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의 죽음, 알권리로 살아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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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의 죽음, 알권리로 살아 돌아오다
[생명안전시민넷.라이프인 공동기획 안전 칼럼] 랄라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 2017.11.07 18:11
  • by 라이프인
랄라(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삼성전자 옆 우수토구(원천리천)에 물고기가 죽어 있어요"

2014년 10월 31일. 환경단체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사건의 시작이었다. 작은 치어부터, 성어, 저 물 밑에 가라 앉아 아무도 모르게 숨 쉬고 있었을 생명들, 우수토구(원천리천)에 살아 숨 쉬던 1만 마리 정도의 생명체 모두가 사라졌다. 배가 터지고, 물가 돌 위로 튀어 올라와 죽어있는 물고기의 사체들은 죽기 직전까지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물고기가 떼죽음 당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증거 확보, 사고 원인조사와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현장을 보존하고 물과 사체를 분석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묘하게도 사건 현장의 보존이 안 되었고, 공무원의 직무유기로 인해 사체도 분석 하지 않은 채 폐기 해 버렸다. 현장에서 체수한 물 역시도 체수 한 이들에 따라 그 분석 결과가 달랐다. 수원시의 체수 결과(주요 6개항목만 검사) 염소성분이 기준치 이상 나왔다고 되어 있으나, 시민단체의 체수결과(기본항목에 중금속 등 독성물질 포함해서 23가지 항목 분석의뢰) ‘맹독 물질 시안과 마취제 성분인 클로르포름’이 검출 되었다. 각기 다른 체수 결과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고, 사건의 진실은 죽어간 물고기와 함께 묻혀 버렸다.

물고기 떼 죽음

2014년 10월은 세월호 참사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시기였다. 안전하지 못한 사회가 얼마나 큰 재난을 가져오는지 눈으로 확인한 때였다. 하기에 환경과 안전 문제는 쉽게 넘길 수 없었다. 작은 물고기의 생명이지만, 이것을 그대로 방치하면 곧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것. 작은 사건이라도 진실을 외면한다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수원의 환경, 인권, 시민사회단체는 수원시에 제안하여 시민단체, 전문가, 수원시가 함께 하는 민관합동대책단을 꾸렸다. 물고기 집단폐사 원인 규명과 대안 마련이 그 목적이었다.

민관합동대책단은 7개월 여 간의 조사를 통해 물고기 집단폐사가 단순한 환경오염 사고가 아닌 화학물질 사고라는 것, 이에 대한 기업(삼성)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 지자체의 오염사고대응 메뉴얼과 재발방지대책 마련하고, 화학사고와 관련하여 지역주민의 알권리 조례를 만들라는 권고를 내렸다. 특히 민관합동대책단으로 사건조사를 진행하면서 사고원인에 대한 합동 조사를 실시하는데 법적 권한이 없어서 기업(삼성)에 대한 조사, 인터뷰도 모두 거부당했던 경험을 토대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고민도 있었다.

그리고 2016년 3월 21일 민관합동대책단의 권고에 따라 수원시 화학사고 대응 및 지역사회 알권리 조례(이하 알권리 조례)가 만들어졌다. 알권리 조례는 △화학물질로부터 시민이 안전할 권리를 위한 시장의 책무, △화학사고 대응을 위한 행정지원(화학사고 위험등급 설정, 비상대응계획 수립, 고독성물질의 감시 및 화학물질정보센터 설치운영 등), △화학사고위원회의 설치구성, △시민의 알권리 실현을 위한 화학물질정보공개 및 평가에 관한 사항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역 주민의 알권리를 중심으로 한 조례는 전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지자체에서 화학물질을 감시하고, 시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고기 집단폐사 사건을 계기로 민(시민)과 관(수원시)이 합동으로 조사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만들어 진 소중한 결과였다.

물고기 떼죽음, 삼성은 책임져라

올해(2017년) 3월 영통구에서 6가 크롬이 누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6가 크롬이 누출 됐을 당시 수원시는 기존 시의 관례대로 조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주민들이 2개월 뒤 언론보도를 통해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시의 대응을 불신하게 되었다. 이후 수원시는 주민들과 간담회, 토양오염이나 대기오염이 없는지 확인, 주민들의 건강검진 등 뒤늦게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6가 크롬 누출사고는 투명하지 못한 정보공개의 위험성과, 주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재빠른 재발방지대책을 세우는 것의 중요함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아무리 좋은 조례가 있더라도 제대로 운용되지 않는다면 역시 있으나마나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수원시는 조례를 기반으로 화학사고관리위원회를 통해 화학물질 정보를 수집하고, 지역구를 중심으로 비상대응계획을 세울 준비를 하고 있다. 화학사고관리위원회는 수원시/시민사회단체/기업/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다. 공무원들은 화학물질 사고 발생 시 위급하게 대응해야 할 재난 계획을 세우고, 기업은 화학물질을 다룬 경험과 노하우를 통해 안전하게 관리할 고민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고가 일어났을 시 재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위험도가 어느 정도인지 전문적으로 판단하는 역할을, 시민단체는 알권리 조례가 지역주민들에게 어떻게 널리 알려지고, 지역에 뿌리내릴지 고민한다. 각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가면서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수원시를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을 떼고 있다.

삼성 불산 누출사고, 구미 불산 누출사고, 군산 화학물질 공장 폭발사고 등 최근 몇 년 사이 화학물질 폭발 및 누출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화학물질 사고가 큰 재해를 동반 할 수 있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일깨워준 사고들이었다. 특히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성분들이 외부로 유출 되었을 때, 위험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기에 더욱 두려운 일이었다.

두려움은 보이지 않는 것, 알 수 없는 것에서 기인한다. 제대로 안다면, 잘 다룰 수 있다면, 안전대책이 수립되어 있다면 더 이상 두려움이라 이름 붙이지 않아도 될 일이다. 정보와 안전은 투명하게 다뤄져야지만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고, 두려움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경미한 사고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최선을 다해 대응하겠다는 노력이 좀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만약 물고기가 폐사했다는 한 통의 전화를 지나쳤더라면, 늘상 일어나는 물고기의 폐사라 단정 짓고 넘어 갔더라면 또 다른 위험을 대비할 수 있는 체계들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안전에 대한 감각을 불어넣어 줬고, 물고기의 죽음이 인간의 문제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연결고리들이 알권리의 소중함,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지혜를 불어넣어 주었다.

시작은 경미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경미한 시작의 도달할 결론은 예측하기 어렵기에 대비하고, 대응하는 준비가 필요하다. 안전한 사회를 만든다는 것, 그것은 작은 사고라도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더 큰 사고를 대비할 수 있는 지혜를 모으는 것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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