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편의 성장 영화를 다시 보며
상태바
두 편의 성장 영화를 다시 보며
[기획연재] 정윤수 (문화평론가,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
  • 2017.12.20 11:36
  • by 라이프인
필자 정윤수 / 문화평론가,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 저서 <클래식, 시대를 듣다, <인공낙원> 등    (사진출처 온라인 누리)

“캡틴! 오마이 캡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명 장면 명 대사다. 이 영화를 못 본 사람은 있어도 이 장면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화의 시간 배경은 1959년, 미국 뉴잉글랜드의 명문사립고등학교 웰튼. 1959년이라면 2차 대전 직후 냉전 체제를 구축한 미국이 자국 내의 모든 정치적 욕망과 사회적 심리를 강하게 압박한 시절이다. 뉴잉글랜드라는 공간도 중요하다. 미국 북동부 지역 6개 주 즉 매사추세츠, 코네티컷, 로드아일랜드, 버몬트, 메인, 뉴햄프셔 등을 이르는 말로 이른바 ‘미국 정신’의 산실이다. 흔히 ‘미국 백인 중산층’을 일컫는 ‘양키’라는 말도 이 지역 사람을 뜻한다. 이 일대에 아이비리그가 있고 또 그 명문대학에 대거 진입하는 명문 사립고들이 있다.

그 중 하나인 웰튼 고교에 키팅 선생이 부임을 해와서 ‘엘리트 교육’에 찌든 학생들에게 자유의 냄새를, 상상력의 힘을, 존중의 가치를 잠시나마 가르치게 되었고 결국 엄격한 교칙을 고수하는 학교 당국과 학부모들에 의해 쫓겨나는 이야기가 <죽은 시인의 사회>다. 키팅 선생이 강제로 떠나야만 했을 때 학생들이 저마다의 책상 위로 올라가 “캡틴! 오마이 캡틴!”이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 특히 이 영화가 국내에 소개되었을 때는 교원 노조 운동이 크게 일어나면서 ‘참교육’이란 세 글자가 한국 보수적인 교육 문화에 충격파를 던지던 때였다. 그래서 많이들 보았고, 많이들 감동했다.

얼마 전에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예의 그 장면을 포함하여 학생들이 동굴에 모여 시를 낭송하거나 운동장에서 키팅 선생과 함께 자유롭게 달리는 장면들에서 그런대로 오래 전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의 감정이 되살아나긴 했는데, 세월이 지나서일까,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다.

무엇보다 너무 근사하게, 너무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빼어난 연기, 감정을 최고도로 끌어올리는 요소들의 화학적 결합! 달리 생각해보니 전형적인, 지극히 헐리우드적인 스토리텔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바 ‘웰메이드’ 헐리우드 영화의 특징이 거의 모든 화면에 흩뿌려져 있어서, 키팅 선생을 떠나보내는 학생들의 그 마지막 장면까지도, 너무 잘 만들어져서 조금은 거리감이 있는, 흡사 잘 차려진 한정식을 볼 때의 어색함마저 들었다.

영화 <케스> (사진출처 씨네21)

그에 비하여 <케스>는 어떤가. <케스>? 조금은 생소한 영화다. 1969년 작품으로 영국 요크셔의 탄광촌이 배경이다. 15살 난 소년 빌리 카스퍼의 성장 영화다. <죽은 시인의 사회>가 이른바 ‘잘 만들어진’ 영화의 특징, 특히 전문 배우들의 능란한 연기가 최고 수준으로 발현된 영화라면 이 영화 <케스>는 카메라를 들고 그냥 가난한 동네 한복판으로 걸어들어가서 보이는대로 찍은 듯하다. 수준급의 전문 배우 보다는 마치 영화 속의 참담한 탄광촌 마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줄곧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그냥 캐스팅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적 화면 구성을 위한 정교한 미장센도 부족해 보인다. 그럼에도 <죽은 시인의 사회> 같은 ‘잘 만들어진’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가슴 시린 리얼리티가 화면 전체에 녹아있다.

이 쯤에서 영화 감독이 누구인지를 말해야만 될 것같다. 켄 로치! 바로 그 사람이다. 영국의 사회파 감독으로 최근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우애와 연대의 가치를 다시 한번 호소한 바 있다.

켄 로치는 1936년 영국 워릭셔주 너니턴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공군 타자병으로 제대한 뒤 옥스퍼드 대학교의 세인트 피터스 칼리지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에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법조인 대신 연극 영화 쪽으로 방향을 틀어 버밍엄의 작은 극단에서 연기를 하다가 BBC로 옮겨 프로듀서가 되었다.

1950년대, 유럽 영화계에 휘몰아친 뉴시네마 열풍(이탈리아의 네오 리얼리즘, 프랑스의 누벨 바그, 독일의 뉴저먼 시네마 등)에 따라 켄 로치 역시 현장 중심의 다큐멘터리 스타일과 거친 촬영의 미학으로 가출 청소년, 홈리스, 마약중독자, 낙태, 노동운동 등을 다뤘다. 잦은 외압에 따라 방송국을 그만두고 영화 감독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만든 영화가 1969년의 <케스>였고 그 이후 대처 시대와 그 이후의 가공할 만한 신자유주의 시대에 맞서는 문제작들을 사십여 년 째 만들어왔다.

켄 로치의 청년 시기는, 다시 말해 2차 대전 직후의 영국 사회는 극심한 계급 투쟁 및 세대 간의 혼돈, 그러니까 조지 오스본의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로 상징되는 ‘앵그리 영맨’의 시대였다. 기성 세대의 전통적 삶의 양식과 문법과 교조를 거부하는 이 양상이 미국에서는 제임스 딘으로 상징되고 앨런 긴즈버그로 대표되는 ‘비트 제너레이션’으로 나타났다.

축구를 비롯한 하위 계급의 대중 문화가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리처드 호가트, 레이먼드 윌리엄스, 스튜어트 홀 등은 프랭크 리비스로 대표되는 전통적 인문주의자에 맞서 스포츠를 비롯한 대중문화를 통해 분출되는 하위 계층의 격렬한 감정 표출을 옹호했다.

켄 로치 감독이 <에릭을 찾아서>를 비롯한 수많은 영화에서 가난한 아이들이나 하층 노동자들이 축구 하는 장면을 자주 연출하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지적, 사회적, 문화적 풍토 위에서 그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영화 <케스>에서도 영국의 가난한 소년들이 축구를 하는 장면이 어김없이 들어가 있다.

다시 영화 얘기를 더 해보면, 요크셔의 탄광촌, 그곳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 사는 빈민가의 결손 가정 아이가 주인공이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이 탄광촌 아이들이 졸업하여 나가면 곧장 겪게 되는 사회라는 지옥을, 미리 체험해보는 공간처럼 보인다.

다행히 훌륭한 교사가 한 명 있었다. 문학 시간에 그는 ‘팩트와 픽션’을 가르친다. 교사가 묻는다. 무엇이 팩트인가. 어떤 학생이 대답한다. “진실처럼 어떤 증거가 증명된 것입니다.” 조금 앞서 나간 답이다. 교사가 정정한다. “실제로 일어난 어떤 일, 그것이 팩트다. 예를 들어보라.” 어떤 소년이 대답한다 ”티버트는 담배를 펴요.“ 그렇게 수업이 진행된다. 그러다가 우리의 주인공이 지목된다. 딴 생각을 하다가 걸린 것이다. 다른 소년들이 놀리면서 말한다. ”쟤는 매를 길러요, 완전히 빠졌어요.“ 그리하여 영화 내내 그늘 속을 헤매던 소년이 천, 천, 히 이야기를 시작한다.

숲 속에서 야생의 매를 만난 이야기, 서로 친해진 상황들, 매에게 먹이를 구해준 이야기, 매와 함께 살다보니 ‘발목끈’(Jesses)이나 ‘회전고리’(Swivel) 같은 또래 아이들은 들어보지도 못한 단어를 익히게 된 이야기가 이어진다. 수업 시간마다 딴 짓을 하던 녀석들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한다. 교사는 이를 물끄러미 지켜본다.

카메라는 소년 가까이 다가간다. 소년은 허공을 보면서, 마치 창밖으로 매가(그 매의 이름이 영화 제목, 즉 ‘케스’다) 날아오기라도 한 듯, 허공의 한 점을 보면서 매와 하나가 되어 들로 산으로 뛰어 다닌 일을 이야기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처럼 관람자의 감정을 극한으로 몰고 가지는 않지만, 그러나 소년이 한 곳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다음과 같이 말할 때 이 영화 <케스>는 이 세상 어느 곳에나 있는 가난한 마을들, 그 마을의, 너무 일찍 폭력적인 세상에 노출된 아이들과 헌신적인 교사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 매를 붙잡아 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날아가버릴 수도 있는데, 하지만 안 날아갔어요. 저는 겁이 났어요. 매는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나는 매를 불렀어요. 케스, 이리 와, 케스, 케스, 이리 와...... 그러자 케스가 날아오는 거에요. 마치 폭탄처럼, 번개처럼, 곧장! 날개 소리도 안 들리게 곧장 내 장갑 위로 내려 앉았어요.“


정윤수

문화평론가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
저서 <클래식, 시대를 듣다, <인공낙원> 등

라이프인 열린인터뷰 독점기사는 후원독자만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분들은 로그인을 하시면 독점기사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가 아닌 분들은 이번 기회에 라이프인에 후원을 해보세요.
독립언론을 함께 만드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요기사
인기기사
  • (07317)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등포로62길 1, 1층
  • 제호 : 라이프인
  • 법인명 : 라이프인 사회적협동조합
  • 사업자등록번호 : 544-82-00132
  • 대표자 : 김찬호
  • 대표메일 : lifein7070@gmail.com
  • 대표전화 : 070-4705-7070
  • 팩스 : 070-4705-7077
  • 등록번호 : 서울 아 04445
  • 등록일 : 2017-04-03
  • 발행일 : 2017-04-24
  • 발행인 : 김찬호
  • 편집인 : 이진백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소연
  • 라이프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라이프인.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