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농촌의 삶에 대해 질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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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농촌의 삶에 대해 질문하다
영화 <파밍 보이스> 그리고 농촌에 대한 상상
  • 2017.11.17 13:30
  • by 양영희 시민기자

 

오프닝 화면 뒤로 흙을 고르는 농부들의 호흡과 괭이질 소리가 들린다. 내 머릿속엔 청년들의 땀과 흙들이 이랑을 따라 잘게 부스러지는 모양이 그려졌다. 영화에서 청년들은 장소를 바꿔가며 끝없이 농사일을 한다. 우리나라에선 오래 전부터 볼 수 없었던 그림이다. 농촌의 젊은이, 농사짓는 젊은이의 모습이 영화 내내 새로운 상상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농부인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려고 대학을 갔지만 제대 후 농촌에서 즐겁게 살아보고픈 두현, 창업을 하고 싶지만 막막한 지황, 가치 있는 일을 오래 해보고 싶은 하석. 이들은 막막한 취업 앞에‘복사기처럼 사는 친구들’모습이 너무 싫었다고 했다. 그래서 갖게 된 관심은 농업, 농촌, 농부로 사는 삶 이었다. 친구 사이인 그들은 밤마다 얘길 나눴다고 한다.
 “농사지어볼래?”
 “농사해볼래?”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는 건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고 그런 길을 가는 선배나 친구를 보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들 눈에 한국의 농촌은 힘들고 고생만 하는 농부들로 가득하고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결정한다. 다른 나라 농촌은 어찌하고 있는지 직접 가보자고, 혹시 젊은이들이 농촌에서 즐겁게 사는 일이 가능한지 직접 만나서 확인해 보자고. 그들은 또, 농부로 산다면 자본도 땅도 기술도 없는 그들이 어떻게 도전할 수 있을지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시급이 우리보다 세배나 되는 호주로 가 여행경비를 번다. 뚜렷한 목표가 있기에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서 돈을 모으고 전 세계 80개 단체와 농업공동체에 우퍼(노동을 제공하고 농장주로부터 숙식을 제공받는 사람)로 일하고 싶다고 메일을 보낸다. 쉽지 않게 받아낸 OK, 그들은 2년 동안 13개 나라를 우퍼로 참여하며 35개 단체와 농업공동체를 방문한다.

그들은 농담처럼 말한다.
“농사가 힘들어. 농사를 지으며 고생을 해봐야 해.”
“왜 그래야 하는데?”
“농사를 안 짓기 위해 농사를 짓는 거지.”
농사를 짓는 일을 성공할 수 있을지 그들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는다. 주변에선 농사 하겠다고 하면‘힘들다, 돈도 못 벌고 장가도 못 간다.’이런 말만 들었으니 그들이 느낀 불안은 당연하다.

 주인공들은 이탈리아 국유지 판매금지운동 농업공동체‘테라코뮨’에 머물게 된다. 그들이 방문했을 때 이탈리아도 실업률이 50%로 매우 높았다. 테라코뮨에서는 이탈리아 청년들이 버려진 국유지의 농장을 점유하여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고 있었다. 그들은 최소한의 전기사용과 생태 화장실, 야외 샤워장, 태양광 설치 등의 생활을 하며 완전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었다. 이탈리아 젊은이들도 정부에 화가 많이 났었다고 했다. 최악의 실업난과 참담한 상황으로 내몰린 젊은이들은 스스로 행동했던 것이다. 전기도 없고 차도 들어가기 힘든 그곳이 주인공들이 보기에도 고단해보였지만 정작 테라코뮨의 젊은이들은 머물 집과 농사지을 땅이 생겨 그전의 삶보다 낫다고 여기고 있었다.

주인공들은 테아드리앙(젊은 농부들에게 토지와 집을 10년 동안 무상 임대 해주는 곳)이란 단체에서 땅과 토지를 임대해 농부가 된 안과 레미의 농장을 방문하며 젊은 농부를 보고 싶었던 소원을 이룬다. 테아드리앙 협회이사는 자기들의 방식, 즉 돈이 없는 젊은 농부들에게 토지를 무상 임대하는 것이‘토지가 계속 농지로 활용 되는 길’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농토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보면 그녀의 말이 옳음을 바로 알 수 있다.
농부가 되고 싶었다던 안, 그녀와 함께 행복한 농부가 된 남편 레미는 말한다.
“농사는 직업이 아니라 삶 자체인 것 같아”
그런 안과 레미 부부를 보며 두현은 부럽다.
“나도 우리 마을에서 평생 동안 살고 싶어. 내 미래의 부인이랑”
두현의 소박한 꿈이 왜 한국에선 엄청난 도박이 되어야 할까?

그들의 다음 방문지는 벨기에의 ‘도메인 드 그록스’(무상으로 땅을 빌려주고 유기농업을 지원하는 곳으로 자산가인 엘리자베스가 땅을 임대해 줌)다. 그곳에서 만난 농부는 말한다. 농부가 자기만 생각하고 자연은 생각하지 않고 돈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안 된다고, 이제 자연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몰리 공동체 지원농장(1년차 유기농산물을 선 계약 후 재배하는 회원제 농장)에서는 농부가 농산물의 리스트를 주면 회원들이 필요한 만큼 가져가 소비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다. 엎드려 풀을 뽑는 농부는 그런 자세로 수십 킬로를 기어왔다며 웃는다. 주인공들은 농사와 낮은 자세의 상관관계를 배운다.

다음으로 만난 유기농 사과농장의 주인은 건강한 밭, 비옥한 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함을 말해준다. 사과농장 주인은 이전에 해외시장에 밀과 옥수수를 수출하는 일을 했지만 늘 ‘생기 없는 삶’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래서 살아있는 것들과 일하고 싶었다고, 그런 그가 선택한 것은 양을 키우고 사과나무를 키우며 진짜 살아있는 것들과 함께 사는 지금의 농장이다. 농부와 같이 농사일을 하고, 밥을 먹고, 농부 직거래 마트에 가는 일련의 생활은 주인공들의 헤어짐을 힘들게도 했다. 마음이 묘해지는 슬픔이 청년들 가슴에 생겨났다.

마지막 여정인 네델란드의 ‘사펜 스트릭 농장’(양을 키우고 양젖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직접 판매하는 곳)으로 가는 수 십 킬로는 걸어서 이동했다. 그렇게 함께 고생하며 나누는 대화는 값진 것들이었다. 그들은 말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뭔가 찾아서 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수동적이고 게으름의 일인자였다. 이제는 자신감이 생긴다. 해보고 싶은 것, 도전해 보고 싶은 것 생겼다. 혼자였으면 이 모든 걸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조금씩 자신들의 모습이 여행을 하며 만났던 사람들처럼 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다.

아주 오랫동안 우리 농촌엔 절대로 젊은이가 들어와 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보다 먼저 젊은이가 자연에, 농촌에 물드는 그림 자체를 가져보지 못했다. 우리에게 젊은이는 언제나 도시에 있었고 흙이 묻지 않은 깔끔한 복장에 농사일은 전혀 알지 못하는 바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영화에서 세계의 젊은 농부들을 계속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만해졌다. 우린 언제, 어떻게 그런 장면을 만들 수 있을까?  영화는 자꾸 농촌과 젊은이에 대한 새로운 상상들을 자극했다.

우리 농촌의 불행은 너무 오래 되어서 꿈꾸는 것 마저 포기되었다. 그러나 돈도 기술도 토지도 없는 청년들이 농부가 되는 일이 근사한 삶의 선택지가 되려면 파밍 보이즈를 통해 배우면 될 것 같다.‘복사기’같은 도시의 삶보다 자연 속에서 생명의 경이로움을 매일 느끼며 벗들과 다정하게 살아도 굶어죽지 않고 장가도 갈 수 있는 농촌이 가능하려면? 우리는 질문과 도전을 멈추지 말고 시도해야 할지 모른다. 누구든, 어느 곳이든 다른 사람, 다른 공간의 희생양으로 쓰이지 않아야 함께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누군가는 토지를 무상으로 임대해 주고, 누군가는 유기농 농사기술과 집을 무료로 임대해 주며, 그들의 농산물이 정당한 대우를 받는 시스템을 갖추고, 곳곳에 공동체 농장이 열린다면 어떨까?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조합이나 협회 등 함께 할 수 있는 방법도 많으리라.

두현이는 여행 후 아버지와 딸기 농사를 지으며 자신도 작은 땅에 농사를 짓기 시작했으며, 하석은 생협에 공채로 들어갔고, 지황은 청년주거문제해결을 위한 창업을 했다. 영화에 나오지 않은 수많은 청년들은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어떻게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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