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되는 연구 ⑦] 사람의 향기가 보이는 재무보고를 상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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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되는 연구 ⑦] 사람의 향기가 보이는 재무보고를 상상해보자
  • 2021.05.28 09:00
  • by 최은주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소장)

사회적경제를 주제로 한 논문은 올해 2월 기준으로 '사회적기업'이 들어간 논문 2,280건, '협동조합' 593건, '사회혁신' 278건으로 검색된다. 사회적경제 영역의 실천 현장과 연구 현장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지만, 연구 결과물은 소수의 사람에게만 읽히는 것이 현실. 사회적 경제 연구자들과 왜 이러한 연구를 했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조금은 쉬운 언어로 전달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사회적 경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중요한 쟁점에 대한 논의를 확산해 사회적 경제 연구와 현장의 접점을 넓혀 서로의 지식, 지혜를 교환하는 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편집자 주]   

 

"극빈국 고사리손 착취하는 축구공"

월드컵 열기로 떠들썩하던 2002년, 세상을 충격에 빠뜨렸던 이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유명브랜드 기업이 고사리손에 푼돈을 쥐여주고 만든 축구공을 그 돈의 30배 이상 비싼 가격으로 판매하여 소비자들의 거센 불매운동을 불러일으켰던 사건.

역사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 보면, 영국 뉴래너크에 공장을 세운 로버트 오언이 1816년 공장 안에 어린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만들었을 당시에 영국 사회에서는 10살도 안 된 아이들까지 공장에서 14시간 이상 부리고도 임금은 고작 어른의 10분의 1밖에 주지 않았다. 1800년대 전반기에 여러 차례에 걸친 공장법 개정에서 아동노동에 대한 사회적 각성이 높아졌고 법의 속도보다 현실이 약간 뒤처지기는 했지만, 아동착취는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하지만 2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세상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형편없는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축구공이 일깨워주었다.

축구공을 팔고 있는 유명 기업들의 재무보고서에서 고사리손에게 지급한 축구공 바느질삯 1~2달러에는 어떤 의미가 부여되어 있을까? 그중 한 기업은 5년 전부터 매출액이 꾸준히 증가해서 2002년에 8조6,600억 원을, 그리고 같은 해 순이익 3,040억 원을 기록한다. 매출총이익률이 43.2%이므로 매출원가는 약 4조9천억 원이 되겠다. 고사리손에게 지급했던 대가는 바로 이 4조9천억 원 안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매출액에서 시작해서 순이익으로 끝나는 손익계산서에서 바느질삯의 의미를 찾는 것은 축구장에서 바늘찾기보다 더 어렵다. 기업이 제품을 만들고 판매해서 이익을 얻는 영업활동 과정에는 수많은 사람이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 참여하게 되지만 지금 사용되고 있는 손익계산서를 아무리 확대해서 가까이 들여다보아도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하기가 어려운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이 사용하는 손익계산서는 매출액에서 시작해서 4가지의 이익, 즉 매출총이익, 영업이익, 경상이익,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당기)순이익을 계산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포괄손익은 제외한다). 첫 단계인 매출총이익을 구하기 위해서 매입에 필요한 모든 비용이 배제된다.

영업이익을 구하기 위해서는 제품을 판매하고 관리하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이 제외되어야 한다. 경상이익은 본질적인 영업활동과 관계없는 활동으로 인해 발생한 수익과 비용을 더하고 뺀 후에 도출되는 이익이고 여기서 법인세를 제하면 (당기)순이익이 남게 된다. 순이익의 소유는 기업의 소유자인 주주에게 귀속되므로 결국 손익계산서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당기에 영업활동을 통해 주주의 이익이 얼마나 증감했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관한 것이다. 그 사이에 있는 모든 '비용'은 주주 이익을 감소시킨 이유로서의 의미를 가질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즈’(1936)의 한 장면. 노동자가 마치 공장 기계의 일부처럼 소모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즈’(1936)의 한 장면. 노동자가 마치 공장 기계의 일부처럼 소모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비용' 뒤에 숨겨진 사람의 향기를 드러낼 수 있도록 회계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없을까? 기존의 손익계산서에 있던 4가지 이익 사이사이에서 사람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결승선에 서 있는 주주를 향해 달리기를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자. 그러면 기업에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이해관계자라는 용어는 1960년대에 등장했지만, 이 개념을 경영전략에 접목한 사람은 R. Freeman이다. 주식회사가 보편적인 기업의 소유운영형태인 사회에서는 기업의 주인은 주주이고 기업의 의사결정에서 주주가 중요하고도 유일한 이해관계자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Freeman은 주주 이외에도 다양한 개인이나 집단이 조직의 목표달성에 영향을 줄 수 있거나 그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고 이들이 곧 기업의 이해관계자라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직원은 말할 것도 없고 원재료의 공급자나 제품의 소비자 등 직간접적으로 기업과 관계를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아가 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 이해관계자이론은 기업의 이윤이 기업활동의 결과일 뿐이지 유일한 목표라고 할 수는 없으며 주주 외의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기업의 가치창출과정에 협업하는 존재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이런 관점에 서보면 현재의 손익계산서로는 기업의 성과를 보여주기에 충분하지 않다. 기업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협업으로 가치를 창출하므로 영업활동 과정에서 기업이 어떤 가치를 창출했고 그 대가로 각 이해관계자에게 어떻게 이익이 분배되었는가에 대한 정보가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공유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필자는 "부가가치보고서"를 논의의 출발점으로 제시하였다("협동조합 회계보고를 위한 부가가치보고서의 유용성", 『한국협동조합연구』, 37(1), 2019). 부가가치보고서는 1975년 영국 회계기준운영위원회에 제출된 The Corporate Report에서 사용된 기업의 사업결과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 협동조합이나 비영리조직 등 어떤 형태의 조직이든 법적 권리 유무와 관계없이 재무적, 비재무적 성격의 모든 관계에 대한 책임을 진다고 보고, 이들 이해관계자에게 사업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 내용과 형식으로 재무보고를 제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기업은 지역사회의 자원을 사용하기 때문에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고, 노동자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며, 환경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환경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The Corporate Report가 제안하는 이해관계자를 고려한 부가가치보고서는 사업결과 창출된 부가가치가 누구에게, 어떤 형태로, 얼마씩 분배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보고서가 우리 사회적경제에 어떻게 적용되고 활용되며 변형될 수 있을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사회적경제 기업 중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를 뿌리로 하여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만들어내고자 힘쓰고 있고, 그 성과를 이해관계자들과 공유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으며, 새로운 형태의 재무보고를 만들어보려는 열망을 가진 기업들이 많다. 그래서 섣부른 생각이지만 용기 내어 제안해본다. 사람의 향기가 보이는 재무보고 방식을 상상해보고 구체화하자!

※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한국협동조합연구에 게재된 "협동조합 회계보고를 위한 부가가치보고서의 유용성" 논문을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46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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