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작물'은 있지만 '아프리카 음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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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작물'은 있지만 '아프리카 음식'은 없다
[아프리카 음식 기행⑩] '아프리카에 아프리카 음식이 없는' 역사적 배경에 대하여
  • 2020.02.18 18:19
  • by 엄소희 (키자미테이블 공동대표)

얼마 전 '세계 여행'을 콘텐츠로 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터가 동아프리카 지역 5개국을 여행하고 나서 소감을 얘기하는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각각 어떤 특징이 있었는지, 어떤 점이 인상적이었는지, 어떤 나라가 가장 좋았는지 하는 것들을 주욱 이야기하는데, 내 귀에 꽂힌 것은 음식에 대한 평가였다.

현지 음식을 기대하고 먹어보았는데 특색도 없고 그다지 인상적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사실 많은 여행자와 방문자들이 아프리카 음식에 대해 내리는 평가가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프리카 현지식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뼈아픈 이야기이기도 하고, 속상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 구글에서 ‘아프리카 음식’의 이미지 검색 결과 갈무리. 다양하고 색감이 뚜렷한 음식들을 확인할 수 있다. ⓒ구글 이미지 캡쳐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아프리카 음식이 단조롭고 특색 없게 느껴지는 이유는 '제대로 된 현지식을 제대로 서비스하는 매장이 적기 때문'이다. 특히 매장에서 음식을 사 먹을 수밖에 없는 단기 여행자들이나 방문자들은 이 때문에 현지식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갖게 된다. 반면, 현지인의 가정에 초대되어 음식을 대접받은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매우 다른 인상을 받게 된다. 필자의 경우에도 현지 음식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게 된 첫번째 경험이 현지인의 초청으로 가정에 방문했다가 먹어본 음식 때문이었는데, 희미한 불빛에 기대어 먹는 한 그릇 음식이었음에도 매우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가정식은 맛있는데 돈 주고 사 먹는 음식은 맛이 없다니, 말이 안되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여전히 저녁 식사는 집에서 가족들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 차린 정찬은 집에서 먹는 음식이고,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은 간단히 요기할 정도의 음식으로만 생각한다. 파는 사람 입장에서도 큰 돈을 내고 먹는 소비자가 없으니 단순한 재료로 적당히 요리한다. 요리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현지식이 돈이 되지 않으니 현지식을 개발하거나 이를 사업의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 외식업을 직업으로, 사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서양식 등 외국 음식을 배우고 매장을 열더라도 외국 음식점을 연다. 이렇게 '음식의 양극화'가 고착되고 있다.

▲ 케냐에는 영화화되기도 한 자전적 소설 '아웃오브아프리카(Out of Africa)의 저자 카렌 블릭센의 집과 커피 가공 설비가 아직 남아있다. 그녀는 그녀의 소설에 '여러 해 커피 농사에 애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는 기록을 남겼다.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아프리카 현지 음식이 홀대 받게 된 데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이는 아프리카 대륙 역사의 암흑기, '식민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프리카 대륙을 '탐험'하고 '개척'한 서구 열강은 초기에는 노예와 상아, 금 등 자원을 수탈하다가 18세기부터 본격적인 식민지 건립에 착수한다. 이 때 '유럽의 안락함'을 위해 전략적으로 이식되고 경작된 것이 커피, 카카오, 사탕수수, 땅콩, 면화, 고무, 차, 담배와 같은 상품 작물들이다. 이 시기를 거치며 토지 사용과 농작물 재배 분야가 큰 변화를 겪는다.

식민지 이전 아프리카 현지 농민들은 대개 식량 작물을 재배했다. 아프리카 토종 곡물을 비롯해 뿌리작물들, 다양한 채소와 과일이 그들의 주식이었다. 하지만 식민지 건설 이후 이런 다양성이 무너지게 된다. 각 국가, 지역별로 다른 모습으로 진행되는데, 예를 들어 케냐의 경우에는 유럽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직접 농장 운영을 맡으면서 현지인들을 이주시키고, 농장 운영에 적합한 땅에 모조리 커피와 차를 심었다. 최소한의 현지인들만 그 땅에 남겨 노동력으로 썼고, 당연히 그들에게는 최소한의 임금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케냐의 이웃나라 우간다에서는 영국의 면화재배협회에서 면화 생산을 장려했다. 그 전까지 노예와 상아만 수출하고 농업으로는 식량생산만 하던 우간다 사람들은, 차츰 현금 조달을 위해 농작지에 면화를 심기 시작했고, 이것이 대농장(플랜테이션)으로 이어졌다. 농장으로 개간된 땅만큼, 식량 생산을 위한 농지는 사라진 셈이다.

가나에서 카카오, 말리에서 쌀, 세네갈에서 땅콩 등등 각종 기호품을 위한 작물 재배가 식민지 시대 아프리카 대륙 곳곳에서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아프리카 토종 작물 생산이 급감했다.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 토지의 대부분이 상품 작물에 집중되었고, 노동력도 그 쪽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서구인들의 현지 작물 폄하도 한 몫 했다. 당시 이주해온 유럽 사람들은 수수, 기장, 토종 쌀 등 토착 작물의 가치가 없다고 보고 이를 가축 사료로 썼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종자를 연구하는 연구기관과 연구자들에 의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아프리카 토종 곡물들의 영양은 매우 뛰어난 편이라고 한다.) 대신 옥수수, 카사바 등 열량이 높고 노동력이 크게 들지 않는 작물이 널리 퍼지면서 현지인들의 식단에 자리잡게 된다. 이 역사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케냐 말린디 지방의 수수밭 ⓒSoko Directory

식민 시대 종식 이후 각 나라들이 독립하고 정치 및 경제 체제를 다듬어 가는 과정에서도 '작물의 귀환'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산업화, 경제 성장이라는 허울 아래 상품 작물로의 집중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농민들은 더욱 식량 문제, 기후 변화 적응 문제, 가격 변동 취약성 등에 시달리고 있다. 작물의 빈곤, 구조의 빈곤이 식생활의 단순화로, 이것이 다시 식문화의 정체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아프리카의 음식 문화에 대한 아쉬움은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맥락 안에서 판단해야 할 문제다. 이를 '아프리카 사람들의 입맛 문제', '아프리카 문화의 미발달' 등으로 치부하지 않았으면 한다.

▲ '키자미테이블'의 단체사진  아랫줄 맨왼쪽이 엄소희 대표 ⓒ키자미테이블

아프리카 음식에 대한 첫 기고를 2019년 2월에 시작하여, 만으로 1년을 맞았다. 아직 소개할 아프리카 현지 음식은 차고 넘치지만, 얕은 경험으로 이야기를 늘어놓기 보다는 이 음식들을 발굴하고 콘텐츠화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마이너한 이야기임에도, 지난 1년 간 아프리카 음식을 소개할 기회를 준 라이프인에 감사 인사를 올린다. 더욱 풍성한 아프리카 이야기로 온-오프라인에서 인사드릴 수 있길 기대하며, 아프리카 속담 한 구절로 이 시리즈의 마지막 인사를 대신하려 한다.

"혼자 먹는 사람은 함께 먹는 음식의 맛을 논할 수 없다. 
(One who eats alone cannot discuss the taste of the food with others.)" 

주변 사람들과 따뜻한 식사, 따뜻한 자리 많이 나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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