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통신] 지역화폐에 관한 세계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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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통신] 지역화폐에 관한 세계 동향
사회적경제부터 연대경제까지 : 스페인으로 부터
작성자 : 히로타 야스유키(廣田 裕之). 발렌시아대학교 사회적경제 박사이자 스페인 사회적화폐 연구소 공동창설자
  • 2020.08.20 13:00
  • by 히로타 야스유키(廣田 裕之)

한국에서도 김포페이 등 새로운 지역화폐 사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필자도 스페인에 이를 소개하는 글을 작성하고 있는데, 세계 각지에는 이 밖에도 재미있는 사례가 많다. 사회연대경제 중에서도 지역화폐(보완화폐) 전문가이자 스페인 사회적화폐 연구소 공동창설자의 시선에서 현재 세계 상황을 짧게 설명하고, 한국에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2000년 정도까지는 지역화폐라고 하면 한밭레츠와 같은 LETS(상호신용방식)나 시간은행이 대부분이었다. 이후 법정통화(한국의 경우 KRW, 원화)를 담보로 지역화폐를 발행하여 지역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한 사례가 늘어났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독일의 킴가우어(Chiemgauer)와 브라질의 팔마스은행(Banco Palmas)이다.

킴가우어는 2003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의 프리엔 암 킴제(Prien am Chiemsee)에서 시작되었다. 독일에는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의 철학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커리큘럼을 교육하는 발도로프(Waldorf)학교가 있는데, 이 학교의 사회 선생님이었던 크리스티안 겔레리(Christian Gelleri)가 수업에서 지역화폐를 소개했다. 이에 여고생 6명이 관심을 가져 발족하게 되었고, 기본적으로 아래의 형태로 유통되고 있다.

•    소비자 회원은 등록할 때 지원하려는 사회사업(환경보호, 문화활동 등)을 하나 선택하고 유로를 킴가우어로 바뀐 뒤 지역상점에서 사용한다. 바꾼 금액의 3%(원화 10만 원을 바꾸면 3000원)는 해당 사회사업에 기부된다. 소비자는 킴가우어를 사용해도 금전적인 이득은 없지만 지역의 사회사업을 경제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된다.
•    킴가우어를 수령한 지역상점은 유로로 재교환(수수료 5% 발생)하거나 다른 지역상점에서 사용(수수료 0%)할 수 있다. 또, 킴가우어로 미소금융을 이용할 수 있다.
•    사회사업은 부수입을 얻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집에서 매달 30만 원을 지역화폐로 지불할 경우, 월 9000원, 연 10만 8000원이 생긴다.
•    또, 실비오 게젤(Silvio Gesell)의 '가치가 하락하는 화폐' 방식을 채용하고 있어, 6개월마다 액면 가치 중 3%가 줄어든다.

유통범위는 로젠하임(Rosenheim)시와 군, 트라운슈타인(Traunstein)군이며, 세 지역의 인구는 약 50만 명, 면적은 약 3000㎢의 규모이다. 2020년 7월 현재 3898명의 소비자와 476개 기업, 그리고 291개의 사회사업이 참여하고 있으며, 925,278킴가우어(약 12억 8600만 원)가 유통되고 있다.
 

▲ 독일의 국영방송이 2009년 제작한 영상(영어)

팔마스은행은 1998년 브라질 북동부에 있는 세아라(Ceará)주의 주도 포르탈레자(Fortaleza)시 파우메이라스(Palmeiras)에서 시작했다. 2002년부터 지역화폐를 발행했는데, 이 사례를 깊이 이해하려면 팔마스은행이 탄생한 파우메이라스 지역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브라질은 1964년부터 85년까지 군정을 겪었는데, 이 시기에 포르탈레자해변을 리조트로 개발하려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이곳에 살고 있던 어민들은 15km 내륙 안쪽의 밀림지대로 집단 이주를 당했다. 열악한 생활환경 속에서도 지역자치회가 결정되어 교육과 도로포장 등 인프라 개선에 착수해 성공을 거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생활수준의 개선으로 생활비도 폭등하게 된다. 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정든 파우메이라스를 떠나 어쩔 수 없이 더 생활환경이 나쁜 지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이에 자치회는 지역경제 발전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자치회가 직접 미소금융사업을 시작하여 지산지소형 경제활동을 추진하고, 이후 법정통화(브라질은 BRL, 헤알화)을 담보로 한 지역화폐 발행도 시작했다. 빈곤 때문에 은행계좌를 개설할 수 없는 사람이 브라질 등 개도국에는 수없이 많은데,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자치회관리형 은행으로 이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지금은 브라질 전국에서 비슷한 사례를 100개 이상 찾아볼 수 있다.
 

▲ 팔마스은행을 소개한 다큐멘터리(영어자막판) 

또, 필자가 거주하는 스페인에도 김포페이와 같이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유로로 담보된 지역화폐로 소외계층 수당을 지급하고, 지역상점에서 소비를 한다는 점이 다르다. 2020년 7월 현재, 세비야 인근 산 후안 데 아스날파라체(San Juan de Aznalfarache)의 오세타나(Ossetana), 바르셀로나 인근 산터 쿨로머 더 그러머넷(Santa Coloma de Gramanet)의 그라머(Grama), 바르셀로나 시내의 렉(REC)이라는 3개의 지역화폐가 운용되고 있다. 게다가 법정통화를 기준으로 하는 사례로는 이 밖에도 프랑스 툴루즈(Toulouse)시의 솔비올레트(Sol-Violette), 영국 브리스틀(Bristol)시의 브리스톨파운드(Bristol Pound), 미국 매사추세츠(Massachusetts)주의 버크셰어(Berkshares) 등이 유명하다.
 

▲ 바르셀로나의 렉(REC) 홈페이지
▲ 바르셀로나의 렉(REC) 홈페이지

하지만 사회연대경제의 원칙에서 생각하면 법정통화에 의존하는 모델은 최선이라고 할 수 없다. 역시 법정통화에 의존하지 않고 사회연대경제가 더욱 자립해서 지역화폐 발행과 유통을 실현하는 모델이 적합하다. 이러한 점에서 주목받는 것이 LETS형 상호신용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기업 간 거래로, 벨기에의 레스(RES), 이탈리아 샤르데냐의 사르덱스(Sardex)가 주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한밭레츠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기업과 자영업자만 참여할 수 있고 거래 범위도 훨씬 넓다(Sardex는 인구 170만 명 남짓한 사르데냐섬 전역, RES는 벨기에 전국).
 

▲ 이탈리아의 사르덱스를 소개한 영상 

또, 법정통화 이외의 통화를 담보로 하는 형태도 검토 가치가 있다. 이 사례로 유명한 것이 아르헨티나 코르도바(Córdoba)주 카필라 델 몬테(Capilla del Monte)의 지역공동체 시간은행(Banco de Horas Comunitaria)으로, 협동조합학교가 모체이다. 대안생활양식을 찾아 도시를 떠나서 이곳에 이주한 사람들이 아이를 갖고, 아이들에게도 전통적인 학교교육이 아닌 독자적인 커리큘럼으로 교육을 받게 하고자 협동조합학교를 설립했다. 하지만 보호자들이 경제적으로 유복하지만은 않아 이 학교의 운영비를 지역화폐로 지불할 수 있게 했다. 구체적으로는 감자나 헌 옷 등을 지역화폐사무소에 맡기거나 일정시간 노동을 약속하면 사무소가 지역화폐를 발행하고 이 돈으로 학교 수업료 대부분을 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로써 학교 운영이 안정되고 저소득자가 많은 환경에서도 대안교육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보완화폐 전문가로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베르나르 리에테르(Bernard Lietaer, 1942~2019)는 담보의 중요성과 관련해서 아일랜드에서는 한때 기네스맥주 교환권이 마치 제2의 법정통화처럼 널리 유통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기본적으로 통화가 아니라도 누구나 수용 가능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담보로 할 경우 지역화폐를 발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공동체 시간은행 사진(2008년 필자 촬영)
▲ 지역공동체 시간은행 ⓒ히로타 야스유키(廣田 裕之)

나아가 법정통화제도 자체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법정통화라고 하면 통상 지폐나 동전(한국의 경우 1만 원권 지폐나 500원 동전 등)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 법정통화의 대부분은 한국은행과 같은 중앙은행이 아닌 각종 민간은행이 융자로 발행한 은행예금(구체적으로는 여러분이 가진 은행 예금잔고)으로 존재한다. 특히 영국에서는 파운드 중 97% 이상이 민간은행으로부터 발행되고 있음을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이 인정했다. 민간은행은 어디까지나 영리사업(예를 들어, 주택 융자로 2억 원을 대출해 주고 3억 원을 상환받아 1억 원의 이익을 취득)으로 융자=통화발행을 하지만, 부동산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는 부동산 투기에 대한 과잉 융자로 이익을 남기는 한편, 사회적으로 유익해도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은 융자 대상에서 제외시킨다는 점이 문제이다. 이를 의문스럽게 여긴 영국의 비영리법인 포지티브머니(Positive Money)는 민간은행이 아닌 중앙은행이나 정부 관할의 통화발행위원회가 통화발행을 담당해야 한다는 시민운동을 일으키는 등 영국사회의 의식이 고양되고 있다. 포지티브머니의 성공에 따라 유럽 각국에서도 같은 운동이 일어나, 현재 이들 운동이 연계하는 통화개혁국제운동(International Movement for Monetary Reform, IMMR)에서는 정보교환과 협력이 활발하다. 또,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세계통화이론(MMT)은 포지티브머니와 거의 비슷한 논리이지만 통화 발행에 대한 양적 관리라는 점에서 불충분하고, 통화 과잉발행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 포지티브머니 통화개혁 제안을 소개하는 영상(영어) 

지금까지 소개한 사례는 각국의 독자적인 상황 속에서 성장한 것이다. 이 활동 중에는 한국에서 법적으로 금지된 것도 있을 수 있기에 그대로 한국사회에 도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또, 한국도 도시와 농촌 상황은 무척 다르기에 지역 실정에 맞는 지역통화 설계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도 세계적인 흐름이라는 것은 있다. 이를 아래에 소개한다.

•    지역화폐 융자: 개인이나 지역에 근간을 둔 기업이 지역화폐로 융자를 받을 수 있다면 그만큼 지역화폐를 수용하는 동기가 늘어 유통이 활성화된다.
•    시민단체와의 연계: 킴가우어는 다양한 시민단체와 연계하여 소비자 참가를 촉진했다. 한국의 지역화폐도 이와 같은 길을 모색하면 어떨까.
•    법정통화에 의존하지 않는 통화발행모델 검토: 원화 담보 방식뿐만 아니라 상호신용방식이나 법정통화 이외를 담보로 한 지역화폐 발행에 대해서도 검토한 후, 이 중 하나 혹은 여러 방식을 융합한 하이브리드통화 발행도 검토할 가치가 크다.
•    법정통화 개혁운동과의 연계: 애당초 법정통화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지역화폐가 출발한 이상, 부동산 투기 등에 의존하고 있는 지금의 법정통화 발행방식을 시민사회가 지적하고 원화 자체에 대한 개혁에 대해서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각 지역의 시민사회 수준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사례로 지역화폐를 만들려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도 있고, 법정통화 개혁운동가가 지역화폐에 동참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도 필수적이다.

오랜 시간 지역화폐를 연구해 온 입장에서 이 글이 한국의 지역화폐 발전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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