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병사의 어이없는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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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병사의 어이없는 죽음
[안전사회시민네트워크ㆍ라이프인 공동기획_안전 칼럼] 박석진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상임활동가), 생명에 대한 존중과 안전의 가치 되새기는 기회 되어야
  • 2017.10.27 15:31
  • by 라이프인
박석진(열린군대를 위한 시민연대 상임활동가)

지난 9월 26일 강원도 철원의 육군 6사단 소속 이모 일병(21)이 전투진지 공사작업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던 중 인근 사격장에서 날아든 총탄에 머리를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사건 당일 이모 일병은 본대 행렬과 조금 떨어져 부소대장 등과 함께 사격장 사로에서 직선거리로 400미터 정도 거리의 오솔길을 지나던 중 피격되었고 피격 후 헬기로 성남국군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끝내 숨지고 말았다.

이 사건과 관련해 우선 놀라운 것은 부대 내 사격장의 구조였다. 사고가 난 사격장은 사격을 하는 방향으로 오르막 경사가 진 구조였는데 표적의 뒤편에서 바로 피격당해 숨진 이모 일병 일행이 지나던 통행로가 위치하고 있었다. 사격장 사로에서 피격 장소까지는 불과 400여 미터로 당시 사격장에서 사격연습을 하던 K-2 소총의 유효사거리가 460미터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부대의 병사들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상대로 사격훈련을 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나는 사람을 겨냥하는 황당한 사격장 구조

지난 10월 19일 국방부 조사본부(이하 조사본부)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사격장에는 사선에서 280미터 떨어진 곳에 높이 14미터의 방호벽을 설치해두고 있었으나 방호벽은 사선에서 200미터 거리에 세워진 표적지를 기준으로 총구를 1.59도로 했을 때만 안전하며 총구가 2.39도만 높아도 방호벽의 두 배 높이로 날아가 이모 일병이 숨진 장소까지 날아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사고 장소 주변의 나무 등에는 70여개의 총탄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평상시에도 사격장에서 발사한 총알이 날아왔던 지역임을 알 수 있었다. 군 사격장의 경우 통상 1년에 두 차례 사격장 안전평가를 하도록 하고 있음에도 그동안 이 사격장의 문제점에 대해 아무런 지적이나 보완대책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도 놀라운 이유이다.

군에서 실시하는 사격훈련의 경우 안전통제관이 사격 전 경고방송을 해야 하며 사로 뒤편까지 통제해야 한다. 그러나 조사본부의 조사내용은 당시 사격훈련을 하던 부대는 이모 일병 일행이 지나던 통행로의 양쪽 끝에 2명씩의 경계병을 배치했으나 이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모 일병이 속한 부대의 인솔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격장에서 사격이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해당 부대의 인솔자들은 병력을 우회하거나 사격이 종료될 때까지 대기하는 기본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조사과정에서 해당 부대의 소대장은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크게 듣느라 사격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숨진 이모 일병이 도로를 통과하며 총소리가 나자 “총에 맞을 수 있느냐”고 질문을 했으며 이에 부소대장은 “안 맞을 거다. 상체 숙이고 가자”라고 대꾸하며 이동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사건은 국방부 조사본부도 시인했듯이 사격장 관리부대, 사격장 훈련부대, 이모 일병이 속한 부대 지휘관들의 총제적인 직무태만과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사고이다.

총체적인 안전불감증이 빚은 참사

문제는 더 있다. 이모 일병은 총을 맞은 직후 국군 의무후송항공대 소속의 헬기를 타고 성남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됐다. 문제는 이 헬기가 의무후송헬기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김학용의원(자유한국당)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모 일병을 후송할 때 이용된 헬기 수리온은 기내 진동이 심해 헬기 내에서 응급수술이 불가능하며 정맥주사조차 놓을 수 없는 기종으로 알려졌다. 의무후송헬기가 1인당 4시간의 산소공급이 가능한 반면 수리온은 30분 이내에만 산소공급이 가능하며 기본적인 응급처치 키트만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촌각을 다투는 환자를 살릴 기능이 없는 것이다. 또 이 헬기는 내부공간이 협소해 들것 환자를 단 한 명만 후송할 수 있으며 항속시간도 2시간에 불과해 환자가 이송되다 헬기환승을 해야 하는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지난달 18일 K-9 자주포 폭발사고시 부상 병사가 6명이었는데 헬기 4대가 차례로 실어 나르느라 병원에 제일 먼저 도착한 환자와 나중에 도착한 환자 사이의 시간차가 1시간 이상 난 적도 있으며 작년 12월 울산 예비군 훈련장 폭발사고시에는 항속시간 제한 때문에 환자 1명을 2대의 헬기가 번갈아 후송한 적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이모 일병의 상태가 사망에 가까워 메디온(의무후송헬기)이 출동해도 조치할 사항이 없었다”고 답해 공분을 산 바 있다.

은폐와 책임회피로 일관하는 군 당국

보다 중요한 문제는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군 당국이 취한 태도이다. 사건 발생 직후 군 당국은 현장감식 결과 이모 일병 죽음이 사격장에서 발사한 총탄의 도비탄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도비탄은 발사된 총알이 돌이나 나무 등 탄성이 있는 딱딱한 물체에 튕겨진 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조준한 곳에 맞지 않고 빗나간 총탄을 의미하는 유탄과 구별된다. K-2 소총의 유효사거리가 460미터인데 도비탄이 400미터 밖의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해당 군부대에서도 도비탄에 의한 사망사고는 들어보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결국, 이모 일병의 유족은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 전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을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고 이에 국방장관의 지시로 특별수사가 착수되었다. 군 당국이 초기 도비탄에 의한 죽음이라는 추정을 발표한 이유는 사건을 단순 사고처리하고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란 지적이 많다. 지난 2015년 5월 3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당한 서울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 총기 난사사건 당시 육군은 초기 수사발표에서 사격장의 6개 사로에서만 사격훈련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나중에 드러난 것은 20개 사로에서 사격훈련이 진행되었다는 것이었다. 초기 수사발표에서 거짓말을 한 이유와 관련해서는 각 사로마다 1명의 조교가 배치되어야 하는데 당시 조교 6명만이 사격훈련을 통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사로 수를 줄여 발표했던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2014년 고참병들로부터 끔찍한 가혹행위와 폭력을 당해 숨진 윤일병 사건 때에도 군 당국은 수개월동안 단순 폭행에 의한 사망이라며 사실을 속여 국민적 공분을 산 바 있다. 사실을 은폐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군의 태도는 여전하다.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있어야 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병사 생명과 안전의 가치 되새기는 기회 되어야

지난 10월 19일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은 국정감사 자리에서 관련 사건에 대한 질책을 받자 스스로도 한심스럽고 책임을 통감한다며 후진적 리더십을 획기적으로 개선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그가 개선하겠다고 한 후진적 리더십이 무엇인지 정확하진 않으나 병사들의 생명에 대한 존중 그리고 안전의 가치에 관한 군의 인식이 개선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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