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곡역
상태바
역곡역
  • 2018.01.29 13:33
  • by 양영희 시민기자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내겐 잊혀지지 않는 밥상이 있다.
아주 오래전 원주 선배님 댁에 하룻밤 머문 적이 있었다. 서울에서 여주로 출퇴근하며 근무하던 때였다. 직원여행으로 강원도에 다녀온 후 시간이 늦어져서 서울까지 갈 수 없어 엄마 같은 선배님 댁으로 가게 된 것이다. 우린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전날 늦은 밤까지 술을 마셔서 일어나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다정하게 깨운 선배님을 따라 부엌으로 가니 식탁에 따뜻한 밥상이 차려져있었다. 나는 너무도 감동했다. 똑같이 피곤했을텐데 후배를 위해 새벽부터 아침을 준비하셨을 그 마음에 코끝이 찡해졌다. 그 따순 밥과 국물이 오래 잊혀지지 않아 나는 원주 쪽만 지나가도 그 밥상과 선배님을 떠올렸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밥상을 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었다. 그러나 내겐 영 그런 재주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식사 준비하는 일이 가장 어렵고 서툰 일이니 아예 글러먹은 일인지도 모른다.

독하게 추운 날이 계속되고 있다. 학교를 그만두고 맘껏 살고자 했다. 그러나 확보된 시간만으로 인생이 제대로 펼쳐지진 않았다. 긴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를 나를 위해 쓰는 연습도 되지 않았다. 기웃거리는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고민과 우울감도 함께 커지고 있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줄줄이 나를 찾아온 건 몸의 징후들이다. 건강검진 결과도 경고 투성이어서 요며칠은 병원 순례하는 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날이 추운 것보다 부모님처럼, 사는 일이 병원과 약타는 일로만 가득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울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어제는 병원을 다녀오는 길에 구두 굽을 갈려고 역곡역 버스정류장에 있는 구두 수선하는 곳엘 들어갔다. 오랫동안 역곡역을 다녔으면서도 평소엔 그곳에 수선집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쳤었다.
 
그동안은 신발을 매장에 맡겨 수선을 했기에 수선하시는 분을 만나지 못했고 그분들이 작업하는 과정을 볼 수도 없었다. 오랜만에 작은 컨테이너 안에서 신발을 벗고 손님을 위한 의자에 앉아 수선공이 하시는 일을 보게 됐다. 그 분은 맨 손으로 본드와 약품을 만지고 구두에 바르며 최선을 다해 낡은 내 구두를 손봤다. 굽을 교체하고 구두를 닦고 광을 내는 그 모든 일을 맨손으로 하셨다. 나는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나의 모든 동선을 함께 한 신발을 “애 썼다, 애 썼다”하며, 손으로 어루만져 주는 듯 느껴졌다. 한 참을 공을 들여 반짝반짝 해진 구두를 두 손을 내미는데 나는 마치 ‘잘 차려진 밥상’을 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귀한 대접을 받는 기분’은 병원에 다니며 가졌던 우울감을 사라지게 했다. 참 고맙고 따뜻한 손길이라 생각했다. 사람은 이렇게 곳곳에서 온기를 전하고 사는구나 싶었다. 매서운 추위애도 나는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역곡역에 가면 나는 바라볼 곳이 생겼다.

라이프인 열린인터뷰 독점기사는 후원독자만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분들은 로그인을 하시면 독점기사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가 아닌 분들은 이번 기회에 라이프인에 후원을 해보세요.
독립언론을 함께 만드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영희 시민기자
양영희 시민기자
중요기사
인기기사
  • (07317)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등포로62길 1, 1층
  • 제호 : 라이프인
  • 법인명 : 라이프인 사회적협동조합
  • 사업자등록번호 : 544-82-00132
  • 대표자 : 김찬호
  • 대표메일 : lifein7070@gmail.com
  • 대표전화 : 070-4705-7070
  • 팩스 : 070-4705-7077
  • 등록번호 : 서울 아 04445
  • 등록일 : 2017-04-03
  • 발행일 : 2017-04-24
  • 발행인 : 김찬호
  • 편집인 : 이진백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소연
  • 라이프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라이프인.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