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민주주의' 행동대장, 지방분권 개헌에 뛰어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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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민주주의' 행동대장, 지방분권 개헌에 뛰어든 이유
[라이프인 신년기획 인터뷰(2)] 김영배 성북구청장
  • 2018.01.18 11:51
  • by 공정경 기자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성북구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의 최저임금과 고용보장을 자치적으로 실현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북구의 구정을 어떻게 펼쳐가야 할지 영감을 얻었다.  그리고 마을민주주의를 시대적 과제로 삼았다.

새가 무리 지어 날 때 가장 힘든 자리는 우두머리 자리다. V자의 제일 뾰족하고 가장 낮은 자리. 우두머리는 바람의 저항을 가르고 길을 열어야 한다. 한국 사회적경제와 풀뿌리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는 길 선두에 성북구가 있다. 성북구는 사회적경제 사관학교라고 불리고, 지난 7년 동안 ‘전국 최초’ 타이틀이 붙은 성과만 31개다. 전국 최초로 사회적경제팀을 신설하고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창립을 주도했다.

전국 최초를 몇 가지 열거해 본다. 사회적기업 허브센터 조성, 사회적경제 제품 우선구매 조례 제정, 생활임금 도입, 보건복지통합 자살예방센터 개소, 동행(同幸)계약서, 직주혼합형 공공주택 도전숙,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 학생 참여예산·어르신 참여예산 도입, 인권영향평가 시행 및 인권청사 건립, 아동전용 보건소 건립 등 성북구가 걷는 길마다 언론과 세간의 관심이 주목됐다. 이러한 관심은 양적 성과보다 질적 변화에 혁신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혁신의 중심에는 2010년 7월 민선 5기 기초단체장으로 당선돼 8년째 성북구청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영배 구청장이 있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지방자체단체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어디부터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김영배 구청장과 송경용 라이프인 발행인이 지난 9일 성북구청에서 대담을 나눴다.

갑과 을이 아닌 ‘함께 행복하자’는 동행(同幸)계약서는 성북구 동아에코빌아파트 입주민들이 생각해냈다. 2013,14년 갑을관계가 사회적 문제로 크게 불거지고, 경비원 한 분이 분신까지 하는 극단적 상황에서 석관동 두산아파트 입주자대표회는 입주민들의 동의를 받아 경비원 최저임금과 고용안정을 보장해주자고 선언했다. 이 선한 바이러스가 퍼져서 동아에코빌아파트 주민들은 갑을계약서를 아예 동행계약서로 바꿨다. 아파트입주자대표연합회 차원에서 동행계약서를 도입하고, 2015년 11월 성북구 공공기관에 동행계약서를 적용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북구는 2016년 10월 ‘동행 활성화 및 확산에 관한 조례’를 전국 최초로 제정했다.

“‘호혜성 때문에 인류가 이제까지 유지될 수 있었다’라는 말을 들을 때 ‘이론적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 좋은 말이야’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동행계약서가 우리 공동체에 급속도로 퍼지는 모습을 보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사례는 내 인간관을 바꿨다. 시민이 주도해 공동체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성북구가 제도화한 모습이 시민참여정치의 전형적인 경로라는 점에서 시대적으로 의의 있는 사례다. 그 이후 지금까지 경비절감을 이유로 해고된 경비원은 한 명도 없다.”

시민들이 스스로 삶의 주인으로 나서는 '마을민주주의' 실천 통해 온전한 지방자치 실현..지방분권 개헌을 통한 더 큰 민주주의 실현 위해 3선 도전 접어

김 구청장은 마을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처음 만들어 사용했다. 이 시대의 핵심 키워드는 민주주의고, 지방자치가 제대로 발현되고 실시되는 게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고 강조했다.

“거대담론으로써 국정의 민주화, 헌법이나 제도는 어느 정도 수준에 와있는데, 나라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민주주의가 아닌 것 같고, 내 삶은 점점 수동적이고 피폐해지고... 왜 이렇지? 라고 생각해서 들여다봤더니, 정치라는 게 꽃만 화려한 여의도에 갇혀있더라. 삶의 가장 기초가 되는 영역에서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누리고 실천하고, 자신의 삶이 민주적으로 조직되도록 해주는 일이 시작이자 끝이라고 생각한다. 시민들이 자신을 스스로 의사결정권자로 조직해나가는 과정, 즉 마을민주주의가 우리가 맞이해야 할 새로운 키워드다.”

마을민주주의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김 구청장은 아카데미와 시민교육이 그 시작이라고 말했다. 성북구는 아카데미 천국이라고 불린다. 예를 들어 절전소를 확산하는 과정에서도 아파트주민들과 구청이 아카데미를 만들어 좋은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커뮤니티를 활성화시켰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이게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다. ‘깨어있는’이 핵심이고 그다음이 ‘시민’, 이것을 조직할 때 ‘힘’이 된다는 뜻이다. 이 시대 결핍의 핵심은 ‘깨어있는’ 시민이다. 시민생활에 가장 가까이 있는 지방정부야말로 깨어있는 시민의 영역을 집중적으로 책임지고, 이 영역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게 이 시대의 과제다. 기초자치단체일수록 마을민주주의라는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시작이고 끝일 수 있다.”

뿌리가 튼튼하지 않으면 식물은 오래갈 수 없고 제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원리와 같다며, 어릴 때부터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체득하지 않고는 훌륭한 시민으로서 역할을 해내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성북구 복지슬로건은 ‘3無2有새·봄성북’이다. 자살, 고독, 굶주림은 없고 새로운 가족 아름다운 돌봄이 있다는 의미다. 김 구청장은 삶의 문제를 가장 가까이에서 책임지고 세세하게 돌보고 지원하는 게 지방정부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자살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고 극단적 가난, 극단적 고립, 극단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자살예방센터와 마음돌보미를 운영하고 있다. 가난을 완전히 해결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극단적 고독에서 벗어나 공동체로 편입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기초자치단체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취임 당시 144명이던 자살자가 재작년 95명까지 줄었다.

“자살예방은 친환경급식과 똑같다. 오늘 급식재료가 괜찮다고 내일의 밥이 상하지 않는 게 아니듯 늘 새로운 도전이고 자살률 0%를 향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

올해 임기를 마치는 김 구청장은 개헌과 관련해 지방분권 행동대장으로 나섰다. 촛불시민혁명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헌법을 가지는 것은 시민의 당연한 권리이라고 말했다. “권력구조 관련은 아직 합의의 수준을 높여야 하지만, 국민의 80%가 동의한 국민기본권과 지방분권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는 이번 지방선거 때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며 이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우리 정치가 국민들에게 어떤 질타를 받을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이하 인터뷰 전문]

- 성북구는 우리 사회에 크게 영향을 준 최초의 일들을 많이 했다. 예를 들면 생활임금제를 비롯해 도전宿(도전하는 사람들의 숙소), 사회책임조달제도, 인권센터, 마을과 사회적경제 통합 모델인 마을사회적경제센터, 민관자살예방센터, 동행계약서가 있는데 그중에서 상징적 단어를 꼽으라 하면 ‘동행(同幸)’이라고 생각한다. 성북구에서 시작한 ‘동행(同幸)’이 우리 사회 전체의 가치이자 지향이자 수단이 됐으면 좋겠다. 동행의 철학적 배경에 관해 설명해준다면?

정치는 투입이고 사람이 하는 것이다. 무슨 뜻이냐면, 정치라는 것은 똑똑한 한 사람이나 몇 명의 아이디어에서 발생하거나, 누군가가 ‘유레카’ 하며 번쩍 시행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를 관통하고 사람들의 상식을 관통하는 시민적 요구, 즉 ‘시대적 상식을 정치가 얼마나 잘 흡수할 수 있느냐’가 새로운 정치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시대적 요구가 어떻게 인입됐느냐,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느냐가 주목받아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누가 하느냐, 바로 사람이다. 동행도 이 연장선에 있다. 동행이라는 개념은 이전부터 많이 있었다. 성북구의 동행이 개념화되고 구조화되고 제도화되는 과정의 중심에는 석관 두산아파트와 동아에코빌아파트 주민들이 있었다. 석관 두산아파트는 1호 절전소를 시도했고, 동아에코빌아파트는 갑을계약서를 동행계약서로 변경했다.

도시는 본질적으로 에너지를 무한정 소비하는 구조다. 에너지를 더 많이 생산해서 더 많이 공급하는 물량게임으로 갈 게 아니라, 이 구조에 파열구를 내야 한다. 근본적으로 에너지가 적게 들어가는 도시가 돼야 한다. 도시는 절전을 해야 하고 그 방법 중 하나가 절전소다. 에너지가 덜 들어가면서도 괜찮고 행복한 삶. 이 모델을 보여준 곳이 석관 두산아파트 1호 절전소였고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절전소 하기 전에는 공용전기료가 연간 15억 정도였는데 절전소하면서 연간 4억 정도 줄일 수 있었다. 이 아파트가 절전소로 유명해지니까 아파트마다 절전소를 하게 됐고, 그중 하나가 동아에코빌아파트였다. 절전소 추진하는 과정에서 구청과 아파트주민들이 거버넌스를 만들어서 아카데미를 열었다. 시민교육의 장을 펼쳤더니, 주민들끼리 “이게 좋네, 나도 해봐야겠다”며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졌다.

2014년 11월 석관 두산아파트 입주자대표회가 입주민들의 동의를 받아 절전소로 절감한 비용으로 경비원 최저임금과 고용을 보장해주자고 선언한다. 당시 갑을관계가 사회적으로 엄청나게 문제가 됐고 경비원고용 대란이 일어났을 때다. 최저임금법 유보조항이 삭제되고 최저임금 인상액까지 합치면 약 17~18% 정도가 인상된 셈이었다. 20여만명 경비원 중 20%가 해고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아파트 주민이 경비원에게 욕하고 폭행하고 5층에서 개밥 던져주듯 음식을 던지고, 결국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 한 분이 분신한 사건까지 있었다.

동아에코빌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자발적으로 실현한 '동행계약서'를 성북구 구정에 도입해 적용

두산아파트의 경비원 최저임금과 고용보장이 언론을 통해 유명해지고, 이 선한 바이러스가 쫙 퍼졌다. 이 과정에서 동아에코빌아파트 입주자들이 경비원과의 고용계약서에서 ‘갑’과‘을’자를 ‘동(同)’과 ‘행(幸)’자로 바꾼다. 처음으로 동행계약서가 등장했고, 당시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고립과 단절의 상징이자 투기의 온상이라는 아파트에서 이런 제안이 자발적으로 나와서 나도 깜짝 놀랐다. 그 후 입주자대표연합회차원에서 동행계약서를 도입하고, 2015년 11월 성북구 공공기관에 동행계약서를 적용하고, 2016년 10월 ‘동행 활성화 및 확산에 관한 조례’를 전국 최초로 제정했다. 시민이 주도해 공동체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성북구가 제도화한 모습이 시민참여정치의 전형적인 경로라는 점에서 시대적으로 의의 있는 사례다.



이 사례는 내 인간관을 바꾸기도 했다. 기존 경제학적 통찰은 ‘인간은 게으르고 이기적이고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는다’며 인간을 이익관계로 설명했다. 칼 폴라니의 인간관, 즉 ‘호혜성 때문에 인류가 이제까지 유지될 수 있었다’라는 말을 들을 때 ‘이론적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 좋은 말이야’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동행계약서가 우리 공동체에 급속도로 퍼지는 모습을 보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입주자대표연합회 차원에서 ‘우리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경비원을 해고하지 않겠다. 최저임금과 정년을 보장하고 착복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선언하고, 자부심을 느끼고 행복해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 인간관이 확실히 바꿨다. 또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인정본능이 있는데, 언론과 공론장에서 이 같은 시민들을 알아보고 격려해준 게 원동력이 됐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경비절감을 이유로 해고된 경비원은 한 명도 없다.

- 성북구는 아카데미 천국, 마을민주주의, 협치의 모델 등 사회적경제 사관학교로 유명하다. 수사로만 끝나지 않고 추진력을 겸비해 구체적인 정책으로 모델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모델을 ‘어떻게 보편화시킬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고 연구하고 함께 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지금도 ‘사회적’이라는 말만 나와도 ‘사회주의’라고 하는데, 더 어려운 상황에서 대안적, 보완적 모델로 사회적경제를 과감하게 정책과 접목시켰다. 사회적경제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취임했을 당시 ‘세상에 문제가 있다’라는 것은 민선 5기 단체장들이 모두 공감하고 있었다. 광우병 사태가 있었고, 무상급식 논쟁이 크게 일어났다. 무상급식 논쟁할 때 성북구가 핵심지역이었다. 2010년 취임하자마자 초등학교 6학년 전원에게 친환경무상급식을 실시했다. 그때 사람들이 ‘되겠나?’ 했다. 우리 의회 여야비율이 당시 11:11이었고 의장이 여당이었다. 다행히 조례가 통과돼 친환경무상급식을 실시할 수 있었다. 객관적 여론조사기관을 통해 조사했는데 초등학생 95%, 학부모 98%, 교사도 90% 넘게 만족했다. 당연히 서울시의회에서도 하자고 했는데,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성북구는 잘 되는데 왜 안 한다고 하냐?’ 라며 부딪치고 결국 정쟁으로 흐르게 됐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범시민적으로 대안적 사회에 대한 욕구가 확 올라왔다.

서울시 무상급식 운동의 발원지는 성북구...2010년 취임하자마자 초등 6학년 무상급식 도입

당시 ‘국가에서 공짜로 주는 밥은 개밥이다, 군대밥이다’, ‘친환경식재료라는 건 거짓말이다’라는 불신이 컸다. 그 불신을 극복하려면 생산지와 학교, 구청, 현지 지방정부, 시민, 학부모의 참여와 소통시스템이 필요했고 이 거버넌스가 실제로 신뢰관계로 구축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 위험을 떠안고 시작했다. 학부모가 참여해 납품하는 식재료를 검증하고 무상급식추진위원회도 만들어지면서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그 과정에서 대안적 경제, 대안적 삶에 대한 패러다임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고조됐다.



사회적경제란 무엇인가? 상생하고 더불어 살아간다는 건 무엇인가? 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원리에 대해 스터디하고 기초를 닦아 나갔다. 단체장 한 명이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한 것이 아니라, 폭풍 같은 시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문제의식과 도전의식, 시민들의 참여로 시너지가 발생했다. 사회적기업육성 조례를 만들 때 고민이 많았다. 사회적경제의 ‘사회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럼 나머지는 ‘사회적’이 아니고 뭐냐?를 시작으로 논쟁이 굉장히 많았고 고민도 많았다. 당시 해외 벤치마킹을 하면서 큰 도움을 받았다. 사회적기업육성위원회 관련 모든 간담회와 회의에 직접 참여하고 토론했다. 의사결정자가 의사결정과정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고, 결정된 내용이 조직 전체로 침투되도록 책임지고 지휘하는 게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 마을민주주의를 주창했다. 민주주의는 단위가 작을수록 밀도, 참여도, 대표성이 높아진다. 마을민주주의에 대해 설명한다면?

마을민주주의라는 용어는 학술용어가 아니라 정치적 용어다. 내가 처음 사용한 용어고 지금은 관용적으로 정착됐다. 이 시대 핵심키워드는 민주주의다. 왜 마을민주주의를 생각해내게 됐냐면 ‘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사람들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마을민주주의’하면 ‘내가 살아가는 동네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사람들과 옹기종기 모여서 주인답게 해보자, 뭐 그런 뜻인가 보다’라고 얼핏 짐작할 수 있다. 이 시대의 핵심은 '재배열'이라고 생각한다. 시민이 자기 삶의 중요한 고민과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스스로 해결하는 주체가 되도록, 정치구조 내에서 순위를 재배열해야 한다. 재배열의 핵심키워드는 마을과 민주주의의 결합이다.

거대담론으로써 국정의 민주화나 헌법, 제도 등은 어느 정도 수준에 와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내 생활이 왜 안 나아질까? 대통령도 직접 뽑고 법도 있는데 왜 나는 자꾸 수동적으로 되고 답답하고 나라 꼴을 보면 민주주의가 아닌 것 같고, 점점 피폐해지고 어디다 말할 때도 없고...왜 이렇지? 뭘 하면 해결될까?” 그래서 봤더니, 정치라는 게 꽃만 화려한 여의도에 갇혀있더라. 식물의 생명은 뿌리에서 시작되고 뿌리로 귀결된다. 삶의 가장 기초가 되는 영역에서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누리고 실천하고, 자신의 삶이 민주적으로 조직되도록 해주는 일이 시작이자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작할 거냐?’ 했을 때, 바로 동네(마을)이다. <동네 안에 국가 있다>라는 책을 쓰기도 했는데, 국가 안에 동네 있던 시기는 봉건적 시대부터 그랬고, 동네 안에 국가 있는 시기가 이제 우리가 맞이해야 할 새로운 키워드다.
 

송경용 라이프인 발행인이 김영배 구청장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마을민주주의를 무엇부터 시작할 것이냐? 아카데미와 시민교육이다. 왜냐면 노무현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듯이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이게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다. ‘깨어있는’이 핵심이고 그다음이 ‘시민’, 이것을 조직할 때 ‘힘’이 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뭐가 없냐? 권력이 없는 건 아니다. 밑동이 허전한 권력이긴 하지만... 이 시대 결핍의 핵심은 ‘깨어있는’ 시민이다. 시민생활에 가장 가까이 있는 지방정부야말로 깨어있는 시민의 영역을 집중적으로 책임지고, 이 영역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게 이 시대의 과제다. 기초자치단체일수록 마을민주주의라는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시작이고 끝일 수 있다.

거대담론 넘어 생활 속에서 실질적인 삶의 변화 만들어야...핵심은 '마을민주주의' 과제 주목

그래서 시작한 게 아카데미와 열린토론회다. 열린토론회(주민참여정책제안제)는 분야별 과제와 관련된 사람들이 일 년에 두 번 직접 모여서 라운드테이블을 형성하고 자신들의 의견을 체계적으로 토론한다. 구청장은 그 결과를 업무계획 안으로 인입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위원회를 통해서, 투표를 통해서, 주민예산참여제를 통해서, 의견제출을 통해서, 이런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게 하고, 참여시스템을 활성화시켜 사람들이 실제로 깨어있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구조를 통해서 시민들 자신을 스스로 의사결정권자로 조직해나가는 과정, 이것이 마을민주주의라 할 수 있겠다.

성북구는 특이하게 문화재단이 있다. ‘성북문화재단’을 만든 이유는 두 가지인데, 성북구 자원의 내생적 발전전략에서 문화자원을 활용하자. 두 번째는 사회적경제영역 중간지원조직같이 문화재단을 만들어, 시민들이 문화의 소비자뿐 아니라 생산자, 문화의 주인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더 나아가 문화를 생산하면서 하나의 기업, 일자리 혹은 생태계가 될 수 있도록 조직해나갔다. 성북문화재단은 실제로 마을만들기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 청년문제가 심각하다. 3포, 4포, 5포 더 나아가서 올포...생명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시대다. 청년들을 미래의 주역이라고 하는데 그 말을 들으면 청년들이 기분 나쁘다고 한다. “오늘의 주역이지 왜 내일의 주역이냐. 모두 굶어 죽으라는 말이냐? 오늘의 문제, 오늘의 삶을 어떻게 내일로 유보할 수 있겠냐?”라고 말한다. 노력해도 안 되고, 내일을 믿고 기다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단 한 시간도 유보할 수 없는 게 삶이다. 청년들에게 기성세대와 정치, 행정이 어떻게 답을 해야 하는지 답답한 시대이다. 기초자치단위에서 청년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지만, 기초행정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을 듯하다. 청년문제 중에서 주거문제가 중요한 데, 청년 주거문제 해소 정책인 도전宿(숙)으로 성북구가 대한민국 지방자치단체 정책 최우수상을 받았다.

가장 큰 문제가 뭐냐면, 국가차원 프레임 내에 청년이라는 단어가 없다. 창업관련으로 한두 개 있긴 하지만, 청년을 법적으로 규정한 게 없다. 노인과 아동, 청소년의 연령은 노인복지법, 아동복지법, 청소년기본법을 통해서 법적으로 규정돼 있다. 청소년을 24세까지로 규정하는데, 우스갯소리로 우리나라 군대는 청소년이 지킨다. 유엔에서 저소득층 국가들이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 대학을 졸업할 수 있는 현실을 고려해서 청소년을 24세까지로 규정한 건데, 우리나라는 그걸 그대로 베껴 쓰다 보니 법적 충돌이 일어난다. 국회에서도 뻔히 아는데도 바꾸지 못하고 있다. 청년을 어딘가로 포함해서 대책을 세우는 정책전환이 필요한데, 무책임하게 내버려 두고 있는 상황이다.

성북구는 조례에 청년을 19~39세라고 규정했다. 이유는 별다른 건 없고 그게 맞는 것 같아서다. 청년문제해결의 원칙은 당사자들의 참여,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우선으로 한다. 당사자조직이 여러 분야에서 생겨났다. 문화예술,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청년들 100여명이 스스로 원탁회의를 하고, 각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델이 전국 최초로 생겼다. 성북구에 대학이 8개 있다. 그들의 창조적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전국 최초로 자치구가 직영하는 앱창작터, ‘성북스마트앱창작터’를 만들었다. 24시간 일주일 내내 개방하고 간식을 무한리필로 제공한다. 1인 사업가에게는 굉장히 좋은 환경이다. 인큐베이팅 과정에서 청년들과 간담회를 했는데, 이런 요구가 많았다. “좋은 집이 필요한 건 아닌데, 아침에 샤워라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얼른 생각했을 때 '그게 왜 안 되겠냐, 임대주택 천지인데...', "합시다!”하고 나서 알아보니까 법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청년들은 임대주택의 대상이 아니었다. 주거정책이 산업정책을 지원하는 게 왜 안 되냐, 기초단체가 권한이 없어서 그러니 관련조항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알아봤더니 국토교통부 규칙이고, 규칙 하나 바꾸는 것이니 큰 어려움은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거 바꾸는데 일 년 반 걸렸다. 국토교통부 공공주택 업무처리 지침을 개정하면서 2013년 11월 전국최초로 서울지방중소기업청, SH공사, 성북구청이 직주혼합형 공공주택 시범사업 협약을 체결했다. 창업지원은 서울지방중소기업청이, 주택지원은 SH공사가, 입주자 선정의 모든 절차는 구청장이 책임지기로 했다.

청년 문제 해결의 물꼬 연 '도전숙'...안 되면 되게 하라...시민의 요구 해결해가는 것이 정치 

당해 해당 지방정부에 공급될 1인 가구용 임대주택 총예정량의 30%범위에서 기초자치단체장이 선정할 재량권을 가진다, 라고 임시로 규칙을 바꿨다. 그게 '도전宿(숙)'의 시작이다. 2014년 4월 제1호 21실을 처음 공급했는데 그게 대박이 났다. 당시 청년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KBS 9시 뉴스에서 생중계할 정도로 언론에서 난리가 났다. 전국 각지에서 벤치마킹하려고 방문하고, 당시 문재인 당대표도 왔다 갔다. 이를 계기로 2016년 9월 국토교통부 공공주택특별법이 개정됐다. 창업지원주택 공급의 근거가 마련된 거다. 이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가능성을 봤는데 ‘시민 요구중심의 시대가 왔고, 시민 가까이에 있는 지방정부부터 시민생활을 책임지려는 노력을 통해서 혁신은 일어날 수 있다!’이다. 2017년에는 제7호 101실까지 공급했고 2018년에는 제10호 143실 공급예정이다.

 - 사회적 재난참사뿐 아니라 일상의 생명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일 년에 3만 명 가까이 자살하고... 옷에 배지도 달고 있지만, 자살예방과 생명존중 활동을 통해서 실제로 자살률도 낮아지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방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지방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사람, 사람의 생활, 사람의 생명, 즉 삶의 문제를 책임지고 돌보고 지원하는 게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지방정부는 중앙정부가 나눠주라는 물자와 자원을 기계적으로 배달해주는 수준이었다. 어디가 새고, 어디가 사각지대고, 어디가 문제가 있다고 상달하는 것은 기본임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답답할 정도로 반복적 업무를 하는데 실제 복지시스템에 큰 진전은 없다. 민선 5, 6기 단체장들이 주목했던 것 중의 하나가 현재 시스템에서 사각지대와 찾고 있지 못한 곳, 대표되지 않은 목소리를 발굴해 행정시스템으로 양성화시키는 것이었다.

복지슬로건이 ‘3無2有새·봄성북’이다. 자살, 고독, 굶주림은 없고 새로운 가족 아름다운 돌봄이 있다는 의미다. 사실 가난은 지방정부가 계속 돌봐야 할 일이지만 한꺼번에 해결하기 어렵다. 우선 자살에 중점을 두고 고립되지 않도록 공동체로 인입시키고 각종 노력을 해왔다. 2012년 전국최초로 보건복지통합 자살예방센터를 만들어서 자살고위험군관리, 마음돌봄프로젝트(마음돌보미), 생명사랑서포터즈, 생명존중문화조성 등을 하고 있다. 처음 취임했을 때 성북구 자살자가 144명이었는데 재작년에는 95명까지 줄었다. 자살예방은 친환경급식과 똑같다. 오늘 급식재료가 괜찮다고 내일의 밥이 상하지 않는 게 아니듯 늘 새로운 도전이고 자살률 0%를 향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



- 건강한 지방정부를 운영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지방분권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지방분권 행동대장으로 나선 이유는?

모든 변혁의 시기에는 개헌이 따랐다. 여러 가지 혁명의 역사를 보면 미국독립전쟁 이후 헌법이 만들어지고, 프랑스혁명 이후 헌법에 해당하는 선언들이 만들어졌다. 4·19혁명 이후 3차 개헌이 이루어지고, 심지어 박정희 유신헌법, 전두환도 5·18 이후에 헌법을 바꿨다. 무슨 말이냐면,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규범이 제도화돼야 한다는 의미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옷을 입어야 자기 몸이 어떻게 크고 있고 어떻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있다. 새 시대에는 새로운 헌법이 필요하다. 촛불시민혁명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면, 새 시대에 맞는 헌법을 가지는 것은 시민의 당연한 권리이다.

자치분권 안 되어 있는 선진국 없어... '골든타임' 놓치면 안 돼, 분권형 개헌 운동 매진 

지방자치가 제대로 발현되고 실시되는 게 민주주의의 완성이다. 선진국 중 자치분권이 제대로 안 돼 있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뿌리가 튼튼하지 않으면 식물은 오래갈 수 없고 제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원리와 같다. 어릴 때부터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체득하지 않으면 훌륭한 시민으로서 역할을 해내기는 어렵다. 민주주의를 훈련받은 사람들만이 공화적(함께 사는) 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냐?’라는 질문은 ‘제대로 된 지방자치냐’라는 질문과 본질적으로 같다. 민주주의 진전을 위해서,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 제대로 된 삶을 위해서는 내 생활에서의 민주주의, 즉 마을민주주의, 지방분권이 제대로 되어야 한다.

개헌 내용 중 국민기본권과 지방분권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80% 동의하고 합의했다. 권력구조, 정치제도에 대해서는 아직 반반인데 좀 더 합의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 권력구조에 대해서는 기다리더라도, 기본권과 지방분권에 대한 개헌은 이번 지방선거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이번이 골든타임인 이유는 문재인 정권이 촛불혁명 이후 탄생했다는 점, 5당의 대통령 후보가 다 같이 지방선거 때 개헌하겠다고 시기까지 못 박은 점, 문재인대통령이 첫 정기국회 시정연설에서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로 개헌의사를 묻겠다고 다시 확인한 점이다. 이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우리 정치가 국민들에게 어떤 질타를 받을지 모른다고 분명히 경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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