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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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시간여행
  • 2018.01.22 18:03
  • by 양영희 시민기자

100년만의 추위라던 독한 날들이 지나더니 미세먼지와 안개가 만나 종일 뿌연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숲에 갇혀 지내는 날들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눈이라도 내리면 아예 마을을 벗어나기도 힘든 환경이 심리적 우울감을 높여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며칠 안 나가면 되지’라고 말을 하지만 ‘길이 끝나버린 느낌’이 나는 싫다. ‘갇혔다’거나 ‘닫혔다’는 상황을 유난히 싫어하는 내게 숲속의 겨울나기는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이곳은 새소리, 바람소리밖에 지나는 것이 없다. 누가 귀촌을 꿈꾼다고 한다면 난 마을을 벗어나지 말고 살라고 조언하고 싶다. 마을에서 떨어져 시끄러운 세상과 단절하고 주변의 경치를 모두 홀로 즐기겠다던 욕심은 심한 고독과 엄청나게 힘든 눈치우기, 택배기사님들의 수고 등을 담보로 가능한 생활이란 걸 알려주고 싶다. 더 멀리 오르내리며 드는 에너지 소모 또한 옳은 선택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며칠 전 ‘착한마을여행’에 동행하러 읍으로 나가다 동네 어르신을 만났었다. 그 분의 얼굴엔 익숙한 외로움이 가득했다. 누구와도 말할 상대가 없을 때의 무료함과 긴 잉여의 시간들이 가져다준 생기 없음을 나는 쉽게 눈치 챘다. 단 몇 분이라도 차를 세우고 말동무가 돼 드렸다. 어르신도 내게 말씀하신다.
  “심심하지? 암만 심심하고 말고, 내가 그 맘 알지”

짧은 동병상련의 마음을 나누고 ‘착한 마을여행’에 합류했다. 괴산 마을교육공동체 ‘어울림’에서 진행하는 한달간 매주 화요일에 가는 마을여행이 있는 날이다. 1월 16일엔 ‘공림사와 견훤산성’탐방이 계획되어 있었다.

낙영산 공림사는 절에 올랐을 때 보이는 절경이 빼어나면서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분위기가 좋아 몇 번 가본 적이 있었다. 아침 일찍 만난 일행과 청천을 지나 공림사로 가는 길은 아직 남아있는 숲의 잔설과 얼어있는 냇가의 풍경이 어우러져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마치 ‘겨울풍경은 이런 거야’라고 말하듯 어린 시절 보았던 겨울 모습과 느낌들이 곳곳에 펼쳐졌다. 공림사에 도착하자 스님의 염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고요한 산속에 홀로 염불 드리는 스님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공림사에는 10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있다. 임진왜란 때 불 탄 절은 6.25 전쟁 때 빨치산토벌작전 명목으로 다시 전소되는 일을 겪은 후, 1981년에 진공당 탄성종사의 노력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그 모든 역사를 다 본 것은 천년의 느티나무일 것이다. 소나무 숲이 예쁜 절의 뒤쪽 숲으로 가면 수목장이 몇 군데 있고 한 구석에 오래된 부조가 한개 있다. 어느 스님인지 이름도, 일대기도 다 지워지고 이끼만 가득 오른 부도가 맘에 들었다. 우리도 언젠가는 저렇게 이끼만 남게 될까? 내가 누군지,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중요하지 않을 순간은 누구에게나 이미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공림사에서 바라본 백악산과 속리산 능선은 공림사를 다시 찾게 만드는 절경이다. 하얀 눈을 품은 산줄기들이 자꾸만 시선을 거두지 못하게 했다.

700미터라는 말에 쉽게 도착할거라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출발부터 계속되는 급경사의 오르막길은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겨울이라 사람들이 드나든 흔적이 거의 없다. 아직 눈이 남아있고 그 아래 갈색 솔잎들이 사그락 거린다. 몇 번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오르길 반복하니 드디어 산성이 눈앞에 나타났다. 문장대 가는 길에 견훤산성 표지판을 보며 그냥 지나쳤던 그곳에 오늘은 착한 여행에 함께 한 사람들과 올랐다. 후백제 시절 병사들은 이 길을 어떤 마음으로 올랐을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 그 많은 돌들은 어디서 구해서 산성을 쌓고 먹거리를 구해왔을까? 상주시 장바위산 꼭대기를 에워싼 견훤산성은 정말 높고 튼튼했다. 성의 중앙에는 우물의 흔적도 있었다. 어떤 갈급함이 이 곳까지 그들을 오게 했을까? 그 시절 아와 적의 구분이 백성들에겐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권력은 진정 누굴 위한 것이었을까? 1500년 전 병사들이 서 있던 망루에 올라 그들이 품었을 마음들을 생각해봤다.

견훤산성의 묘미는 산성 위에서 보는 속리산 능선이다. 문장대를 비롯한 속리산 능선이 겨울에도 꼿꼿한 자세로 우람하게 서 있다. 골짜기 마다 하얀 잔설이 있어 겨울 아니면 볼 수 없는 절경을 뽐내고 있었다. 자신들의 시선에서 기록되지 못하고 사라진 패자의 흔적인 견훤산성을 오르고 돌며 ‘흐르는 것들’을 생각했다. 공림사와 견훤산성, 천년의 시간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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