던 어느 날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는다. 혼자서는 휠체어에 올라앉는 것도 힘든 처지가 된 멜리사를 도와주는 것은 활동보조견인 미라와 같은 조합원 이웃인 다니엘이다. 다니엘은 조합에서 유일하게 영어 사용자로, 멜리사의 활동 보조인 역할을 도맡아 하면서 멜리사로부터는 불어를 배우며 '우리는 서로 돕는 사이'라며 웃는다.

다니엘은 쉴 새 없이 농담을 해 가면서 멜리사를 웃게 만들어 준다. 멜리사는 다발성 경화증으로 혼자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되었지만,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매개로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는데, 멜리사에게 주택협동조합이라는 보금자리는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바탕이다. 휠체어에 앉은 상태로 싱크대를 쓸 수 있게 인테리어도 바꿔주었으며, 조금씩 나누어 엘리베이터를 손봐주고, 활동보조견을 챙겨주며, 경사로의 눈을 치워놓는 등 멜리사를 돌보는 역할을 조합원들이 나누어 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지금 시대에는 없어진 대가족의 식구들처럼 멜리사가 의미 있는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 주는 말 그대로의 가족들이다. 

아이는 협동조합이 같이 키운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싱글 대디 장-필립 ⓒRapideBlanc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싱글 대디 장-필립 ⓒRapideBlanc

또 다른 조합원인 장-필립은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싱글 대디로서, 본인도 성장기에 ADHD가 있었지만,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자리를 얻어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발달 장애가 있는 아들 펠릭스에게 협동조합살이는 편견 없이 대해 주는 친절한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귀한 장소이기도 하다. 장-필립 자신도 앙리-피에르 할아버지를 도와 조합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조합 식구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조합원 식구들은 가끔 소리를 지르고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하는 펠릭스를 편견 없이 따뜻한 표정으로 맞아준다. 

같이 살기 위해 배워야 할 것들

▲ 새로운 조합원 소말리아 난민인 아메드. 화면갈무리
▲ 새로운 조합원 소말리아 난민인 아메드 ⓒRapideBlanc

마지막으로 소개할 조합원은 소말리아 난민인 아메드이다. 영화 후반에 레이첼이 아메드에게 조합원으로서 역할을 분담하는 것에 대해 설명해 주는 장면을 담고 있다. 처음 입주한 세입자들은 준회원으로서 6개월 계약을 하게 되며, 6개월의 준회원 기간 동안 조합원으로서 맡은 역할을 성실하게 하며 공동체의 일원이 될 준비가 되었는지 심사를 받는다.

정회원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더라도 퇴거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니며, 준회원으로서 더 머무르면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의무를 하는 방법을 찾게 된다. 조합원으로서 조합 일을 나눠 맡아 성실히 수행할 의지가 있는지 여부를 심사할 때는 각자의 처지와 능력을 고려한다. 하지만 공동체 생활을 함께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고 판단이 되는 경우 다른 곳에서 살 곳을 찾을 수 있도록 인도한다. 아메드는 협동조합에 머무르면서 일자리를 찾고, 다른 조합원들과 어울리면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가격통제보다 주거권을 우선하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퀘벡의 주택 정책에서 주거권 보장은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퀘벡에서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올리는 폭을 법으로 제한하는 임대료 제한 정책을 두고 '사회주의 정책'이라며 비판하곤 한다. 건물주가 임대료를 인상하고자 할 때에는 세입자에게 그 인상 요구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법 조항을 같이 통보해 주어야 하고, 물가 상승률 등을 감안한 권장 인상률보다 높게 임대료를 인상하거나 세입자를 퇴거시키고자 하는 경우 세입자가 거부하여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주거권 중재재판소(Régie de logement)에서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런 강력한 세입자 보호 정책에도 불구하고 퀘벡의 주택 상황 또한 서서히 악화되어 가고 있으며, 2018년에서 2020년 사이 임대료의 평균 상승률이 11%를 상회하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인간다운 환경에서 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건물주들은 세입자 보호 정책을 회피하기 위해 레노베이션이나 판매용 주택(콘도라고 함)으로의 전환을 하는 추세가 늘어나고 있으며, 이런 상황 속에서 생-루이 주택 협동조합 사람들은, 영화에서 조합원들이 같이 살아가는 모습을 잔잔하게 보여줌으로써 협동조합 주택이 어떻게 사람들의 주거권을 안정시킬 수 있는지를 입증하고 있다. 

지난 7월, 많은 언론이 퀘벡의 주거위기에 관련한 기사를 쏟아냈다. 퀘벡의 주거위기 양상은 한국의 부동산 위기 양상과는 많이 다르다. 전 세계적인 부동산 가격 인상 추세 속에서 퀘벡 부동산 가격 인상 추세선은 다른 나라뿐 아니라 캐나다의 다른 주요 도시와 비교해 보아도 상대적으로 완만한 편이다. 언론이 주목하는 주거위기는 임대용 주택의 공급량 부족에 있다. 최근 캐나다 정부의 주택 정책이 주택 매입 수요자들을 배려하는 '생애 첫 주택 자금 지원제'나 '적정 가격 주택 공급'정책 등 주택의 매입 수요에 더 주목하는 사이에 임대용 주택의 공급량이 부족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퀘벡의 주거권 관련 활동가들은 사회적주택의 공급과 커뮤니티 하우징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해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사회적주택의 도입을 이끌던 여러 조직이 종합 부동산세의 영향을 받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사회적주택은 한국에서도 자가 구입은 먼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중저소득 계층을 위해서 오히려 권장하고 지원해야 할 주택형태인데, 이런 사회적주택들이 종합 부동산세의 영향을 받아 위기에 처하고 있다는 사실은 즉각 보완이 필요한 지점이다. 부동산 관련 세제를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종합부동산세의 강화가 옳은 방향이라는 근거는 차고 넘칠 만큼 있겠지만, 비영리 법인이나 협동조합 형태로 세입자들의 주거권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들에는 획일적 종합부동산세의 적용보다 지원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에서 주거권 보장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회적주택 관련 활동가들에게 이 영화 이야기가 또 다른 응원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아래 제작사의 링크를 통해 영화의 트레일러를 볼 수 있고, 이 영화를 한국에서 상영하고 싶은 기관이 있는 경우, 아래 이메일로 연락하면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제작사: 라피드 블랑(Productions du Rapide Blanc) http://rapideblanc.ca/#/COOP 
배급 담당자: distribution@rapideblanc.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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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환 (퀘벡사회적경제 연구회, HEC 몬트리올 경영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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