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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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기형도기념사업회, '기형도문학관' 개관 앞두고 기형도 시길 밟기 행사
  • 2017.10.30 15:56
  • by 강찬호 기자
2003년부터 광명지역에서는 기형도 시인을 기억하는 모임, '기형도기념사업회'가 시작됐다. 올해로 15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기형도문학관 개관을 앞두고, 기형도 시인 시길 밟기 행사를 진행했다. 사진 신성은

기형도 시인의 시, <정거장에서의 충고>의 첫 소절이다. ‘미안하지만 난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그 마음을 품고 길을 떠난 이들이 있다. 그 길에 어물쩍 동참했다.

기형도 시인은 유년시절부터 광명시 소하동에서 살았다. 기형도 시인이 살던 곳에서 조금 떨어진 주변은 상전벽해가 되어 역세권으로 변했다. KTX 광명역이 들어섰고 거대한 역사와 주변에 쇼핑몰들이 들어섰다. 광명시는 광명역을 유라시아 대륙철도 시발역으로 비약시키겠다는 포부로 무에서 유를 만들려고 애를 쓰고 있다. 시간도 흐르고,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다. 유년의 인연이 되어, 누군가에게는 ‘광명시인’이기도 한 기형도 시인의 주변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기형도 시인을 발견하고 그를 아끼는 광명사람들이 모여, 지금의 ‘기형도기념사업회’를 만들었다. 2003년이니, 올해 15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모임을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지속하는 일 역시 만만치 않다. 진정 애정을 가진 일이기에 가능했을 것이고, 스스로 하고자 한 자발성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기형도기념사업회, 2003년이후 지속적으로 기형도 추모와 기억 행사 진행해와...문학관 개관 앞둬 기대감 더해

  곧 갑작스런 추위가 올 것이라는 예보는 있지만, 여전히 하늘은 높았고, 가을은 고유한 자태를 맘껏 뽐내며 깊어가고 있었다. ‘아~날 좋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굳이 표현하지 않았어도 모두의 기분, 느낌이었으리라. 정말 날이 좋았다. 이 좋은 계절이 기후변화로 자꾸 사라져가는 것은 안타깝고 안타깝다. 기형도기념사업회 회원들이 ‘기형도 시인 시길 밟기’ 길을 나선 것은 2017년10월28일 오전 10시. 20여명의 회원들이 기형도 시인의 유일한 시집이자 유고시집이 된 <입 속의 검은 잎>을 손에 들고 ‘기형도문학관’ 앞에 모였다. 기형도문학관은 오는 11월 10일 개관식을 앞두고 있다. 그에 앞서 기념사업회 회원들이 먼저 모여 시길 밟기 행사를 갖는 것은 더욱 뜻 깊다. 지난해는 10월 29일에 같은 행사를 가졌다. 기형도 문학관이 들어서고, 그 주변으로 기형도문학공원이 들어섰으니, 이 또한 기형도 주변의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시간이 문제이지, 와야 할 미래는 오도록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문학관 개관을 기다려 온 이들에게는 그 날의 개관식이 무척이나 기대가 될 것이다. 이러한 기대와 설렘임을 살짝 감추고, 시길 밟기, 이날은 맘껏 날씨에 취하고 동료 회원들에게 취하고, 무엇보다도 기형도 시인의 ‘시심’에 취하는 날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기형도기념사업회 김세경 회장의 인사말도 어느 해보다도 이런 서로의 마음을 잘 대변했고 또 하나의 시가 되어 회원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오늘 시길 밟기는 문학관 개관을 앞두고 있어 어느 해보다도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걷는 시길은 그동안 기형도기념사업회가 걸어온 길과 닮아 있습니다. 아직 잘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꼭 걸어야 할 길이기에 묵묵히 걸어 온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문득 기형도 시인이 시를 통해 가고자 했던 길이 곧 사람의 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형도 시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길이 되었습니다.”

1코스 걷기 행사는 마을 정자에 모여 시 낭독과 시인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김은석 기형도문학관 팀장으로부터 기형도 시인과 시집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사진 신성은

시길 밟기는 두 개의 코스로 나눠 진행됐다. 1코스는 문학관에서 출발해 문학관 배후에 있는 성채산 둘레를 돌아 소하동 휴먼시아 2단지를 거쳐, 5단지 정자까지였다. 아파트단지 모퉁이에 자리 잡은 정자가 1코스 마무리 행사의 장소가 되었다. 1코스를 지나는 동안 기형도문학공원의 시비를 만날 수 있었고, 광명역역세권 배후의 숨겨진 마을길들을 걸을 수 있었다. 20년 가까이 광명에서 살았지만, 처음 가보는 길도 만났다. 덕안길 지하도. 1코스를 걷는 데는 20여분 소요된 듯 했다. 정자에 모여 기형도 시를 연구하고 있고, 기형도문학관에서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은석 시인(필명 금은돌)이 기형도 시인에 대해 소개했다.

기형도 시집 59쇄...꾸준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로 독자들로부터 사랑...기형도 시인은 고통 외면하지 않고 직면하며 희망을 노래하는 시인

김 팀장은 “(자신이) 대학에 입학한 때가 1989년도로 그해 시집 입속의 검은 잎이 초판 발행돼 현재 59쇄에 이르고 있다”며, “기형도 시인은 죽었지만 살아있는 시인이고 시속에서 다른 인생을 사는 시인이다. 기형도 시인이 텍스트다. 기형도 시인은 자생적인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독특한 흐름을 갖고 가는 시인이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텍스트 연구는 텍스트 안과 밖으로 구분되어 진행되며, 통상 시인에 대한 연구는 텍스트 안 연구에 머무는데 기형도는 텍스트 안과 밖의 연구가 함께 가는 흔하지 않은 경우에 해당된다. 기형도 시인이 가진 힘이다.”라고 평가했다. 김 팀장은 또 “유년시절 ‘엄마걱정’에서부터 대학시절, 군대시절, 그리고 기자시설을 거치며 한 권의 시집을 통해 청춘이 지나가는 시점이 다 담겨 있고, 현재를 살지만 동시에 미래를 내다보기도 하면서 시간의 다양한 시점, 즉 시간의 위치이동을 통해 인생의 희노애락을 바라보는 제3의 눈, 다양한 관점을 취하고 있고, 독자는 이를 통해 위안과 통찰을 얻는다”고 평가했다. 김 팀장은 이러한 경우의 대표적 사례로 기형도 시인의 시 <병>을 직접 낭독하고, 소개했다. “기형도 시인은 위안과 내적 강단을 가진 시인으로 고통을 직면하고 있으며 결코 고통으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있다. 시 길을 단단히 밟고 걸으며, ‘미안하지만 희망을 노래하련다’는 시인의 마음에 공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며 짧은 소개를 마무리 했다.

이어 문단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 광명시에 살고 있는 위상진 시인이 <정거장에서의 충고>를 첫 순서로 낭독했다. 낭독에 앞서 “2003년부터 시작해 올해 15년 째 접어들고 있는 기념사업회 활동에 감사하다. 수고 많으셨다. 지역에 사는 시인으로서 가슴이 뭉클하다”며, 짧은 인사말을 건넸다. 이어 윤외숙 기념사업회 운영위원이 <10월>을 낭독했다. 김세경 회장은 “가을 분위기에 잘 맞는 시라서 골랐고, 9월 어느 날 이 시를 읽다가 울컥 하는 대목을 만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광명문인협회 전 회장을 맡았던 송명숙 시인도 “주머니 사비 털고 10여년 모임 쫓아다니다가 최근에 이런저런 일로 모임에 자주 참석 못하다가 더 늦어지면 추억이 사라질까봐 참석하게 됐다. 문학관이 개관되어 너무 기쁘다.”며 <바람은 그대 쪽으로>를 낭독했다. 이어 참가자들은 10여분 휴식을 취한 후 다음 2코스로 이동했다. 2코스는 소하동 저류지 체육공원 옆 정자까지였다. 이곳에서 다시 낭독 행사를 진행한 후, 일행은 기형도 생가터(3코스)와 안영천변(4코스)를 걸으며 시길 걷기 행사를 마쳤다.

기형도기념사업회 윤혜숙 운영위원이 기형도 시 <10월>을 낭독했다. 사진 신성은.

이날 행사에는 기형도 시인의 첫째 누님인 기향도씨가 함께 참석했다. 기향도씨는 시길 밟기를 하며 성채산 주변에 대한 기억, 주변 마을에 대한 기억을 회상했다. 성채산에 마을 공동묘지가 있어 어린 시절 무서워서 가지 못하기도 했고, 그 아래에는 포도밭이 펼쳐져 있었다고 기억했다. 기향도씨는 오래 시간 광명지역에서 동생을 기억하고 기념사업을 진행해 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지금처럼 순수함을 가지고 앞으로도 해 준다면 지금까지 모든 일이 다 좋아지듯이 앞으로도 좋은 일이 이어질 것이다”라며 ‘순수한 마음’을 강조했다. 기향도씨는 2코스까지 참여하고 다음 일정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필자 역시 다음 일정으로 시길 밟기를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고 2코스에서 희망을 간직한 시길 밟기를 뒤로 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미안하지만 나는 희망을 노래하련다.’

기형도 시인은 1960년 연평도에서 태어나, 1965년 현 광명 소하동으로 이주하여 숨을 거둘 때까지 거주했다.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안개>라는 시로 당선이 되어, 집필 활동을 하다가 1989년 3월 뇌졸증으로  30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 유고 시집으로 <입 속의 검은 잎>이 있다.

기형도문학관은 11월 10일 개관하며, 장사익의 축하 공연과 음악 낭독극 등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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