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를 계기로 '지역화폐+기본소득' 모델을 상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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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를 계기로 '지역화폐+기본소득' 모델을 상상하다
  • 2020.04.23 13:57
  • by 조성찬 박사 (하나누리 동북아연구원)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우리가 알던 세상은 끝났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여기에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도 포함된다. 그는 특히 기본소득 실험이 보편화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미국은 물론 스페인, 캐나다, 일본과 한국 등 여러 국가들이 일명 '재난기본소득'(엄밀히는 '긴급재난지원금')을 실시할 것을 밝혔다.

그런데 한국과 다른 나라들 사이에 특별한 차이점이 보인다. 한국은 중앙정부가 지급하는 재난기본소득을 '지역화폐', 즉 지방정부가 발행하는 화폐 형태로 지급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소득 70% 이하의 4인 가구 기준 100만원을 지급하되, 이를 지방정부가 활용하고 있는 상품권이나 전자화폐(모바일, 체크카드)로 지급할 계획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지역화폐 발행 지자체 수는 199곳으로 늘어나며, 발행규모 총액도 10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지급대상과 액수는 여당과 야당 및 정부간 뜨거운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중앙정부가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밝히자, 미래통합당 심재철 원내대표가 "헬리콥터 현금살포식 무작정 예산은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3월 15일). 그의 입장 표현에 '헬리콥터'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온다. "아니 이분이 소설을 많이 읽으셨나, 왜 기본소득 이야기하다가 헬리콥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이다. 그런데 이 표현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통화주의자 밀턴 프리드먼이 1930년대 경제공황 때부터 사용하던 표현으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1회성으로 중앙은행이 직접 돈을 찍어내 시민들에게 지급하자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이다. 국민에게 직접 돈을 주기 때문에 '민중을 위한 양적 완화'( QE(quantitative easing) for people) 또는 MMT(Modern Monetary Theory)로도 불린다. 

심재철 원내대표의 발언을 예견했는지,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미 2019년에 경기도에서 진행된 국제 기본소득 컨퍼런스에서, "헬리콥터 머니는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하여 직접 민간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진정한 기본소득이 아니다. 진정한 기본소득은 공동의 자산(Commons)으로부터 생겨나는 공동의 이익을 모두가 공평하게 나누자는 것으로, 경제의 지속 성장을 가능하게 하고, 경기 침체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경제 정책"이라고 밝혔다.

▲ 2019년 4월 29일 열린 '제1회 경기도 기본소득 국제 컨퍼런스'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연설하고 있는 장면 ⓒ 경기도
▲ 2019년 4월 29일 열린 '제1회 경기도 기본소득 국제 컨퍼런스'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연설하고 있는 장면 ⓒ 경기도

그가 성남시장으로 재직했을 때 기본소득 원리에 기초해서 청년배당 정책을 성공적으로 실시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 21대 총선에서 갑자기 등장한 기본소득당도 그 재원으로 시민세, 탄소세, 토지보유세를 주장하고 있다. 정리하면, 기본소득도 중요하지만 그 재원이 되는 커먼즈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지역화폐'인가? 

그 이유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돈의 본성에 대해 알아야 한다. 미국에서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되자, 로버트 기요사키는 달러가 '가짜 돈'이라고 비판하면서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금과 은, 비트코인에 투자하라고 조언했다. 전 세계의 기축통화인 달러의 역사는 돈의 본성에 대해 중요한 힌트를 담고 있다. 화폐의 역사를 잠깐 들여다보자. 처음에는 소금과 쌀 같은 사용가치를 갖는 물건들이 화폐의 역할을 감당했다. 중세시대에는 금은동 주화가 화폐의 역할을 감당했다.


그러다가 1694년 영국이 전쟁을 수행하면서 돈이 궁해지던 당시, "한 나라의 통화를 발행하고 통제하는 게 내게 허락된다면, 나는 누가 법률을 만들어도 개의치 않겠다."는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1744-1812)의 이야기가 암시하듯, 화폐발행권이 국가에서 민간으로 넘어갔다. 이 사건이 의미하는 바는, 민간이 화폐를 발행하면 이자수익을 향유할 수 있는 특권을 국가가 허가해 주겠다는 것이다. 이게 영국 영란은행의 시작이다.

이러한 금융구조는 그대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로 이어졌다. 이후, 금은 본위제에 기초한 은행권(종이) 제도로 발전하다가, 1930년대 대공황의 여파로 19세기 이후 유지되어 온 국제 금본위제가 붕괴되면서, 1944년 7월 1일 기축통화인 달러만 금과 연결하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발표되었다. 금 1온스당 35달러의 교환비율을 갖는 금태환 방식이었다. 이후 1971년 8월 15일 미국 닉슨 대통령이 TV담화를 통해 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지 않는다고 공표하면서 브레튼우즈 체제는 붕괴했다.

오늘날의 달러는 더 이상 금과 연결되지 않는다. 대신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본원화폐와, 민간은행이 발행하는 신용화폐(사실은 부채화폐)가 결합된 시스템이다. 그리고 통화량(M2)의 대부분은 신용화폐다. 시중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돈이 부채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화폐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민간 금융권은 과거 금본위제 시절보다 더 많은 신용화폐를 발행하여 막대한 이자수익을 향유하고 있다.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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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화폐시스템이 갖는 문제는 참으로 심각하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강제한다는 것이다. 소설 '모모'의 저자인 미하일 엔데는 신용화폐의 무분별한 확대 공급으로 인해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강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러시아 바이칼호 고기잡이배' 사례로 설명한다(미하엘 엔데, 2010).

이 외에도 물가상승 문제, 국가와 기업 및 가계부채 문제, 금융 불안정 및 경제위기 초래, 자산 디플레이션과 경기침체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결국 경제의 기초에서, 토지 불로소득을 사유화하여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고 서민들이 가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구조가 작동하고(토지 매트릭스), 경제의 최상층에서는 강제된 성장 메커니즘이 정부나 기업 및 가계가 영원히 갚을 수 없는 부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구조(금융 매트릭스)가 작동하여, 한 경제체를 '토지+금융 매트릭스'의 늪에 빠지도록 한다. 이러한 매트릭스는, 괴테의 말대로, 우리 스스로를 자유인이라고 믿도록 하는 노예의 삶으로 전락시킨다(조성찬, 2012).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위에서 언급한 매트릭스를 해체하는 일이다. 이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가 오늘날 잊혀진 사상가인 실비오 게젤(1862~1930)이다. 그는 신용화폐의 이자시스템을 비판하고, 감가화폐, 즉 노화하는 돈을 주장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돈의 가치가 줄어들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가해야 하는 핵심 논리는 다음과 같다. 그 어떤 물질적 부도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해 필연적으로 사라지기 때문에 교환수단인 화폐 역시 가치가 줄어들어야 한다.

그런데 화폐의 가치가 줄어들지 않으면, 돈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 불평등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은 스탬프 화폐라는 형식을 통해 감가하도록 설계하여, 1930년대 대공황 시기 독일의 슈바넨키르헨과, 오스트리아의 뵈르글에서 지방정부가 발행하는 지역화폐로 도입되어 경제가 회복하는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국정화폐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얼마 가지 않아 폐지되었다. 그의 이론과 실험은 오늘날 다양한 형태의 대안화폐 운동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 뵈르글에서 발행한 지역화폐 ⓒ 위키피디아
▲ 뵈르글에서 발행한 지역화폐 ⓒ 위키피디아

이처럼 지역화폐의 뿌리는 기본소득과 결합되기 이전부터 대안화폐의 흐름 속에서 의미있게 전개되어 왔다. 그러다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계기로 급부상하게 된 것이다. 사실 성남시가 추진한 청년배당도 지역화폐와 기본소득이 결합한 방식이다. 최근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지역화폐+기본소득' 구조를 정리하면, 지역화폐는 기본적으로 국가 법정화폐를 기초로 발행된다. 그리고 지역상품권(종이)이나 전자화폐(모바일, 체크카드) 형식으로 지급된다. 기본소득으로 지급되는 지역화폐는 일정 사용기한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좀 과격하기는 하지만, 감가화폐 기능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상당히 발전된 방식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돈의 본성이라는 문제의식에서 볼 때, 신용화폐의 결함을 극복하면서 행정구역 단위의 민관협력 대안화폐 시스템을 구축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커먼즈를 재원으로 하고, 신용화폐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지역화폐 시스템을 구축하여 기본소득 형태로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 경기도형 '재난기본소득'은 3개월 후 소멸하는 지역화폐로 지급된다. ⓒ 경기도
▲ 경기도형 '재난기본소득'은 3개월 후 소멸하는 지역화폐로 지급된다. ⓒ 경기도

이제 앞에서 설명한 화폐에 대한 문제의식과 방향성에 기초하여 보다 발전된 '지역화폐+기본소득' 모델을 생각해 보자. 우선 재원확보가 중요하다. 이는 정부 예산(기금) 및 토지 관련 재원(재산세 증세, 공유자원세 신설, 종합부동산세 강화 또는 국토보유세 신설(전강수, 2017)로 지방교부금 확대, 재건축초과이익부담금, 국공유자산 임대소득 확대)을 통해 확보한다.

그리고 법정화폐와 교환비율 1:1의 지역화폐를 발행한다. 여기에 더해 지방정부는 사회신용 및 사회적 기여를 기초로 지역화폐를 추가로 발행할 수 있다. 지역화폐의 발행과 기본소득 지급 및 운영은 민간 상업은행이 아닌 지자체와 지역공공은행(신설)이 감당한다. 화폐발행권을 민간에서 공공으로 가져온다는 의미에서 지역공공은행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렇게 지역화폐가 발행되면 다음 단계로, 개인은 자신의 경제적 상황에 맞추어 일정 주기로 기본소득을 지급받는 방식과 생존권보험 방식(김윤상, 2013)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생존권보험 방식은 가구 소득이 현저하게 줄어들었을 경우 보험금처럼 받는 방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다음으로, 지역화폐의 구조와 사용에 대해 생각해보자. 기본적으로 전자화폐 형식으로 발행되는 지역화폐는 가령 매월 1%씩 감가하도록 설계하여 소비를 촉진할 수 있다. 지역화폐를 지급받는 개인은 지역 가맹점에서 지역화폐를 소비한다. 지역화폐의 사용범위 확대 및 신뢰 제고를 위해 지방세와 지방정부 소유 부동산 임대료도 지역화폐로 납부한다. 지방정부는 기본소득 지급 외에도 지방정부 공공경제와 관련하여 지출이 필요한 경우에도 법정화폐와 지역화폐를 일정 비율로 지급할 수 있다.

가령 공무원들은 법정화폐와 지역화폐 비율이 60:40으로 월급을 받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역 내에 지역화폐를 공급하는 경로를 다양화할 수 있다. 법정화폐를 지역화폐로 환전할 때는 인센티브를 부여하며, 그 반대의 경우는 환전을 최소화하여 지역 가치가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을 억제한다. 이렇게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기본소득은 시민들이 거부할 이유가 없다. 다만 사용처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토지보유세 인상으로 인한 토지 불로소득 환수, 신용화폐 한계 극복, 지역경제 활성화 추구가 동시에 가능하다. 

▲ 영국 브리스톨에서는 시장과 공무원의 월급 일부를 지역화폐 ‘브리스틀파운드’로 받는다. 주민들과 기업은 버스와 기차 요금부터 에너지 요금, 지방세까지도 지역화폐로 납부가 가능하다. 지역 신용협동조합(신협)에 전용 계좌를 개설이 가능하며 가맹점들은 신협을 통해 브리스틀파운드를 파운드로 교환할 수 있다. ⓒ 브리스톨파운드
▲ 영국 브리스톨에서는 시장과 공무원의 월급 일부를 지역화폐 ‘브리스틀파운드’로 받는다. 주민들과 기업은 버스와 기차 요금부터 에너지 요금, 지방세까지도 지역화폐로 납부가 가능하다. 지역 신용협동조합(신협)에 전용 계좌를 개설이 가능하며 가맹점들은 신협을 통해 브리스틀파운드를 파운드로 교환할 수 있다. ⓒ 브리스톨파운드

본고는 우리 사회가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토지문제와 신용화폐 문제를 출발점으로 하여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지역화폐와 기본소득이 결합되는 모델을 생각해 보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촉발된 재난기본소득이 1회성으로 멈추지 않고 새로운 플랫폼으로 발전하여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면, 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안겨준 뜻밖의 선물로 인해 새로운 사회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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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찬 박사 (하나누리 동북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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