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연대경제
커뮤니티를 위한 지속 가능한 활동 무대 만들기[소셜복덕방 - 삶이 깃든 부동산, 사회가 깃든 부동산 ⑧]
  • 황지성 (사회혁신기업 더함 매니저)
  • 승인 2019.12.02 09:40
  • 댓글 0
복과 덕을 생기게 하는 것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복덕방(福德房)은 말 그대로 복과 덕이 있는 방을 의미한다. 과거 동네에서는 제를 올리기 위해 각자의 형편에 맞게 음식과 돈, 노동력을 제공하고 당산나무나 근처 넒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제사음식을 모두가 나눠 먹었다. 그리고 음식과 정을 나누던 그 공간을 복덕방이라고 일컫곤 했다. 이렇듯 우리의 삶과 사회적인 영역 속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던 복덕방은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 업자들의 등장으로 어느새 이름도 부동산중개소로 바뀌었다. 집과 토지를 의미하는 부동산도 더 이상 삶의 터전이 아닌 투기와 축적의 수단이 되었다. 최근 부동산 문제의 대안으로서 사회주택, 시민자산화, 공유공간 등 모델이 소개되고, '사회적 부동산'이라는 새로운 인식틀과 담론이 제안되고 있다. 삶과 사회가 깃든 부동산인 '사회적 부동산'을 사회혁신기업 더함과 함께 라이프인이 소개한다.

 

조각난 도시 공간, 모이기 어려운 커뮤니티 시설 

서울에 있는 여러 공간들을 생각해 보자. 탑골공원을 생각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홍대 혹은 명동을 생각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아마 서울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은 지명을 들었을 때부터 이곳과 연관된 특정 집단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탑골공원을 들었을 때에는 조금 연배가 있는 분들을, 홍대와 명동을 들었을 때에는 잘 나가는 힙스터와 외국인 관광객들을 떠올리게 된다. 당초 특정 집단이 모이기 시작한 계기들이 있었겠지만, 공간을 점유하고 사용하는 이들이 공간의 특성, 페르소나를 결정하고 이를 심화해 가는 것이 아닐까. 이처럼 공간이 세대별로, 특성별로 각기 분화되는 가운데, 사람들이 서로 만나 교류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어려울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가구의 약 50.1%가 거주하고 있다는 아파트의 상황은 어떠할까? 서울시에서는 ‘공동주택 한마당’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주택 공동체 활성화 사업 우수사례 공유회>를 매년 진행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조심스레 짐작하건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입주자들이 서로 만나 교류하는 것이 아직 보편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추측할 수 있다.

물론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서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 선행 조건이 필요한데 일단 단지가 매우 커야 한다. 이 조건을 만족한다 하더라도, 커뮤니티 구성원의 특성은 크게 두 가지로 수렴된다. 시니어센터에 출입하시는 연령이 높은 분들, 그리고 아이를 양육하는 분들이다. 이외 대다수 입주자들은 집을 단순히 재충전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한다.

이렇듯 도시공간에서도, 주거공간에서도 다양한 특성의 사람들이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들끼리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은데,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히 훨씬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커뮤니티 공간 디자인의 여정 - 10개월, 46번의 모임, 누적 참여 인원 600여 명

협동조합형 아파트인 위스테이는 아파트 단지 안에 커뮤니티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커뮤니티 시설을 만들어야 했고, 아파트에 입주하는 순간부터 시설을 잘 활용할 수 있게끔 사전 기획이 필요했다. 커뮤니티 공간 디자인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커뮤니티 공간 디자인’은 입주 예정자들이 입주 전부터 모여 아파트 안에 있는 커뮤니티 시설을 함께 기획하고 만들어 가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이러한 참여형 디자인 작업은 지금까지 소규모 사회주택에서 실행된 적은 있지만, 아파트 단지 규모에서 진행된 것은 처음이었다.

사전 준비 모임부터 시작해서 커뮤니티 시설에서 사용할 집기비품을 결정할 때까지 총 10개월 동안 46번의 모임이 열렸고, 누적 참여 인원은 600여 명이었다. 중간중간 온라인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진행사항을 공유하며 의견을 받았고, 중요한 결정 전에는 설명회를 진행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위스테이의 캐치프레이즈인 느슨한 공동체와 달리 매우 빡빡한 일정이었다. 그렇다면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었을까?

커뮤니티 공간 디자인, 커뮤니티의 활동 무대를 만드는 과정

‘커뮤니티 공간 디자인’이라고 했을 때에 종종 ‘커뮤니티 디자인’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커뮤니티 디자인은 커뮤니티 공간 디자인보다 오래 전부터 다양한 지역 공동체에서 시도되어 왔다. 커뮤니티 디자인은 주민들의 주체적인 참여를 통해 주민들의 관계나 공간적인 변화를 목표로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으로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 시민연대’와 같은 시민단체에서 주도해왔다. 인간이 중심이 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활동해 온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 시민연대’는 2000년대부터 이미 ‘주민참여 한평공원 만들기’, ‘주민참여형 어린이놀이터 리모델링’, ‘마을만들기‘ 등 다양한 영역에서 주민 참여를 주제로 커뮤니티 디자인을 실천해 오고 있다.

커뮤니티 공간 디자인 또한 커뮤니티 디자인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그럼에도 이 두 개념은 비슷한 듯 다르다. 커뮤니티 디자인이 커뮤니티의 재결합이라면, 커뮤니티 공간 디자인은 커뮤니티의 형성이다. 커뮤니티 디자인에서 커뮤니티 재결합의 매개물은 꼭 공간이 아니지만, 커뮤니티 공간 디자인의 경우 공간은 매개이자 목적 자체이다. ‘공간’은 물리적 특성상 지속성을 갖는다. 특히 커뮤니티 공간 디자인이 다루는 ‘공간’은 조합원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한 주거단지 내의 시설이다 보니, 디자인은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으며, 덕분에 일상의 구체적인 수준까지 고민하게 해준다.

조합원들은 도서관, 크리에이티브 카페, 커뮤니티 카페, 헬스케어 센터 등 커뮤니티 시설 중 각자 좀 더 관심이 닿는 공간별로 자신들이 원하는 활동을 상상하고 커뮤니티를 위한 지속 가능한 활동 무대를 구체화하게 된다.
 

▲ ‘커뮤니티 공간 디자인’은 커뮤니티 시설의 실제 이용자(이용 예정자)들과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커뮤니티의 지속 가능한 활동 무대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더함


커뮤니티 공간 디자인, 개인 의견들을 커뮤니티 의견으로 모으는 커뮤니티 형성 과정

앞서 살펴본 것처럼 커뮤니티 공간 디자인은 단순히 커뮤니티 시설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를 현실로 구체화하는 첫걸음이다. 사실 위스테이의 조합원들은 이미 협동조합 설립 단계부터 수차례 만나 서로의 기대를 확인하고, 커뮤니티의 지향점과 목표를 세웠다. 커뮤니티 공간 디자인은 바로 그 지향점과 목표를 실제 생활에서 구현하기 위해 조합원들이 함께 논의하는 과정이다.
 

▲ 커뮤니티 공간 디자인 참여자들은 워크숍을 통해 커뮤니티 시설과 서비스의 콘셉트, 운영 프로그램, 공간 디자인 등 구체적인 부분까지 주도적으로 의견을 내고 개진한다. ⓒ더함


조합원들은 먼저 본인들의 커뮤니티에 적합한 활동 사례들을 함께 찾아보고 직접 방문하였다. 이를 통해 형성된 공감대 속에서 서로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개인의 의견들을 커뮤니티의 의견으로 모았다. 조사나 방문으로 미처 알기 어려운 사안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고, 현실적인 한계 안에서 그동안 모은 의견을 비교하고 수정하면서 마침내 제안을 완성하였다. 또한 조합원 누구나 쉽고 투명하게 커뮤니티 공간 디자인 과정을 알 수 있게 온라인으로 모임 내 논의사항을 공유하였다. 전체 과정을 함께했던 담당자로서, 특히 중요하게 느꼈던 아래 세 가지 과정을 좀 더 자세하게 소개하려 한다.

먼저 개인의 의견들을 커뮤니티의 비전과 의견으로 수렴해 가는 과정이다. 협동조합 설립 초기부터 커뮤니티의 지향점에 관하여 논의했지만, 생활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수준까지 논의할 수는 없었다. 조합원 각자가 그리는 커뮤니티 활동의 상은 다를 것이고, 개인적인 선호 수준으로 들어가면 더 많은 차이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선호와 공동의 지향점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 논의를 하나로 모으는 과정이 수반되는데, 이를 위해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조합원 모두가 다양성을 인정하고 감수성을 고려하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학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이후 서로 간의 존중을 바탕으로 상세한 사안까지 충분하게 논의할 수 있다.

다음으로 공간 사용자인 조합원과 전문가가 협업하는 과정이다. 참여자들은 시설의 설계나 운영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일정 정도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사용자의 입장에서 상세한 부분까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적극 지지하고 촉진해 주는 퍼실리테이터로서 전문가가 필요하다. 위스테이 별내의 커뮤니티 공간 디자인 과정에서 역시, 전문가와의 협업이 매우 중요했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은 바로 이상과 현실을 조율하는 과정이다. 커뮤니티 공간 디자인 과정의 후반부에 맞닥뜨리는 중요한 사안은 바로 ‘제한된 예산규모’이다. 앞선 과정을 통해 참여자들은 각자의 의견을 깊게 이해하고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예산의 한계’는 우선순위를 정하거나 취사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은 이 과정을 통해 이상적인 가치와 현실의 한계 사이에서 구체적인 활동을 바탕으로 의견을 조율하고 결정하는 훈련을 경험하게 된다.

다양한 사람들이 섞이고, 서로에게 스밀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아진다면

공간은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촉진하는 매우 중요한 매개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주변의 많은 공간이 기능별로 분화되고,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점차 분리되어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안타깝다.

위스테이는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을 가까이 모으고 커뮤니티 활동으로 연결하여 조합원들의 소통을 늘리려고 한다. 차를 마시러 커뮤니티 카페에 들렀다가 자연스럽게 도서관에도 들를 수 있고, 동네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기 위해 놀이공간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어렵사리 약속을 잡아야만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필연적이고 목적 지향적인 시대에, 이런 우연성이 범람하는 공간들이 커뮤니티에 대한 새롭고 재미있는 감각들을 일깨워줄 수 있지 않을까. 커뮤니티 공간 디자인을 통해 커뮤니티가 형성될 수 있는 주거공간들이 앞으로 더 많은 곳에서 나타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황지성 (사회혁신기업 더함 매니저)  webmaster@lifein.news

<저작권자 © 라이프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황지성 (사회혁신기업 더함 매니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