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쿱스쿨 ③] 서울 도심 속 꼬마농부들 자라는 '천왕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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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쿱스쿨 ③] 서울 도심 속 꼬마농부들 자라는 '천왕초'
함께배움사회적협동조합 김명숙 이사장 인터뷰
  • 2021.03.21 10:00
  • by 노윤정 기자
08:23

2012년 생겨나기 시작한 학교협동조합이 어느덧 전국에 약 130여 개가 운영되고 있다. 주로 매점을 중심으로 진행된 활동들은 이제 방과후학교, 창업, 기본소득, 기후위기 대응 등 다양한 시도로 확장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예전과 조금은 다른 풍경의 새 학년 새 학기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주민의 참여로 나눔의 교육을 실천하고 학교와 지역사회를 연결해 교육경제공동체로서 성장하고 있는 학교협동조합을 라이프인에서 소개한다. [편집자 주]

 

▲ 함께배움사회적협동조합이 가꾸고 있는 천왕산자락의 텃밭. 흙을 고르고 거름을 주며 본격적인 한 해 농사를 준비하고 있다. ⓒ라이프인
▲ 함께배움사회적협동조합이 가꾸고 있는 천왕산자락의 텃밭. 흙을 고르고 거름을 주며 본격적인 한 해 농사를 준비하고 있다. ⓒ라이프인

천왕산자락에 자리한 마을 공원. 그곳에는 도시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텃논이 하나 있다. 그리고 차 소리 대신 새소리를 들으며 산자락 길을 따라 5분 정도 걷다 보면 상추와 파, 양파 등의 작물이 막 싹을 틔우고 있는 텃밭이 모습을 드러낸다. 산나무에 앉아 지저귀는 새소리와 풀 내음이 담긴 바람을 맞으면서 텃밭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라는 서울임을 잠시 잊게 된다.

"아이들과 이렇게 산길을 다니면서 식물들 구경도 하고 '이 풀 이름은 무엇일까?' 질문도 하면서 생태공부를 한다. 공부라고 할 수도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익히는 것이다."

이곳 텃밭과 텃논을 가꾸고 있는 이들은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천왕초등학교의 학교협동조합 '함께배움사회적협동조합'(이하 함께배움)의 조합원들이다. 김명숙 이사장은 조합원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도심 속 농지를 안내하며, 텃논에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텃밭에서 자라는 작물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대가 올라온 한 작물을 가리키며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는 말에 고개를 내젓자 "우리가 자주 먹는 고추다. 고춧대가 이렇게 생겼다"며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손은 바쁘게 잡초를 골라냈다. "비가 오면 물이 넘칠까 봐 걱정, 비가 안 오면 메마를까 봐 걱정이다"고 말하면서 웃는 모습에 농사지으면 그럴 수밖에 없겠다고 맞장구쳤다. 그러다가 또다시 여기가 서울이라는 것을 잊을 뻔했다.

▲ 텃밭을 가꾸는 모습. ⓒ함께배움사회적협동조합
▲ 텃밭을 가꾸는 모습. ⓒ함께배움사회적협동조합

연못을 논으로, 나대지를 밭으로…농사로 배우는 생태
경력단절여성을 생태강사로 양성, 함께 돌보는 '우리' 아이들

함께배움이 가꾸는 텃밭과 텃논은 구로구청의 협조를 받아 조성됐다. 방치되어 있던 연못을 흙을 사다가 메워 논으로 만들고, 조합원들이 하나하나 직접 못질하여 텃밭 틀을 만들면서 나대지였던 곳을 밭으로 바꾸었다. 정자 주변 땅에 깔린 벽돌도 한 장 한 장 직접 깔았다. 부지를 지원한 구청은 조합원들의 열의를 보고 텃밭에 아이들이 쉴 수 있는 정자와 농기구함도 만들어주었다. 한동안은 물을 댈 곳이 없어서 아이들이 물뿌리개를 들고 가서 물을 길어와야 했는데, 구청이 작은 수돗가도 만들어주었다. 올해에는 텃밭에서 나온 작물로 요리 등을 할 수 있는 실내공간을 조성해주기로 했다. 구청에서 굉장히 적극적으로 지원해준 것 같다고 말하자 김 이사장은 "처음에는 '이 사람들이 농사를 하면 얼마나 하겠나'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몇 년이 흐르면서 공간에 변화가 생기고 우리가 활동하는 모습들이 보이니까 더 지원해주지 않았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 직접 재배한 수박을 들고 있는 아이. ⓒ함께배움사회적협동조합
▲ 직접 재배한 수박을 들고 있는 아이. ⓒ함께배움사회적협동조합

2017년 설립한 함께배움은 지역자원을 활용하여 아이들과 생태를 체험하고, 마을 안에서 내 아이와 이웃의 아이를 함께 돌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김 이사장은 막내아이가 천왕초에서 6학년이 되었을 무렵 학부모회 회장직을 맡게 됐고, 교사들과 학교 주변 자원을 활용하여 아이들과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때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학부모를 생태강사로 양성하여 학부모가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고 놀이활동도 함께하면서 마을 아이들을 돌보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특히 아이를 돌보느라 일을 하지 못하던 가정주부,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이 강사 양성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강사로 일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강사를 양성하여 학교 수업에 투입하고, 생태활동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텃논과 텃밭이 탄생했다.

이에 대해 김 이사장은 "아이들과 생태계를 같이 경험하고 환경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우리 삶에서 멀어진 듯하지만 가장 밀접하고, 생태와 환경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것이 농사이지 않나. 그런 마음에서 밭을 만들고 논을 만들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여기에서 땅을 파고 피를 뽑고 물을 대고 있더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렇게 부모, 교사와 함께 흙에서 부대끼며 생활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생태, 기후, 환경에 대해 느끼고 그 가치를 체득한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벌레도 무서워하고 흙도 더럽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게 못 만진다고 울상 짓던 아이들이 나중에는 자기가 먼저 나서서 만지고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파헤치고 탐구한다. 또, 초봄에는 아이들이 텃밭에 와서도 그냥 보기만 한다. 아무것도 없을 때니까. 그런데 싹이 올라오고 자라는 게 눈에 보이면 그때부터는 무엇이든 해보고 싶어 한다."

▲ 텃논에서 모내기를 하고 있다. ⓒ함께배움사회적협동조합
▲ 텃논에서 모내기를 하고 있다. ⓒ함께배움사회적협동조합

몸으로 체득하는 생태, 그리고 사회적경제
학생조합원 규정, 관내 만 18세 이하 청소년…졸업 후에도 활동할 수 있도록

함께배움은 협동조합을 포함하여 사회적경제에 대한 조합원들과 비조합원 학부모들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이제 막 아이가 천왕초에 입학한 젊은 학부모들은 사회적경제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김 이사장은 "아무래도 나는 이제 천왕초 학부모가 아니기도 하고 저학년 학생을 둔 부모님들과는 나이 차이도 있기 때문에, 이러다가 어느 순간 단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계속 사회적경제에 대해 알리고 젊은 학부모들과 함께할 수 있는 부분들을 찾아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학생들, 특히 아직 경험이 부족한 초등학생인 아이들은 협동조합이 어떤 조직인지 얼마나 인지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 김 이사장은 "아이들은 아직 잘 모를 수밖에 없지 않나.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사회적경제 관련 수업을 듣기도 하고, 다른 학교협동조합을 방문하기도 했다. 또, '동동시장'을 개최하여 참여한 아이들에게 어떤 사업을 운영하고 어떻게 부스를 운영하고 싶은지 사업계획서를 써보도록 했다. 그러면 우리가 사업비를 일부 지원해주고 그렇게 만들어진 물건을 아이들이 직접 동동시장에서 판매하는 것이다. 그렇게 발생한 수익금 중 일부를 조합이 받아서 천왕초 졸업생들에게 교복 지원금으로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 텃밭 옆에 있는 정자. 학생들이 작물들을 돌보고 흙 위에서 뛰어놀다가 쉬어야 할 곳이지만 안타깝게도 전염병 상황으로 인하여 폐쇄되어 있다. ⓒ라이프인
▲ 텃밭 옆에 있는 정자. 학생들이 작물들을 돌보고 흙 위에서 뛰어놀다가 쉬어야 할 곳이지만 안타깝게도 전염병 상황으로 인하여 폐쇄되어 있다. ⓒ라이프인

2019년부터는 아예 학생을 조합원으로 받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미성년인 아이들의 조합 활동에 장벽에 있을 것을 우려해 학생조합원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협동조합인데 학생이 있어야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싶어 정관을 바꾸고 학생조합원 가입을 받았다. 김 이사장은 "가정통신문을 통해 조합원이 되면 어떤 활동에 참여해야 하는지 안내하고 예비조합원을 모집했다. 15명 정도가 신청했다. 아이들이 생각보다 더 협동조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모집에 참여한 학생들은 현재 예비조합원으로 함께배움과 함께하고 있다.

"정관에 학생조합원을 '관내 만 18세 이하 청소년'이라고 해 두었다. 때문에 천왕초를 졸업하여 떠나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더라도 본인들이 원하면 조합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 그래서 굳이 학생들에게 당장 가입하라고 권하지 않는다. 본인이 직접 조합이 추구하는 가치를 느끼고 가입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학생조합원들과 꾸려나갈 활동도 이미 구상 중이다. 마을에서 동동시장을 연 것처럼 학교 안에서 일일매점을 개설해보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학생들이 사업 구상부터 경영 방법, 수익 사용처까지 직접 정하여 운영하는 것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잠잠해져서 교내 활동이 자유로워지면 실행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해에는 마을에서 ‘온마을놀이터’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예비 학생조합원들과 마을 아이들이 함께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긴줄넘기, 자연물 책갈피 만들기, 자연물 빙고, 컵비행기 날리기 등 단체 놀이를 하면서 공동체 문화와 자신이 사는 마을에 대해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놀이활동 끝 무렵에는 예비 조합원 학생들이 마을 아이들에게 협동조합과 공정무역을 설명하고 공정무역 제품을 알리는 부스가 마련되기도 했다. 예비 조합원 학생들이 또래 아이들에게 직접 협동조합과 공정무역에 대해 알려주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다시 한번 협동조합과 공정무역의 가치를 익히는 것이다.

▲ 김명숙 함께배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이 텃밭을 안내하며 설명하고 있다. 작물에 대해 설명하는 중에도 잡초를 골라내는 모습이다. ⓒ라이프인
▲ 김명숙 함께배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이 텃밭을 안내하며 설명하고 있다. 작물에 대해 설명하는 중에도 잡초를 골라내는 모습이다. ⓒ라이프인

이처럼 함께배움은 도시농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생태를 교육할 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다양한 체험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천왕초가 발도르프교육에 기반하여 수업을 진행하는 혁신학교인 만큼, 함께배움 역시 발도르프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목공, 수공예, 전례놀이, 놀이수학, 보드게임 등의 체험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창의코딩 강사를 영성하여 코딩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고, 마을 고령층을 위한 사업을 구상하여 노인인지활동 책놀이 지도사를 양성하기도 했다. 이처럼 함께배움 아이들에게는 학교 담장 안이 아니라 마을 전체가 놀이터이자 배움터가 된다.

"만지고 듣고 보고 맛보고 냄새 맡고. 우리는 오감을 모두 활용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직접 작물을 키우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연순환, 환경에 대해 느끼게 된다. 학부모들도 관심이 많아서 모내기, 벼 베기에 함께할 사람들을 모집하는 글을 올리면 10분도 되지 않아 모집 인원이 마감된다. 그렇게 몸으로 체험하며 배운 아이들이 자라서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도 이런 가치들에 관해 이야기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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