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림, 느리더라도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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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 느리더라도 '천천히'
[사회적경제 쨈있는 인터뷰(17)] 한살림 곽금순 연합회장 신년기획인터뷰
  • 2018.01.17 08:31
  • by 강찬호 기자
곽금순 한살림 연합회 회장은 임기 중에 30주년을 맞이했고, 올해 32주년을 맞는다. 새로운 비전을 준비해 발표할 계획이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한다. 느리더라도 제대로 가는 길을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의 맏형, 큰언니는 한살림이다. 2016년 30주년을 맞이했고, 올해 32주년을 맞는다. 역사도 가장 오래됐고, 조합원 규모도 62만명으로 가장 크다. 오래된 전통과 규모는 자칫 변화에 둔감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보기 나름이고, 해석하기 나름이다. 전통을 유지하면서 원칙과 철학을 지키는 소신일 수 있기 때문이다. 판단은 조합원, 소비자, 그리고 독자 등 '누구나'의 몫이다. 한살림은 30주년이라는 큰 획을 지나왔음에도, 그럴듯하게 보이는 '30주년 비전'을 대외적으로 선포하지 않았다고 한다.
 
"변화를 모색하고 30주년 비전을 선포하려고 했으나,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임박해서 준비하려고 하다보니 겹치는 것도 많고...2017년 총회에서도 못하고, 이번 2018년 총회에서 간단하게 비전을 발표하려고 한다."  곽금순 한살림연합회 회장의 일성이다.
 
이 말 속에서 한살림의 어떤 문화, 조직문화를 읽는다는 것은 과장일까. 1월11일 곽금순 회장과 진행한 신년인터뷰에서 받은 인상은, 곽금순 회장에 대해, 그리고 한살림의 문화에 대해 그렇게 읽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맞던 틀리던.
 
"3월7일경 총회를 예정하고 있다. 비전 선포보다는 내용이 우선돼야 하는데, 내용이 충분치 않아서 고민해왔다. 지난해 조직개편 논의도 진행했다. 조직개편은 변화를 주는 것인데, 지역조합에 대한 우려도 있고해서 천천히 가기로 했다. 조직개편 하더라도 적용은 천천히 해갈 것이다. 한살림은 뭐든지 급작스럽게 안한다. 한살림 연합 안에 생산자, 지역 등 다 들어와 있다. 의사결정 느리고, 너무 느리다. 자율적이며 통합적으로 가는 방식을 존중한다."
 
30주년 비전 선포하더라도 천천히 갈 것이다
  
한살림 내부에서 충분하게 논의되고, 구성원들 간에 합의되지 않는다면 쉽게 '결론'으로 삼고추진하지 않는다. 한살림의 운영의 원리, 조직문화로 읽혔다. '천천히'의 문화라고 하면 적절할까.
 
예를 들어 이렇다. 새로운 비전을 갖고 조직개편의 변화를 모색하는 경우, 사업부문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지난해 서울시 공공급식에 참여해 논의하고 있다. 공공급식은 사업 보다는 활동의 성격으로 보고, 돈 버는 것과 무관하게 오랫동안 해온 단체급식과 연계해 공공급식 시스템을 안착시키기 위해 참여하는 경우이다. 이미 해오던 생협 사업을 지속하고, 여기에  공공급식을 더하는 정도이다. 나머지는 천천히 논의해가는 방식이다.
 
한살림은 외부 보다는 내부의 의사를 존중한다. "의사결정도 표결보다는 만장일치로 결정한다. 표결을 안 하니 의사결정의 어려움이 있지만, 새로운 일을 결정할 때 합의문화, 동력을 만들어 내는 것에 초점을 둔다. 한살림 조직의 문화이다. 이런 한살림 문화를 놓고 외부자의 시선에서 보면 '너 네는 왜 그래. 너희들끼리만 좋으면 돼'하는 반응도 있다. 힘들기도 하지만, 우리가 가진 원칙을 훼손하면서 연대할 수도 없다. 코드, 속도가 안 맞는 문제는 안타깝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살림이 주력하는 활동들은 어떨까? "한살림은 과거 '밥운동'을 통해 도시와 농촌을 살리고, 서로 상생하고자 했다면, 현재의 밥운동은 '사회를 향한 밥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고, 이것이 큰 틀에서의 비전이다. 이 속에서 농업, GMO 반대, GAP(농산물우수관리제도) 대책 활동을 펼쳐갈 계획이다. 친환경 농업을 확장하는 문제도 있고, 학교급식도 친환경으로 전환되었지만 급식법 안에는 친환경, GAP이 다 포함돼 있다. GAP의 경우 제초제 사용, GMO를 허용하고 있어 이 문제를 대응해가야 한다."
 
한살림은 지난해 새롭게 추진한 사업이 있다. 파키스탄 지역에 헌옷을 모아 보내는 사업을 일본 민중기금 단체를 통해 진행했는데, 한 달 만에 85톤이 모아질 정도로 조합원들의 참여 열기가 높았다. 이러한 열기는 일본 민중기금 단체에서도 놀랄 정도의 참여였다. 보내진 헌옷은 파키스탄 헌옷 시장에서 되팔려 수익을 내고 그 수익은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파키스탄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만드는 일에 사용됐다. 한살림은 여세를 몰아 올해도 이 사업을 지속해 갈 계획이다.
한살림은 햇빛발전소협동조합 에너지 사업도 지속해 갈 계획이다. 햇빛발전을 통해 조성된 기금은 생산지에 지붕패널을 설치하는데 지원되고 있다. 지난 3년간 동결된 쌀값이 올해도 동결됐다. 80킬로에 32만원선으로 시중 보다 높은 가격이다. 매년 쌀 생산도 늘려야 하고, 가격도 적정하게 유지하면서 농업과 쌀 지키는 운동을 해가야 하는데, 매년 쌀 가격을 정하는 쌀값결정회의에서는 진풍경이 반복된다. 쌀 생산자는 가격 동결에 감사하고, 조합원들은 올려야 한다며 쌀 생산자를 걱정한다. 십 년째 서로 걱정하는 회의로 진행되어 왔다. 대략적인 한살림 사업들의 흐름이다.
 
올해 한살림이 새로운 비전을 발표하는 해라면, 곽금순 회장에게는 연합회장 임기를 마무리하는 해이다. 2년 임기 연임을 통해 올해가 4년째다. 회장 임기 중에 30주년을 맞이했고, 올해 비전을 발표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제가 맡는 시기가 획을 긋는 시기여서 힘들지만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그동안 보람도 너무 많다. 중요하게 한 것도 많지만, 늘 사람에 집중하려고 한다. 외부적인 것에서 찾기 보다는 사람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기쁨이 가장 크다. 이사장, 연합회장에 대해서도 생각한 것도 아닌데 하다보니 그리 됐다. 늘, '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지만 '하던대로 열심히 하자'가 결론이다."
 
사람들 성장하는 모습 지켜보는 것이 보람...솔직하게 드러내고 소통하는 것 중요
 
곽 회장은 일반 조합원으로 시작해, 연합회 회장을 맡은 경우이다. 지역 조합에서 마을모임을 이끌면서 함께 했다. 아파트에서 조합 모임을 하다가, 도봉 지부를 만들어 지부장이 됐다. 광역화되면서 북부 지부장을 맡았고, 이어 서울지부장, 그리고 연합회장을 순차적으로 맡았다. 그래서 연합회 활동을 하더라도 생각의 눈 높이는 지역, 조합원에서 출발한다.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늘 생각이 지역에서부터 출발한다. 협동사회연대회의를 가건, 전국생협협의회를 가던 조합원을 기반으로 하는 문제제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다른 이들이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중요하기에 '나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심정이다. 다른 이들도 힘들겠지만, 나도 힘들다.(웃음)"
 
그렇다면, 조합원에서 출발해 60만 조합원의 리더로 활동하는 곽 회장은 어떤 마음가짐, 원칙을 가지고 임하고 있는 것일까. 특별한 비결이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느끼고 동의되는 것, 마음 움직이는 것은 비슷할 것이다. 늘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일상 활동에서도 그렇다. 보기에는, 대표 같지 않은 대표로 보일 수도 있다. 미사여구 보다는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편이다. '폼 나지 않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겉치례를 싫어하는 편이다. 핵심은 신뢰일 것이다." 
 
그러면서 한살림에 대한 자랑을 이어간다. "한살림 조합원들이 진정성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고 있다. 이런 조직이 또 있을까 싶다. 자랑 같지만 사실이다. 저 나이에, 저 위치에서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순수하다. 서투를 수 있지만, 진정성은 의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활동가들이 버티고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진정성, 믿음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과도한 자랑이지만, 사실이다.(웃음) 이사회 하면서도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지만, 결국 한살림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사회는 하루 종일 한다. 하루를 비운다. 종일 진행하는 것은 믿음이 있어서다. 지치지 않고 한다."
 
지난해 디디티 파동에도 조합원 늘어나는 결속력, 대응력 보여줘
 
한살림은 지난해 한 차례 논란의 복판에 서기도 했다. 계란 농가에서 디디티(DDT)가 검출됐기 때문이다. 조합원들도 충격에 빠졌고, 조합원들과 주변에서 안타깝게 지켜봤다. 가장 힘든 것은 생산 농가 당사자였다. 언론의 비판적 보도가 이어졌고, 일각에서는 과도한 생산자 죽이기라는 시각도 제기됐다. 폭풍은 지나갔고, 두 곳의 생산농가가 직접 피해를 겪었다. 이 시기 한살림은 위기 속에서도 조합원이 증가하는 '힘'을 보여주었다. 조합원들이 한살림 지키기에 나섰다. 곽 회장도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솔직하게 대응하고 진실의 힘을 믿는 것을 선택했다.

"디디티 사건은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디디티 보고 받고, 처음에는 농약 친 것인가 걱정도 들었지만, 설명 듣고보니 아무것도 안 한 것이었다. 늘 조합원의 관점에서 생각한다. '내가 걱정이 없으니, 조합원들도 걱정 없을 것이다.' 실무자들은 걱정이 있었다. 다만, 소통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했고, 몇 단계 거치면서 소통 열심히 했다. 이 일을 겪으면서 조합원이 늘었다. 역시 한살림이야 하는 답이었다. 진실하면 답은 오는 것이다. 진실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뷰 후반, 가벼운 질문도 해보고, 혹 무거울 수 있는 질문도 했다. 곽 회장은 무엇이든 질문해달라고 요구했다.
 
지난해 생협 대표단들이 청와대를 방문해, 김정숙 여사와 만났다. 화기애애한 장면이 방송 등 언론매체를 통해 전달됐다.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는 모습도 소개됐다. 이 모임을 주선한 것은 곽 회장이었다. 생협협의회 대표를 맡고 있는 지난해, "김정숙 여사님을 만나 편하게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해보자"고 제안했다.

"우리 사회가 '매식문화'인데, 요리하는 게 얼마나 중요하지 알려주고 싶었다. 요리하지 않으면 원재료의 중요성을 모른다. 생협 차원에서 요리 수업을 많이 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여사님도 요리 좋아하고, 잘 하시더라. 깜짝쇼로 청와대 간식하는 여사님 모습 보여주는 것 좋다고 생각한다. 솔직하게 생활하시는 분이어서, 여사님과 생협 대표단들과 대화도 국민들에게 좋게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협 대표단과 김정숙 여사와 만남 주선...생협 간 협동과 경쟁은?...각 생협의 정체성 유지하는 것이 필요
 
이어 조금은 곤란한(?) 질문. '생협끼리 협동이 안 된다는 일부의 지적도 있는데?'  
"색깔들이 강해서, 원칙들을 고수해서 그러는 것 같다. 생협전국협의회도 만장일치가 안 되면 추진하지 않는다. 룰이다. 지난해 생협 소관 부서를 공정위에서 기획재정부로 옮기기로 했지만, 국회에서 막판에 제윤경 의원이 반대해 안 되고 있다. 대표자회의는 연 4회 하고 있다. 실무자 회의인 운영위는 매달 하고 있다." 
 
'생협간 경쟁과 협동'에 대해 다시 질문했다. 
"서로 잘 인정하고 가는 것이 기본이다. 그럼에도 어려운 점은 있는 것 같다. 매장 늘려서 매출 올리는 것이 모든 생협의 현안인 상황이다. 그렇다면 물품으로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정체성이다. 물품을 만들 때, 조합원들의 의사를 잘 전달하는 물품이어야 한다. 우리는 생협이므로 조합원들이 원하는 물품을 만들어야 하고."
 
이어, 생협이 어떻게 갔으면 좋은지에 대한 질문도 했다.
"각 생협의 정체성이 명확한 것 같다. 사업, 정체성을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유성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색깔이 달라야 조합원의 선택권이 보장된다. 자기 색깔을 내고 유지되었으면 한다. 한살림은 이름 안에 '함께, 세상, 우주, 살림 등등' 본질을 담고 있다. 출발 당시 운동은 생각을 전환하는 엄청난 운동이었다. 지금은 일반화된 용어로 사용되고 있어 안타까운 측면도 있다. 고귀한 단어인데. 그것의 본래 의미를 잘 담아 내는 것이 목표이다. 더불어 함께 잘 사는 것이 목표인데, 쉽지는 않더라."
 
연초 바쁜 때임에도 곽금순 회장은 넉넉하게 시간을 내어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라이프인은 주요 생협의 연합회장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올해 계획과 생협 내 이슈들에 대한 생각을 소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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