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평화사절단, 북 아프리카의 쿠스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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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평화사절단, 북 아프리카의 쿠스쿠스
[아프리카 음식 기행⑤] 세상에서 가장 작은 파스타가 만든 대통합
  • 2019.06.20 14:31
  • by 엄소희(키자미테이블 공동대표)

쿠스쿠스는 비교적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음식이다. 보통 유럽식 퓨전 샐러드 형태로, 뷔페 음식이나 샐러드 전문점의 메뉴로 종종 볼 수 있다. 발음이 재밌는 음식 ‘쿠스쿠스’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파스타이다. 으깬 듀럼밀(밀 종류 중 하나)이 원재료인데, 좁쌀만한 쿠스쿠스 알갱이가 원료의 이름이자 요리의 이름이다. 쿠스쿠스를 즐겨 먹는 서구 사회에서도 ‘쿠스쿠스에 들어가는 곡물 이름이 뭔가요?’라고 많은 사람들이 물을 정도로, 알갱이가 작다 보니 쌀밥이나 퀴노아처럼 곡물을 익힌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쿠스쿠스 샐러드가 지중해 음식으로 분류되어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통 지중해 연안의 유럽 국가 음식으로 오해하곤 하지만, 쿠스쿠스의 기원은 북아프리카 지역이다. 건조한 지역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아랍인들은 일찍부터 건조 파스타를 만들어 저장하였는데, 쿠스쿠스는 특히 ‘마그레브’라고 칭하는 북아프리카 지역의 아랍 문화권 사람들의 주식으로 자리잡았다. 쿠스쿠스의 기원은 약 10세기 경으로 추정되며,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13세기 발간된 마그레브 지역의 요리책이 최초이다.
 

모로코식 쿠스쿠스 (출처: www.finedininglovers.com)


쿠스쿠스는 알갱이가 작아 조리 시간이 짧고 먹었을 때 소화도 잘 된다. 쿠스쿠스 샐러드가 신선한 채소 위에 약간의 쿠스쿠스를 버무리는 찬 음식인데 비해, 북아프리카식 쿠스쿠스는 푹 익힌 갖은 채소와 함께 고기나 생선을 얹어서 먹는 따뜻한 음식이다. 밥보다 부드럽게 넘어가고, 죽보다는 식감이 좋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채소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이 쿠스쿠스가 올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심사를 받는다는 소식을 최근에 뉴스로 접했다. 사실 쿠스쿠스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고자 하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6년 알제리가 쿠스쿠스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 때 추진하지 않은, 아니 못한 이유는 주변국의 반발 때문이었다. 마그레브 문화권의 모로코, 튀니지 등이 자신들이 원조라고 나선 것이다. 특히 알제리와 모로코는 독립 이후 갈등이 끊이지 않았었기 때문에 (한 문화권을 정치적 이유로 국경을 가르게 되면 이렇게 국가간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쿠스쿠스가 또다른 갈등의 도화선이 되었다. 때아닌 ‘원조 논쟁’에 휩싸여 결국 쿠스쿠스는 등재 신청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다.
 

알제리에서 열린 쿠스쿠스 축제에서 쿠스쿠스를 요리하고 있는 여인 (출처: www.france24.com)


천 년 넘게 먹어온 음식을, 채 100년도 되지 않은 현대 국가에서 원조라 주장하는 것이 앞뒤가 맞는 일일까? 이 사실을 그 지역의 국가들도 금세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름답게도, 마그레브의 국가들 –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모리타니아 4개국이 함께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하기에 이른다.

쿠스쿠스 말고도 지역색이 강한 음식의 원조 논쟁은 심심치 않게 불거진다. 감자 튀김을 둘러싼 프랑스와 벨기에, 후무스를 둘러싼 아랍의 국가들, 졸로프를 둘러싼 가나와 세네갈 등등. ‘원조’가 뭐 중요한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음식에 담겨 있는 문화와 역사를 생각하면 음식의 기원이라는 것이 한 국가나 민족의 ‘자존심’일 수 있는 것이다. (동일선 상에서 비교하긴 어렵지만, 한 때 세계 시장에 ‘기무치’를 일본 음식으로 내 놓은 것을 두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분개했던 것을 생각하면 유사할 듯 하다.)
 

알제리, 모리타니아, 모로코, 튀니지의 유네스코 대사들. Ghazi Gherairi 튀니지 대사는 본인의 트위터에 ‘쿠스쿠스가 마그레브 지역의 화합을 만들었다’고 썼다. (출처: Ghazi Gherairi 트위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공동으로 등재 신청을 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북아프리카 국가들이 함께 등재 신청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끊이지 않는 갈등으로 우려를 샀던 알제리와 모로코의 관계도 이번 ‘쿠스쿠스 대통합’을 통해 개선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나오고 있다.

마그레브 지역에서 쿠스쿠스는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나누어 먹는 음식이다. ‘가족’, 그리고 ‘함께’라는 키워드를 가진 이 쿠스쿠스가 북아프리카 지역의 평화를 가져오는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해내길 기대한다.


 

엄소희
케냐와 카메룬에서 각각 봉사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아프리카에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됐다. 좋아하는 것(먹는 것과 관련된 일)과 하고 싶은 것(보람 있는 일), 잘하는 것(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의 접점을 찾다가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아프리카 음식점을 열었다. 르완다 청년들과 일하며 '아프리카 청춘'을 누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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