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쿱스쿨 ①] 공간의 변화를 맛있게 즐기는 '판동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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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쿱스쿨 ①] 공간의 변화를 맛있게 즐기는 '판동초'
  • 2021.03.05 13:00
  • by 강환욱 (판동초등학교 선생님)
07:38

2012년 생겨나기 시작한 학교협동조합이 어느덧 전국에 약 130여 개가 운영되고 있다. 주로 매점을 중심으로 진행된 활동들은 이제 방과후학교, 창업, 기본소득, 기후위기 대응 등 다양한 시도로 확장되고 있다. 코로나 19로 예전과 조금은 다른 풍경의 새 학년 새 학기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주민의 참여로 나눔의 교육을 실천하고 학교와 지역사회를 연결해 교육경제 공동체로서 성장하고 있는 학교협동조합을 라이프인에서 소개한다. 연재는 판동초등학교(충청북도 보은군)의 교사이자 팔판동사회적협동조합의 이사인 강환욱 선생님의 글로 시작해본다. [편집자 주]

 

이제는 학교에 매점이 없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매점이 아이들의 배고픔뿐만 아니라 마음도 채워주는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기 때문이다. 잘 먹는 것은 그 이상의 행복감을 주는 것 같았다. '매점은 무조건 옳다.'라고 한 아이가 평했다. 딱 한 가지, 가격 인하에 대한 요구는 있다.

판동초등학교의 매점은 2019년 9월 학교협동조합의 형태로 문을 열었다. 그러니까 학교협동조합을 매점 중심으로 시작한 것이다. 그해 초에 복직을 앞두고 아이들에게 건강한 먹거리가 간식으로 제공될 수 있는 공간이 교내에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상업적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되고 이왕이면 관심이 있는 모두가 조합원으로 참여하면 운영이 더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마을에서 좋은 사람들과 교육협동조합을 함께 하고 있어서 협동조합이라는 단어도 조금 친숙했던 것 같다.

마침 우연히 충청북도교육청에서 학교협동조합의 설립을 지원해주는 공모사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바로 교장 선생님을 찾아갔다. 이 사업에 공모를 하고 싶으니 함께 할 학부모들을 소개시켜 달라고 했다. 교장 선생님 입장에서는 근무를 시작하지도 않은 교사가 이런 제안을 하니 다소 황당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학부모 네 분을 소개시켜 주었다. 총 다섯 명의 발기인이 구성되었고 빠른 속도로 작업을 해나갔다. 당시 학생 수가 가장 많았던 6학년 아이들이 졸업하기 전에 매점을 한 학기라도 맛보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3월부터 시작한 설립 작업은 8월 말에 마무리되었고 2학기 시작과 동시에 매점을 열 수 있었다. 

▲ 2019년 9월 학교협동조합의 형태로 문을 연 판동초등학교의 매점. ⓒ판동초등학교 팔판동사회적협동조합
▲ 2019년 9월 학교협동조합의 형태로 문을 연 판동초등학교의 매점. ⓒ판동초등학교 팔판동사회적협동조합

매점의 개업 효과는 대단했다. 학교 주변에 아무런 편의시설이 없었던 그간의 아쉬움을 해소하고 싶었는지 아이들은 참 많이 먹었다. 당연히 점심시간까지도 소화가 되지 않아 급식을 조금만 먹으려는 아이들이 속출했다. 누군가는 속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을 아이들이 직접 겪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누구나 예상했던 상황이지만 이를 예방하고자 어른이 미리 구매 제한을 설정해 두는 것은 다소 강압적인 것이다. 공감대도 형성되지 않았을 뿐더러 민주적이지도 않다. 그것보다는 매점의 무제한적 이용과 급식시간의 상충 관계를 본인들이 충분히 겪고 난 뒤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기다리면 오히려 아이들이 먼저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때가 되면 말이 잘 통한다. 그래야 점심을 먹기 전 중간놀이 시간에는 배를 부르게 할 수 있는 간식을 한 개까지만 사 먹자는 규칙이 누군가 강요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정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규칙은 어른이 개입하지 않아도 자신들이 서로 감독하며 잘 지킨다. "너 왜 만두 두 개 사? 하나만 먹어야지"라며 말이다. 어른들은 분명 아이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의 시행착오를 제한할 권리는 없다.

매점은 애정으로 운영된다. 고학년 아이들 중 희망자, 그리고 발기인으로 함께 했던 학부모 이사님들이 자발적으로 꾸려가기 때문이다. 이들의 헌신은 대단하다. 학생 매니저는 중간놀이 시간이 되면 매점 문을 열고 포스기의 전원을 켠다. 매점 비밀번호는 우리끼리만 공유하는데, 이것을 특권으로 여기기도 한다. 매니저는 계산원의 역할을 하며 자신의 순번인 날에 30분이라는 귀한 중간놀이 시간을 계산대와 함께하는데, 이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가끔 무례한 손님도 있다. 그래서 학생 매니저의 위상을 세우고 작게나마 보상을 해주고 싶어서 종종 치킨 회식을 하고 월급도 제안했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월 1만 원을 이야기했는데, 이용 인원이 소수이기에 월 수익이 많이 나지는 않으니 한 번만 더 생각해달라고 초라하게 부탁을 했다. 결국 학생 매니저들은 2천 원으로 금액을 결정했고, 매월 2장의 매점화폐를 받고 있다. 

▲ 줄을 선 학생들과 학생 매니저의 모습 ⓒ판동초등학교 팔판동사회적협동조합
▲ 줄을 선 학생들과 학생 매니저의 모습 ⓒ판동초등학교 팔판동사회적협동조합

오후에는 학부모 이사님들이 매점을 관리한다. 그들은 자신의 자녀가 다니고 이용하며 함께 만든 학교 매점에 누구보다 큰 애착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이가 졸업한 후에도 여전히 함께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중요한 부분이다. 장기적으로 학교협동조합이 흔들리지 않고 운영되려면 교사의 손을 차츰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을 사람, 학부모, 학생은 지역에 오래 머물기에 그들이 중심이 되는 것이 낫다. 교사는 몇 년이 지나면 다른 학교로 옮기기에 운영의 축이 교사에게 있으면 곤란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물론 교사가 같은 지역에 산다면, 그래서 학교를 옮긴 후에도 조합원으로 계속 남아서 함께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확실히 1년 차보다 2년 차에는 운영의 중심이 학부모 이사님들에게 많이 넘어갔다. 생협의 물품을 재주문하고 아이스크림이나 핫도그 등 배송이 불가한 것들은 인근 도시에 나가서 직접 사 오는 과정을 주기적으로 반복해야 하는데, 대부분을 학부모 이사님들이 한다.

최근 겨울방학에는 방학 프로그램으로 학교에 나오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요리교실을 맡아서 진행하기도 했다. 그간 외부강사에게 맡기던 교육을 우리 구성원 내에서 제공하게 된 셈이니 이 또한 자립의 순간이라 생각되어 무척 뿌듯했다. 식단과 한정된 재료비를 알뜰하게 운영하여 초밥, 스테이크, 삼겹살 파티 등을 특식으로 제공했다. 아이들은 즐거워했고 애정의 차이에서 오는 결과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실은 공간이 가장 큰 몫을 하고 있다. 학교협동조합 또한 공간으로 존재한다. 일주일에 딱 한 번의 오후에 방과후교실로만 사용되던 공간이 이제는 아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 되었다. 매점의 역할 외에도 요리교실이 되어주기도 하고, 학교를 찾은 사람들이 머무를 수 있는 곳이 되기도 한다.

▲ 방과후교실로만 사용되던 공간이 아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 되었다. ⓒ판동초등학교 팔판동사회적협동조합
▲ 방과후교실로만 사용되던 공간이 아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 되었다. ⓒ판동초등학교 팔판동사회적협동조합

최근에는 노작(勞作)교육으로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협동조합은 창조를 위한 자립을 목표로 하는 곳이라는 생각에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우선적으로 손의 재주를 키워야 한다고 결의했고, 이를 위한 학교 공방도 스스로 짓고 있다. 곧 완공이 되면, 일과시간에는 아이들을 위한, 저녁에는 마을을 위한 목공과 재봉틀 교육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협동조합이 매점에만 한정되지 않고 확장되는 것을 추구하는 중이며, 아이들도 방향을 제시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작년 10월부터는 어린이 기본소득을 운영하고 있다. 매점을 시작하고 몇 개월 정도를 지켜보니 소비하는 아이들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이를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단순하게 부족한 돈을 채워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용돈의 이미지로는 접근하지 않으려고 했다. 모든 경우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용돈은 낮은 계급으로 향하는 의미를 품을 가능성이 있고 지속성을 담보할 수도 없다. 돈이 지급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자존감이 상실된다면 그것은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일이기도 하다. 결국 아이들의 권리가 오래도록 보호받으려면 일회성보다는 정기성, 선별이 아닌 보편성, 조건을 달지 않는 무조건성이 필요했기에 어린이 기본소득이라는 단어가 가진 힘에 기대기로 했다.

이는 매점이라는 공간과 소비를 소외됨 없이 누릴 수 있어야 하는 아이들의 권리를 공동의 차원에서 지켜줄 수 있는 기회였고, 학교라는 작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하기에 당연히 주어져야 하는 소득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학교로부터 지지받는다고 느끼고 있고, 나름의 소비생활을 하며 학교에 가는 것이 더 즐거워졌다고 말한다. 누구나 받는 것이기에 창피할 일도 없다. 모두가 가지고 있던 불편한 마음도 해소되었다. 매점에 가지 못하던 아이는 서운해했고, 잘 가던 아이는 다수가 누리지 못해 안타까워했었다. 

협동조합을 학교 내에서 운영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하나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이라 그런지 일이 많지만 그에 비례하여 눈에 보이는 효과도 컸다. 죽어있던 공간은 아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되었고, 교실에서 누리기 힘든 가치들을 느낄 수 있었으며 보다 많은 주체의 참여 동력이 있었다. 아이들이 주는 가장 큰 피드백은 환한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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