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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소셜벤처 기행 ⑦] 수공예 장인들의 든든한 안내자, 튀니지의 ‘블루피쉬’
  • 2019.09.18 10:36
  • by 엄소희(키자미테이블 공동대표)

이번 추석 연휴 중에 재미있게 보았던 기사가 있다. 각 지역의 송편에 대한 것이었는데, 각 지역마다 쓰는 재료와 빚는 모양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부르는 이름은 하나여도, ‘송편’을 이야기했을 때 사람마다 떠올리는 떡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는 게 새롭게 다가왔다. 댓글에선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나 OO지역 사람인데 저런 송편 본 적 없음’, ‘있다는 얘긴 들어봤는데 먹어본 적은 없다. 흔하게 보이는 송편은 아니다’라는 의견들도 보였다.
 

강원도의 감자 송편 ⓒ 만개의 레시피


기자가 특이한 송편을 찾아서 보편적인 것 마냥 부풀렸다는 추측일텐데, 내 생각은 좀 달랐다. 지역의 특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경제가 점차 축소되고, 가정에서 직접 음식을 하는 경우도 줄어들면서 점차 지역의 전통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마트나 온라인 마켓에서 대량생산된 송편을 사거나, 또는 그마저도 딱히 챙겨 먹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특정한 형태와 맛의 송편으로 획일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산업화로 이룩된 대량생산 시스템은 전통의 다양하고 입체적인 얼굴을 평면적으로 덮어버린다. 가내수공업에서 공장생산제로 넘어오며 편리와 부를 가질 수는 있었지만 그사이 사라진 문화와 이야기는 되살리기 어려워졌다.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문제이다. 특히 손 기술로 생계를 잇고, 손으로 만든 제품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들에게는 생계와 정체성을 위협하는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특히 자원이 부족하고 산업 인프라가 잘 갖춰지지 않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수공예품 장인들은 관광객들이 사가는 기념품을 만들면서 수공예 기술을 이어가고, 소득을 만든다. 하지만 디자인 카피, 중국산 제품과의 물량/가격 경쟁, 시장 정보 격차 등 급격한 환경 변화로 인해 장인들의 설 자리가 점차 좁아지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소셜벤처는 전통 문화, 장인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튀니지의 ‘블루피쉬’이다. 보통 수공예 장인들을 위한 비즈니스가 ‘협동조합’을 구성하여 공동의 비즈니스를 구축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비해, 블루피쉬는 협동조합 대신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협동조합 방식에서는 리더십을 구축하고 공동체의 역량을 키우는데, 블루피쉬는 그 대신 각 장인들의 가족을 중심으로 비즈니스 훈련을 통해 이들 각자가 사업가로 성장할 수 있게 지원한다. 사업가를 양성하는 인큐베이팅을 제공하는 셈이다.

수공예 기술을 가진 장인들은 대개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고수하고, 외부의 변화에 민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블루피쉬는 장인들이 직접 처리하지 못하는 세무 및 회계 작업을 장인의 가장 가까운 사람-가족들이 돕도록 한다. 시장에 대한 정보를 기반으로 수공예품에 적절한 가격을 매겨 시장 경쟁력이 있도록 돕는 것도 블루피쉬의 일이다. 이들은 또한 국내 시장 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도 수공예품들이 취향껏 시장에 배치되도록 돕기도 한다.

 

블루피쉬를 통해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여성 수공예 장인의 상품 


블루피쉬의 비즈니스는 장인들의 역량을 키워 소규모 비즈니스가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최초의 키워드는 패션, 전통에 좀더 가까웠으나 최근에는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전통 음악을 디지털화하여 기록하거나, 공간을 보존하고 재구성하는 문화사업까지, 문화 유산의 영역을 아우르고 있다. 장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문화 자원에서 나아가, 공동체가 지닌 문화 자원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데 이르고 있는 것이다.

산업화와 개발의 풍랑 속에 ‘블루피쉬’의 여정이 무사히 이어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긴 시간 이어져온 생명력과 축적된 기억의 힘이 블루피쉬의 저력이 될 것이라는 점만큼은 확실하다. ‘아랍의 봄’이 시작된 튀니지에서 ‘블루피쉬’의 모델이 봄꽃처럼 피어나길 기대한다.


엄소희
케냐와 카메룬에서 각각 봉사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아프리카에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됐다. 좋아하는 것(먹는 것과 관련된 일)과 하고 싶은 것(보람 있는 일), 잘하는 것(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의 접점을 찾다가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아프리카 음식점을 열었다. 르완다 청년들과 일하며 '아프리카 청춘'을 누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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