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삶
상태바
결핍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삶
[책읽기] 길 위의 철학자 / 에릭 호퍼
  • 2018.01.09 10:03
  • by 양영희 시민기자

‘행복이란 거의 없다. 노년에 자신의 생을 되돌아본 많은 위인들은 자신들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합쳐보아야 채 하루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호퍼 말을 빌리면, 우리는 ‘돌아보면 한 시간도 되지 않을 행복을 위해 평생을 허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사람들은 ‘집, 가족, 직업, 괜찮은 수입, 권력 그리고 행복......,’그 무엇인가를 수중에 넣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새해라고 더 치밀하게 계획하고 스케줄을 잡고 있을 때, 삶을 멈춘 듯 호퍼의 글을 만나보면 어떨까 싶다.

요즘 더는 길이 없어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외국을 전전하며 단기 알바를 하며 지내는 수많은 청년들이 많다. 어찌 보면 호퍼는 아주 오래전에 오늘날의 인턴, 단기 알바 같은 일로 평생을 이주노동자로 살았다. 물론 호퍼가 살았던 20세기 초에도 경제는 어려웠고 가는 곳마다 임시 노동자 수용소와 무료 일자리 소개소가 있었다. 호퍼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도 40세 이전에 사망한다. 그의 집안에 누구도 50세를 넘긴 이가 없었다.

“앞날에 대해 안달하지 마라. 넌 마흔 살밖에 살지 못 할 거야.”
호퍼는 아버지의 말에 영향을 받았을까?
그에게 남겨진 작은 돈으로 시작한 떠돌이 노동자의 생활은 그의 선택에 의해 평생 계속된다.
 
도시에서 도시로 이어지는 길로 나서야 한다. 도시마다 낯설고 새로울 것이다. 도시마다 자기가 최고라며 나에게 기회를 잡으라고 할 것이다. 나는 그 기회들을 놓치지 않을 것이며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한때 생활을 위해 끝없는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에 회의를 하며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던 호퍼는 다시 길을 떠나기로 한다. 떠돌이 노동자의 생활을 쓴 그의 글에는 일과 생활에 대한 불평이 없다. 떠돌이와 개척자 사이에 친족적 유사성이 있다고 호퍼는 말할 정도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가 새로 하는 일을 통해 다른 세상들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생각은 계속 깊어지며 공부를 통해 확장되고 있었다. 그에겐 ‘진정 의미 있는 일’이란 없었으며, 일이 끝난 뒤에 실질적인 생활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호퍼는 한 번도 정착을 위해 돈을 모은 적이 없고 더 많이 가진 누구를 부러워 해본적도 없다. 잔디 깎는 일, 오렌지 행상, 레스토랑 웨이터보조, 사금 채취 공, 부두노동자를 전전하면서 독학으로 자신의 철학세계를 구축한 그가 평생 집중한 일은 독서와 글쓰기였다. 그는 도시와 도시를 떠돌며 임시 수용소를 찾아가고 일을 구하고 거기서 만난 노동자, 농민들과 생활하며 그들의 삶을 관찰한다. 돈 쓰는 일은 거의 하지 않고 살면서 쉬지 않고 독서와 산보, 글쓰기로 일상을 보낸다. 호퍼는 그가 읽은 책들, 새롭게 깨달은 것들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으며 사람들은 그런 호퍼를 존경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정착해서 편히 살 것을 권했으며 괜찮은 일자리를 알아봐주기도 했다. 그의 깨달음과 학식이 아깝다며 그를 붙잡고자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호퍼는 몰래 길을 떠났다.

“의미 있는 생활은 배우는 생활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는데 몰두해야 해요. 젊은이나 늙은이를 가릴 것 없이 흥미를 갖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숙련공들이 자신의 기량을 보여 주고 가르칠 수 있는 가게를 열 수 있는 중앙 광장이나 중앙로를 모든 도시에 갖출 것을 제안합니다.”

그가 강조하는 배우는 생활과 그것을 위한 제안은 지금 시대에도 꼭 필요한 것 같다.

죽기 전 잠깐 머물렀던 작은 아파트 외에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집을 갖지 않았으며 그토록 좋아했던 헬렌과도 결혼하지 않았다. 그는 결혼생활이 가져다줄 구속과 불행을 미리 알았을까?

“한평생 나는 모든 사색을 분주히 돌아다니면서 해 왔습니다. 번쩍이는 모든 생각들은 일을 하던 중에 떠오른 것들입니다.”

그의 모든 사색은 혼자였고 자유로웠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결핍을 누리며 무소유로 ‘실존적 무게’를 벗어버린 호퍼는 셈하지 않는 삶을 산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우리는 결국 흉내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숭배하는 것으로, 우리가 가 닿지 못하는‘현실의 결핍’을 대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호퍼의 삶을 대하는 우리가 그렇다.

라이프인 열린인터뷰 독점기사는 후원독자만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분들은 로그인을 하시면 독점기사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가 아닌 분들은 이번 기회에 라이프인에 후원을 해보세요.
독립언론을 함께 만드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영희 시민기자
양영희 시민기자
중요기사
인기기사
  • (07317)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등포로62길 1, 1층
  • 제호 : 라이프인
  • 법인명 : 라이프인 사회적협동조합
  • 사업자등록번호 : 544-82-00132
  • 대표자 : 김찬호
  • 대표메일 : lifein7070@gmail.com
  • 대표전화 : 070-4705-7070
  • 팩스 : 070-4705-7077
  • 등록번호 : 서울 아 04445
  • 등록일 : 2017-04-03
  • 발행일 : 2017-04-24
  • 발행인 : 김찬호
  • 편집인 : 이진백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소연
  • 라이프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라이프인.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