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뉴노멀①] 행정역할의 재구성, 지역활성화는 민관협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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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의 뉴노멀①] 행정역할의 재구성, 지역활성화는 민관협치로
  • 2021.03.26 16:29
  • by 전영수 교수(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전 국토에서 수도권 면적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2%다. 이 좁은 지역에 전체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고 있다. 서울에서는 주택난 등 각종 도시문제로 과밀화 해소를 이야기할 때 수도권 외 지역에서는 인구 감소로 인한 소멸 위기를 현실로 맞닥뜨리고 있다. 이러한 지역 격차는 인구문제만이 아니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문제다. 수도권에 자원과 인프라가 쏠리니 사람들이 몰리고, 사람이 몰리니 또 자원이 쏠린다. 이 과정에서 경제는 물론 복지, 의료, 교육, 문화 등 다양한 부문에서 격차가 생긴다. 이와 같은 지역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오랜 시간 균형발전을 논의하고 정책화해왔지만 여전히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역의 삶은 불균형하다. 이제는 지역활성화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때다. 지역활성화의 '뉴노멀'이 필요하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교수가 지역활성화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한 제언을 전한다. [편집자 주]

 

▲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교수. 본인 제공.
▲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교수. 본인 제공.

"정부예산이 적을수록, 행정관료가 빠질수록 지역활성화는 성공한다."

꽤 과격한 가설이지만, 대놓고 부인하기도 어려운 논리다. 지역활성화와 관련한 현장조사 때 만나본 이해관계자 상당수의 속내도 비슷하다. 정도·감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예산 투입과 관료주도에 관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뒤집어 말하자면 그간의 경험상 돈과 행정이 지역활성화의 전부였다는 말과 같다. 예산을 넣고 행정이 주도하는 지역활성화가 대부분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성과는 별로였다. 성과는커녕 부담으로까지 남는다. 때문에 정부예산·행정관료의 핵심 체계가 지역행복의 도약대가 아닌 걸림돌로 의심받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오죽하면 행정이 나설수록 실패한다는 말까지 들릴까 싶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지역을 되살릴 예산·행정으로의 회귀가 그만큼 시급한 시대의제이기도 하다. 예산·관료를 폄하해서는 곤란하다. 도리어 행정발 금전·인적자원만큼 지역활성화에 중요하고 시급한 변수도 없다. 지역현장의 의심·낙담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성과창출에 잘 연결되도록 활용하는 전략 수립이 먼저다. 특히 지역활성화란 게 주민행복을 전제한 공익적 공공사업이라는 점에서 예산·관료의 투입은 절대적이고 자연스럽다. 많은 경우 성공사업을 위한 첫발을 돕는 마중물로 빼어난 역할을 수행한다. 부작용을 줄이도록 노력하는 것이 관건이며 행정에의 참여와 감시, 그리고 조정을 통해 지역사회 재건 작업을 위한 호재로 품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돈이든 사람이든 행정발 자원결합이 지역활성화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 행정은 광범위하며 파워풀하다. 지자체는 많은 능력과 경험 및 권한을 지닌 지역사회 거버넌스의 결정권자이자 막강한 이해당사자다. 더욱이 사업실행 때 결부될 수밖에 없는 각종 법률에 밝을뿐더러 규제 상황에도 정통하기에 사실상 지역활성화 프로젝트의 핵심 주체일 수밖에 없다. 실제 공공예산과 관료능력이 잘 발휘되면 안 될 것도 되게 하는 놀라운 마법이 펼쳐진다. 역으로 행정 존재가 지역활성화의 순풍을 막고 역풍을 부르는 재앙도 왕왕 불러온다.

특히 한국은 과거 행정파워가 강력했다. 한정 재원으로 기초생존을 넘어 국가발전을 이뤄야 할 미션을 묵묵히, 그러나 알차게 수행해온 관료사회의 덕을 톡톡히 봤다. 한국 관료사회는 공복(公僕)으로서의 애국심과 사명감을 토대로 국부창출을 위한 지난한 과제를 효율적으로 달성해온 역사성을 갖는다. 단기간의 압축적 고도성장을 만든 주역 중 하나로 관료주의를 꼽는 이유다. 1993년 세계은행이 시장기능을 우선하는 철학에서 벗어나 '동아시아의 기적: 경제성장과 공적정책'(The East Asian Miracle : Economic Growth and Public Policy)이란 보고서를 통해 한국 등 4개국의 성공 비결로 유능한 관료기구의 효율적 시장개입을 호평했을 정도다. 관료집단이 국가발전에 필요한 다양한 기초조건을 축적시키며 경제정책에 개입한 게 주효했다는 의미다. 국가의 시장개입을 경계하는 기관에서 관료주의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꽤 이례적인 분석이었다. 물론 정경유착과 양극화를 이유로, 패거리의 야합성과에 불과하다는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라는 반론도 있었다. 지역활성화도 마찬가지로, 그 부작용을 차치한다면 관료의 사업개입이 낭비적 지역경쟁을 해소하고 국내적 분업구조를 완성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

관료주의 넘어선 새로운 지역활성화 모델 필요
행정 역할 변화의 핵심은 '내려놓기'와 '거리두기'

다만 시대가 변했다. 과거에 통했더라도 지금 보기에 의아하다면 면밀히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관료주의적 정책 개입이 시장조정을 통한 효과창출에 맞서 악순환적인 부작용을 낳는다면 냉정하게 실익결과를 분석해봐야 한다. 필요하면 조정하고 혁신하여 달라진 몸에 어울리는 옷을 만들자는 의미다. 시장실패만큼 매서운 부메랑인 정부실패를 인정하고 적절한 개혁방안을 지역활성화에도 적용하는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예산부담, 규제경직 등 관료주의와 맞물린 정부실패를 이겨낼 새로운 지역활성화 모델을 고민하자는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설명력을 잃은 과거 방식의 개념·경로에 함몰된 지역개발 사업현장은 아직도 많다. 행정이 세금으로 길을 닦고 건물을 지으면 저절로 지역활성화가 될 것이라고 믿는 신봉세력도 적잖다. 더는 곤란하다. 급박해진 시대변화를 반영한 지역활성화만이 행정도 살고 지역도 사는 유일무이한 방책이다. 고무적이게도 이는 약간의 변화와 수정만으로 충분히 달성된다. 제로섬(Zero-Sum)이 아닌 플러스섬(Plus-Sum)이 지역활성화의 기본셈법인 까닭이다.

그렇다면 행정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 실효적인 지역활성화를 위한 행정 역할은 어떻게 규정되고 어디에 위치해야 할까. 핵심은 '내려놓기'와 '거리두기'다. 각각의 이해 층위를 대표하는 최대한의 전원참여를 전제로 하여, 지역주민에게 그동안 행정이 맡아온 역할과 기능을 넘겨주고 옮겨주는 방식이 좋다. 물론 행정이 빠지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빠질 수도 없다. 예산·사업의 집행자로서 행정의 기능은 분명히 존재한다. 프로가 축적한 경쟁력을 평가절하할 연유는 없다. 선진국에서는 무게중심을 내려놓되 지역주민과 함께 논의·결정하는 '아래로부터의 지역활성화'를 유도하는 방식이 자주 확인된다. 지역활성화 사업의 기획부터 투명하고 열린 채널을 통해 지역민심을 최대한 담아내는 식이다. 사업 결정도 협의·설득을 통한 숙의를 거치는, 말 그대로의 민관협치(協治)를 받아들이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행정편의에 기초한 무사안일의 관성을 벗어버리고, 힘들고 품이 더 들더라도 권력·권위의 하방(下方) 조치를 통해 밀실에서 광장으로 지역활성화를 공론화하는 형태다.

물론 민관협치라는 말이 듣기에는 아름답지만 현재로선 구름 위의 이슈다. 협치실험이 늘고는 있으나, 아직은 손에 잘 잡히지 않고 제한적이다. 그나마 해당 사례 중 상당수는 우왕좌왕에 중구난방인 경우가 적잖다. 이렇다 할 모범샘플은 찾기 어렵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초기단계에서 혼란과 갈등은 자연스럽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실현해내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와 계속된 실천의 확보다. 시행착오가 발목을 잡아서는 곤란하다. 1995년 민선(직선)제로 기초단체장을 뽑으며 장기간 자치분권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치성과가 적다는 점도 고려대상이다. 예산과 권한의 중앙집중은 애초의 법률취지(지방자치법)와 달리 '내려놓기'와 '거리두기'를 실천하지 않은 결과다. 7대 3의 행정사무, 8대 2의 세제배분 등을 볼 때 프로집단의 분권협치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 주민과의 협치실현은 허울뿐인 슬로건에 그칠 공산이 크다. 안타깝되 엄중한 민관협치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지역활성화를 위한 민관협치는 방치하거나 축소할 명분과 실리 모두 빈약하다. 지역이 되살아나면 주민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지자체로서도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어 '플러스섬'이 된다. '사업성공→지역활기→경기회복→소득증대→세수확대→기반강화→직주(職住)근접 실현→인구유지(증가)'의 논리구조 덕분이다. 지역이 쇠락하는데 행정이 버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최근 기초지자체 간 인수합병(M&A)처럼 지역소멸 후에도 정년보장은 가능할지 모르나, 갈수록 내리막길인 근무환경은 불을 보듯 뻔하다. 선거구에 민감한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인구하하선을 맞추고자 두문불출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지역이 건강하고 활기찰 때 얻어지는 편익이 더 크고 넓을 수밖에 없다.

지역활성화는 모두에게 좋다. 그리고 민관협치를 통한 방식이 그 설명력을 더 높여준다. 주민편익과 대치될 것이라 우려하는 토호 이익조차 뜯어보면 민관협치가 위협일 수만은 없다. 당장 독점이익은 줄어들지 몰라도 길게는 지역사회에 구축된 순환경제를 통해 사업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관건은 '내려놓기'와 '거리두기'의 실천뿐이다. 거대한 제도변경은 필요 없다. 지자체발 행정당국의 결정이면 충분하다. 모든 걸 다하겠다는 관성에서 벗어나 지역주민과 역할을 나누고 함께 정하겠다는 결심만 서면 민관협치는 절반에 닿은 것과 같다. 가장 어려운 터널을 통과한 셈이다. 행정은 불편해도 사업은 곧 성과를 낸다. 실제 행정의 권력 하방과 주민의 사업참여로 기획·실현된 지역활성화가 협치성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협치성과는 신뢰자본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보너스 가치까지 낳는다. 무형의 협치경험이 지역의 정성가치로 체화되기 때문이다.

이제 남는 건 지방정부와 함께 민관협치의 한 축을 맡을 지역주민의 역량 문제다. 행정이 힘을 내려놓고 사업에서 거리까지 뒀는데 이를 받아줄 협치상대가 그만큼의 의지와 능력이 없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지역에서 주민은 배제·소외되어 왔기에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다. 혹은 지역 착근적인 일부 시민이 틈새를 장악하며 새로운 이해집단으로 대표성을 쥐락펴락할 여지도 있다. 그래서 최대한의 전원참가형 주민결합이 중요해진다. 이런 편성·조정기능은 행정이 해주어야 한다. 중립·객관적인 대표성을 보유한 주민을 발굴·설득하여 협치 완성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주민참여가 불협화음으로 변질될 수 있다. 배가 산으로 가듯 새로운 시행착오로 과도한 수업료를 지불할 우려가 있다. 때문에 주민을 찾고 역량을 키워 지역활성화의 모범적인 혁신주체가 되도록 할 행정의 역할이 강조된다. 다만 단번에 대등한 협치능력은 형성되지 않는다. 긴 호흡과 면밀한 준비가 관민협치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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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교수(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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