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와 노동조합의 동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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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와 노동조합의 동거(?)가 시작됐다
[협동조합과 노동조합] 국내사례로 확인하는 노동운동과 협동조합의 만남
  • 2017.10.10 12:27
  • by 박경숙 시민기자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이 만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호남철도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기적소리 전경

시장경제 폐해, 협동조합이 대안으로..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이후 매달 평균212개 생겨나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통계를 보면 협동조합기본법을 시행한 2012년 12월 이후 지금(2017년 8월 22일 기준)까지 이 법에 따라 설립된 협동조합이 1만 1879개에 이른다. 매달 평균 212개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1999년부터 시행에 들어간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이전에는 개별법으로만 설립이 허용되던 협동조합이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이후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높은 관심과 참여는 2012년 12월부터 시행된 ‘협동조합기본법’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그 저변에서는 경기침체의 장기화에 따른 일자리 감소와 소득 불평등, 양극화 심화라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폐해가 커지면서 대안 경제시스템으로 협동조합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02년에 제193호 권고문을 통해 ‘미래의 위기 예방을 위한 협동조합 활성화’를 촉구하고 나선 것도 그 흐름 중 하나였다. 그리고 2008년에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 때 시장경제 기업이 잇따라 부도가 나고, 고용 불안이 커졌던 것과 달리 협동조합 기업은 안정적 성장과 함께 일자리 확대로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노동운동의 새로운 활력 모색 필요성 커져..노조의 협동조합 참여 확대 중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이제 우리나라 노동계로도 확산되고 있다. 종전 노동조합을 통한 노동기본권 확대에 전념해 왔던 노동조합이 노조 조직률의 지속적인 감소와 고용 불안, 비정규직 확대, 그리고 국민으로부터의 신뢰 저하 등으로 노동운동의 새로운 활력을 모색할 필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가스안전공사노동조합이 2013년 1월, 노동조합 최초의 협동조합인 ‘가스안전공사직원협동조합’을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2013년 3월에는 전국철도노조 호남지방본부가 ‘호남철도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이어 2013년 8월에는 도로교통공단노동조합이 ‘도로교통공단협동조합’을 설립했고,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이 ‘대한민국조종사협동조합’을 각각 설립했다.

노동조합에서 협동조합 설립을 고민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곳도 많아지고 있다. 전국철도노조 지방본부에서도 지역공동체사업을 위한 협동조합 설립을 고민하고,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전남동부, 경남서부지부에서는 조합원 작업 용구 공동구매 등을 위한 협동조합 설립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나라 노동조합에서 첫 협동조합 설립 사례로 기록된 가스안전공사직원협동조합의 초대 이사장을 지낸 임원섭 씨는 “노동조합에서 협동조합을 설립하기 위해 물어오거나 자문해 준 사례가 100건에 달할 정도로 일선 노동조합의 협동조합 설립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노동조합과 협동조합 연대의 사례

세계 최초로 성공한 협동조합 모델로 평가받는 영국의 ‘로치데일 공정선구자 협동조합’. 이 협동조합은 1884년에 설립되었는데, 영국의 공업도시인 로치데일 직물공장에서 파업하다 해고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해고된 뒤 생계가 막막했던 노동자들이 생필품을 비싼 값에 사야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자금을 모아 직접 유통하는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노동자들이 협동조합을 설립하거나 지원한 국외 사례는 다양하다. 캐나다 퀘벡의 한 산별노동조합은 지역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회사가 폐업하고,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자 노동기금을 조성했다. 이 기금은 폐업한 회사를 노동자들이 직접 소유하고 운영하는 노동자협동조합 설립에 지원됐다. 노동조합의 협동조합 참여로 노동조합의 지역 내 영향력은 더욱 확대됐다.

이처럼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은 출발 시기(산업혁명기)와 조합원 구성, 조합원에 대한 교육 중시, 민주적 운영체계, 구성원을 위한 공동체 활동 등 지향하는 바가 비슷하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은 함께 움직여 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국 규모 노동단체였던 조선노동공제회는 1921년에 우리나라 최초 소비자 협동조합인 ‘조선노동공제회 소비조합’을 설립했다. 원산총파업을 주도한 원산노동연맹 역시 협동조합운동을 핵심사업으로 설정하고, 의료생협·공제조합·신용조합 등 거의 모든 형태의 협동조합을 운영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도 동일방직과 원풍모방·대한전선 등에서 소비자협동조합 운동이 펼쳐졌다. 현재 한국노총도 협동조합 지원본부를 설치해 소속 사업장의 협동조합 사업을 돕고 있다.

협동조합과는 조금 다른 사례도 있다. 충북 청주시에 있는 운수회사인 우진교통은 2004년 경영진의 부실경영으로 인한 경영악화로 임금 지급이 미뤄지자 노동조합의 장기파업이 이어졌다. 결국, 노동조합은 조합원 출자를 통해 회사를 인수하여 운영하면서 회사를 정상화했다. 법인의 형식은 협동조합이 아닌 주식회사였지만 ‘노동자 자주관리위원회’를 통해 회사를 운영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청소노동자들은 2013년, 자신들이 고용되어 있던 청소대행 용역업체 계약이 만료되자 ‘클린광산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양성채)’이라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고용도 유지하고, 더 나은 노동조건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가스안전공사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구내식당에서 줄을 선 조합원들

 노동조합과 협동조합 ‘따로, 또 같이’

이처럼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노동조합에서 협동조합을 설립 운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노동계와 사회적경제계가 협력하거나 서로의 역할을 상호 보완하는 수준의 활동을 하기도 한다.

노동조합의 조직과 기금을 활용해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협동조합은 노동조합의 부족한 기능을 보완하기도 하고, 노동조합 조합원뿐만 아니라 조합원 가족과 지역사회가 함께 하는 생활공동체 활동으로 노동조합의 활동을 지원한다.

그 구체적인 사례로 ‘협동조합기본법’시행 이후 가장 먼저 노동조합 차원에서 협동조합을 설립해 운영하는 ‘가스안전공사직원협동조합’과 노동조합의 주요 활동가들이 설립해 운영하는 ‘호남철도협동조합’을 만나보았다.

이들 두 개의 협동조합은 노동조합에서 주도하여 협동조합을 설립했다는 공통점 외에도 협동조합 구성방식과 활동내용에서는 작지 않은 차이가 있다.

가스안전공사직원협동조합은 한국가스안전공사노동조합이 주도하여 설립했고, 노동조합 조합원은 물론 비조합원인 회사 측 간부직원까지 협동조합에 참여했다. 협동조합의 임원도 노동조합 위원장이 협동조합 이사장을 겸직하고, 이사회는 노조와 회사 측이 2명씩 각각 참여하였다.

협동조합의 주요 활동도 조합원에 대한 복지 지원을 위해 구내식당과 매점, 카페테리아 운영과 회사 내 국외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여행사 등 노동조합과 회사에서 하기 어려운 재정사업을 많이 하고 있다.

이에 반해 호남철도협동조합은 전국철도노동조합 호남지방본부(광주와 전남‧북지역 담당)의 주요 간부들이 주도하여 협동조합을 설립하였다. 협동조합의 설립 목표를 노동조합에서 하기 어려운 기능을 보완하는 역할로 규정하고, 협동조합이 주도하여 지역공동체사업과 조합원 복지사업 등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협동조합 조합원은 노동조합 조합원 중 가입을 희망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회사(철도공사)와의 관계도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의 자주성을 지킬 수 있는 범위로 설정하고 있다.

호남철도협동조합의 주요사업은 조합원과 지역주민을 위한 커뮤니티공간으로 카페 ‘기적소리’와 철도게스트하우스 ‘기적소리’를 운영하고, 지역공동체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임원섭 가스안전공사협동조합 전 이사장

 노조와 회사가 함께 참여한 가스안전공사직원협동조합  

가스안전공사직원협동조합(이사장 홍영신)은 한국가스안전공사 노동조합 조합원과 비조합원인 간부직원들이 함께 참여하여 2013년 1월에 설립인가 되었다.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우리나라의 각종 가스 시설에 대한 안전검사를 담당하는 공기업으로 전체 직원은 1,350명이다. 직원의 대부분은 가스시설 안전검사를 담당하는 검사직이고, 노동조합 조합원은 1,070명 규모인데, 가스안전공사직원협동조합의 조합원은 1,100명 규모이다.

가스안전공사직원협동조합(이하 협동조합)은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이후 경기도에 제1호로 설립신고를 한 협동조합이자, 노동조합에서 설립한 제1호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을 통한 비즈니스 모델 발굴

협동조합 설립을 주도한 임원섭 창립 이사장(사진. 47세. 당시 노조위원장)은 "2006년에 노조 정책국장이었는데, 정부가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 금지를 추진하면서 노동조합이 스스로 살길을 모색하는 방안 중 하나로 협동조합을 통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협동조합 설립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당시 노조 전임자가 4명이었는데, 노조 조합비는 2억 원 밖에 되지 않아 전임자 임금지급이 금지될 경우 노조 전임자를 유지하기 어려워 고육지책 중 하나였다. 당시에는 회사 내 상조회가 운영되고 있어서 이를 확대 개편해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려 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협 인가가 어려워 포기했다.

그래서 찾은 첫 번째 비즈니스모델이 렌터카사업이었다. 가스안전공사 직원들은 대부분 검사직이기 때문에 출장이 잦았고, 당시는 자가용 차량으로 출장을 다녔다. 그래서 찾은 방안이 노동조합이 렌터카 업체와 단체계약하는 공동구매 방식을 도입했다. 시중 월 임대료가 80만 원 수준이었지만 38만 원에 이용할 수 있었다. 당시 1차로 70대의 렌터카를 공급했는데, 지금은 360대가 운영되고 있다.

임원섭 전 이사장은 2009년에는 노조 부위원장을 거쳐 2012년에는 노조위원장으로 취임했다. 그가 노조위원장 선거에 나설 때 첫 번째 공약이 협동조합을 설립해 그 잉여금으로 조합원 학자금과 조합원 복지기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2012년 7월 노조위원장 취임과 함께 협동조합 TF팀을 구성해 운영했고, 그해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자 바로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20명이었던 협동조합 발기인은 200만 원씩 출자했고, 일반 조합원은 10만 원~50만 원씩 출자해 4억 원이 넘는 출자를 받았다.

협동조합이 비위사고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회계 투명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조합원 누구나 입출금 현황을 열람할 수 있게 회계프로그램을 개방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생활공동체 기반

협동조합을 설립한 뒤 곧바로 본사가 있던 경기도 시흥시 구내식당과 교육원이 있던 천안시 구내식당을 운영했다. 회사 내 매점과 카페테리아, 자판기를 직접 운영했다. 직원 국외연수프로그램을 진행할 여행사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출판사도 설립해 조합원에게 도서판매를 하고 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 정책에 따라 한국가스안전공사는 경기도 시흥시에서 2013년 12월에 충북 음성‧진천혁신도시로 이전하였다. 이곳은 신도시로 조합원들의 생활여건이 불편해 협동조합이 조합원의 생활편의를 돕기 위한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렌터카 사업과 구내식당, 여행사 운영 등 사업 대부분은 협동조합에서 직접 시행하고, 공동구매 방식으로 중간이윤을 없애 조합원에게는 고품질의 서비스를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게 하였다.

지금은 협동조합 업무를 전담하는 상임이사 외에 회계담당 직원과 구내식당과 매점 등에서 모두 15명을 고용하고 있다. 사업 첫해부터 11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1억 원이 넘는 잉여금으로 선거 때 공약했던 학자금 지원과 조합원 배당을 할 수 있었다.

어려움도 없지 않다. 협동조합 운영 의지가 높았던 임원섭 초대 이사장이 노조위원장의 임기가 끝나면서 2015년 7월에 새 위원장이 취임했다. 설립 초기의 약속대로 협동조합 이사장도 노조위원장이 겸직하게 되면서 협동조합 이사장도 바뀌었다.

홍영신 노조 위원장 취임과 함께 노동조합은 정부에서 추진했던 임금피크제와 성과연봉제 도입을 막기 위해 투쟁에 나섰다. 당연히 회사 측과 노조의 갈등도 높아졌다. 이 때문에 회사와 노조가 함께 설립한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현재 협동조합은 종전에 운영하던 사업의 현상유지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협동조합법, 금융‧보험 제한 없애야

임원섭 전 이사장은 “사내 협동조합은 노사가 함께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봤다. 그래서 협동조합 이사장은 노조위원장, 부이사장은 회사 측 간부직원이 맡게 했다. 그런데 지금은 노동조합이 협동조합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하니 회사 측의 관심도 함께 줄었다”며, 아쉬워했다.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현행 협동조합기본법은 금융과 보험업무를 협동조합이 할 수 없게 제한하고 있다. 임원섭 전 이사장은 “우리 협동조합 조합원이 렌터카를 많이 운영하기 때문에 협동조합 사업으로 가스충전소를 설치하려 하는데, 초기 투자비가 20억 원이 넘었다. 협동조합에서 금융사업을 할 수 있어야 협동조합도 규모의 경제를 가져갈 수 있다. 현재 운영 중인 회사 내 상조회를 확대 개편하면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문제, 협동조합의 정규직 고용을 통해 해결해 갈 수 있어

그는 최근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공공기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도 협동조합의 역할이 크다고 조언했다.

현재의 비정규직 문제는 고용의 질 악화 문제 외에도 외부 용역업체가 함께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 해결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를 두고 임원섭 전 이사장은 “공공기관 비정규직이 수행하는 업무를 공공기관 내 협동조합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개선하면 협동조합이 비정규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함으로써 고용도 보장하고, 고용의 질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종전에 외부업체가 위탁 운영해 왔던 한국가스안전공사 구내식당을 가스안전공사직원협동조합이 운영하게 되면서 지역 주민을 정규직으로 채용할 수 있게 되었고, 고용의 질도 높일 수 있었다는 경험이 반영된 의견이다. 

앞으로의 협동조합 활동 구상을 물었다. 임 전 이사장은 “목표는 민주노총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노조가 비즈니스를 하면 비위 연루 등의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회계투명성을 확보하면 해결될 일”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같은 조직력을 갖춘 조직이 정치문제뿐만 아니라 경제문제도 함께 참여하여 조합원 생활공동체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호남철도협동도합에서 운영하는 카페 기적소리 개소식

 협동조합 통해 지역공동체 일군 호남철도협동조합

호남철도협동조합(이사장 김동구)은 전국철도노조 호남지방본부에 소속된 조합원들로 2013년 3월에 설립됐다. 조합원은 120명이다. 전국철도노조 호남지방본부 사무실이 순천에 있을 뿐만 아니라 순천이 철도교통의 거점이어서 호남철도협동조합의 조합원도 80% 정도가 이곳에 살고 있다. 출자금은 한 구좌가 5만 원으로, 조합원들은 1구좌(5만 원)에서 최대 40구좌(200만원)를 출자했다.

현재 호남철도협동조합(이하 협동조합)은 카페 ‘기적소리’와 철도게스트하우스 ‘기적소리’라는 두 개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이 중 카페는 2014년에 조합원의 목적출자금 4000만 원을 모아 철도노조회관 일부 공간을 임대해 운영하고 있고, 게스트하우스는 순천시가 마련한 시설을 협동조합이 위탁 운영하고 있다.


협동조합, 노동조합의 보완재 기능 기대

협동조합 설립을 주도한 호남철도협동조합 조종철 사무국장(사진. 49세)은 전국철도노조 호남지방본부장을 지냈다. 그러나 파업과정에 회사에서 해고되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전국철도노조는 철도의 공공성을 위해 ‘철도민영화 저지’와 ‘성과연봉제 반대’등을 목표로 잇따라 파업을 벌였고, 이 과정에 수십 명의 노조 간부들이 해고되는 아픔을 겪었다.

조종철 사무국장이 해고된 이후 협동조합을 설립하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조종철 사무국장은 “노동조합의 파업이 국민들에게서 관심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했다. 국민과 조합원들로부터 멀어져가는 노동조합의 새로운 활로를 찾고, 조합원 복지를 통한 생활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협동조합을 설립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 협동조합은 노동조합이 채울 수 없는 부분을 협동조합 활동으로 보완하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회사 측과 관계에서 협동조합의 자주성 확보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전국철도노조 호남지방본부 사무실이 있는 순천시 조곡동에는 일제강점기 때 조성한 철도관사마을이 있어 철도청 퇴직자도 많이 살고, 지금도 코레일에 근무하는 사람이 많은 마을이다. 그런데도 전국철도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면 지역주민들조차도 노조의 파업에 부정적인 의견을 자주 보였다.

그래서 노동조합 사무실을 거점으로 협동조합을 설립해 마을공동체 사업으로 주민들과 만나기 위해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조합원 복지사업의 하나로 생활용품 공동구매를 추진했고, 노트북과 컴퓨터 공동구매사업은 철도 사내 인터넷망을 통해 전국의 직원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조종철 호남철도협동조합 사무국장

협동조합의 공동체사업, 지역주민들과 관계 개선으로 노조에 대한 인식 개선 효과

협동조합이 지역공동체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2014년부터이다. 협동조합과 지역주민이 교류하며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보고, 2014년 1월에 카페 ‘기적소리’를 열었다. 2층 단독건물을 사용하던 전국철도노조 호남지방본부의 1층 한 쪽을 리모델링해 카페로 개장했다.

마침 전남 순천시에서도 일제강점기 때 조성되어 잘 관리되고 있는 ‘철도관사마을’을 관광 자원화하겠다는 계획에 따라 많은 예산을 들여 ‘철도문화마을만들기사업’을 추진했다. 협동조합은 카페 기적소리 개장과 함께 철도관사마을 주민들을 직접 만나며 마을의 자원을 발굴하고 홍보하는 등 ‘철도문화마을만들기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이 순천시나 마을주민단체와 업무협약을 맺고, 철도노조회관을 함께 사용하고, 마을축제에도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이 함께 참여했다. 이러한 지역공동체사업이 3년째를 넘기면서 철도관사마을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종전에는 노조 조합원들만 드나들던 철도노조회관에 지역 주민이 수시로 찾아오고, 협동조합의 카페 ‘기적소리’는 조합원과 주민의 만남의 장이 되었다. 협동조합은 매달 카페 ‘기적소리’에서 무료 작은음악회를 열어 주민들과 만나고 있다.

올해 5월에는 순천시가 ‘철도문화마을만들기사업’의 하나로 조성한 게스트하우스를 협동조합에서 맡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철도문화마을만들기사업’을 함께 진행한 협동조합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종철 사무국장은 “아직도 많은 주민은 철도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을 하나의 조직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철도마을축제 등 지역공동체사업에 협동조합이 함께 하면서 철도노동조합과 협동조합에 대한 주민의 신뢰가 쌓이게 된 것은 성과”라고 말했다. 올해 초 성과연봉제 저지를 위해 전국철도노조가 파업했을 때 지역주민의 반응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조 사무국장은 “종전에는 철도노조가 파업한다고 하면 파업의 원인을 떠나 파업 참여자를 성토하는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지역주민들을 만나면 응원을 보내줄 정도”라고 말했다.

지역공동체 활동 외에 조합원 복지 확대도 협동조합의 주요 관심사이다. 조합원 수요에 따른 공동구매사업은 물론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는 조합원에게 각각 20%와 30%의 요금할인을 적용하고 있다. 올해는 협동조합 하계휴양소를 지정해 운영했다. 협동조합 사업과정의 잉여금을 조합원에게 배당하는 대신 여수에 있는 리조트 한 곳을 조합원에 한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호남철도협동조합의 운영 경험은 이후 전국철도노조 내 다른 지방본부로 확산될 조짐이다. 노조에서는 지역공동체 사업에 참여하지 못했으나 협동조합 설립 이후 활발하게 참여하는 것을 지켜본 대전지방본부와 부산본부에서 협동조합 설립을 고민하고 있다.
 

겸직금지, 법인운영 규제 개선 필요

협동조합이 더 활성화되려면 제도도 일부 개선돼야 한다. 전국철도노조 호남지방본부 조합원이 2,700명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지금 협동조합의 조합원 120명은 많은 것이 아니다. 설립 초기에 협동조합 설명회를 하며 조합원을 모집했는데, 설립과정과 법원의 법인 변경 업무 등에서 불필요한 규제가 지나치게 많다. 그래서 지금은 조합원 확대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협동조합 출자금이나 사소한 사업이나 예산 등의 변경이 있더라도 총회를 개최하고 총회 회의록을 공증받아야 한다. 이 때 총회 참석자 모두의 인감도장과 인감증명서를 요구하는 등 번거로운 절차는 오히려 협동조합 운영을 방해하는 요인이라는 주장이다.

협동조합 임원 선임에서도 문제가 불거졌다. 협동조합 설립과 함께 이사장을 선임했는데, 회사 측에서 공공기관 임직원의 겸직금지 조항을 들어 초대 소경섭 이사장에게 ‘경고’라는 징계를 내렸다. 협동조합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인만큼 이사장을 맡는 것은 겸직금지에 해당된다는 해석 때문이었다. 결국 이사장을 새로 선임했는데, 해고자로 선임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노동조합 일부에서는 협동조합 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한다. “노동조합 활동만 잘하면 되지 협동조합 활동으로 힘을 뺄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 같은 생각을 하는 조합원들 때문에 협동조합 활동가 발굴에 어려움도 있다. 조종철 사무국장은 “노동조합은 퇴직과 함께 탈퇴하게 되지만, 협동조합은 퇴직자도 조합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며, “퇴직자 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위 기사는 생협평론(2017년 가을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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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숙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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