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사람들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 자연재해와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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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사람들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 자연재해와 불평등
[안전 칼럼_안전사회시민네트워크ㆍ라이프인 공동기획] 원영수 (국제포럼 운영위원)
  • 2017.10.19 16:14
  • by 라이프인
원영수 국제포럼 운영위원

기후변화와 더불어 자연재해의 엄청난 파괴력이 지구촌 곳곳을 파괴하고 있다. 지금도 진행되는 캘리포니아의 화재 외에도, 허리케인 마리아가 또다시 카리브 해와 멕시코 만 지역을 강타하고 있다.

올해 여름 허리케인과 어마는 카리브 해의 섬나라들과 미국 남부를 강타해 500조원 이상의 피해를 입혔다. 2005년 미국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 주를 초토화시킨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액(1,600억 달러)을 넘기면서 자연재해의 피해는 더욱 커지고 있다.


허리케인이 나눈 사회적 계급

허리케인 어마가 미국 플로리다를 강타할 당시, 미국정부는 주민 소개령을 내렸고 수십만 대의 거대한 차량대열이 거대한 장관(?)을 연출하면서 국제뉴스를 장식했다. 그러나 500만 명이 이동하는 거대한 피난대열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미국 언론은 대부분 이들을 외면했다.

유일하게 라틴 아메리카 뉴스매체인 <텔레수르>만이 거대한 허리케인이 몰려와도 떠나지 못하는 빈곤층의 존재를 보도했다. 바로 눈앞에 다가온 거대한 허리케인 앞에 대비할 수 없는 빈곤층의 무력감과 분노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또 동시에 자가용 비행기로 가족을 안전한 북부로 보낸 뒤 비상식량과 재난장비 등 완벽한 대비를 갖추고서 떠나지 않는 극소수 부유층의 인터뷰가 대조를 이뤘다.

똑같은 자연재해이지만, 부유층과 중산층, 빈민층에게 다른 충격을 미친다. 소수의 부유층은 비교적 적은 피해를 입고, 피해를 입더라도 정상상태로의 복귀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빈민층, 특히 흑인과 유색인종 빈민층은 자연재해의 충격 앞에서 삶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린다.

자연재해는 자연의 재앙임과 동시에 사회적 재앙이기도 하다. 거대한 재해 앞에 사회는 떠나는 자와 떠나지 못하는 자로 나뉘고, 빈부격차가 심화된 사회에서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는 사회적 양극화에 상응하게 피해의 양극화를 가져온다. 가장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배제된 계층이 자연재해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는 것은 자본주의에서 자연스런 귀결이다.


제3세계와 재해 자본주의

이른바 제3세계는 정치사회적 구분이지 자연지리적 구분은 아니다. 제국의 중심 미국 아래에는 카리브 해의 제3세계 소국들이 즐비하다. 혁명 이후 미국에 저항한 쿠바와 2010년 지진으로 폐허가 된 아이티 외에도, 생마르탱, 생 바르톨롱, 버진 아일랜드 등 이름도 생소한 여러 작은 섬나라들이 멕시코 만/카리브 해에 공존한다.

자연재해의 피해는 여기에서도 불평등하다. 막대한 인력과 물자를 투입할 수 있는 제국은 내부의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자연재해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지만, 카리브 해의 작은 섬나라들은 자연재해 앞에 무기력하다.

잔인한 얘기지만,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는 자본주의에 이윤창출의 기회를 제공한다. 막대한 금액이 투입되는 복구사업은 과거에 정부의 독점적 의무였지만,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복구사업은 민간 기업에게 외주화된다. 결국 누군가의 불행은 다른 누군가의 금고를 채울 기회인 셈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2010년 아이티의 지진이었다. 강도 7.3의 지진으로 222,570명의 아이티인이 사망했고, 피해액은 79억 달러에 이르렀다. UN과 일부 국제기구들은 미국, 캐나다, 프랑스, 영국, 타이완, 미주개발은행, 파리클럽 등 채권국과 국제기구들에게 아이티의 재건을 위해 부채를 청산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IMF는 이를 거부하고 아이티에 1억4,400만 달러의 차관을 제공했다. 5년 반 동안 상환을 유예하는 조건이었지만, 인도주의적 지원이 필요한 아이티에게 부채만 늘었다. 지진 발생 직후 처음 몇 달 동안만 최초의 국제적 지원기금이 긴급구조에 쓰였을 뿐, 세계의 관심이 줄어들었고 아이티의 장기적 재건사업은 지지부진한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문제는 아이티의 구조와 재건을 위한 지원기금이 정작 아이티인들의 손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014년까지 긴급구조기금의 1퍼센트, 그리고 재건기금의 16퍼센트만이 아이티 정부에게 건너졌다. 2010년과 2011년 유럽연합의 재건 지원금 중 76퍼센트가 유럽계 회사들의 수중에 들었다. 미국의 경우 재건 프로젝트의 1.3퍼센트만이 아이티 기업에게 맡겼다.

결국 자연재해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은 피해국가의 정부나 기업이 아니라 대부분 초국적 기업을 통해 이뤄진다. 그 결과 재난구조와 재건을 위해 투입된 금액이 적지 않음에도, 피해현장의 재건은 초국적 자본의 수익산업으로 전락한다.

자연재해는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

해마다 심해지는 자연재해는 개발과 성장에 중독된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재앙적 기후변화의 결과이다. 이런 재앙을 만들어낸 제국의 산업은 재난을 피해가지만, 그 피해는 제3세계의 가난한 민중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자연재해는 피해자들에게 재앙이지만, 제국주의와 초국적자본에게는 자연이 준 자본축적과 이윤확대의 기회이다. 피해자들의 눈물과 고통 속에서 피해국의 부채는 늘어나고 정치경제적 종속은 심화된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주의 아래서 자연재해는 더 이상 순전히 자연적인 재해가 아니다.

반면 2008년 전 지구적 경제위기의 피해는 사회화됐다. 위기의 주범은 책임을 피했고, 오히려 막대한 구제금융으로 그들을 살렸고, 그 피해의 부담은 사회 전체가 나눠졌다. 주택버블의 피해자들은 모두 개인 파산의 길을 걸었고 그들의 삶은 철저히 파괴됐다.

이에 비해 자연재해의 막대한 피해는 사회화되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제국과 주변부의 불평등구조, 각 사회 내부의 사회적, 계급적 불평등에 따라 피해는 철저하게 사유화되고 있다. 그리고 최대의 피해자는 사회경제적 계급의 사다리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가난한 풀뿌리 민중들이다.
 

* 필자 사진 출처 : 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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