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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제주 이야기] 1인칭 제주 시점

태풍 솔릭의 북상이 화제였던 2018년 8월, 이주민 친구가 실소를 머금으며 공중파 뉴스의 아나운서 멘트를 언급했다. “태풍 솔릭이 제주도 남부 앞바다를 지나 우리나라를 향해 북상”한다는 이상한 표현을 사용하더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제주도’는 이미 거센 비바람 속에서 피해를 입고 있는데, ‘제주도’를 지나 ‘우리나라’를 향해 북상 중이라니 국토 최남단 섬을 아예 딴 나라 취급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물론, 아나운서도 바다를 지나 육지 본토로 올라온다는 이야길 전하려다 그리 되었을 것이다. 미디어는 육지, 정확히는 서울을 중심에 놓고 뉴스의 중요도를 가르고 비중을 더 얹는다. 이것은 사실 제주만의 서운함은 아니다. 육지를 둘러싼 섬들, 이를 테면, 동쪽 끝 울릉도나 남쪽 끝 제주도, 서쪽 끝 백령도에서는 종종 겪는 일이다. 서울을 지나 강원도를 빠져 나가는 태풍에 대해 다행이라는 소식들, 울릉도 시점에서는 점점 다가오는 태풍인데도 말이다. 그래도 제주는 덩치도 크고 유명해서 덜 억울한 편이다. 무명의 작은 섬들이 겪는 설움에 비하면 말이다.

 

고려시대부터 명명된 제주의 한자어는 건널 제(濟), 고을 주(州)이다. ‘바다 건너 마을’ 정도의 뜻이다. 육지와 동떨어진 섬인 제주는 무언가를 건너야 도착하는 곳이다. “건너다”는 ‘시점’과 ‘방향’이 들어있는 단어다. 육지의 서울에서 “건너 도착하는” 마을이 제주인 것이다. 제주 입장에서 제주는 ‘바다 건너 마을’이 아니지만 스스로를 바다 건너 마을로 부르는 격이다. 서울 시점에서 규정 당한 호명이다.

 

제주에서는 제주말을 ‘제주어’로 많이 부른다. 처음에는 제주말이 아무리 다르다고 해서 ‘제주어’로 부를 일인가 속으로 좀 의아했다. 아직 이에 관한 명쾌한 설명을 찾은 바는 없지만, 지금은 나도 두 가지 이유에서 제주어로 부른다. 첫째는, 제주말을 어떤 표준어의 ‘사투리’, ‘방언’으로 칭하는 언어간 중심-주변 관계가 마음에 걸려서다. 제주 사람들 입장에서는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평생 보고 듣고 구사해온 단 하나의 언어가 표준어를 상정한 주변의 언어로 불려지는 것이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야 그렇게 부르더라도 제주 사람들까지 자기 언어를 ‘제주 사투리’로 부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둘째 이유는, 제주어가 중세 한국어의 원형을 비교적 많이 지니고 있고, 섬이란 특성으로 다른 언어간 혼합 없이 어느 정도의 고유성을 유지하고 있어 소수 언어로서도 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제주는 남쪽 끝에 있는 섬이다’, ‘제주는 바다 건너 마을이다’, ‘제주 사투리는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지방색이 강하다’. 이는 서울 시점에서 상식적인 정보이며 평범한 말들이다. 그리고, 이 말들은 서울(중심)로부터 규정 당하는 제주를 전제하고 있다. 오랫동안 제주는 중심의 타자로부터 명명되고 설명 되어 자기 중심의 언어와 설명을 배제당하곤 했다. 4.3 같은 무자비한 사태마저 오랜 세월 그 언어와 설명을 권력자와 무리들에 내어주고 침묵으로 대신 했다.

 

‘제주는 큰 산이요, 큰 바다다’, ‘제주는 탐라라는 국가 체제를 갖췄던 역사와 독특한 사회, 문화를 전승한 공동체다’, ‘제주어는 지켜야 할 고유의 언어다’로도 말할 수 있다. 이 역시 여전히 상식적인 정보이나 서울 시점과는 약간 다른 1인칭 제주 시점이다.

 

우리의 세상은 다양한 모습과 색채, 목소리로 채워져 있다. 앞으로도 각각의 모양과 색깔은 더욱 또렷해지고 다양해질 것이다. 또한, 자기 목소리로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중요해지고 있다. 제주 역시, 본연의 모습, 색깔, 목소리를 지니기 기대한다. 이를 테면, 더 많이, 높이 짓는 제주가 아니라 더 다양하게, 어울리게 짓는 개발 철학 같은 것들 말이다. 제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1인칭 제주 시점으로 재구성하기를, 뚜렷한 정체성과 제주다운 철학을 갖춰 스스로의 중심을 지닌 제주이기를 희망해본다. 우리 모두에게 1인칭 시점이 필요한 시대이니 말이다.

 

제주는 잦은 비가 내리는 때가 있다. 그럴 땐 무지개도 자주 보인다.


최윤정
지난 11월부터 <라이프人> 섹션을 통해 제주의 소재로 소소한 이야기를 해온 것이 어느덧 20회가 되었습니다. 제주 입도 3년 차인 이주민이 쓸 수 있는 제주 이야기란, 대부분 일면이거나 단견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회 연재를 통해 제주의 여러 면모를 입체적으로 살펴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기회를 주신 라이프인 관계자들과 부족한 글마저 풍부히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최윤정  webmaster@lifei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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