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최종에너지 소비 중 건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61%. 도시의 기후위기 대응 정책 중 핵심은 건물 부분의 에너지 경감이다. 기후위기 대응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주거권에 대한 누구나 공평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주거공동체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이 주거 탄소발자국 저감과 자원절약과 순환에 기여하는 리필스테이션을 시도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주거 공간 내 리필스테이션 '틈새구역'이 열리고 있는 '달팽이집 연희'를 방문했다.
이제 주거 문제는 환경, 기후위기, 우리세대의 문제도 포함된다. 주거권이 일정한 곳에 머무는 것을 넘어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인 만큼 더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피부로 느껴지는 기후위기 속에서 제로웨이스트와 자원 순환을 위한 배출 등 탄소 중립을 실천도 주거권에 포함되고 있다.
올해 10주년을 맞이하는 민달팽이협동조합은 청년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비영리 주거모델 '달팽이집'을 공급하고, 안정된 주거 마련을 위해 다양한 실험해 왔다. 현재 16개의 달팽이집에 약 300명이 거주하고 약 500명이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틈새구역'은 달팽이집에 사는 것만으로도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제로웨이스트 샵과 세분화된 분리배출 수거장을 결합한 프로젝트로 서울특별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사회문제해결신규전략모델지원'사업을 통해 기후위기 문제를 사회적경제 방식으로 해결하며 순환경제 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다.
'틈새구역'의 오거나이저 정소리(빅솔) 씨는 "달팽이집의 장점은 커뮤니티"라며 "달팽이집에서 같이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함께 관심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틈새구역의 슬로건은 '물건을 잘 버리고(throw away), 물건을 잘 산다(buy) 그리고 달팽이 집에 잘 산다(live)'로 달팽이집에서 살면서 지구와 나에게 해를 덜 끼치는 물건을 사서 잘 사용하고, 잘 버려서 순환될 수 있게 하자는 것이 가장 큰 취지다.
최근 리필스테이션과 제로웨이스트샵이 늘어나고 있지만, 생활 반경에 있지 않으면 필요한 물건을 제때 사기 어렵다. 틈새구역은 조합원의 자치 운영 시스템을 통해 100명의 달팽이 리필 네트워크, 3명의 오거나이저가 리필스테이션 운영 및 매뉴얼 설계하고, 조합원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달팽이집의 원-마일(one-mile) 제로웨이스트 거점을 만든다. 시작에 앞서 13개의 달팽이집 반상회에서 랜선설명회을, 알맹상점 고금숙 공동대표를 초청해 리필스테이션 온라인 특강 '지구력, 주거력, 살림력'을 개최해 제로웨이스트샵과 리필스테이션을 알렸다.
틈새구역은 달팽이집 연희, 중곡, 강북, 답십리, 응암에서 운영되었고, 강북, 답십리, 응암의 경우 그린 오큐파이(@greenoccupy)와 함께 팝업으로 1일 제로웨이스트샵을 열었다. 달팽이집의 상황과 입주민의 성향이 다양한 만큼 틈새구역에 대한 반응도 다양했다고 한다. 기자가 방문한 달팽이집 연희는 입주조합원 이외에도 연희동 주민자치회의 위원들도 방문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이미 솔드아웃된 제품도 꽤 있었다. 틈새구역의 추천 아이템 Best5는 ▲과탄산소다 ▲대나무칫솔&고체치약 ▲수세미 ▲소창행주 ▲분말 세탁세제 등 이었다.
달팽이집 연희에 사는 유초원 씨는 퇴근하자마자 종이팩과 멸균팩을 분리배출하고, 틈새구역에 방문해 천연고무장갑을 구매하고 있었다. 틈새구역을 이용에 대해 초원 씨는 "제로웨스트샵을 방문하려면 가기 전에 큰 결심이 필요하다. 날을 정하고, 전날 밤 구매할 제품을 담을 용기를 씻고 말려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주거 공간에 제로웨이스샵이 조성되니, 제로웨이스트를 노력해야 할 수 있는게 아니라 내 집에서 자연스럽게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면서 실천할 수 있어 좋았다"라고 전했다.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의 시설관리 담당 직원이자 달팽이집 연희 입주민이기도 홍찬 씨는 평소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분리배출을 열심히 해왔다고 한다. 제로웨이스트는 같이 사는 룸메이트가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관심이 있던 터라, '틈새구역'에서 처음으로 린스바와 스텐 빨대, 비누망을 구매했다. 사용해 보니 제품도 괜찮았고, 기후위기에 대한 죄책감이 조금은 덜어지는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틈새구역이 열린 달팽이집마다 운영자와 달팽이집의 입주민과 소통을 돕는 '리필반장'이 있다. 달팽이집 연희의 리필반장은 신소연 씨로 마음챙김명상을 통해 내가 타인과 지구, 세상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기후위기와 비건,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소연 씨는 "제로웨이스트샵이 열리기를 기다렸던 입주민이 꽤 많았다"라며 직접 틈새구역을 홍보하고,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 분들도 있었다고 공유했다.
틈새구역의 수익금은 다시 조합원에게 혜택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달팽이집의 에너지 절약을 위해 태양광 패널, 창호 단열재에 투자될 계획이라고 한다. 이렇게 새로운 주거공동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달팽이집은 앞으로 어떤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틈새구역의 오거나이저 안지원(꼬막) 씨는 개인적으로 버려지는 음식물을 쓰레기가 아닌 퇴비로 만들어 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실제 '그린달팽이'의 그린워크숍에서 '달팽이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with반려균)'로 진행했다. 그린달팽이는 '주거'와 '환경'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주거공동체의 차원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모색하고 실행해보자'는 취지로 모인 조합원 모임이다.
지원 씨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 잘 알게 되면 살면서 생기는 사소한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만큼 커뮤니티가 중요한 것 같다"라며 달팽이집의 틈새구역을 시작으로 커뮤니티를 통해 삶을 개선하고, 주거 공간에 필요한 청소, 방역, 소비하고 버리는 부분까지 서비스로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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