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현장] 우리를 지켜준 방화복, 이제 소방관을 지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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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현장] 우리를 지켜준 방화복, 이제 소방관을 지키다
'119레오' 현장 방문 및 이승우 대표 인터뷰
  • 2020.01.25 15:04
  • by 노윤정 기자
▲ 이승우 119레오 대표. ⓒ라이프인

소방 업무 중에는 다양한 종류의 유해 물질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건물 등이 연소되는 과정에서 일산화탄소·포스겐 따위의 유독 가스와 포름알데히드·벤젠·석면 등의 발암 물질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방관은 많은 질병, 특히 암 발생 확률이 매우 높은데, 2017년 당시 나온 '소방공무원 암 발생현황' 자료를 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암에 걸린 소방관은 151명이다. '소방관과 암 발생-북유럽 5개국의 45년간의 추이 관찰'이라는 논문에서는 소방관 연구 집단을 관찰한 결과, 전립선 암·흑색종·비흑색종 피부암·다발성골수종·중피종·폐암 위험이 일반 인구 집단에 비해 높은 것으로 파악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으면 암 투병 중인 소방관들에게 공상(공무 중 입은 부상)에 따른 보상이 당연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국내 소방관들은 암에 걸려도 발병 원인과 소방 업무상의 연관성을 소방관 개인이 입증해야 하기에 공상으로 인정받기 쉽지 않다. 119레오 이승우 대표는 바로 이 대목에 문제의식을 가졌다.

"1년이면 세상이 변할 줄 알았어요"

▲119레오 사무실 한 편에 놓여 있는 소방복 마네킹. ⓒ라이프인

폐방화복을 업사이클링(Upcycling, 재활용할 수 있는 옷 등을 다시 디자인하여 가치를 높이는 일)하여 제품을 만들고 제품 판매 수익으로 공상 불승인 소방관을 돕는 기업. 따뜻하고 가치 있는 일을 사업화하여 실천하고 있는 119레오를 찾아 서울 성수동 '소셜캠퍼스 온 서울'을 방문했다. 전국에 총 10개소가 문을 연 '소셜캠퍼스 온'은 고용노동부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주도로 조성된 사회적기업 성장지원센터로, 안에는 많은 (예비) 사회적기업이 모여 있다. 각자의 일에 열중한 사람들 사이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소방복이 전시된 자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예비 사회적기업 119레오의 사무공간이다.

레오(REO)는 Rescue Each Other, 즉 '서로가 서로를 지키다'라는 뜻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소방관들이 달려와 우리를 지켜주듯이 우리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방관을 지켜주자는 마음을 사명에 담았다. 사명의 의미처럼 119레오는 '소방관의 권리 보장', 좀 더 구체적으로는 '공상 불승인 소방관 지원'이라는 임무를 수립해 활동하고 있다. 콕 집어 공상 불승인 소방관을 돕자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고(故) 김범석 소방관의 사연 때문이었다. 김 소방관은 2006년부터 8년간 소방관으로 근무했으며 지난 2014년 3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혈관육종암으로 숨을 거뒀다. 이후 유가족은 보상금을 청구했으나 공무원연금공단은 김 소방관이 암에 걸린 원인과 소방 업무 사이의 연관성을 확인할 수 없다며 보상금 청구를 기각했다(유가족은 소송을 통해 지난해 9월 겨우 공무상 사망을 인정받았다).

"대학에서 동아리 활동을 할 때 소방관 장비 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래서 궁금해지더라. 얼마나 장비가 부족한가? 그래서 직접 소방관들을 만나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장비는 풍족했다. 물론 이건 내가 사는 서울 소재 소방서에 국한된 이야기지만, 적어도 이 지역에서는 장비 부족이 진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과연 진짜 문제는 무엇인지 알기 위해 계속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암 투병 소방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굉장히 죄송하다는 마음이 들었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치기 어린 마음에 1년이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줄 알았다.(웃음) 암 투병 소방관들에게 기부금을 전달하는 1년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세상 사람들이 그분들에게 많은 관심을 두게 되어 더 이상 소방관들이 공상 인정을 위해 소송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소방관들은 공상 인정을 위해 소송을 벌여야 했다. 119레오에서 처음으로 기부금을 전달했던 소방관 두 명이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까지 들려왔다. 그때 이 대표는 큰 책임감을 느끼고 동아리가 아닌 다른 조직 형태로 활동을 이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무엇보다 김 소방관 아버지의 연락이 결정적이었다. 이 대표는 "기부금을 전달한 소방관이 돌아가셨단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원래는 더 이상 이 일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김범석 소방관 아버지가 연락을 주셨다. 우리 활동으로 사람들이 암 투병 소방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만으로 고맙다고, 소송에서 이기고 지는 문제를 떠나 우리 마음이 고맙다고 말씀해 주셨다"며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게 된 이유를 전했다.

ⓒ119레오

소방관 권리 보장이라는 사회적 가치 창출을 목표로 일을 시작한 만큼, 119레오는 아이템 선정부터 제품 제작 과정까지 지향 가치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폐방화복을 아이템으로 선정한 이유도 방화복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이 대표는 "무작정 소방관들을 도와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제품을 만들어서 수익을 내고 그걸 통해 소방관들을 돕자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그래서 의미 있는 아이템, '서로가 서로를 지키다'는 가치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아이템을 고심한 결과, 방화복을 아이템으로 정했다. 소방관들이 사용하는 장비가 엄청 많다. 하지만 그 중 다른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장비는 방화복이 거의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창업 방식 중에서 사회적기업을 설립하는 방식을 택한 것 또한, 사회적기업이 암 투병 소방관들의 권리 보장이라는 미션을 달성하는 데 적절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방화복을 수거하고 세탁하고 분해하여 가공하는 모든 과정에서 119레오가 지향하는 가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했다. 이 대표는 이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하기 민망하지만, 완성된 제품뿐 아니라 과정 자체가 위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쑥스러운 듯이 웃었다.

"폐방화복을 업사이클링 하는 과정에 지역 주민들이 동참하면 어떨까 했다. 소방관은 지역을 지키는 사람들이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방화복도 지역의 자산일 수 있다. 지역의 자산이 진짜 지역의 자산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해당 지역의 자활기업과 협업하기로 하고 폐방화복 가공 과정을 맡겼다. 또, 현재 함께 일하고 있는 인천 자활기업들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자활기업과도 이런 협업 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 방화복을 세탁하고 분해하면 부피가 줄어들기 때문에, 사업적으로 봤을 때도 이 시스템이 안착되면 물류비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사실 지금은 서울, 인천에서 방화복을 수거하여 인천 자활기업으로 보내기 때문에 물류비가 증가했다. 하지만 사업은 결국 미래를 내다보고 하는 것이지 않나."

사회적경제기업, 좋은 제품 통해 시장 경쟁력 갖춰야

▲ 기부금 전달식. ⓒ119레오

119레오는 영업이익의 50%를 대한민국재향소방동우회를 통해 공상 불승인 소방관의 초기 소송비 등을 지원하는 데 기부하고 있다. 2017년부터 지금까지 6차례에 걸쳐 총 34,435,880원의 기부금을 전달한 터. 이 대표는 119레오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고 지금의 활동을 이어 가기 위해서라도 좋은 제품을 통해 시장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비자에게 품질 낮은 제품을 사회적경제기업 제품이라는 이유로 써 달라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119레오는 끊임없이 품질 제고를 위해 노력하며 경쟁력 확보에 힘을 쏟고 고민하고 있었다.

일례로 119레오는 단순히 제품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연계 시스템을 구상 중이다. 지난해부터 FCP(Firefighter Cancer Prevention, 소방관 암 예방) 시스템과 소비자가 방화복과 관련된 정보를 알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에 대한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 대표는 "그냥 방화복 업사이클링 제품이 아니라 '소방관들의 정신'을 구매한다는 느낌을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사업적 역량을 키우고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한 결과, 많은 성과도 이뤘다. 메이저 홈쇼핑에 입점 판매하며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고, 최근에는 핫트랙스 디큐브시티점에 입점해 판로를 넓혔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제품을 일본에 수출하기도 했다.

물론 성과를 내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이 대표는 맨 땅에 헤딩하듯이 도전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사실 쉬운 것이 하나도 없다"고 웃었다. 폐방화복을 해체하여 가방으로 제작하는 일도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어려웠고, 제품의 가치를 설명하고 판로를 개척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직접 발로 뛰고 하나하나 치열하게 부딪치는 것은 물론,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등의 지원 정책과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등 기관의 도움을 받아가며 사업을 지금까지 이끌어왔다.

이 대표는 예비 사회적경제기업 창업가들에게 도전과 경험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전했다. 이 대표는 "나도 경험을 더 많이 해봐야 이 방법이 맞는지 아닌지 결론 낼 수 있겠지만, 사실 나는 멘토 분들이 하지 말라는 걸 다 해봤다"고 운을 떼며 "예를 들어 멘토 분들은 우리의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으니, 방화복을 세탁하고 해체하는 작업을 자활기업 쪽으로 옮기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옮기고 싶더라. 그래서 옮겼다. 물론 해보니 힘들고 돈도 많이 든다는 걸 알겠다.(웃음) 그런데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면 아마 계속 의문도 남았을 테고, 어쩌면 옮기지 않아서 더 힘들어졌을 수도 있다. 수출 같은 경우도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했는데, 결국 진행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일본 쪽에 납품한 제품을 보고 홍콩, 독일에서도 연락이 왔다"고 전했다. 이처럼 이 대표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본인이 직접 부딪쳐보는 것이 멘토와 선배들의 조언을 얻는 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19레오

119레오의 목표는 분명하다. 목숨 걸고 사람들을 지키는 소방관들이 권리를 침해받지 않도록 함께 목소리를 내고 곁을 지켜주는 것이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젊은 사업가는 오늘도 고심을 거듭하고 있었다.

"FCP 시스템을 개발하고 자활기업과 연계하는 시스템을 안착시킨 다음, 이걸 글로벌화하려고 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소방관들이 입던 방화복을 업사이클링을 해서 제품을 만들고, 제품 판매 수익금으로 방화복을 구입하여 방화복이 제공되지 않는 나라의 소방관들에게 공급하는 것이 119레오의 큰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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