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아니 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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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아니 모드
영화 <내 사랑>을 보고 / 양영희 (교육공동체 벗 이사, 민들레 편집위원)
  • 2018.01.04 13:05
  • by 양영희 시민기자

영화초반부터 뒤틀린 듯한 얼굴과 체형, 그리고 심하게 절뚝거리는 걸음걸이, 분명치 않은 발음......, 함께 사는 이모의 차가운 말투와 시선은 모드의 삶을 더 상상하지 않아도 충분히 슬프고 불행해보였다. 버려진 사람에게서 오는 고독이 그녀의 온몸에 묻어있다. 거리에서도 클럽에서도 그녀에게 인사조차 하는 사람이 없다. 가족에게 그녀는 숨기고 가려두고픈 존재다. 오빠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재산을 탕진하고 집까지 팔아버렸다. 모드를 돌보는 대가로 오빠가 지불하는 적은 돈은 이모의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러나 모드는 오빠에게도 이모에게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존재였다. 다만 그들은 몸이 불편한 모드는 그 무엇도 혼자 할 수 없을 거라고 판단했을 뿐이다.

자신을 짐처럼 여기는 사람들과 잘 살 수는 없다. 어느날 잡화점에서 가정부를 구한다는 광고를 내는 에버릿를 보고 모드는 그의 집을 찾아간다. 그녀의 짐은 화구 몇 개가 다다. 선천적 관절염을 앓은 모드는 걷는 것이 몹시 불편하다. 그런 그녀가 주소를 들고 절뚝거리며 찾아가 만난 무둑뚝한 어부인 에버릿은 그녀의 노동력을 신뢰하기 어렵다. 개나 닭보다 낮은 서열로 그녀의 쓸모없음을 표현한 에버릿, 쉽게 화내고 그럴 때마다 나가라고 소리치는 에버릿을 모드는 참아낸다.

하나밖에 없는 침대에서 같이 생활하는 그들은 조금씩 남녀의 정을 느끼지만 그때마다 에버릿은 독백처럼 얘기한다. ‘내가 왜 저런 사람과 결혼을 하겠느냐고!’고아출신인 에버릿은 아침부터 늦은 시간까지 종일 일한다. 생선을 팔고 나무도 팔고 고아원에 가서 일도 한다. 그러나 가난은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모드는 에버릿을 위한 집안일을 하는 틈틈이 그림을 그린다. 집안 곳곳에 작은 꽃과 물고기와 자신이 가보지 못한 세상들도 그려낸다. 에버릿은 그녀가 자신의 집을 그림으로 꾸미는 것에 관대하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에서 온 여인으로부터 모드의 그림은 찬사를 받기 시작하고 그림이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모드는 그림을 판매할 수 있게 되었고 둘의 관계는 결혼으로 이어진다. 모드가 화가가 되면서 에버릿이 모드를 대하는 태도가 함께 변한다. 이젠 에버릿이 모드가 자신을 떠날까 두려워한다. 처음 자신을 찾아왔을 때의 모드가 아님을, 자신이 절대적 위치에 있을 수 없음을 그는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모드는 에버릿을 품고 평생을 살며 그림을 그리다 생을 마감한다.

모드와 에버릿은 결핍이 가져다 준 어쩔 수 없는 다가섬으로 시작했고 그들의 관계는 사실상 모드가 견디며 이끌어 간다. 그것은 모드가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극한 상황에서의 선택이었으며 그녀가 에버릿의 비위를 맞추며 자신의 삶터를 유지하는 건 그림을 그리기 위함이었다.

영화의 장면들은 모두 그림처럼 예쁘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좋고 영화에 흠뻑 빠져들어 감상하게 하는 힘도 탁월하다. 그런데 보는 내내 불편함과 아픈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것, 뭔가 흔쾌하지 않음이 있었음도 사실이다.

이 영화가 과연 사랑을 얘기하고픈 걸까? 처음 모드가 선택한 에버릿은 극한 상황에서의 생존 욕구였을 뿐 그를 사랑한 건 아니었다. 그 시절 몸이 불편한 그녀가 독립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로 그를 선택해서 어쩌면 죽을힘을 다해 참아낸 삶이었다. 에버릿 또한 불쑥 자신의 인생으로 들어온 모드라는 존재가 맘에 들지 않은 건 당연할 수 도 있다. 그가 그린 미래가 아니었을테니 말이다. 괴팍한 성격에 글자도 모르는 에버릿은 수차례 자기고민에 빠지는 장면이 나온다. 모드가 에버릿의 아내가 되는 결정적 상황은 그림이다. 그러니 이들의 이야기를 사랑이야기로 만들어 버린 제목은 아쉽다고 본다. 원제처럼 모디(Maudie)라는 제목을 그대로 썼다면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관점도 달라졌으리라 본다.

자꾸만 의문이 생기는 대목이 ‘모드가 과연 그림을 그리지 못했어도 이들의 사랑은 가능했을까?’이다. 가난에 가난을 얹어주고 일그러진 몸과 걸음걸이를 가진 사람을 그냥 사랑하는 일이 쉽게 상상되진 않는다. 모드는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선천적 관절염의 재앙을 넘어섰다. 그렇다 하더라도 고단했을 그녀의 삶은 그림에도 남았다. 사각 액자 속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담는다는 그녀의 그림들은 영화 후미에 소개된다.

 삶 자체가 걸음걸이처럼 기우뚱거렸을 모드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에버릿 뿐이었다. 그래서 견디고, 그걸 사랑이라 말하는 일이 나는 슬프다. 과연 사랑이란 무엇인가?

 *샐리 호킨스가 연기한 모드 루이스는 캐나다의 화가(1903~1970)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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