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청 UNRISD 선임연구조정관 "지속가능발전에 사경 비교우위, 체질개선 노력 계속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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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청 UNRISD 선임연구조정관 "지속가능발전에 사경 비교우위, 체질개선 노력 계속해야"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 이일청 선임연구조정관 인터뷰
  • 2020.06.30 15:30
  • by 김정란 기자

그린뉴딜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진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지만, 그간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에 대한 목소리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특히 UN에서는 세계 국가들에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를 달성할 정책 개발과 참여를 꾸준히 독려해왔다. UN사회개발연구소는 개발에 영향을 미치는 최근 문제에 대해 사회적 관점에서 여러 전문분야에 걸친 연구를 하는 유엔 산하기관이다. 이곳에서 10년 넘는 기간 동안 세계 정책 개발을 지켜보고 참여하고 있는 이일청 선임연구조정관에게 세계의 정책 개발 흐름, 우리가 나아가야 할 정책의 올바른 방향에 관해 물었다. 이 조정관이 스위스 연구소에 머무르는 관계로 인터뷰는 서면을 통해 진행됐다. [편집자 주]

▲ 이일청 UN사회개발연구소 선임연구조정관
▲ 이일청 UN사회개발연구소 선임연구조정관

-오랫동안 해외에서 국제개발, 사회정책 등에 관해 일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 일을 시작하셨을 때와 현재의 세계 국제개발, 사회개발 정책 흐름 사이에 다른 점이 있음을 느끼시나요? 차이가 있다면 어떤 점이 가장 뚜렷하게 다른 부분일까요?

제가 처음 국제개발 체계, 이를테면 그 언저리에 발을 담그게 된 것은 2004년경, 말레이시아 말라야 대학교에 재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새천년개발목표를 중심으로 한 개발계획들이 발전도상국에 세워지고 그 실행이 본격화되기 시작하던 시기입니다.

그 이후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 시기에 저는 유엔 사회개발연구소에 합류하였고 2015년 지속가능발전목표가 세워졌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것에 한정한다면 아마 새천년개발목표에서 지속가능발전목표로 변화한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이들 알고 계시다시피, 지속가능발전목표는 단지 개발도상국에 한정되지 않고 선진국에도 적용되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목표입니다. Leaving no one behind를 그 큰 축으로 내세우면서 불평등 감소를 본격화시킨 목표이기도 합니다.

17개 목표와 169개 타겟에서 알 수 있듯이 이때까지 나왔던 그 어떤 목표보다 포괄적인 범위를 가진 목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점이 문서의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는 차이일 것입니다. 현장에서, 그러니까 저의 경우는 국제개발과 협력의 여러 가지 정책 논의과정을 말합니다만,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지금의 시스템, 특히 현재의 경제·사회 시스템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과 삶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에 대한 동의가 이른바 좌우를 넘어 크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떻게 바꾸어야 할 것인가라는 각론에서는 여전히 큰 의견 차이가 보입니다. 하지만 변화에 대한 절박성에 있어서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새천년개발목표가 응급처방의 의미가 강한 계획이었다면 지속가능발전목표는 체질 개선의 절박성을 체현하고 있는 계획이고, 이러한 변화가 현장에서 제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UN에서 이야기해온 '지속가능한 성장' 최근 세계적 흐름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는 그린뉴딜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유사성과 차이점이 있다면 독자들을 위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그린뉴딜 혹은 그린딜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논의들은 환경과 경제의 시너지를 창조한다는 정책의도 측면에서 지속가능한 성장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악마는 항상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어떤 그린 뉴딜인가가 무척 중요할 것 같습니다.

미국 민주당 주도로 통과한 그린뉴딜 안은 구체적 정책이 빠져 있어서 그린뉴딜이 어떤 성장을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 상상하기 무척 힘듭니다. 유럽의 그린딜이 그나마 많은 정책적 아이디어를 포함한 후속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어 참고할 만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럽 그린딜의 경우 지속가능성장을 그 축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속가능발전목표상의 성장은 단지 경제적 생산, 성장뿐만 아니라 분배, 소비, 사회, 거버넌스 등도 성장의 전략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그린뉴딜보다 큰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광범위한 동의를 구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생략한 그린뉴딜, 불평등한 분배구조를 가진 경제체제 속에서의 그린뉴딜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이런 그린뉴딜이 환경과 경제의 시너지는 만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그린뉴딜이 지속가능할까요? 

-현재 세계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공감대는 어느 정도라고 보시나요국내에서는 저출산 등의 문제에 비해 지속가능한 발전이나 기후 위기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아직 안 돼 있다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만일 공감대 형성의 속도가 느리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제 이야기에 바이어스가 있겠지만, 제가 느끼고 경험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국제적인 공감대는 높은 편입니다. 기업, 특히 큰 규모의 기업들의 경우에서 이러한 높은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높은 공감대가 곧 실천을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그리스 속담에 "인간은 고통을 통해 배운다(pathemata mathemata)"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지속가능발전을 해야한다는 절박성을 느끼고 있지만, 지속가능발전을 하지 않아서 고통을 느끼는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실천의 본격화는 아직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고통을 체감하는 이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후변화 영향으로 인해 삶의 터전이 무너지고 있거나 보건 환경 위기를 맞은 사람들을 시작으로 고통을 받는 이들은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의 공감대가 늘어날 때 지속가능발전의 공감대가 실천으로 나타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지구 저 반대쪽에서, 아니면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일어나고 있는 고통에 대해 잘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는지 반문해보면 많은 대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 대통령 기념사에서의 언급, 해외에서의 화제 등으로 그린뉴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린뉴딜이나 지속가능한 발전으로의 전환을 위해 국내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그린뉴딜이나 지속가능한 발전으로의 전환은 중요하지만 그 자체가 목표가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국가정책의 전환은 결국 이해 당사자를 포함한 전 국민들의 이해와 지지, 그리고 실천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정책의 설계와 실천은 어떤 의미에서 모두 시급한 이슈를 다룹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급한 이슈를 다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숙고 과정과 국민들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린뉴딜이 실생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그 변화가 각각의 다양한 계층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이해가 전 국민에게 확산되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논쟁이 벌어져 정책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나라의 뉴딜과 한국의 뉴딜, 다른 나라의 지속가능발전 정책과 한국의 지속가능발전 정책은 그 종착점이 같더라도 경로, 속도, 내용에 있어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최적화된 정책을 만들어내는 첫걸음은 국내의 이해당사자를 포함한 광범위한 토론의 장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린뉴딜이 ' 한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것'이라는 SDGs 가장 중요한 원칙에서 벗어나 일자리, 대규모 사업군의 잔치가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도 있습니다. 박사님 또한 지난 2013 인터뷰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한국 사회의 도약을 가로막고 있다고 이야기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말씀을 하신 2013 당시와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조금 달라졌나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발전을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2013년 이후 불평등 감소를 위해 많은 정책들이 만들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여전히 다양한 형태의 불평등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것도 보도를 통해 접하고 있습니다. 불평등은 많이 감소하지 않았으나, 불평등 감소를 위해 만들어진 정책의 수는 증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 불평등을 주제로 한 논문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불평등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논의와 정책은 없었다고 볼 수도 있는 상태입니다. 정책을 공부하는 사람의 시각에서 본다면 실효성 있는 정책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러한 실효성 있는 정책은 보다 넓은 차원에서의 국가 정책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대통령의 취임사에 많은 분들이 감동하며 환호하였던 것을 기억합니다. 정책이 이런 원칙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만들어지고 있는지 확인해봐야 할 것입니다.

▲ 2018년 국회 시정 연설 중인 문재인 대통령. 이일청 선임연구조정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 속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라는 원칙 속에 정책이 만들어지는지 확인해야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 2018년 국회 시정 연설 중인 문재인 대통령. 이일청 선임연구조정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 속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라는 원칙 속에 정책이 만들어지는지 확인해야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그린뉴딜에서 사회적경제조직 같은 시민주도 경제가 나설 있는 기회가 있을까요? 그런 기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회적경제는 그 정의상 이윤 추구보다는 사회적 목표, 때로는 환경적 목표를 우위에 두는 경제행위와 경제관계를 말합니다. 이러한 사회적경제를 추구하는 조직이라면 환경과 경제의 시너지를 창조하려는 그린뉴딜의 목적에 부합하는 경제행위와 관계를 갖고 있으니 비교우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비교우위를 기반으로 그린뉴딜이나 지속가능성장에서 사회적경제조직이 주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경제조직들의 체계와 체질을 개선하는 더욱 많은 노력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도 현장에서 활동하고 계신 많은 분들이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노력을 기울이시는 많은 부분들, 즉 혁신, 연계, 조직의 재생산 등이 결국 사회적경제조직들이 경제와 환경을 아우르는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게 하는 데 핵심적인 고리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외, 한 가지 우리 연구소의 연구 중 주목할만한 것이 있다면 사회적경제조직의 탈정치적당파성입니다. 사회적경제조직은 그 성격상 반(反) 신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합니다. 허나 이는 정치적당파성과는 다릅니다. 사회적경제조직이 정치적당파성을 가지면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사회적경제조직 자체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면 그 어떤 정책 패러다임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하기 힘들 것입니다. 

-지속가능한 성장, 그린뉴딜, 그린딜 등을 선도적으로 해나가는 국가들이 있다면 어느 국가인지, 어느 정도의 속도를 내고 있는지 사례를 들어주실 있나요?

그린 성장이나 그린 이코노미 등 많은 정책적 수단들이 개발되고 이에 따라 많은 국가들에서 부분적인 성과들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이른바 OECD 국가들에서 많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의 경우는 그 구체적인 정책프레임의 생산면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유러피언 커미션은 2019년 유러피언 그린 딜(the European Green Deal)을 발표하였고 민간시장 영역에서 유러피언 그린딜의 목표와 정책실행을 돕기 위해 지속가능한 투자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의 논의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에는 유러피안 커미션의 '지속가능투자 전문가 그룹'(Technical Expert Group on Sustainable Finance, TEG) 이 "'그린' 에 관한 표준 분류체계"(EU Taxonomy)도 발표하였습니다. 이 체계는 어떤 기업의 활동이 지속가능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최소한의 지침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과연 어떤 투자가 그린 투자인지, 어떤 분류체계와 지수로 이러한 기업들의 노력이 평가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간 경제개발 위주의 정책을 펴왔던 한국 사회가 변화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을까요?

오래전에 한국에서 온 학생들이 저에게 비슷한 질문을 했습니다. 한국 사회에 살지 않고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저로서는 심도 깊은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저의 답변은 단편적이고 비유적이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TV에서 인기를 끌던 "'끝장 토론'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토론이란 상대방의 주장을 깊이 이해하여 자신의 주장을 더욱 정련하게 만들어 공동체가 생산적인 정책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용은 차치하고, '끝장 토론'이라는 타이틀이 내세우고 고무시키는 것은 "승부가 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한번 해보자"라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토론은 무척 퇴행적이고 비생산적인 토론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답한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토론이 진영논리를 더욱 강화시켜 사회의 분열이 가속화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수년이 지난 지금, '끝장 토론'은 없어졌는데 그 문화와 행태는 여전히 곳곳에 남아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와 행태에 열광하는 현상은 더욱 심화된 듯합니다.

이메일이 처음 나왔을 때 학자들은 이메일의 혁신이 경계를 허물고 보다 많은 사람들의 공동체를 이루는 데 기여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이러한 학자들의 나이브한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네트워크에 있는 이들과 더욱 많은 소통을 가지는 데 이메일을 더 많이 이용하였고 네트워크 간의 간극은 더욱 커졌습니다. 소셜미디어가 가진 정보의 확산성에 사람들은 열광했습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 역시 소통과 연대보다는 극단화와 분열의 도구가 되어가는 듯합니다.

현세의 인류는 결국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역사의 산물입니다. 극단화된 갈등과 단절이 인류 역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갈등과 치유, 연대, 소통, 화합의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소통, 연대, 화합, 갈등과 치유에 더욱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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