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승무원 한명 한명은 최소한의 안전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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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승무원 한명 한명은 최소한의 안전장치
KTX 해고 승무원 농성 현장 김승하 지부장 인터뷰
  • 2017.09.29 11:23
  • by 공정경 기자

"이 깔판 오랜만에 본다."

KTX 해고 승무원 농성 6일과 7일차(9월 25일, 26일) 농성장인 서울역 3층 맞이방을 찾았다.

"애가 몇 살이야?"

오랜만에 만난 승무원들은 휴대폰 속 아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눈다.
서울·경기를 비롯해 부산, 청주, 철원, 강릉까지 해고 승무원들은 전국에서 모여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농성장 주변에는 그동안 KTX 해고 승무원을 기록한 사진들이 전시돼 있고, 지나가던 시민들이 두 손 모아 들어 올리며 응원도 하고 박카스, 치킨, 음료수 등도 주고 간다.

 

 
11년째 투쟁 중인 해고 승무원 33명이 다시 모인 이유는 세 가지다.

1. 부당이득금 환수조치를 철회하라
2. 간접고용을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라
3. 해고승무원을 복직시켜라.

2015년 2월 26일 대법원은 해고된 KTX 승무원 34명이 코레일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를 판결한 원심결정을 뒤집었다. 1·2심 소송에서 이긴 KTX 승무원들은 과거 4년간 고용된 것으로 인정돼 코레일로부터 임금과 소송 비용을 받았다. 1인당 8640만 원이다. 대법에서 졌으니 이 돈을 토해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법정이자 15%, 한 달 이자만 108만 원까지 불어나 1인당 1억 가까이 내놔야 하는 상황이다. 34명의 돈을 합하면 32억이 넘는다.

대법원이 기존 판결을 뒤집은 이유는 "KTX 여승무원을 코레일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다"라고 판시하며 승무원은 안전업무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18량이라는 길고 긴 KTX의 안전업무는 과연 열차팀장 한 명의 업무일 뿐일까? 승무원은 안전업무를 하지 않는가? 김승하 지부장(KTX열차승무지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승하 지부장 (KTX열차승무지부)


안전교육 한 게 시행착오였다? 

공정경 기자(이하 공) : 승무원 업무에 안전업무가 포함되느냐 안 되느냐가 핵심인데요.

김승하 지부장(이하 김) : 저희가 입사했을 때 안전업무를 시켰습니다. 매뉴얼에도 있었고 신입사원 연수 때도 절반 이상이 안전교육이었습니다. 비상사다리 설치, 심폐소생술, 열차구조가 어떻게 돼 있고 비상시 어떻게 해야 하고. 그런 부분을 배웠는데, 철도공사와 소송할 때 안전담당 했다는 증거로 내미니까 철도공사에서 '시행초기에 뭔가 혼선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공 : 그게 혼선이었다고요? 안전교육 한 게?

김 : 안전교육 한 게 혼선이었다는 거예요. 불법파견 문제가 불거지니까 안전담당 관련된 지침 사항을 다 삭제시켰습니다. 승무원이 안전업무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사고 났을 때 모른 체해도 책임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다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안전에 관한 인식이 대두되면서 승무원들을 완전히 안전업무를 시키지 않을 수는 없고...

사실 승무원이 안전을 담당하지 않는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사고가 났는데 승무원이 '그거는 제 일이 아닙니다.' 할 수도 없는 거고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서류상으로만 다 삭제를 해놨다가 안전이슈가 대두되니까 슬쩍 바꿨습니다. '이례 사항 발생 시에는 열차팀장과 협조한다.' 이 한 문장이 들어간 거죠.

공 : 현재 근무하는 승무원들은 안전교육을 받고 있나요?

김 : 여전히 안전 교육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온라인 강의를 수강했다, 책 같은 거 가져다 놓고 읽었다.' 사인하고 이런 식으로 하고 있지 제대로 실습이나 교육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2015년도에 철도안전법이 생겼는데 승무원이 안전조치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아서 사상자가 발생했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게 돼 있어요.

공 : 완전 모순이네요.

김 : 안전업무담당은 안 하게 하면서 처벌은 받아요. 이 자체가 모순인데, 철도공사가 지금까지 억지를 부려온 거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대법원이 받아들여서 판결이 그렇게 나버렸잖아요.

어쨌든 대법 판결이 났기 때문에 승무원 문제가 더 복잡해지고 풀기 어려운 상태가 된 건 사실이다. 이미 대법원 판결이 너무 정치적인 판단이었고 자본가를 위한 판단이었다는 의견이 늘어나는 만큼 이것을 맹목적으로 주장할 것이 아니라, 고객과 공공성을 위하는 철도라면 승무원을 안전담당으로 해서 직접고용하는 게 맞습니다. 철도공사 모토에 고객안전을 최고의 서비스로 생각한다고 돼 있어요.


비용 줄이려 승무원 안전교육은 뒷전, 안전담당인 열차팀장 대체조차도 엉망 
 
공 : 승무원 안전교육은 왜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김 : 안전교육을 시키면 근무에 해당하니까 코레일관광개발에서 시간 외 수당을 줘야 합니다. 그 수당을 주기 싫어서 그런 교육을 안 하고 있습니다. 안전교육을 안 해서 내는 벌금이 교육을 시켜서 주는 수당보다 적거든요. 철도안전법이 생기면서 어느 정도 최소한의 교육은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나 봐요. 최소한의 교육은 한다고 합니다. 아까 말했듯이 온라인 강의 수강이나 책 읽는 수준으로. 아이러니한 게 코레일 관광개발에서 안전담당은 아니라고 하면서 승무원이 소화기 들고 훈련하는 사진을 찍어서 '안전한 철도 책임지겠습니다'라는 기사도 내고 그랬어요.

(2015년 7월 코레일관광개발은 승무원 열차 내 승무원의 비상상황 대처능력 향상을 위해 KTX 승무원 현장 안전교육을 딱 한 번 시켰다.)

김 : 굉장히 모순된 상태입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어떻게 할 수 없다, 시정 못 한다, 대법 판결 났다, 이런 식으로 배짱을 부리고 있는 겁니다. 이미 논리는 잃었음에도 떼를 쓰는 건 철도공사라고 생각해요.

공 : 사람들이 예전에는 스튜어디스나 승무원이 당연히 안전업무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때부턴가 점점 서비스업으로 생각하지 안전업무를 한다고 생각하는 게 희미해졌어요.

김 : 그것도 안전불감증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철도고객들이 승무원의 가치에 대해서 경시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어요. 세월호 같은 큰 사고가 났음에도 여전히 그런 생각들의 변화가 없는 게 참 안타까운데... KTX에는 천 명이 넘는 승객이 탑니다. 18량이 만석이 됐을 때 천명입니다. 요즘에는 무제한으로 입석을 발매하고 있고요. 어떨 때는 통로를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공 : 무제한으로 입석을 발매한다고요?

김 : 네. 천 명의 승객이 탄다고 한다면 999명은 아무 일이 없어요. 주무시느라 승무원이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분들도 많고요. 이런 분들은 '승무원 필요 없어. 지나가지도 않고 얼굴 보이지도 않더라.' 이런 생각 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평범한 상황이 제일 좋은 거고요. 그런데 천 명 중에 한 명은 꼭 사고가 나요. 항상 무슨 일이 꼭 벌어져요.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어요. 분실 같은 사소한 상황부터 아프다던가 열차가 고장 나서 위중한 상황이 발생한다던가... 다양한 상황들이 꼭 한 번씩은 발생하거든요. 

999명이야 '승무원 필요 없어' 라고 얘기할 수 있지만, 승무원은 그 한 명, 사고 나는 한 명을 위해서 최소한의 안전장치입니다. 열차 자체도 완전히 안전한 상태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서 소화기가 있고 안전장치가 있듯이 승무원이 존재하는 겁니다.

공 : 일부러 불 지르고 그런 사람도 있었잖아요.

김 : 언론에 나오지 않아서 그러지 작은 사고들이 자주 발생합니다. 급정거로 쓰러져서 뇌진탕에 걸린 사고도 언론에 안 나오잖아요. 코레일에서 돈 가져가서 합의해버리고... 그런 사태가 일어났을 때 만약에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누가 어떻게 할 건데요. 열차가 사고가 나면 사고의 직접 피해보다 2차 피해, 탈출하다가 다치거나 사고 이후 대처가 미흡했기 때문에 피해가 커지는 경우가 더 많아요.

저번에 무궁화 열차가 부딪쳐서 사고 났을 때도 열차가 부딪쳐서 사고 난 것보다 승객들이 당황해서 유리창 깨고 탈출하다가 유리에 찔리고 떨어져서 뇌진탕 걸리고... 이런 식으로 2차 사고가 나서 피해가 극심했습니다. 그때 그 열차에는 열차팀장이 없고 8시간 교육받은 본사직원이 탄 게 문제입니다. 비상메뉴얼도 몰라서 승강문 여는 법도 몰랐던 거죠. 코레일관광개발 승무원이 승강문을 열고 승객들을 안전하게 대피를 시켰던 일이 있었어요.

공 : 왜 아무것도 모르는 본사 직원이 열차팀장을 대체하죠?

김 : 1000명의 안전을 담당하는 열차팀장 한 명조차 다른 열차팀장으로 대체하지 않습니다. 열차팀장들이 휴가를 가거나 병가 등으로 쉬어야 할 때 상식적으로 다른 열차팀장을 대체로 투입해야 하잖아요. 대체열차팀장 수당이 비싸다고 수당주기 싫어서 본사 직원을 파견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고가 났을 때 아무 대처를 못 하는 거죠.

다행히 당시 관광개발 승무원이 그나마 대처를 잘 해서 승객들을 안전하게 대피시켰습니다. 그 승무원은 매뉴얼을 어기고 대처를 한 겁니다. 안전담당이 아닌데 자기가 월권 행사를 해서 비상시 안전업무를 했으니..

공 : 그 승무원 벌 받아야겠네요.(웃음)

김 : 그런 식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많죠.

29일부터 코레일관광개발 KTX 승무원들이 11년 만에 파업에 들어간다. KTX 해고 승무원들이 파업 지지 메세지를 촬영하고 있다.

 
엄마가 옳은 일 했어! 당당하게 말하고파

공 : 다시 농성을 시작하고 오체투지도 하셨는데, 해고 승무조합원 33명의 상태는 어떤가요?

김 : 11년 전에 활동했던 것을 다시 시작하는 거잖아요. '11년 전으로 똑같이 돌아왔다'라는 이 느낌이 굉장히 무력감에 빠지게 만듭니다. 아직도 해결 안 되고 '처음부터 다시 싸워야 해?' 이런 생각이 들죠. 2005년부터 시작한 첫 투쟁 3년 동안 정말 힘들게 싸웠거든요. 경찰한테 끌려 나오고, 고공농성, 단식농성, 삭발 등 안 해본 게 없었습니다. 이렇게 아팠던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다시 거리로 나서야 하니까...

정신적 스트레스가 장기화되다보니 마음은 '괜찮아, 괜찮아' 다스리고 있지만, 몸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안면 마비가 오신 분, 유산되는 분, 힘들고 거칠었던 기억들이 괴로워서 스스로 기억을 지웠는지 당시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심리상담도 받아봤는데 10년 동안 버텨온 친구들이라 강할 줄 알았지만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사회 부조리로 인한 상처니까 심리적으로 치유되기 위해서라도 이 부조리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공 : 다시 시작했을 때 사람들이나 가족들 반응은 어땠나요?

김 : 가족들은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응원해주고, 시민들은 '아직도 해결 안 됐냐?' 하기도 합니다. 저희 문제를 모르는 분들도 있지만, 많은 분들 아시더라고요. 하지만 순간순간 부딪히는 부분들이 있을 때는 좀 힘들기도 합니다. 얼마 전 'KTX 승무업무 직접고용 및 해고승무원 문제해결을 위한 국회토론회'를 준비하면서 각 당의 의원실을 찾아갔었습니다. 그때 어떤 의원은 "너희들, 빚지고 해결 안 될 거 몰랐냐?" 이러시더라고요. 이렇게 봉변을 당하기도 합니다.

공 : KTX에 어떤 끈이 있기에 11년 동안이나 싸우고 계신가요?

김 : (웃음) 어떤 사람은 'KTX에 꿀 발라놨냐'고 하기도 하는데요, 애증이라고 할까... 첫 직장이었고, 처음 입사했을 때 홍익회가 너무 주먹구구식이어서 우리끼리 매뉴얼 하나하나, 프로세스 하나하나를 만들어갔거든요. 정말 아끼고 사랑했던 직장이었고 헌신을 다 했습니다. 자기 방 청소는 안 해도 KTX 화장실 바닥은 청소하고 그랬으니까요. 내가 만들고 일궈낸 애착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붙잡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내 아이에게 '엄마가 옳은 일 했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방명록



10월 23일 철도공사가 건 부당이득금 반환소송에 대한 2차 조정이 있다. 이때까지 화해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해고 승무원들 집에는 빨간 압류 딱지가 붙여진다. 지금도 낮이고 밤이고 두드려대는 1억 청구서에 벨소리만 나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KTX 해고 승무원들이다.

사찰에는 울력이라는 게 있다. 주지 스님이 목탁을 세 번 길게 두드리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모여 함께 공동의 노동을 한다. 마을청소 울력, 담쌓기 울력.

기꺼이 힘든 길을 가고 있는, 거친 길을 마다하지 않는 KTX 해고 승무원들에게 마음의 울력이 필요하다. 이들이 원하는 세 가지가 이번에는 꼭 이루어지도록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마음을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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