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예술활동을 어떻게 바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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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예술활동을 어떻게 바꾸는가
문화예술공간 여러가지연구소 민경은소장 인터뷰
  • 2020.09.15 13:30
  • by 정설경 객원기자

동네 재개발이 해제되고 개발욕구가 사라진 부천시 원미동의 시장 한 켠에 작업장 둥지를 틀었다.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어떤 예술을 취할 수 있을까, 재밌는 상상을 나누던 중에 코로나를 만나 쉬어가고 있다. 생활소품을 큐레이션해서 전시도 했고,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제안해서 판매하는 샵을 고민하던 중이었다. 동네에서 구현해 본 예술활동의 경험, '여러가지연구소'가 걸어온 10여년의 시간을 술술 풀어갔다.

'여러가지연구소'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까

물을 때마다 잠시 생각이 멈춘다는 민경은소장은 예술이 우리 일상에서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지역문화예술활동 공간으로 정리한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예술가 민소장은 사회에서 무엇을 해야 하나 되묻다가, 우리 삶에서 예술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를 연구해야겠다는 깨달음으로 '여러가지연구소'를 열었다. 문화예술이 우리 생활에서 작동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를 자주 겪었다. 생활세계로 들어온 예술, 동네에서 펼치는 문화예술 활동을 경험하며 이제 시장으로 들어왔으니 관심은 넓어지고 있다. 민소장은 부천에서 태어나 쭈욱 살고 있다. 

20대에 미술과 미술교육을 전공했지만 교육의 틀에서 미술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에 직면하다가 태국을 시작으로 외국나들이를 3년 했다. 특히 태국은 세련된 디자인이 발달한 서구와 유연하게 소통했던 접경지대에서 예술적 상상을 풍부하게 해 준 곳이었다. 거기서 수집한 견문은 추억 속에, 그곳의 풍물은 연구소에 몇 가지 놓여있다. 갖가지 예술 활동을 하는 연구소를 열게 된 용기는 태국 생활의 경험치가 큰 자극이 됐을 것이다. 연구소에 걸려 있는 '모든 상식에 의심을', 좌우명이자 민소장이 벌이는 예술활동으로 실천하는 메시지로 짐작된다. 

예술가는 무엇으로 살아왔을까

공공예술, 커뮤니티 아트, 예술이 일상을 변화시키는 지점을 교육으로 많이 시도했다. 지역에서 문화예술을 교육으로 작업했으니 대안교육, 문화예술교육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초창기 연구소의 플랫폼은 공간이 아니라 이동수레였다. 골목에서 수레를 세워놓고 사람들과 만나 작업을 걸고, 활동하는 거점이었다. 골목에 세워둔 수레 덕택으로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하게 만날 수 있었다. 경기문화재단의 공모사업을 통해 도시캠핑 프로젝트로 도시리서치를 해 봤고, 도시와 캠핑, 그리고 청년문화예술매개자 사업 등은 지금도 이어오고 있다. '어게인복덕방'도 재밌는 프로젝트였다. 동네에서 사람을 연결하고 이야기를 던지고, 그 이야기를 수집하는 작업은 꾸준하다.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했던 퍼포먼스, 노인정 바깥에 사람들이 앉을 수 있도록 접이평상을 제작한 것은 상식에 대한 기준을 다르게 제안하고 생각하게 한 작업이었다. 늘 상식을 의심하는 예술가였으니 민소장이 걸어온 행적은 예술을 통한 실천, 실천가였을 것이다.

▲ 골목에 세워둔 수레 덕택으로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하게 만날 수 있었다. ⓒ여러가지연구소
▲ 골목에 세워둔 수레 덕택으로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하게 만날 수 있었다. ⓒ여러가지연구소

철학이 담긴 문화예술교육은 민소장의 꾸준한 관심이자 하고 싶은 분야다. 학교교육이 담을 수 없었던 문화예술교육을 찾아 다녔고, 대안학교에서 다양하게 교수법으로 시도해 보았다. 학교교육도 존중하며 공통의 감각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하니 제도화된 공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평등한 교육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공교육에서 구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로 아이들을 만나고 꾸준히 어울려 왔다. 아이들과 만날 때는 예술을 예술이라 말하지 않고, 기술을 기술이라 말하지 않은 채 감각활동으로 예술을 체험하게 한다. 프로그램을 'oo교육'으로 절대 표기하지 않는다. 유익한 체험은 아이들이 스스로 김치볶음밥이라도 해 먹을 수 있는 독립된 자아로 키울 수 있었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자기주도적 삶으로 인도하는 것이 교육이라면, 문화예술교육으로 충분히 할 수 있다. 

▲ 골목놀이 ⓒ여러가지연구소
▲ 골목놀이 ⓒ여러가지연구소
▲ 골목놀이 ⓒ여러가지연구소
▲ 골목놀이 ⓒ여러가지연구소

돌봄과 보살핌을 터득하게 한 수선집 할아버지

2013년 동네에서 작업하며 수선집을 운영하는 안토니오(세례명) 할아버지를 만났다. 젊은날 봉제산업의 흥망성쇠를 온 몸으로 체득하며 거기서 얻은 기술로 수선집을 운영하는 할아버지, 우리가 원하는 작품의 디자인을 건네면 뚝딱 완성해 주는 기술자였다. 전시회 작품을 준비하며 알게 됐는데 할아버지의 작은 수선집은 너무 따뜻해서 겨울이면 우리의 작업장이었다. 끼니를 나누니 절로 휴먼라이브러리의 주인공이었다. 안토니오 할아버지의 구술로 듣게 된 생애는 교류를 통해 한사람의 일생을 배우며 체험하는 학습이 되었다. 수선이나 옷을 만들고 싶은 청년을 할아버지와 연결해서 '땀땀공작소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수선일을 하며  지역의 청년들과 즐겁게 만난 안토니오 할아버지는 수선일을 접고 독거노인이 되었다. 수선집을 닫을 무렵엔 할아버지 이야기를 담은 짧은 다큐를 제작하여 헌정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할아버지와 얽혀온 시간은 한편의 커뮤니티 아트다. 교류하며 듣게 된 사람의 일대기를 흘려 보내지 않고 기록해서 모두가 공유하는 기회를 가졌다. 프로젝트로 만났던 경은대표와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할아버지는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 일로 만난 사이로 관계를 끝내기란 창작자의 윤리가 아니었다. 무료해진 할아버지는 자꾸 전화를 한다. 바쁠 땐 친절하게 응대하지 못해도 어린이날, 스승의 날 만남을 공식화해서 식사를 나누는 것이 몇 년 째 작은 의례가 되었다. 독거노인의 삶과 비혼 여성의 삶이 다르지 않았다. 나의 미래를 지금 안토니오 할아버지가 먼저 걷고 있다. 

"할아버지 어떻게 돌아가실 거예요?" 
할아버지와 나누는 새로운 인터뷰 소재다. 

"할아버지, 저 요즘 바빠요"
"일 좀 들고 와라, 내가 해 줄게"
원미동에서 살며 알게 된 사람들의 일상의 대화다.

시련도 퍼포먼스가 된 '공간장례식'

2012년 유휴공간이었던 노인정을 발견하고 '여러가지연구소'를 공간으로 옮겼다. 그런데 한곳에서 지속할 수 없었던 연구소는 지금의 공간으로 오기 전에는 장소의 상실에 대한 경험을 '공간장례식'으로 살풀이했다. 짐을 빼고 공간을 다시 점거하는 의미의 전시퍼포먼스였다. 재건축으로 쫓겨나는 것이니 공간을 이용했던 여러 사람들이 모여 공간을 추억하고 아쉬움을 공유했다. 공간을 철거하며 나온 폐기물을 활용할 수 있도록 작가에게 부탁했더니 멋스러운 거실장을 창작해 주었다. 이것도 네 번째 공간에서 전시물로 선보였다. 세 번째 연구소 공간의 장례식에 함께 했던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은 네 번째 공간을 준비하는데 함께 했고, 여는 날 축제에도 참석했다.  

▲ 공간장례식전시[결국봄] ⓒ여러가지연구소
▲ 공간장례식전시[결국봄], 맨 가운데 민경은 소장 ⓒ여러가지연구소
▲ 공간장례식전시[결국봄] ⓒ여러가지연구소
▲ 공간장례식전시[결국봄] ⓒ여러가지연구소
▲ 지난 공간의 자재로 만든 가구 ⓒ여러가지연구소
▲ 지난 공간의 자재로 만든 가구 ⓒ여러가지연구소

내 의지와 무관하게 공간을 자주 옮겨 다니다 보니, 공공자산화에 관심이 생겼다. 아직까지는 12평의 공간을 여럿이, 재밌게 꾸리고 있는데 혹시 이 공간마저 내놓을 상황이 닥치면 이 도시를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공공의 콘텐츠를 만드는 공간인데도 이 곳의 운영 비는 민소장이 조달하고 있다. 활동가와 예술인들이 창작하는 작업장으로 쓸 수 있도록 공유작업장을 추진하다가 코로나를 만나 중단됐다. 이것이 실현되면 공간 운영비를 조달할 방편이 될 것 같다. 장기적으론 이런 공간들이 공공적 성격을 인정받아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면 좋겠다. 

Intro-view로 탄생한 창작소

원미동을 떠나지 않은 덕에 연구소는 지역과 더욱 밀접해졌다. 작년에 터를 잡은 이곳은 작업자에겐 네 번째 공간이동이다. '원미청과'였던 내부를 철거하고, 인근의 상점주인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그들의 삶을 듣고 기록했다. 아직 공간으로 꾸며지지 않은 동안 상점주인들과 만난 기록물로 전시회를 열었다. 특히 여성상인들의 목소리를 담은 작업이 되었다. 전시회는 주변 상인들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지점이 되었다. 어느날 갑자기 뚝딱거려 탄생하는 공간이기 보다 어떤 일을 할 것이라는 암시를 했고, 이제 공사를 시작한다는 알림역할도 했다. Intro-view(앞에서 보다)로 먼저 소통하고, 몇 달 동안의 작업을 거쳐 이 공간을 만들어냈다. 원미동이 도시재생구역이어서 시장의 간판이 바뀐다기에 2019년 상점의 모습을 드로잉으로 담아 전시회에 걸었는데 상점 이전의 모습을 남겨 놓은 역사가 되었다.

▲ 지난 공간의 자재로 만든 가구 ⓒ여러가지연구소
▲ 여러가지연구소 새 공간 ⓒ여러가지연구소
▲ Intro-view 전시 ⓒ여러가지연구소
▲ Intro-view 전시 ⓒ여러가지연구소

동네의 작은 공간들, 이제 쌀롱(salon)으로 거듭나야

코로나로 멈춰있는 일상, 요즘 관심은 느슨한 공동체, 그리고 비정형적인 만남이다. 공식화하지 않은 만남으로 서로 배우고 경험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터득했다. 이런 모습을 구현하자고 그동안 비영리기구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노동으로 헌신해 왔다. 코로나로 멈춘 일상에서 우리는 이런 모습을 솔직하게 구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사람을 동원하여 대규모 성과를 과시하는 것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졌다. 멀리 다니는 것도 심적으로 불편하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삼삼오오 모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 닥쳤다. 동네의 작은 공간들을 공공의 쌀롱(salon)으로 양성하는 것이 시급하다. 혼자는 외롭고, 그렇다고 많이 모이기는 부담스러우니 작은 교류를 활성화하여 사회적 소통으로 이어가는 것이 최선의 묘안이다. 

기꺼이 작은 쌀롱이고 싶다. 규모로 평가하는 문화가 무너지고 있다. 질적 변화를 꾀할 것을 주문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작은 모임을 인정하고 소중히 여길 것이다. 작은 공간들이 의미를 얻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청년들의 밥상과 공부하는 작업장으로 잘 활용해 왔듯 이제는 작은 규모의 시민들이 쌀롱으로 더 많이 애용하면 좋겠다.

▲ 여러가지를 함께 연구하는 사람들 ⓒ여러가지연구소
▲ 여러가지를 함께 연구하는 사람들 ⓒ여러가지연구소

이제 예술활동은 어떻게 바뀔까

국가시스템의 작동방식을 보면서 모든 것이 멈출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해 본다. 예술가들은 생존이 다급해졌다. 국가가 책임져 주지 않을 수 있으니, 생존을 위해 공동체의 지혜가 필요하다. 예술인들의 자립을 더 자주 질문한다. 공동체 결성을 통해 기술을 습득하고, 그것으로 구현한 문화가 자립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네트워킹하는 작업자, 기획자, 활동가들은 필요와 사안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작업이 있을 땐 모이고, 새롭게 해 보고 싶은 것을 모여서 이야기한다. 지금 현실은 비현실적이라 비현실적인 상상을 하게 한다. 

기후변화와 위기를 준비해야 할 것 같다. 호주산불은 나의 우울증의 서막이었다. 코알라와 캥거루가 산불로 멸종할지도 모를 위기에 달했다. 세계 곳곳의 산불은 기후위기를 보여준다. 돼지열병으로 강제로 매장당하는 생명체들의 울부짖음, 일상에서 직면해야 하는 가짜같은 현실, 채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면 채식만 하겠지만,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으니 모여서 이야기하고 소박하게 실천하는 일상의 실험을 해 봤다. 이제는 지구에서 벌어진(질) 일을 얘기하고 시간을 벌 수 있는 작업을 해야겠다. 

그런데 행정은 예술활동을 비대면으로 하도록 단순하게 결정하고 지시한다. 행정편의로 실적을 낚으려는 움직임이 불편하다. 혹여 비대면 시스템에 부응하지 못하면 나는 뒤처지는 사람으로 낙인찍힐지 모른다. 함께 사유해서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데 시스템은 여전히 과거의 전문가들이 결정하고 실행한다. 결국 낡은 시스템은 반복되고 있지 않은가. 아무도 단언할 수 없는 새로운 앞날을 우리는 맞이하고 있다. 함께 얘기하고 해결해 보는 여지를 둬야 하지 않을까. 예술작업으로 함께 얘기하고 상상하고 실행하면 좋겠다. 지금까지의 공공사업과 프로젝트는 시민을 참여하게 했는가, 질문하고 성찰하는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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