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경제?③] 상호성과 호혜성, 관계의 언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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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③] 상호성과 호혜성, 관계의 언어들
  • 2020.02.27 14:28
  • by 이가람 (연세대학교 BK21PLUS 연구원)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한 사회적경제는 하나의 사례, 하나의 정의로 대표하기 힘들 만큼 다차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적경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사회주의 기획'부터 '신자유주의적 통치'의 수단, 또는 자본주의의 병폐를 해결할 대안까지 다양하다. 또한 사회적경제 영역은 무엇이 '사회적'인지 자기증명을 요구받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글로벌행정학과 BK21PLUS <창조적 국제개발협력을 위한 사회적 경제> 연구팀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가람 박사와 라이프인이 한국 사회적경제의 다양한 현장 활동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회적경제의 사회적 가치를 함께 고민해 본다. [편집자 주]

사회적경제가 왜 사회적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보겠다고 돌아다니면서, 이 일이 일상의 말을 길어올리는 일임을 실감한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사람들을 만나고 말을 나누고 글을 쓰면서도 내가 하는 말, 듣는 말에 생각이 잘 담겨 있는지 살피게 된다. 갑자기 말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많이 쓰는 말들이 일상의 언어와 거리가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 글에서 주로 다루게 될 상호성(mutuality)과 호혜성(reciprocity) 뿐 아니라 마땅한 번역어도 아직 찾지 못한 커먼즈(commons) 같은 단어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 사회적경제의 생각을 담는 그릇으로서 말을 고르는 작업이 얼마나 되고 있을까?

주고받기의 스펙트럼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경제를 호혜의 경제라고 부른다. reciprocity라는 영어를 많은 경우 서로 은혜를 베푼다는 뜻의 호혜(互惠)로 번역하지만,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reciprocity는 똑같이 주고받는다는 의미의 라틴어 reciprocus에서 온 말로, 그저 주고받기(give and take) 정도의 의미다. 정치경제학자인 폴라니가 호혜에서 대칭성을 강조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혜택(benefit)이든 손해(harm)든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영어단어의 번역을 두고 일부에서는 보다 가치중립적인 의미에서 상호성(相互性)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일본의 비평가인 가라타니 고진은 서로 갚는다는 의미의 호수성(互酬性)이라는 번역어를 쓰기도 했다.

폴라니가 호혜를 재분배나 교환과 구별되는 대칭적 경제교환의 방식으로 설명했다면, 마샬 살린스는 <석기시대 인류학>이라는 저작을 통해 호혜에 대한 이해를 한층 심화한 인류학자다.

▲석기시대 경제학 ⓒ한울아카데미

그는 주고받기로서 호혜의 방식을 일반화된 형태(generalized reciprocity)와 부정적 형태(negative reciprocity), 그리고 그 사이의 균형적 형태(balanced reciprocity)의 스펙트럼으로 구분한다. 부정적 호혜가 서로 주지는 않고 받기만 하려는 아귀다툼의 상태라면 일반화된 호혜는 주긴 하되 당장 직접 그에 대한 대가를 돌려받지는 않아도 좋다는 방식의 주기를 의미한다. 균형적 호혜는 말 그대로 은혜는 은혜로, 원수는 원수로 받은 만큼 되갚는 방식이다.

상호적이라고 해서 꼭 호혜적이지는 않다

호혜는 둘 이상의 존재 사이에 성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계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개념은 상호성(mutuality)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상호성 역시 사회적경제에서 많이 쓰이는 관계의 언어다. 이는 많은 협동조직이 상호부조의 정신에서 출발하였고, 유럽의 맥락에서 공제조합(mutual)이 사회적경제의 중요한 한 축으로 여겨지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상호와 호혜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같다고 볼 수는 없다. 상호의 상(相)자는 '서로'를 의미하는 글자로 나무(木)가 자라는 것을 바라보는(目) 모양에서 나온 한자다. 호(互)도 뜻은 '서로'이지만, 그 모양은 밧줄이나 고리가 서로 얽혀 있는 모양에서 따 왔다고 한다. 두 가지를 합치면 상호라는 말은 서로를 바라보는 관계의 의미가 된다. 호혜는 그 관계에서 오가는 이로움을 의미한다. 상호적인 관계라고 해서 다 호혜적이지는 않다.

이 미묘한 차이는 사실 둘 사이의 관계에서보다 셋 이상의 관계를 상상할 때 더 잘 드러난다. 둘이나 셋이나 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관계와 상호작용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사회학자인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이 "질적으로 달라진다"고 했을 만큼 양자관계(dyad)와 삼자관계(triad)의 관계성은 큰 차이가 난다. 왜 삼각관계가 있어야 그 많은 드라마가 만들어지겠는가.

세 사람 이상이 손잡고 모이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이때 상호성(mutuality)은 손잡은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손잡은 사람들끼리 서로에게 이로운 일, 즉 상호이익을 도모하면 그것은 상호부조의 방식이자 균형적 호혜의 한 형태가 된다.

다만 사회에서는 보통 이러한 관계를 상호적이라고 하지 호혜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살린스가 상호성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한 공동체 안에서 자원을 한 데 모아 재분배하는 풀링(pooling)의 방식을 "안의(within) 관계"로, 호혜성은 "사이의(between) 관계"로 구분하기도 했다. 사회에 사람이 다섯인데 거래는 셋이서만 하면 나머지 두 사람은 소외된다. 이때 나머지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는 형태의 상호성은 호혜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뮤추얼 펀드를 호혜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관계 바깥과 주고받는 것 없이 내부의 상호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상호와 호혜를 구분하는 이러한 말의 용법에는 사람이든 자연이든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 같은 존재에게도 관계의 혜택이 닿아야 한다는, 살린스가 말한 일반화된 호혜의 규범이 담겨 있다.

그렇다고 해서 상호성은 나쁘고, 호혜성은 좋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상호성을 토대로 서로를 바라보고 관계를 두텁게 하는 일은 로치데일의 협동조합에서부터 조직 차원에서 협동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부분이다.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은 새지 않고 조합원의 필요에 맞춰서 쓰는 것이 맞고,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의 상호 이해가 충족되지 않으면 그 모임은 흩어지게 마련이다. 상호적인 관계가 호혜적이 되기를 원한다면, 상호 관계의 이로움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자. 호혜의 이로움이 닿지 못하는 지점은 관계 내부에도, 외부에도 있을 수 있다.

관계의 언어를 풍부하게

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으니 말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자면, 우리 사회에 관계의 언어가 풍부해졌으면 좋겠다. 사회적경제의 정신을 담은 실천이 이미 한국 사회 기저에도 많았다고 하지만, 사회적경제(social economy)라는 용어부터 유럽과 영미 맥락의 용어를 들여온 수입어로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사회적경제의 원리와 가치를 담은 호혜나 연대, 상호성 같은 말들은 여전히 일상에서 생소하다. 말이 낯설면 그 안에 담긴 생각은 일단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 되고, 익히는 과정에서 이미 익숙한 기존의 생각과 섞여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쉽다.

▲ 서로 믿기에 평등하고 여럿이 함께하기에 더불어 잘 살수 있었던 제주의 지혜 '수눌음'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 유뷰브 캡쳐]

사실 이미 많은 사회적경제 현장에서 이음, 살림, 지음 같이 일상에서 쓰던 말들을 실천의 언어로 녹여내고 있다. 제주 지역에서는 사회적경제 현장에서 수눌음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수눌음'은 '품앗이'의 제주도 사투리라고 나온다. 품앗이와 두레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국의 호혜와 연대의 방식이었다면, 그것을 이르는 지역 언어가 수눌음만 있었을까? 눈이 많은 동네에서는 눈을 표현하는 단어가 그만큼 다양하다는데, '호혜적'이라는 형용사를 대체할 만한 우리의 일상어가 풍부해지는 만큼 사회적경제의 사회성도 강화되지 않을까?

"두루두루 도움을 준다"는 생각을 담은 대전의 품앗이 공동체 한밭레츠에서 사용하는 지역화폐 "두루"나 '모으다'는 뜻을 담은 서울 마포구의 공동체화폐 "모아"처럼, 관계의 지향이 담긴 말이 일상에서 더 많이 발견되고, 더 많이 사용되면 좋겠다. 필요할 때는 상호성과 호혜성도 때로는 엄밀하게 구별해서 사용해보면 좋겠다. 그렇게 하다보면 사회적경제 조직 안팎에서 우리의 관계가 서로 바라보기만 하는지, 서로만 바라보고 있느라 주변을 살피지 못하는지 살피고 표현할 말들이 많아지게 되고, 그만큼 관계에 대한 상상도 넓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 '마포 공동체경제네트워크 모아(MORE : Mapo Organization for Reclaiming Economy)'는 돈과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경제를 넘어 개인과 공동체가 서로 능동적인 도움을 주고받는 경제관계를 맺으며,자립과 연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마포 공동체경제네트워크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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