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메이데이는 130주년이 아니라 134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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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메이데이는 130주년이 아니라 134주년이다
주년과 차수를 둘러싼 한국 노동운동의 소소한 논쟁
  • 2020.05.04 09:00
  • by 한석호 (前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세계 노동절 메이데이를 맞아, 코로나19 위기에서 노동조합과 사회적경제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칼럼을 주문받았다. 선뜻 답하지 못했다. 할 일이 밀려 있었다. 기자의 거듭되는 요청에 손을 들었다. 결국 약속하며 품었던 불안한 예상대로 날짜를 지키지 못했다. 5월 1일을 넘기고 말았다. 아쉬움을 달래는 차원에서, 관련 야사 하나 소개하고 시작할까 한다.

노동운동과 민주노총 일각에는 메이데이 논쟁이 있다. 간혹 목소리 높이는 이도 있으나, 심각한 노선논쟁은 아니다. 메이데이의 주년과 차수를 붙이는 것과 관련된 논란이다. 굳이 명명한다면, 주년-차수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메이데이 발단은 1886년 5월 1일부터 진행된 시카고 노동자 총파업이었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노동을 걸고 며칠간 총파업을 진행했다. 정부와 독점자본은 시위대에 총을 쐈고, 경찰에게 폭탄을 던진 자작극으로 총파업을 파괴했다. 어린 소녀를 포함한 노동자·시민·경찰이 죽고, 노동운동 지도자는 사형당했다. 1889년 파리에서 국제노동단체 제2인터내셔널이 창립되면서, 시카고 투쟁에 연대하고 탄압에 저항하며 사형당한 지도자를 기억한다는 의미로, 해마다 5월 1일 총파업을 감행하기로 결의했다. 그래서 1890년 5월 1일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 나라에서 첫 메이데이 대회가 진행됐다.

▲ 헤이마켓 사건(Haymarket affair) 판화. 헤이마켓 사건은 1886년 5월 4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시의 헤이마켓 광장에서 진행되던 노동시위 와중에 벌어진 폭탄투척 사건으로 노동절의 유래가 되는 중요 사건이다. ⓒ wikipedia
▲ 헤이마켓 사건(Haymarket affair) 판화. 헤이마켓 사건은 1886년 5월 4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시의 헤이마켓 광장에서 진행되던 노동시위 와중에 벌어진 폭탄투척 사건으로 노동절의 유래가 되는 중요 사건이다. ⓒ wikipedia

그 역사가 한국의 메이데이 주년-차수 논쟁의 배경이 된다. 1989년 4월 30일(당시 한국의 노동절은 5월 1일이 아니었다. 한국노총 창립일인 3월 10일이고 명칭은 근로자의 날이었다. 그래서 세계 노동절 전통을 따르려던 노동자·학생·재야 등은 토요일 4월 29일과 일요일 30일에 걸쳐 대회를 진행했다) 연세대에서 열린 메이데이의 제목은 '세계노동절 100주년 기념 한국노동자대회'였다. 메이데이 시초를 메이데이를 결의한 때로 본 거였다. 1989년은 1889년의 100주년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주년을 붙이며 진행했다. 

▲ 세계노동절대회를 봉쇄한 전경에 맞서 연세대를 지키는 노동자 학생들 ⓒ 박용수 작가
▲ 세계노동절대회를 봉쇄한 전경에 맞서 연세대를 지키는 노동자 학생들 ⓒ 박용수 작가
▲ 연세대에서 진행된 세계노동절대회 ⓒ 사진과 함께 보는 노동운동사 '알기'
▲ 연세대에서 진행된 세계노동절대회 ⓒ 사진과 함께 보는 노동운동사 '알기'

그런데 2010년 메이데이 제목은 '120주년 기념 세계노동절 범국민대회'다. 100주년이라 붙인 기준에 따르면 121주년이 돼야 한다. 그 사이, 누군가의 지적과 그에 따른 논란으로 주년에서 숫자 1이 빠진 거였다. 1890년 1차 대회를 기준으로 주년을 붙여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면 1891년부터 주년이 시작하니까 2010년은 120주년이 된다.(오해하지는 말라. 주년의 숫자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 2010년부터라는 의미는 아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 찾아봐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 계산하기 쉽게 2010년을 예로 든 것일 뿐이다. 앞의 1989년과 뒤의 2010년의 예도 마찬가지다) 주년은 일 년을 단위로 돌아오는 돌을 세는 단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꾼 것인데, 혼란은 계속됐다. 1차 대회가 0주년 대회가 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논쟁이 있었다. 주년 때문에 서로 얼굴 붉히지 말고, 차라리 차수를 붙이자는 의견이었다. 1890년의 1차 대회를 기준으로 연속해서 붙이면. 혼란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차수파가 대두한 것이다.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미 상황은 뒤죽박죽, 동일한 대회를 다루는 글에서 차수와 주년을 똑같이 붙이는 상황까지 왔다. 올해의 노동절을 소개하는 많은 글에서도 130주년과 130회를 동시에 쓰는 것을 본다. 

그런 상황 때문이었다. 타협했다. 아니 실은 피곤해서 회피했다. 주년파도 차수파도 진지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이도 아마 숫자 계산하느라 머리 아플 것이다. 노동운동 방향을 둘러싼 거창한 논쟁은 아니지만, 대회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매우 성가신 문제였다. 주년이든 차수든 붙이지 않고, 연도만 붙이게 되었다. 올해는 코로나19 탓에 민주노총이 메이데이 대회를 진행하지 않고 간단한 선언으로 대체했는데, 제목은 '2020 세계노동절 민주노총 선언'이었다. 그렇게 연도만 붙이게 된 지 몇 년 되었다. 

나의 의견이다. 기존의 주년은 모두 잘못된 계산이 아니었을까 싶다. 주년을 붙이려면 1886년 시카고 노동자의 투쟁부터 계산해야 한다. 메이데이의 기원은 시카고 노동자의 총파업이기 때문이다. 메이데이는 대회 결의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메이데이는 시카고 노동자 투쟁을 기념하며 연대를 되새기는 날이다. 그래서 굳이 주년을 붙인다면, 올해는 메이데이 134주년이다. 그것이 마땅치 않다면 차수를 붙이고, 그러면 올해는 131차 메이데이여야 한다. 그래야 1차 대회로부터의 연속성이 있다. 

쓰려고 했던 본론은 이것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길어졌다. 언젠가 한 번 소개하려던 논란이기에, 이왕 시작한 것 라이프인을 통해 남긴다. 그러다 보니 정작 써야 할 내용을 놓치고 말았다. 별수 없다. 한 번의 칼럼에 긴 내용을 쓰는 것도 실례이고, 뒤에 예정된 일정이 있어서 본론은 미룬다. 코로나19 위기에서 노동조합과 사회적경제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는 다음 글로 미룬다. 기자에게 약속한다. 시간 끌지 않고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써서 보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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