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경제?④] 사회적경제=함께 살아내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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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④] 사회적경제=함께 살아내는 일상
  • 2020.03.11 12:28
  • by 이가람 (연세대학교 BK21PLUS 연구원)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한 사회적경제는 하나의 사례, 하나의 정의로 대표하기 힘들 만큼 다차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적경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사회주의 기획'부터 '신자유주의적 통치'의 수단, 또는 자본주의의 병폐를 해결할 대안까지 다양하다. 또한 사회적경제 영역은 무엇이 '사회적'인지 자기증명을 요구받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글로벌행정학과 BK21PLUS <창조적 국제개발협력을 위한 사회적 경제> 연구팀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가람 박사와 라이프인이 한국 사회적경제의 다양한 현장 활동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회적경제의 사회적 가치를 함께 고민해 본다. [편집자 주]

사회적경제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노라고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다양한 분들을 만나게 된다. 그 중 사회적경제 하면 뭐가 달라지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이런 질문에는 대체로 사회적경제에 대한 무관심이나 반감이 배어 있다. 

그래도 이 질문을 뒤집어 보면, 의외의 희망이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관심이 없거나 반감을 가진 사람조차 "사회적경제-하다"라는 표현을 쓸 만큼 뭔지는 몰라도 사회적경제 활동이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고, 그것이 뭔가를 "달라지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까지 간파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는 점에서 사회적경제는 분명 사회운동으로서의 특성을 지닌다. 다만 사회적경제가 경제와 사회의 변화를 추동하는 방식은 기존의 사회운동 문법과 여러 모로 다르다. 사회적경제를 '혁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사회 없는 사회에서 사회적경제 하기

2000년대를 전후로 사회적경제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재조명되면서 한국에서도 다양한 활동들이 사회적경제의 이름으로 묶이기 시작했다. 실질적으로 한국의 맥락에서 이 과정은 "사회의 형성"과 "사회적경제의 형성"이라는 이중의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었다.

"사회가 없었다"는 말이 의아하게 들리실 수도 있겠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는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지 않으면서도 소속의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심리적 기반으로서의 사회관계를 의미한다. 사회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은 <생각의 지도>에서 동양인과 서양인이 세계를 인식하는 데 문화적인 차이가 존재함을 밝힌 바 있다. 그는 동양의 문화는 "집합주의적이고 상호주의적"인 반면 서양의 문화는 "개인주의적"이라고 진단하고, 이러한 차이가 동양인과 서양인의 인지 방식에 영향을 주었음을 실증했다. 

실제로 18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이루어진 서구 근대의 발전은 공동체적 집단과 분리된 '개인'의 발견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사회라는 개념 역시 공동체로부터 분리된 개인이 어떻게 새롭게 관계를 맺어가는가에 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발전하였다. 

반면 한국 사회에서 전체와 분리된 존재로서 '개인'을 상상하는 일은 아직까지도 쉽지 않은 부분이다. 많이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조직의 위계서열이나 연고주의, 집단주의의 흔적은 사회 여기저기에서 나타난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가 없었다"는 말은 사회적경제의 기반으로 여겨지는 시민사회 전통이 약했다는 뜻이다.

그나마 90년대까지는 한국에서 시민사회가 약했거나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때까지 한국에서 시민사회의 역할은 공동의 큰 의제들을 중심으로 권위주의 정부의 대척점에서 대항하고 투쟁하는 것이었다. 다만 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면서 의제가 다양해지고 시민사회 운동은 '시민 없는 시민사회 운동', 더 넓게는 '사회의 위기'라는 말이 등장할 만큼 구심력이 약해지는 것처럼 비춰졌다. 

이런 상황에서 IMF 경제위기의 여파로 복지의 필요성은 증대되었지만 국가가 사회 서비스를 충분히 감당할 복지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시장 역시 여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회적경제 활동은 이런 맥락 속에서 상호부조의 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 조직화를 통해 사회의 필요를 감당할 결사체로서 작은 사회들을 형성해왔다.

각자도생에서 더불어 사는 상생의 경제로

'사회적'이란 말은 결국 '여럿이 함께' '더불어'의 의미를 포함한다. 초기의 사회적경제 활동은 당장 먹고 살기 빠듯한 상황에서도 서로를 돌보며 함께 살아나가려는 노력이었고, 사회적경제가 제도화된 이후에도 삶의 관계성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지향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경제는 개별화되고 고립된 개인을 상정했던 기존 경제의 문법에 이러한 관계의 속성을 적극적으로 이식해왔다. 일자리, 기업, 금융, 기업가(정신), 회계, 벤처 등 기존의 경제용어에 '사회적'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해당 경제 개념의 외부 요소로 존재했던 '사회'를 주요 가치로 환기시켜야 한다는 선언에 가깝다. 심지어 협동조합도 "사회적"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면 활동에서 사회를 고려하는 비중이 완전히 달라진다.

공통성에 기반한 단단한 연대에서 차이를 품는 느슨한 연대로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경제가 활성화되면 사회자본이 강화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회 자본은 거저 쌓이지 않는다. 사회와 사회적경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입장은 사회적경제의 관계가 어떻게 전체주의나 연고주의를 벗어나는 방식의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으로서 새로운 연대를 형성할 것인가 하는 과제를 부과한다. 

▲ 연결 된 세 개의 clique(클릭, 서로 상호 작용하고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하는 개인 그룹). 마크 그래노베터(Granovetter, 1973)의 정의에 따르면 앨리스와 밥, 앨리스와 캐롤 사이에는 강한 연대가 있고, 밥과 캐롤 사이에는 느슨한 연대가 있다. ⓒ www.nils-diewald.de

많은 사회적경제 조직에서는 공동체에 매몰되지 않는 "느슨한 관계"를 통해 공동체와 연대의 의미를 확장하려고 애쓰고 있다. 강한 결속을 요구하기보다는 느슨한 연대 네트워크가 부문별, 지역별, 업종별로 여러 겹 겹쳐서 나타난다. 이러한 연대와 파트너십은 그 상대도 정부와 기업도 포함하는 관계에서 넓게 이루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사회적경제는 유기적 연대를 실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의 고전사회학자인 뒤르켐은 <사회분업론>(1893)에서 공통성에 기반한 단단한 연대로서의 기계적 연대와 사회 분화가 진전되어 다양한 차이가 나타나는 속에서도 이루어지는 유기적 연대를 구분한 바 있다. 기계적 연대가 유유상종(類類相從)의 원리를 따른다면, 유기적 연대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함께 져야 할 부분을 함께 지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 신영복 전 성공회대 석좌교수 서예 '和而不同' ⓒ 더불어 숲(www.shinyoungbok.pe.kr)

사회적경제는 사회와 경제 모두를 바꾸는 실천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사회적경제 활동이 등장하고 성장하는 과정은 경제만 바꾸는 것이 아니다. 사회관계 역시 바꾸고 있다. 사실상 사회의 많은 부분에 경제논리가 스며들어 있는 상황에서 이는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사회적경제 실천은 사회라는 개념조차 없었거나 사회의 위기를 말하는 시대에도 꾸준하게 사회를 이야기하고, 한발 더 나아가 사회를 이루어왔다. 마을 단위, 지역 단위에서 이루어진 많은 사회적경제 활동은 자체적인 규범과 규칙이 작동하는 작은 조직이자 사회로서의 관계를 형성해 왔다. 그리고 이제는 공공 거버넌스의 한 축으로 국가나 시장과 협력적인 관계에 놓인 상황에서 어떻게 국가의 정치논리나 시장의 경제논리에 편입되거나 동원되지 않고 균형을 맞출 것인가 하는 과제를 풀어 나가고 있다.

코로나19로 함께 살아내는 것이 새삼스러운 시절이다. 접촉(contact)하지 않는다는 뜻의 언택트(un-tact)경제가 신조어가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미덕이 된 시기에 관계와 연대가 위험하거나 공허한 일은 아닐까 고민하고 계시는가. 사회적경제 현장에서는 이미 대면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여러 형태의 연대적 경제활동을 상상하고 실천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돌보고 고통을 함께 지며 이 시기를 살아내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이 위기가 지나고 다시 일상이 돌아온 뒤에도, 우리는 그렇게 나도 살고 남도 함께 살아갈 방법을 궁리하며 일상을 함께 살아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께 살아내는 방식들이 쌓여 사회적경제를 계속해서 움직여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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