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에 싹튼 공시생 힐링 문화 '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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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에 싹튼 공시생 힐링 문화 '트자'
[노량진 공시생 모여라! 트자 캠프] 노량진 사회적 기업들, 공시생 위해 문화기획 마련해 '눈길'
  • 2019.05.30 18:05
  • by 김지현 기자

노량진 공시생은 외롭다.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수험에 매진해야 하는 탓에 자연스럽게 인간관계가 협소해진다. 수험과정에서 친구가 생기면 다행이지만 이도 쉽지 않다. 합격률이 낮아지면서 함께 공부하는 친구는 사라지고 경쟁자만 남았기 때문이다. 노량진 고시촌에 기거하며 숙식비와 교육비를 지출하지만 지역 상인들과 유대관계도 약하다. 상인들은 이들이 정주인구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성년이지만 경제활동에 종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회도 이들을 존중하지 않는다. 오랜 기간 공부했다는 이유만으로 '공시 낭인'이라고 낙인찍고 '진로를 바꾸라'고 닦달을 하니 억울하지만 하소연 할 데가 마땅치 않다. 점점 더 어깨가 움츠러들고 고시촌 밖으로 나오지 않게 되는 이유다.

진정으로 공시생을 생각한다면 이들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수험의 고충을 덜어주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노량진의 사회적 기업들이 모여 기획한 공시생을 위한 캠프 '트자'가 반가운 이유다. 수험생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이 지역에 자리잡은 사회적 기업들이 삭막한 노량진 고시촌에 문화를 덧입히고 주머니가 가벼운 공시생에게 친환경 먹거리를 제공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지난주 토요일(25일) '노량진 공시생 모여라!'라는 구호 아래 첫 '트자' 캠프가 시작됐다. '트자'라는 캠프명은 건조한 수험생활에 지친 공시생들에게 잠시 마음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을 제공한다는 의미다. 이번 캠프는 토요일마다 격주로 11월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공시생에게 친환경 재료로 만든 식사를 저렴하게 제공하겠다는 '집밥셰프' 김대식 대표는 이 날 "이 지역 수험생은 매끼 외식을 하는데, 자칫 건강을 해칠 수 있다"며 "집밥같은 식사를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공시생 출신인 김 대표는 노량진에서 오랫동안 공부를 하면서 크게 아팠던 경험이 있다. 건강한 식사를 강조하는 이유다.

김 대표는 "부페식으로 밥을 제공하고 싶었는데 간편식을 제공해 달라는 수험생 제의가 들어와서 오늘은 친환경 샌드위치를 준비했다. 수험생 반응을 보면서 제공하는 음식에 변화를 줄 것이다"고 했다. 

'집밥셰프' 김대식 대표가 '트자' 캠프 첫날 수험생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아침부터 직원들과 직접 만든 친환경 샌드위치. 소세지와 친환경 야채가 듬뿍 들어있는 샌드위치는 이 날 수험생에게 2000원에 제공됐다. 수익금은 '트자' 캠프에 재투자 된다.

다음 캠프부터 행사에 참가해 수험생들에게 작은 클레이 아트 키트를 무료로 제공할 예정이라는 스페셜 아트 김민정 대표는 "지금까지 노량진에 이런 행사가 없었다"며 "쪼물쪼물하다 보면 마음이 안정된다. 수험생들이 문득 허전할 때 잠시 클레이 작업을 하면서 따뜻한 감성을 느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스페셜 아트는 발달장애인들에게 미술 교육을 시키 장애인 예술가를 육성하는 기업이다.

행사 직전까지 캠프 현수막과 참여 업체들의 브로셔 등을 모두 디자인하고 수정하느라 일주일간 강행군을 했다는 사진 영상 디자인 협동조합의 김정연 이사는 "정말 고생했다"면서도 "캠프가 시작돼서 기쁘다. 다음 주에는 수험생들이 더 많이 왔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보였다. 사진 영상 디자인 협동조합은 이 날 공시생에게 사진 무료 인화 서비스를 제공했다.

김 이사는 "한 번 행사를 치러보니 마음이 급한 수험생에게는 빠르고 즉각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다음에는 즉시 근육을 이완시켜주는 아로마 연고를 발라줘야겠다"며 새로운 프로그램도 제안했다.

자기분석연구소 SAL은 타로와 딕싯카드로 수험생 상담에 나섰다. 이날 행사에서 하루종일 타로 상담을 진행한 타로 전문가이자 심리검사 개발자인 박채원 연구원은 "즐거웠다"며 "SAL은 이 행사의 취지에 깊이 공감한다. 앞으로 SAL은 학습과 진로에 관련된 전문 심리 분석 프로그램 서비스를 공시생에게는 아주 저렴하게 제공할 계획"이라고 귀뜸했다.

타로점을 보고 있는 공시생. 올해 27살이라는 공시생은 "상담 좋았다"며 "홍보가 더 많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딕싯카드 상담을 맡은 오설아 심리상담사는 "정말 공무원이 되고 싶어서 공시를 시작한 청년들의 고민은 대부분 경제적인 것들이다. 반면 사회적인 분위기나 가족들의 권유로 공시를 시작한 청년들의 고민은 전혀 다르다"며 "대학을 졸업하고 공시를 시작할 때까지 인생 진로를 결정할 때 한 번도 자기가 결정해 본 적이 없는 친구들이 상당수다. 자기 의사로 시작했다고 하지만 진정한 자기 의사가 아닌 것이다. 그렇게 자기결정권이 없는 친구들은 자기 확신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인이 뭘 잘하고 뭘 좋아하는지 알고 고민해서 결정한 진로가 아니기 때문에 공무원이 내 길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다. 그런 친구들은 공시를 그만두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경우가 많다. 본인의 적성을 본인이 모르기 때문이다. 스펙은 정말 좋고 똑똑한데 성적이나 입시 등 한정된 기준으로만 평가받는데 익숙해져 있고 자신이 자신의 가치를 모른다"며 이번 행사가 공시생에게 경제적인 면에서 학습능력 향상 및 진로 상담까지 다양하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건강이 악화되면 체력이 떨어지고, 스트레스가 과도하면 집중력이 떨어지는 법. '트자' 캠프 참여 기업들은 수험생들의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하고 소소하게라도 문화를 제공해 정서 안정에 도움을 주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버스킹도 열렸다. 이날 버스킹을 진행한 슈퍼스타케이 출신 가수 조원국은 "나도 20대 후반이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누구나 있다"며 "적절한 강박감은 발전의 원동력이 되지만, 과하면 의기소침해진다.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수험생들의 활기찬 수험생활을 기원했다.

슈퍼스타케이 출신 가수 조원국.

공시생들이 한가지 주의할 점은 이 날 행사는 노량진역 1번 출구 앞에서 열렸지만 아직 장소가 확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캠프를 기획한 신만수 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은 "고시촌 안에서 캠프를 열고 싶은데 상인들의 민원 때문에 쉽지 않다"며 "노량진이 팍팍한 수험생활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곳이 되면 지역 경제도 더 활성화 될 텐데 상인들에게 아직 공생 마인드가 부족한 것이 아쉽다. 고시촌 안에서 캠프 장소를 계속 찾고 있다"고 밝혔다. 노량진 지역경제산업은 현재 고시원 등 수험관련 산업에 집중되어 있다.

신 센터장은 "행사 장소와 일시는 당분간 각 학원과 고시원 독서실 등에 매번 포스터를 붙여 홍보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수험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장소와 프로그램 등을 계속 다듬어 나갈 것"이라며 "공시생의 수험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우리의 진심이 언젠가는 우리와 공시생과의 관계를 터주지 않겠냐"며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노량진역 1번 출구 맞은편 모습. 이 길을 따라 대형 학원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그동안 노량진은 공시생들에게 하루빨리 합격해서 떠나야 하는 곳이었다. 노량진에 모여 있는 수험인구는 유동인구를 빼고도 5만여 명에 달하지만 공시생들만의 문화는 없었기 때문이다. 지역의 사회적 기업가들이 공시생을 위한 문화운동에 나섰다는 자체로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지난주 토요일 노량진은 이미 공시생에게 삭막하지만은 않은 곳으로 변신을 시작했다. 11월까지 이번 행사에 얼마나 많은 공시생이 참여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노량진에 거주하는 공시생이라면 누구나 이번 행사에 참여할 수 있고, 환영받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번 행사는 서울시 '2019 자치구 지역특화사업'으로 서울시는 이번 행사에 3,980만원의 예산을 배정했고, 동작구는 행정적인 사항을 지원한다. 자세한 사항은 동작구 생활경제과(02-820-9614)로 문의하면 안내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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