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칼럼]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 정부 책임 인정과 주도적 해결책 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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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칼럼]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 정부 책임 인정과 주도적 해결책 담아야
[안전사회시민네트워크(준)·라이프인 공동기획] 강찬호(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대표)
  • 2017.06.11 22:01
  • by 강찬호
가피모와 가습기넷은 광화문 광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기자회견과 퍼포먼스를 진행해왔다. 발언하는 필자.

지난 6월5일은 UN이 정한 세계환경의날이었다. 이날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이하 가피모)와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이하 가습기넷)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와 문제해결에 대한 메시지가 나올 것을 기대했다. 환경의날 행사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할 경우 피해자와 가족들을 초대하고, 그 현장에서 사과 메시지가 나오기를 기대했다. 이러한 기대를 ‘요구’하면서 가피모와 가습기넷(이하 우리들)은 광화문에서 6월5일까지 매일 낮 12시에 일인시위를 진행했다. 그러나 환경의 날 기념식 행사에 문재인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국무총리의 참석과 인사말은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언급 수준으로 지나갔다.

 

우리들은 이날 오전 11시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기자회견과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문재인 대통령 얼굴가면을 준비했다.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가 나올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어떤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주 내용은 피해자들의 편지글이었다. 오전에 기대하던 메시지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들은 예정대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청운동 주민센터에서 청와대 앞 분수대로 가는 길목에 경찰이 막고 있어 30여분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분수대 앞에서 기존에 기자회견이 진행된 적이 없었고, 사전 협의도 진행되지 않아 오해가 발생했다. 조율을 거쳐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이 아닌 문화행사 방식으로 변경해, 편지글을 낭독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가져 간 문재인 대통령 가면을 쓰고 피해자들을 안아 주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많은 언론이 현장을 취재하고 보도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안타깝고 또 자극적인 장면이었다. 우리는 오전 일정을 마치고 오후 2시에는 국회로 이동해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면담을 진행했다. 가습기살균제 국회 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우 대표는 문제해결 의지를 다시 확인해 주었다. 우리들에게는 큰 힘과 의지가 되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 곳에서는 아쉬움과 불안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가 오전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반전이 생겼다. 오후4시경 모 언론사 기자로부터 긴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적정수준의 사과를 검토하고, 피해자 지원 확대와 철저한 재발방지 대책, 피해자 만남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관련 내용이 언론보도로 타전되고 있었다. ‘역시’하는 기대와 안도감이 생겼고, 오전의 불안이 씻겨 나갔다. 이제 본격적인 만남을 준비하고, 구체적인 문제해결에 대해 진도를 나아가야 한다. 우리들의 핵심요구는 이렇다.

 

많은 사람들이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해결국면에 들어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지난해 가해기업 일부가 사과했고, 올해 1월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특별법이 제정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론보도를 접한 이들은 문제가 곧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순리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혹은 피해자 당사자들이 느끼는 것은 그렇지 않다. 너무도 늦고 답답한 상황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2011년8월말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곧 만 6년이 된다. 그동안 정부기준 피해자로 인정받은 이들은 280명 수준이다. 피해 판정을 받은 이들은 980여명이다. 2017년5월말 현재 피해자 접수는 5,615명이고 이 중 사망자 신고는 1,195명이다. 4,500명이 넘는 피해자들이 피해 판정을 받고 있거나 대기 중인 상태이다. 현재까지 피해판정은 폐 손상 기준만 적용되고 있다. 다양한 피해자들이 다양한 건강피해를 호소하고 있음에도 피해구제 작업은 더디기만 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정부의 사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사과하고 책임을 지고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이렇게 더디게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MB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교통사고 취급했다. 가해기업과 당사자 문제로 설정했고, 정부는 조력자 역할로 국한했다. 매우 협소한 기준으로 인정된 피해자들에 대해서 구제급여를 정부예산으로 지급하고, 그 지급액을 해당 기업에게 ‘구상권’으로 청구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정부가 가해기업에 대해 소송을 하고 피해자에게 재정에서 지원했던 구제급여금을 다시 원상회복해놔야 하니, 피해판정 기준이 엄격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정부의 책임이 포함돼 있지 않다. 피해자들의 사정이 안타깝기 때문에 ‘생색내기식’으로 돕는 태도였다. 피해자를 찾거나, 판정기준을 확대하고 판정작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이유가 없거나 적었던 것이다. 소걸음 또는 거북이걸음으로 일이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전임 환경부 장관이 국회에 와서 뻔뻔한 발언을 거침없이 했던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피해자를 지원할 근거도 없는데, 어렵게 만들어서 하고 있는데, 국회에서 ‘감 내놔라, 콩 내놔라’ 하니 못 마땅했을 것이다. 결국 역대 정부의 접근은 ‘최소주의’ 접근이었고, 설령 애를 썼다 해도 ‘반쪽자리’에 지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광화문 촛불민심으로 선택된 정부이다.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약을 한 정부이고, 국민들의 기대가 매우 높다. 후보시절 가습기살균제 문제에 대해 사과 할 수 있다고 약속했었다. 그리고 지난 6월5일 약속을 이행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언했다. 문제는 내용이다. ‘적정수준의 사과’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피해자와 만남은 어떤 수준에서 마련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도의적 사과로는 문제를 더 어렵게 할 것이다. 반쪽짜리로 진행된 지난 6년을 바로잡을 수 있는 사과여야 한다. 다시 첫 단추를 제대로 끼워야 한다. 그것은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는 사과여야 하고, 향후 문제해결을 정부가 주도하겠다는 약속과 로드맵이 포함된 사과여야 한다. 늦어도 너무 늦은 정부의 대처를 사과하면서, 최선을 다해 문제해결과 재발방지에 나서는 주도적인 사과여야 한다. 가해기업에 대한 구상권 수준을 넘어서, 정부가 책임질 부분을 책임지겠다고 하는 선언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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