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현재가 공존하고, 3대가 어울리는 도시를 꿈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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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현재가 공존하고, 3대가 어울리는 도시를 꿈꿔요"
[국내 최초 민간 주도 도시재생 '개항로 프로젝트' : 이창길 대표 인터뷰 ②] 개항로의 미래를 그리다
  • 2019.05.16 18:05
  • by 김지현 기자
이창길 대표.

- 대표님의 재생 철학, 이 공간을 만들어 나가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 등이 궁금해요.

재생의 중요한 포인트가 옛 건물은 남기되 그 안을 채울 컨텐츠는 2019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것들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옆이 최초 인천 백화점 건물예요. 이것을 다시 백화점으로 만들면 누가 올까요? 카페 일광전구 라이트하우스는 옛 산부인과 건물을 카페로 개조한 것예요. 누군가는 그대로 병원으로 사용하자고 주장하겠죠. 그러나 요즘 누가 그 비좁은 회복실에 있고 싶어 하겠나요.

하지만 100년 된 건물은 새로 만들 수 없어요. 카피도 안 되죠. 없어지면 끝입니다. 이런 것들을 지켜내고 그 안은 동시대인들이 생각하는 컨텐츠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 우리 사회 세대차이가 상당히 큰데 지금 오픈한 가게들은 그야말로 '힙'한 곳들입니다. 일단 젊은이들에게 포커스를 맞추신 것인가요?

정말로 많이 고민했던 문제예요. 지금 30~40대는 공부도 많이 하고 외국 생활도 하고 그런 세대죠. 하지만 50대 이상 세대는 그렇지 않았어요. 영국에서는 할아버지 아들 손자가 비틀즈를 함께 즐기지만 우리는 '눈물 젖은 두만강'을 함께 즐기지 못해요. 유럽과는 상황이 다르죠.

그래서 노포(오래된 가게)를 발굴하고 조명하는 겁니다. 80세 노인이 엣지있고 트랜드 있게 만든 공간에 오고 싶어하지 않으시겠지만, 젊은 세대가 대전집 신신옥 같은 데는 가죠. 오래된 곳이라는 것도 다 알고요. 일본의 100년 된 료칸에 가는 것처럼. 젊은이들은 그런 것이 재밌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전 세대가 공유 할 수 있는 공간이 노포가 아닐까 생각한 거죠.

'개항로 프로젝트' 사무실에 전시되어 있는 노포 사진들. '개항로 이웃사람'에 전시됐던 작품들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12월 인천시 도시재생지원센터와 함께 중구의 오래된 가게 12곳을 소개하는 '개항로 이웃사람' 전시회를 열었다. 노포 사진과 주인 인터뷰 등을 담아 전시했고, 그는 이 프로젝트로 지난 달 도시재생산업박람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 노포를 통해 신구세대를 아우르려고 하신 것이군요?

그렇죠. 영국이 정말 부러웠던 것이 파티에 갔는데 할아버지부터 젊은이까지 함께 놀더라고요. 한국은 나이대별로 갈 수 있는 곳이 암묵적으로 나뉘어져 있죠. 한국에서 모든 세대가 어울릴 수 있는 곳은 노포니까요.

노포와 젊은이들이 즐길 수 있는 곳들이 다양하게 혼재되어 있는 곳. 과거와 현재, 옛 거리와 현대 문화가 한데 어우러지는 곳. 그것이 인천 중구의 색깔이자 아이덴티티(Identity)인 것이죠.

그리고 한 자리에서 40~50년 장사했다는 것은 개인 취향을 떠나서 실력이 있다는 거예요. 그 긴 세월 한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가치를 제공했다는 것만으로도 저 분들은 어른으로 존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생각할 때 저분들과 노포는 이미 문화재예요. 그런데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어요. 저분들 돌아가지면 노포는 문을 닫고 사라지겠죠. 중구의 엄청난 자산인데 말이죠.

여기 노포들은 공통적으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어요. 단골들은 돌아가시고 젊은이들은 이곳을 찾지 않으니까요. 그러면 자녀들이 가게를 물려받을까요. 그래서 노포를 알리는 것입니다. 저분들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예요.

- 노포를 알리는 전시회를 계속 하셔야겠네요.

노포를 알리는 방법은 다양해요. 최근 친해진 분은 페인트 가게 사장님이세요. 골목길 걷다가 '불조심·금연' 이라는 글씨를 봤는데 서체가 심상치 않아 수소문해보니 골목 옆 페인트 가게 사장님이 쓰셨더라고요. 인천에서 영화간판을 도맡아 제작하시던 분이셨어요.

사장님과 자주 만나다보니 인천에 사는 레오다브라는 그라피티 작가가 떠오르더라고요. 영화간판이나 그라피티나 연속성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잖아요. 사장님도 한때 업계에서 최고셨고. 사장님이랑 이 친구랑 콜라보를 하면 재밌지 않을까요? 사장님도 일거리 생기면 좋아하시겠죠.

인천시에 바라는 점도 이런 것들이예요. 벽화 좀 그만 그리고요! 다양한 아트웍을 구상했으면 좋겠어요. 여기저기 똑같은 벽화 재미없잖아요.

골목길 안쪽에 '불조심'이라고 씌여있다. 이 대표는 "여기가 고등학생들이 숨어서 담배를 피우는 곳"이라며 웃었다.

- 이 프로젝트를 순수하게 민간 주도로 하고 싶었던 것 아닌가요?

그런 의도는 아녜요. 도시재생센터와 전시회를 같이 진행한 적은 있는데, 중구와 접족해본 적은 없어요. 연락 받은 적도 없고요. 그런데 이제는 제발 좀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그럴 때도 됐고요. 지금 하는 일 외에 제 머릿속에 있는 구상이 굵직굵직한 것만 5~6개가 넘어요. 감당이 안돼요.

인천시나 중구청 뿐 아니라 관심 있는 분들 누구라도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분들 한분한분 인터뷰하는 것도 진짜 어렵고 힘들어요. 죽겠어요. 하하.

연세가 많으시니 시간약속은 기본적으로 다 안 지키시고, 갑자기 안 한다고 하시기도 하고요. 한 분과 친해지려면 최소 10번은 넘게 만나야 되요. 같이 술 마시고 장난치고 존대했다 반존대했다. '개항로 이웃사람' 사장님들과 친해지는데 1년 걸렸어요.

-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으신가요?

개항로 프로젝트의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 노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분들 자료를 남기는 것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이라는데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괜찮죠. 방법도 각자 달라도 되고요.

- 구상하고 계시는 계획을 조금 더 얘기해주세요

지금 '개항로 이웃사람' 외에 곧 '개항로 젊은 사람' 전시회를 할 거예요. 이쪽에 가게를 오픈한 3년차 이하 젊은 친구들을 만나고 있어요. 다음으로 개항로에 사는 주민들을 만나고 싶어요. 이 세 개가 시리즈인거죠. 나이드신 분들, 젊은 친구들, 주민들을 묶는 거예요.

제주도에서 작업할 때 경험한 것인데요. 제가 계산해 보니까 관광객하고 원주민하고 저같은 이주민 비율이 1:1:1 정도 되더라고요. 그런데 서로 섞이질 않았어요. 그러니 외부에서 왜 안 친하냐, 싸우냐 하더라고요. 그런데 성급한 발상예요. 처음 만났는데 어떻게 친해져요. 하물며 남녀가 만나도 싸우는데. 일단 서로 만나야 되요. 알아야 하고요.

또 내 나이대 친구들 보면, 창업하고 싶지만 실패가 두려워 시도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이런 친구들에게 주방설비 잘해서 일단위로 임대하는 식당을 오픈하는 구상도 하고 있어요. 창업해도 될지 짧은 기간 내에 한번 시험해 보라는 거죠.

거리를 예쁘게 꾸며서 마을 결혼식장으로 활용하고 싶기도 하고. 이 거리 당장이라도 정말 예쁘게 꾸밀 자신 있거든요. 구상은 다 되어 있는데 막상 실현하려고 해보니 이것저것 규제가 정말 많더라고요. 지자체 협조가 필요해요.

이국적인 분위기의 베트남 음식점 메콩사콩.

- 미적 감각은 타고 나신건가요? 미술이나 디자인 전공도 아니신데 인테리어 감각이 뛰어나신 것 같아요.

전혀 그쪽하고 관련 없었어요. 그러다가 영국에 갔는데 다들 정원을 꾸미더라고요. 남들 다 하는데 나도 뭐하나 심어보자 해서 시작했다가 완전히 빠져든 거죠. 하루종일 쳐다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여기까지 왔어요. 어느 정도 타고난 것 같아요.

- 개항로 보존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해야 해요. 옛 건물이라고 무조건 보존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보존할 건물과 철거할 건물의 기준을 정한 뒤에 부분적으로 철거하면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형태의 도시가 되겠죠. 그러면 민간이 주도해서 그 구멍들을 공원 등으로 꾸몄으면 해요. 주민이 필요한 시설을 마련하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개발이 진행되면 사업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재개발은 안돼요. 부동산 업자들은 큰 부지를 원하니까요. 그러니 이런 형태로 개발을 하려면 국가나 지자체가 나서서 오래된 건물이나 철거할 건물을 매입해야 해요. 주민들이 돈을 보탤수 있다면 더욱 좋겠죠. 시민자산화 되는 것이니까요. 

슬럼화 된 곳이라 건물 매입에 예산도 많이 안 들어요. 하지만 그로인한 경제적 문화적 효과는 어마어마하게 크죠. 100년 된 가게 만드는 것 정말 어려워요. 만약 보존한다면 명소가 되는 것이죠. 

- 마지막으로 바라시는 점이 있다면요?

처음에는 이렇게 일이 커질 줄 몰랐어요. 그런데 하다보니 인천시와 중구청의 도움이 절실해요. 개항로 보존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카페 브라운핸즈 앞에서 이 대표가 손을 흔들며 '잘 가라'고 인사를 하는 모습.

인터뷰가 끝나고 천천히 개항로를 둘러봤다. 저층 건물과 폭이 좁은 거리. 그 안에 빈 집과 새로 오픈한 가게,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쫄면을 처음 만들었다는 광신제면소, 최초 활동사진 상설관인 협률사, 인천-서울 간 최초의 전화가 개통됐던 화신양복점 터 등이 어우러져 독특한 아우라를 풍기는 곳이다.

좁고 긴 창문을 가진 일본식 목조가옥과 합벽 건물들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건축대장상 1910년대에 지어졌다는 건물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건축 대장상 1910년대이니 실제로는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프로젝트 멤버들이 오픈했다는 몇몇 가게들도 둘러봤다. 조용한 거리. 이런데서 장사가 될까 싶게 낡은 건물. 그런데 놀랍게도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어떤 곳은 오래된 명품 같고 어떤 곳은 엣지가 넘친다.

개항로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 거리를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가 있었고, 여러 가지 시도들이 있었다는 기록은 남아야 할 것 같다.

라이트 하우스에서 백열전구로 만든 샹들리에를 가리키고 있는 이창길 대표.

■ 개항로 소개

인천 중구는 1883년 인천한 개항 이후 1960~70년대까지 번성했다. 첫 개항지로 열강들이 앞 다퉈 밀려든 결과 제물포를 중심으로 최초의 근대식 공원, 극장, 학교, 호텔, 은행 등 근대 건축물이 들어섰고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시외전화 화폐 구두 담배 성냥 축구 야구 등 해외 신문물이 밀려들어왔다.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답동 성당(1899년)부터 일제 시대에 지어진 은행과 관공서 건물, 100년이 넘는 민간건축물 등은 지금도 구도심 곳곳에 흩어져 있다.

해방 이후에도 개항로는 '잘 나갔다'. 은행 병원 관공서가 밀집했고 최고 상권으로 꼽혔다.

1980년대 중반 인천시청이 구월동으로 이전하면서 기세가 꺾였지만 여전히 90년대까지 웨딩과 가구거리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몰이 발달하고 가구거리가 파주 일산 등에 생기면서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고, 송도와 청라 등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이곳은 잊혀갔다. 이곳이 쇠락하면서 2000년대 초중반 재건축 재개발 도시환경정비사업이 다양하게 추진됐지만 사업성 등 문제로 10년 넘게 지체되면서 슬럼가로 전락했다.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지하철 1호선 동인천역에서 10분 거리다. 구도심이지만 공영주차장이 있고 인근 대형병원이나 교회 등엥서 대규모 주차시설이 있어 차량 이용도 수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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