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뒤에 깨달은 동네서점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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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뒤에 깨달은 동네서점의 소중함
  • 2021.09.19 12:00
  • by 정화령 기자

로라 J.밀러는 저서 '서점 vs 서점'에서 소비자가 모든 분야에서 할인을 추구하면서 독립서점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책의 지식이나 가치보다 가격 할인이 우선됐다고 분석한다. 우리나라에서 동네서점이 자취를 감춘 이유도 온라인 서점과의 가격 경쟁에서 불리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이 현상은 특히 코로나19 이후 더 가속화됐다. 많은 이들이 동네서점의 소멸을 애도하는 건 단순히 추억할 장소가 사라져서는 아닐 것이다. 서점은 책을 매개로 사람들을 연결하는 징검다리이다. 그리고 어딘가에서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갈 수 있는 유일한 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지역의 문화공간이 이대로 사라지지 않도록 여러 지혜와 대안이 필요하다.


■ 25년의 역사를 뒤로 한 불광문고

지난 5일 서울시 은평구에 있는 불광문고가 25년간 영업을 마치고 폐점했다. 정순구 역사비평사 대표는 SNS(Social Network Services/Sites)를 통해 '지역독자를 넉넉한 품으로 안아주고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출판사와 출판문화산업 진흥정책의 무관심 속에 고독사했다'고 표현했다. 대형서점도 연이어 부도를 내는 현실에서 불광문고의 최낙범 사장은 무리하게 운영을 이어가는 대신에 거래처 대금과 직원들 퇴직금까지 잘 정산하고 '존엄사'를 택했다고 이야기했다.
폐점이 알려진 후 지난 8월 19일 은평구청 홈페이지에 '지역서점을 지켜주세요'라는 제목의 열린청원이 올라왔다. 구청장 답변 기준인 500명을 훌쩍 넘어 현재까지 1,650명이 청원을 했고, 지역 커뮤니티와 SNS로도 공유되어 민간과 공공에서 폐점을 막을 방도를 함께 고민했지만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은평구청 홈페이지
ⓒ은평구청 홈페이지

많은 사람이 아쉬워하는 이유가 단지 지역의 큰 서점이 문을 닫기 때문은 아니다. 불광문고는 다양한 문화활동으로 그간 지역과 활발히 소통해왔다. 특히 미취학부터 저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 읽어주기 활동은 16년 동안 이어졌는데, 이선미 어린이도서연구회 은평지회장은 "책만 파는 곳이 아니라 작은 도서관이자 지역의 문화 활동을 열어준 장소"라고 했다. 아이들이 책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고 고마움을 표한 부모님과 성인이 돼서 찾아와 반갑게 인사하는 지역 청년들의 사례를 전하며 "아이들이 평생 독자가 되도록, 그림책에서 끝나지 않고 독서라는 길이 이어질 수 있게 열어준 곳"이라고 그 의미를 되짚었다. 또한,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지역아동센터, 복지관, 다문화가정 등에 책 보내기 사업을 진행할 때 불광문고에서도 후원함을 마련하여 함께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이제 영업을 마무리하고 공간을 비웠지만 불광문고는 새로운 도약을 꿈꾼다. 폐점을 결정하기 전 직원들이 인수해서 운영하고자 했지만, 임대료 인상 등으로 상황이 여의찮았고 사기업이라 외부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서점을 살리기 위해 지역주민과 시민단체 외 다양한 조직에서 관심을 가지고 노력 중이다. 장수련 점장은 "가까운 곳에서 책을 접하고 누릴 서점다운 서점은 남아있어야 한다"고 운영에 의지를 비쳤다. "처음에는 협동조합으로 운영하면 어떠냐는 제안을 많이 받았는데, 순간순간 결정해야 하는 일이 많은 중대형 서점의 특성상 의사결정 과정이 긴 협동조합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이 정도 규모의 협동조합 서점이 없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며 아직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지만 사회적 기업으로 추진하는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 사라지는 동네서점, 왜?

서점이 사라지는 가장 큰 이유는 주로 온라인으로 책을 구매하기 때문이다. 도서정가제에서 온라인 서점은 15% 할인을 허용하는데, 포인트나 쿠폰할인 등을 더하면 최대 4~50%까지 저렴한 가격에 책 구매가 가능하다. 게다가 일정 금액 이상은 무료배송으로 팬데믹 이후 매출이 급성장했다. 
규모에 따라 서점 간 공급률(정가 대비 공급 단가)이 다른 점도 이유 중 하나다. 대형 온라인 서점은 출판사로부터 대량 구매하기에 공급률이 낮아 판매가를 낮출 수가 있다. 오프라인에서도 도서정가제로 판매가는 동일하지만 서점 규모별 공급률 차이가 있어서 마진이 다르다. 출판, 유통, 서점계의 입장이 달라 바로 대안을 내놓기 어려운 지점이지만, 공급률의 차이가 지역서점의 설 자리를 점점 사라지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어려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지자체도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기도와 광주광역시, 전주시에서는 학교나 도서관에서 필요한 책은 지역 서점에서 구매하는 '지역서점 인증제도'를 앞서 시행해왔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작년에 전국 지자체 및 교육청에 인증제 도입을 권고했다. 대전은 지역화폐 '온통대전'으로 지역 서점에서 책을 구입할 경우 10% 추가 캐시백을 지급하는 지역서점 활성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지원으로 코로나 이후 급격하게 어려워진 동네서점이 살짝 숨통을 텄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보기는 어렵다. 
 

ⓒ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다시 지역 커뮤니티 공간으로 꽃피기를 꿈꾸는 인생서점협동조합

이렇게 사라져가는 서점의 위기에 지역에서 고유한 개성을 발휘하며 명맥을 이어가는 서점들이 있다. 

의정부 용현동에 있는 인생서점협동조합(이하 인생서점)은 사람-지역-책을 연결해 지역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자리잡는 걸 목표로 2016년 설립했다. 인문학책방·낭독회·저자강연·상영회 등 다양한 문화행사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공간이었지만 코로나19 이후에 공간 이용이 어려워지면서 운영에도 어려움이 생겼다. 회비와 공간이용료, 도서판매 수익으로 직원을 고용하고 운영비를 충당했는데 현재는 조합원이 돌아가며 자원봉사로 운영하는 중이다. 수익을 내기 위해 사업을 시작한 건 아니지만 지속 가능한 운영을 하기 위해 상황이 나아지기를 고민하고 있다. 
인생서점 이철진 이사장은 "이용자분들로부터 소중한 공간으로 여겨져서 서점을 접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속내를 이야기했다. 작은 서점은 출판사와 직거래가 힘들어 유통업체를 중간에 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책 한 권당 마진은 25% 내외라고 한다. 공공기관에서 책을 소비해 주기는 하지만 입찰을 통해 최저가로 공급해야 하므로 그마저도 수월하지는 않은 상황이다. 
이 이사장은 "동네서점이 지역의 작은도서관으로 문화와 소통의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 단순히 가까이에서 책을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서점이 지역의 공동체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지금은 어렵지만, 다시 책으로 소통하고 지역 문화예술인이 공연하며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복원하기를 꿈꾸고 있다. 
 

▲ 인생서점에서 진행한 문화행사들. ⓒ인생서점 블로그
▲ 인생서점에서 진행한 문화행사들. ⓒ인생서점 블로그

■ 협동이 협동을 낳는 동네책방의 단단한 마을 네트워크

동네책방00(공공)협동조합(이하 동네책방)은 대구광역시 달서구에 있는 마을기업이다. 생협 독서동아리 모임에서 책을 좋아하는 일곱 명의 사람이 만나 협동조합 공부를 하고 서점까지 내게 되었다고 한다. 책 판매로는 서점 운영비 충당이 어려울 것 같아 오전에는 지역 단체 '와룡배움터'의 공간으로, 오후에는 책방으로 운영 중인데 직원 없이 조합원들이 돌아가며 지킴이 역할을 한다. 
유갑순 이사장은 여성이나 환경, 마을공동체, 협동조합 관련 도서들을 주로 갖춰 놓고 있어서 관심 있는 분들이 책을 고르기 수월하다는 점을 동네책방의 장점으로 꼽았다. 마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교류가 깊어 관련 서적을 주문받아 판매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그리고 수량이 적어 일반 출판사에서는 발행해주지 않는 지역 단체나 기관의 자료집 등을 출판하는 출판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동네책방 역시 코로나19 이후 독서모임이나 강좌 등 활발했던 행사를 진행하지 못하면서 작년에는 두 달 동안 문을 닫기도 했다. 하지만 "그동안 지역의 7~8개 단체가 모인 ‘마을넷’에서 주변 어려운 분들께 꾸러미를 지원하는 활동을 하는 등 지역과 교류가 멀어진 게 아니라 오히려 마음은 이어져 있음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유 이사장은 동네책방은 이제 주민들의 공간이 되었기에 이 소중한 공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제도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문체부 지원사업으로 작가와의 대화를 진행하면 책 판매로 수익을 내라고 하는데, 행사에만 참석하고 책은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 공간대여비나 운영비도 일부 책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뀌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구체적인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대구마을기업 홈페이지
ⓒ대구마을기업 홈페이지

마지막으로 동네책방을 시작하도록 영감을 얻었다는 책, 백창화, 김병록의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의 한 구절을 소개하고 싶다. '아무리 크고 훌륭한 서점이라도 내가 갈 수 없는 곳에 있는 서점은 내 삶을 온전히 흔들어 놓을 수 없다. 가까이에서 나와 같은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고 내 주변의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책으로 소통하는, 내가 지나온 시간과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공간, 그 속에는 집밥처럼 소박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있다. 그 안에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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